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를 품다 -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 서울문화예술총서 4
오민근.서진영 엮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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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문화를 품다 :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 | 오민근, 서진영 | 생각의나무 | 2010.02


몇년전 서울을 갔을 때 친구와 홍대앞을 찾은 적이 있다. 서울 토박이인 친구의 안내로 거닐던 겨울철 낮시간의 홍대앞은 생각외로 차분했고 보통의 대학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곳이 홍대앞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건 골목길 중간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낙서들이었다. 씨익 웃음짓게 하는 익살스런 그림도 있었고 꽤나 정성들여 작업한 듯한 벽화도 보였다. 때론 상가의 출입문이나 내려진 셔터 위에 자리잡고 있기도 했다. 홍대앞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옷가게, 개성 넘치는 전시, 인디밴드들의 공연 등을 경험해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골목길에서 만난 재미난 벽화들만으로도 자유분방한 젊은 예술가들의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홍대앞에서의 짧은 경험은 그전까지 다소 삭막한 공간으로만 다가오던 서울에 또다른 이미지를 덧입혀 주었다. 생활 속에 들어와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을 통해 삶이 한결 더 풍성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잠깐이나마 경험했다고나 할까. 그랬기에 문화와 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가 진행 중인 사업인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그런 사연으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서울, 문화를 품다》다. 또한 이책은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펴낸 ‘서울문화예술총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은 미술품 뿐만 아니라 버려진 철도역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폐교나 폐공장 등 원래의 용도가 다한 유휴 공간이나 시설 등을 리모델링해 문화ㆍ예술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창작공간 또한 그중 하나다. 창작공간의 대부분은 이런 버려진 시설을 활용해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으로, 이는 단순히 버려진 자원의 재활용을 넘어 지역 고유의 역사가 담긴 공간의 연장이자 예술을 통한 창의성의 교류를 내포하고 있다.

지역의 방치된 유휴 시설에 새롭게 자리잡은 창작공간은 예술가들에게는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작업 공간과 더불어 입주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통해 창작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교류의 장을 제공한다. 또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예술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예술에 대한 지역 주민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여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지역 문화를 변화시키는 원천을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렇듯 창작공간은 일상 생활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꾸준히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지역민 개개인의 창의성을 향상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수준 높은 지역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 문화를 품다》는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창작공간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가야할 방향 제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부 탄생에서는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그 탄생 배경을, 2부 현재에서는 운영중인 서울시창작공간 다섯 곳 -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학창작촌, 문래예술공장의 방문기를, 3부 미래에서는 서울시창작공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고민을 다루고 있다.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부록에서는 2부에서 등장했던 5곳은 물론 개관 예정인 성북예술창작센터,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홍은예술창작센터 등의 서울시창작공간의 주요 시설이나 대관, 입주 작가 공모 등과 같은 자세한 정보를 실어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현재 운영중인 창작공간 다섯 곳을 소개하는 2부의 현장 탐방기였다. 다소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공간인 창작공간을 보다 가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곳의 창작공간이 모두 제각각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띠고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문화적 열기가 충만한 홍대앞에 자리잡아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와  지붕에 설치된 거대한 아트 로봇 ‘프로파 간다’가 인상적인 글로컬(glocal) 예술을 표방하는 금천예술공장은 창작공간의 기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 ‘시장 속 공방’의 예술적 기운이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로 촉촉이 스며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은 소위 ‘있는 사람’, ‘배운 사람’, ‘아는 사람’만이 향유하는 특정 장르가 아니며, 우리 일상의 삶과 구분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술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 사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구현해내는 삶의 또다른 모습이다. (131쪽)

여러 창작공간 중 가장 친근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황학동 중앙시장 지하상가에 마련된 신당창작아케이드였다.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재래 시장과 공존한다는 게 신기했고,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비교적 일상과 가까운 소품 위주의 공예 예술가라는 점도 한몫했다. 시장 천장에 달려있는 연꽃등이나 지하상가 입구부터 끝까지 그려져 있는 발랄한 벽화와 작가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시설들은 예술이 일상의 공간인 재래시장과 만나면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체험공방 프로그램은 창작공간의 문턱을 한껏 낮춘 좋은 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처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예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더 구상중이라니 그곳들 또한 기대된다.

 


책장을 넘기다 순간 홀딱 반해버린 사진을 만났는데, 수십개의 한글 단어들로 채워진 매혹적인 자태의 대문이었다. 누가 봐도 글쟁이의 공간임을 눈치챌 수 있는 그런 멋드러진 그런 대문으로 바로 문인들을 위한 도심 속 집필 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이었다. 펜션을 연상케 하는 나무와 정원, 건물과 오솔길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박범신, 은희경 등 그곳에 입주해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매니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어 귀를 쫑긋하게 된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작가와 함께 하는 정기낭독회를 마련해 독자들과 특별한 시간을 나눈다고 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참석해 보고 싶을 만큼 탐이 나지만 평일 저녁이라 지방민인 내게는 요원한 일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홍대와 대학로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새로운 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문래동의 철재 상가 단지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는 문래창작촌 이야기는 예전에 읽었던 박준의 여행에세이 《네 멋대로 행복하라》에 소개됐던 뉴욕 첼시 예술촌을 떠올리게 했다. 소호의 비싼 임대료에 쫓긴 가난한 예술가들이 육류포장 창고가 즐비한 첼시로 옮기면서 새로운 예술촌을 만든 것처럼 홍대와 대학로를 떠나 낡은 철재 상가 단지의 문래동에 창작촌을 형성한 것은 여러모로 닮은 모습이라 재밌기도 했다. 임대료에 쫓겨 작업 공간을 옮겨야 하는 예술가들의 처지가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역적 특성을 활용하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며 창작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든든했다. 서울시창작공간인 문래예술공장은 다른 창작공간과 달리 입주 작가를 받지 않는 대신 문래예술촌의 예술가들을 돕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삶에 있어 물질적 풍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 풍요이고, 그것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문화다. 하지만 그동안 예술은 너무 멀리 있었고 늘 어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창작공간은 예술을 지역 사회라는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인다. 혼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함께 느끼는 예술을 지향한다. 화려한 건물 속에 박제되기 보다 버려진 시설의 특성을 살린 재활용으로 함께 호흡하고, 예술가들과 시민들 사이를 이어주는 거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일상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누구나 부담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일상과 자연스레 함께 하는 예술은 창작공간의 존재 의의이자 앞으로 이루어 가야 할 과제인 셈이다.

《서울, 문화를 품다》는 다소 낯설고 생소했던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창작공간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서울의 모습을 만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발자취를 따르며 예술을 통한 지역 문화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예술가들의 창작이나 커뮤니티 등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책을 읽다가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조금은 지루해 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서울시창작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의 예술공간들과 달리 보다 열린 자세로 예술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쌍생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서울시창작공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창작공간들이 예술가와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문화를 위해 보다 힘써주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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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 http://blog.naver.com/i_s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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