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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마음 - 장 자끄 상뻬의 ㅣ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1
장 자크 상뻬 지음,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각별한 마음 (원제: Sentiments Distingues) | 장 자크 상뻬 |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0.01
그간의 삽화집들이 대형 판본의 화보집으로 재발간되고 있는 요즘 오랫만에 상뻬의 신작 삽화집을 만났다. 제목부터 각별하게 다가오는 《각별한 마음》은 그 표지 그림 또한 재미있다. 주변이 온통 빨간 장미밭에서 일하는 여인과 꽃다발을 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 얼핏보고는 꽃밭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꽃다발이라니! 저 남자 센스가 부족하군! 하며 혀를 차려는 찰나 그의 손에 들려진 꽃다발의 장미가 내뿜는 파란색이 눈을 가득 채운다. 빨간 장미밭의 그녀에게 선물하는 파란 장미 꽃다발, 그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역시 상뻬다!
상뻬를 처음 만난 건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짚어내는 그의 그림은 책의 내용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까트린 이야기>(이책은 <발레소녀 카트린>을 거쳐 지금은<우리 아빠는 엉뚱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속 삽화로 다시 만나면서 상뻬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그후 그가 낸 삽화집들을 여러 권 만났다. 그러나 상뻬에게 반한 가장 결정적인 책은 역시나, 나를 아시는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사랑스런 아이 까이유가 등장하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다.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기도 하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접한 이후 상뻬에게 빠져 도서관에서 출간된 그의 책들을 거의 빌려봤던 것 같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넉넉해진 이후에는 그의 책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사이 안타깝게 절판된 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파리 스케치>, <프랑스 스케치>, <겹겹의 의도>, <아름다운 날들> 등 상뻬의 책들은 일러스트레이션 에세이, 즉 삽화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책들은 읽는이의 시선에 따라 그 평가가 다양해진다. 뭘 말하는지 가늠하기 힘든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저 웃고 즐기도 하며, 그 작은 그림 하나에 어떤 책보다 큰 감동과 따듯함을 얻기도 한다.
솔직히 전에는 그의 삽화집을 단순히 즐기면서 봤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이책 <각별한 마음>은 한 바닥을 가득 채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이미지 외에도 그 주변을 채우는 것들에까지 눈길이 갔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중인 엄청난 인파나 공원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살피는 여유를 부렸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림책 <윌리를 찾아라!>를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를 누렸다고나 할까. 그저 배경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몇 개의 간략한 선으로 그들에게 각기 다른 생동감을 부여한 상뻬에게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림 속 세계에 빠져들다보니 책 읽는 시간이 전보다 몇 배는 걸렸지만 훨씬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책소개에도 나와있듯이 <각별한 마음>에는 현대 문학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익살맞게 풍자한 다양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겉으로는 문학을 논하는 척하지만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이나 모험을 거부하는 출판계, 현대적이라는 미명 아래 원작을 망치는 연출, 거창한 해석과 의미를 붙이길 즐기는 미술계 등 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어낸다. 그러나 상뻬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밉살스럽지 않다. 날카롭되 그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은 상뻬 특유의 장난기 어린 풍자로 표현되며 오히려 웃음을 유도한다. 그림과 그 아래의 짧은 글은 때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연출하며 독자에게 또다른 반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감동과 유머를 담은 상뻬의 따듯한 그림들이었다. 인파로 발딛을 틈 없이 복잡한 미술관 한 귀퉁이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정신없은 시위대 속에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모습, 텅빈 무대에서 둘만의 공연을 시작하는 청소부, 아기 마네킹에게 정성스레 옷을 입히고 입맞춤하는 여인 등의 그림은 내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수학공식을 계산하다 모래시계로 요리시간을 재는 남자, 기차 안의 모든 남자들이 한 여인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 자아도취에 빠진 작가와 바이올린 값을 받으려는 악기상 주인, 재치만점의 황당한 자동응답기 멘트 등 그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그림들도 좋았다.
특별히 따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작가의 의도를 몰라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그림들이 이책에도 여전히 있긴 하지만, 그렇다해도 상뻬의 그림들은 그냥 그 자체로 좋다. 그의 그림들은 귀엽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 따듯하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다양한 인간군상들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상뻬의 진정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매력에 발목잡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여전히 그의 그림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뻬의 따듯한 그림과 글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