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리 테일 인 스크래치 북 : 그림이 아름다운 클래식 동화 12 - 펜 하나로 추억을 그리다 인 스크래치 북 시리즈
이윤미 그림 / 스타일조선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컬러링북 열풍이 불 때 나도 잠시 컬러링의 매력에 빠졌었다. 애들이나 하던 색칠놀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하나하나 색을 입힐 때의 몰입감과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할 때의 쾌감이 묘하게 좋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정화와 평화로움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컬러링북을 할 때마다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으니 바로 색감이었다. 색을 입힐 때마다 어떤 색을 골라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스러웠다. 색에 대한 감각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과 내가 가진 색연필의 한계가 만나면서 컬러링북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식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인터넷 서핑 중 스크래치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컬러링북처럼 스크래치북 역시 어린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색을 입히는 컬러링북과 달리 스크래치북은 그림 위에 덮힌 막을 긁어냄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컬러링북처럼 색연필이 따로 필요없고 오직 긁어낼 수 있는 펜만 있으면 된다는 점도 마음을 움직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스크래치북을 살펴보다 다른 스크래치북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바로 동화를 모티브로 화려한 그림을 자랑하는 <마이 페어리 테일 인 스크래치북>이다.






  어린날 함께 했던 동화 속 그 주인공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예쁜 그림들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꼭 소녀소녀한 취향이 아니더라도 추억의 동화를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화려하고 예쁘장하면서 색감까지 예쁜 이책에 눈길이 머물지 않을까 싶다. 웹서핑에서 만난 다른 누리꾼들의 반응도 내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 그러니 이책이 나의 첫번째 스크래치북이 된 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화려한 그림을 구성하는 세밀하고 정교한 선들로 인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등장인물들의 옷에 달린 레이스와 주변을 맴도는 물방울에 곧 식겁하게 될 거라는 걸. ㅋ 이책의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라는 건 이후 몇 권의 스크래치북을 거치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손가락은 쑤시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완성했을 때 그림이 정말 예쁘다는 것, 그래서 무척 뿌듯해진다는 것이다. :)








   <마이 페어리 테일 인 스크래치북>을 구입하면 전용 스크래치펜이 함께 들어 있다. 책값이 만만찮은 건 이 전용펜값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펼치면 스크래치북을 즐기는 방법, 전용펜 사용법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스크래치 그림에 따라 필요한 펜이 달라지는데, 이책의 경우 레이스나 물방울 등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이렇게 날카로운 펜이 딱 알맞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쓰다보면 끝이 뭉툭해져 날카로운 표현이 힘들 수 있으니 정교한 표현이 있는 그림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이 페어리 테일>에는 총 12편의 동화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 실려 있다. 제목만 봐도 어렸을 때 무한반복 해서 읽었던 바로 그 추억의 동화들이다. 특이한 건 대부분 검은색 바탕인 스크래치북과 달리 화이트보드가 4장 같이 포함되어 있다. 검은색 바탕에 비해 하얀 바탕이라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도 훨씬 화사한 느낌이 있다. 물론 적잖은 대가가 따른다는 게 문제지만, 블랙보드와 화이트보드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좋은 듯하다. 









  첫 스크래치북 도전작으로 어떤 그림을 할까 고민하다 '백조의 호수'를 선택했다. 특별히 그 동화책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이 쉬워보이지도 않았는데 왜 이걸 가장 먼저 선택했는지는 나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어마무시하게 많이 걸렸다는 것, 완성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그림이 예뻤다는 거다. 

  스크래치펜으로 긁어낸 선의 면이 깔끔하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듬느라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백조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긁어내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나무 없는 것처럼 깃털 하나 하나 긁어내다 보니 백조의 화려한 날개가 완성됐다. 예상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혼자 무척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날개 가운데 있는 주인공을 살려내고, 아래의 물결들을 표현해주니 '백조의 호수'가 완성됐다. 이걸 끝내는데 대략 8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더 걸렸을지도;;). 처음이라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건 사실이지만, <마이 페어리 테일>의 그림들은 디테일한 표현들이 많아서 다른 그림들도 대부분 5-6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내가 손이 너무 느리거나 너무 꼼꼼하게 하느라 평균치보다 더 걸린지도 모르겠지만. 
 











  '백조의 호수' 완성에 탄력받아 다음 도전작은 '신데렐라', '인어공주', '라푼젤'. 펜으로 긁어낼 대마다 형광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완성되는 쾌감이 있었다. 신데렐라의 드레스를 휘감는 수많은 레이스들, 인어공주의 비늘들, 라푼젤의 기나긴 머리는 펜을 쥔 손가락 통증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느껴지는 뿌듯함과 흐뭇함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라푼젤은 알록달록 화려한 꽃들의 색감이 스크래치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삐삐 롱 스타킹'과 '앨리스'는 위의 공주들과는 달리 화면을 꽉 채우는 알록달록한 스크래치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걸 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여백의 미가 있는 것보다 이렇게 화면을 꽉 채워주는 스크래치 그림에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긁어내고 완성할 것이 더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색연필로 여백을 채워가는 컬러링북과 달리 스크래치북은 위를 덮은 칠을 긁어내어 그림을 보이게 하는 작업이다 보니 찌꺼기(?)가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시작 전에 신문지 같은 종이를 깔고 하는 게 좋다. 또한 펜으로 긁어내면서 부스러기들을 바로바로 털어내야지 안그러면 그것들이 그림에 다시 들러붙기도 한다. 덕분에 수시로 찌꺼기를 털어내는 왼손가락은 시커멓게(또는 하얗게) 변한다. 어떤 색을 칠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이런 불편함이 공존한다는 점!!









  다른 이의 블로그에서 봤던 예쁜 화이트보드 스크래치 그림들에 드디어 나도 도전!! 그런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화이트보드는 블랙보드보다 잘 안 긁힌다. 펜으로 스크래치 하는데 대략 1.5~2배의 힘을 더 줘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또한 긁어낸 하얀 부스러기들은 블랙보드의 찌꺼기들보다 그림에 더 잘 눌러붙었다. 밖으로 털어내는 과정에서도 그림에 들러붙어 색을 희미하게 만들기 일쑤여서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 결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목도 너무 아팠다. 예쁜 화이트보드 스크래치 그림에 대한 로망이 싹 사라져버렸다고 할까.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냈으니, 바로 나무펜이었다. 책에 동봉된 날카로운 펜촉은 화이트보드에 고난을 줬지만, 우연히 실험해 본 나무펜은 너무나 쉽게 화이트보드의 막들을 긁어내 그림을 드러냈다. 따로 나무펜을 산 건 아니고, 얼마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생활도예에 사용하는 조소용 나무칼 중의 하나를 사용했는데 효과만점이었다. 나무펜의 경우 오히려 블랙보드보다 화이트보드가 훨씬 부드럽고 손쉽게 긁혔다. 덕분에 이책의 그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즈의 마법사'는 나무펜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나만의 노하우로 이후 주문한 <보태니컬 가든 인 스크래치북>에 포함된 4장의 화이트보드도 이 나무펜을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스크래치북보다 훨씬 부드럽게 긁히는 <랜드마크 오브 서울 나이트뷰>에서는 넓은 면적을 긁어낼 때 나무펜이 큰 활약을 했다. 스크래치북의 화이트보드가 잘 안 긁혀서 너무 힘이 든다면 주변에 있는 조소용 나무칼을 사용해보길 권한다. 아니면 다른 도구들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이것저것 찾다보면 의외로 전용펜보다 더 안성맞춤의 스크래치펜을 찾아낼 수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








  <마이 페어리 테일> 스크래치북의 표지 그림인 '눈의 여왕'은 비교적 굵은 선과 섬세한 표현이 섞여 있어서 나무펜과 전용펜을 적절히 사용해 재미있게 스크래치 할 수 있었다. 다만 뜻하지 않은 불상사도 있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림을 완성하고 잘 안 털리는 잔해물들을 털다 휴지로 그림 위를 살살 문질러 닦았는데, 도중에 덩어리들이 떨어졌는지 그림 전체를 긁어버렸다. 그림을 다 완성하고 일어난 비극이라 좌절했지만 다행히 화이트보드와 푸른색의 조화에 굵은 선이 봐줄만 해서 위안삼았다. 나처럼 함부로 휴지로 닦아내는 짓은 하지 마시길. ㅜㅜ












  가장 마지막에 완성한 '피터팬'과 '아라비안 나이트'는 과정샷과 함께 올려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피터팬의 하늘을 채우는 작은 점들과 아라비안 나이트 속 의상의 끝없는 무늬들에 가끔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예쁜 것에는 늘 어떤 희생이 따르는 것인지도. ㅋ





▲ 모두 완성된 12컷의 동화 속 장면들 :)


  <마이 페어리 테일 인 스크래치북>은 제목처럼 동화 속 한 장면들을 아름답고 예쁜 그림으로 표현한 스크래치북이다.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소녀소녀한 취향을 저격하는 화려한 그림이다. 덕분에 난이도가 상급으로 끝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완성해 놓으면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생각을 바꾸어 한 장의 보드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기도 하다.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틈틈이 스크래치북을 즐긴다면 이책 속 12종의 그림들과 오랜 시간 벗할 수 있다. 

  허나 막상 스크래치북을 시작해 보면 천천히 조금씩 하는 게 나처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손만 아파오지 않다면 5~6시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몰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공부에 이렇게 몰입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십자수를 한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스크래치북 역시 마찬가지다. 선 하나하나 긁어내는데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들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머리가 깨끗하게 비워지는 느낌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거나 피어나는 잡생각들을 잠재우고 싶을 때 스크래치북을 추천한다. 


  또한 펜으로 긁어낼 때마다 속에 숨어 있던 그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어 완성되어 가는 재미가 의외로 크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웬만해선 중간에 펜을 놓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면 예쁘다는 감상과 함께 뭔가 뿌듯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다시 또 펜을 들고 스크래치를 시작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너무 빠져들어서 잠도 안 자고 스크래치를 하곤 했다.  ㅋ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크래치선과 밑그림이 조금씩 어긋나서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앨리스와 삐삐 롱 스타킹의 경우 눈의 위치가 밑그림과 맞지 않아서 얼굴을 다 긁어내야 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긁어낸 얼굴이 더 예뻐서 불만은 없지만, 얼굴처럼 디테일이 중요한 그림의 경우 밑그림과 어긋나면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출판사 측에서 이 부분은 조금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책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조금 아쉽다. 나는 할인이벤트로 정가보다 싸게 구입했지만, 책값이 조금 더 저렴하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에 추천할 수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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