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어 계속 가겠습니다. 근데 지난번에 다 하고 지나갔어야 할 분야 얘기도 좀 해요. ㅎ

히치콕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은 최근 그 세력권을 넓혀가고 있는 평론가 이상용의 영화 이야기입니다. 개별 영화에 대한 평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미학에 대한 이론/비평서는 더더욱 아니죠. 그래서 짚고 넘어갈 필요를 강렬히 느꼈습니다 네.

목차를 볼까요. 거짓말, 웃음, 환상, 시간, 역사... 영화를 이야기할 때 필요한 요건들이죠. 영화에 사용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각각의 주제에 대해 이 책은 천천히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갑니다. 반가운 점은 이 책이 분명한 '대중' 교양서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주제와 메커니즘 모두를 다루면서 영화란 무엇인가를 쫓아가는 광범위한 이야기지만, 다행스럽게도 들뢰즈나 라깡, 보드리야르 등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해체이론도 없고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몽타주 이론의 관계 등도 나오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영화의 구성물들을 평이한 문체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책을 만난다는 건 드문 일이고, 그만큼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에 대한 여러 책들이 나왔지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총체적으로 짚어보면서도 그 난이도를 대폭 낮췄다는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책이네요. 총론이야말로 가장 추상적으로 빠지기 쉬운 세계잖아요. 비록 총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대신에 영화 에세이 모음집이라는 구심점 없는 구성이 되었다거나, 새로운 성찰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거나, 쉽다고 소개했지만 여전히 좀 매니악한 영화들과 함께 '약간의'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긴 하지만, 이 책의 목적 혹은 성과에 비해서는 참 억지로 뽑아낸 정도의 단점(?)입니다. 모든 괜찮은 교양서들은 이런 운명을 타고나는가봐요. 위에서는 먹을 게 없다고, 아래에서는 먹기 힘들다고 말이죠. <난이도: 중하, 영화를 좀 더 알고 싶은 초심자 막무가내 영화 팬, 혹은 영화잡지에 질려 괜찮은 칼럼집을 찾아다니던 중급 이상의 영화팬들께>

p.s: 쉽고 친절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조금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정말로 영화 <카운터페이터>를 홀로코스트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시죠? -_-;; 아, 하나 더. 이 책 속에는 소설 <장미의 이름>의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몇몇 작품의 소소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괜히 후회하시지는 마세요...

 

-사진-

     

<청춘을 찍는 뉴요커>는 좀 특이합니다. 물론 이 책 역시 우리나라의 사진 에세이들의 고질적인 단점, 즉 글이 사진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원래 저는 거기까지만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글 씀씀이의 부족함이 준수한 감각의 사진과 대비되는 느낌이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살아있는 패션사진가 지망생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더군요. 동시대의 소년소녀들과 별다를 바 없는 싸이월드 풍의 글을 써내는 그녀가,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유명한 사진가의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 발랄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소녀가 뿜어내는 감각적인 사진의 언밸런스야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소년소녀들에게 주어질 뜨거운 청량제가 아닌가 싶어요. 사진 퀄리티는 왠만한 아마추어들보다 확실히 위에 있으며, 필름의 흔적이 느껴지는 색감도 반갑습니다. 물론 뉴욕의 귀여운 소녀들을 보는 재미도 좋았습니다만...(흠) <난이도: 하, 패션/스냅사진 계열에 관심있는 분, 혹은 아직 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기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께>

<사진의 하루>는 바로 위에서 '아마추어들'이라고 폄하된(!) 46인의 블로거들의 사진을 모아 놓았습니다. 하나로 모을 수 없는 스타일이 주제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요. 다소 추상적인 텍스트나 들쑥날쑥한 사진의 완성도(이는 곧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괜찮은 사진들이 들어있다는 얘기기도 합니다)가 신경쓰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사진에 관한 여러가지 힌트나 영감을 줄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매우 잘 추려진 사례집으로 추천될 수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면, 아마추어 사진가 여러분, 한 번에 너무 멀리 가려고 하시면 안됩니다. 다른 분야의 아마추어에 비해 사진가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사진가 각각의 시각적/메타포적인 발전 역시 갑자기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글렌 굴드를 금방 따라하려 하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는 없지만, 브레송을 금방 따라잡으려는 아마추어 사진가는 즐비합니다... <난이도: 하, 자신의 사진을 여러모로 비교하고 연구해보고 싶은 아마추어 사진가들께>

<시선 1980>은 현재 한국 사진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구본창의 80년대 스냅 사진 모음입니다. 이 시절에 찍었던 사진으로 이미 작업이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만('긴 오후의 미행'같은), 이번에는 미발표 사진들까지 이합집산해서 새로 나왔습니다. 이번에 선택된 사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요, 개발과 전통이 혼재된 80년대 한국의 아이러니한 풍경, 혹은 전통적인 사진미학에 비추어 '웰메이드된' 사진들입니다. 물론 둘 다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구요. 유럽에서 공부한 구본창의 스냅사진이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느낌을 풍기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풍크툼(푼크툼)을 돌파하는 사진이라는 본문 해설의 격찬은 멋적은 감이 있지만, 확실히 사진을 공부했다는 느낌이 드는 잘 정리된 컷들이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사진으로 보면 영 평범해 보이지만, 사진집이라는 맥락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구요. 사진을 배우려 하는 분께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사실 동시대를 지내오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80년대 한국의 푼크툼은 커녕 '스투디움'을 잡아내기조차 쉽지 않겠습니다(그런 면에서 로버트 프랭크는 '위대'합니다). 다만 하나의 주제를 사진을 통해 어떻게 소화하는가,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대해 배울 만한 선례로는 충분히 '유효'합니다. <난이도: 중상, 이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고 느끼는 아마추어 사진가들께>

 

 -디자인 외..-

     

<디자인의 꼴>은 매우 쉬워요. 자동차, 라이터, 병 등 생활 속의 사물들의 변천사를 간단히 훑어가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살펴봅니다. 말하자면 스타벅스에서 읽기 좋은(..) 본격 고급 타임킬링 북 이라고 하겠습니다. 좀 골때리는 면도 있는데, 소개하는 사물들 중에 UFO도 나옵니다...... 좀 더 이쪽으로 파고들었으면 디자인의 인류학적 변용에 대한 흥미로운 논고가 될 수 있었을 듯해서 아쉽네요. 이 출판사의 차기작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외계인을 위한 지구 가이드 라고 합니다. 아니면 그 비슷한 거라고 하네요. 아참, 디자인하우스 출판사는 정상적인 곳입니다. 오해마시길. <난이도: 하, 고급 타임 킬링 책을 찾고 있는 분들, 혹은 디자인이 뭔가 싶어서 첫걸음을 내딛는 완전 초심자들께>

<최범석의 아이디어>는 보다 본격적으로 디자인 얘기에 나섭니다. 반쯤은 에세이 같은 느낌도 나는데, 책의 접근성을 높이려면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합니다. 발상과 그 발상의 현실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에도 적당한 방식이고요. 디자이너로서의 태도와 직업적 환경에 대한 조언을 무난하게 풀어갑니다. 재미있는 발상의 디자인 컷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실용서와 디자인 철학에 대한 이론서가 양분한 가운데, 잘 짜여진 '디자이너의 인생' 이야기가 나와 반갑습니다. <난이도 하, 디자인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분들, 특히 지망생들께>

<음악 듣기와 쓰기>국내 최초의 청음-채보 전문서적이라는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전공자는 당연히 귀가 솔깃하실텐데, 음악을 그냥 좋아하는 분들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 특히 푸가나 대위법을 사용하는 클래식 음악은 악보를 이해하고 각 주제의 진행을 파악할 수 있을 때 굉장한 업그레이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론 재즈나 락도 마찬가지죠. 코드 진행의 마술을 이해하는 순간 음악의 '완성도'가 눈에 들어오게 되니까요. 굳이 이론적으로 달려들지 않더라도 청음 자체가 가져다주는 '이해'의 즐거움은 대단합니다. 물론 어렵고, 저같은 단순한 팬에게는 구만리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도전해 볼 요량입니다. 여러분도 도전해 보세요. <난이도: 상(실제로 익히기가 쉽지 않음),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일단 추천합니다>

<그림책은 재미있다>는 그림책 작법입니다. 그림 연출이 이야기 진행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교육서죠. 캐릭터의 성격 묘사와 스토리의 진행을 표현하는 데 있어 글과 그림이 어느 정도에서 역할을 나누고 분담을 해야 할지에 대해 원론적인 수준의 조언들이 가득합니다. 원론적인 조언이라는 것에 대해 실망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국산이든 외산이든 간에 이 원론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책들이 양산되는 걸 보고 있으면(저도 한때 유아MD..) 이런 책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짧고, 쉽고, 중요한 조언들입니다. <난이도: 하, 그림책 작가 지망생 전원, 그리고 보다 좋은 그림책을 골라보고픈 부모님들께>

 

마무리는 신명나게 가죠. ^^ 출간 종수로 따지면, 드물다고 하면 제일 드문, 풍물굿의 미학입니다. 어줍잖게 풍물을 만졌던 저로써는 반갑기 그지없었는데요, 책 내용도 맛깔납니다. 요즘 대세인 클래식풍으로 말하자면 '콘체르트마스터'인 상쇠 이야기죠. 상쇠가 풍물굿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전통을 쫓아가는 내용까지는 뭐 그러려니 싶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풍물이 이 세계의 긍정을 반영하는 신명나는 굿판이며, 우리네 전통이 가졌던 미덕을 죄다 함유하고 있는 표현예술이라는 점에 다다르면 뿌듯해지기도 하고요. 잠시 잊고 지냈던 풍물의 뜻을 되새기니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풍물이란,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갑자기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평화와 번영과 공존과 신명과 노동의 즐거움을 한데 집약한 예술에 대해, 열렬히 그리고 열심히 써내린 글을 만난다는 것은 참 행복합니다.

그럼 또 다음에 언제 뵙겠습니다. 좋은 책으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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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8-11-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매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예술분야 책들이 원래 재밌기도 하고 감칠맛나는 글쓰기가 쏙쏙 들어와 더욱 좋네요.
예술책들이 재밌어보이지만 깊이가 없는 경우도 있고 보기보다 난해하여 접하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이곳에만 오면 소개된 책을 사고 싶은 유혹을 느끼다가 가곤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서평 부탁드리겠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08-11-11 17:59   좋아요 0 | URL
유혹에 저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면 제가 좀 더 강렬한 유혹을..음.

어쨌거나 오늘은 리플이 두 개나 달린 경사스런 날이네요. 오늘 많이 감동했어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카방글 2008-11-15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히치콕은 얼굴이 심술궃은 노인네같이 보이네.
구본창의 스냅 사진 재밌겠네

외국소설/예술MD 2008-11-17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콕은 심술쟁이가 맞습니다. 구본창은 보기에 괜춘합니다.
 

말도 안되는 가을입니다. 언제 오나 싶었는데 갑자기 가버렸어요. 원망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 기다리던 가을 대신에 예술을 사랑하는 책들을 넣어 봅니다. 눈에 띄는 11월 첫째 주의 예술 신간들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분야별로 한 번.

 

-미술-

     

-<보기 배우기>는 출간된 지 50여년이 흘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내용이 사뭇 도발적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결국은 어떤 스타일을 얼마나 잘 소화해냈느냐만이 관건이다. 하나의 작품은 그것이 담으려 한 주제부터 그 디테일의 표현에 있어서까지의 조형적인 완성도를(어쩌면 단지 그것만을) 필요로 한다. 그 모든 면이 완벽한 작품을 걸작이라 칭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다른 어떤 부가적인(이 경우 역사적인 경우가 많다) 요소가 추가된다고 해도 절대 위대한 작품이라 부를 수 없다.

이 원칙에 따라 수많은 작가들의 유명 작품이 도마 위에 오릅니다.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는 거의 위대한 작품이지만 통일성을 저해하는 풍경 묘사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라파엘로의 유작은 제자들이 뒤이어 겨우 완성한 '거의 졸작'입니다. 저자인 마랑고니는 그 어떤 외부적 요인이나 역사적 중요도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 자체의 시각적 완성도만으로 미술사에 남은 작품들을 재평가합니다. 특히 그림의 주제나 의도까지 조형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보는 그 기준이 논쟁적일 수 있겠네요. 국내 소개된 비 전문 미술서 중에서는 극히 드물게 정면 승부를 걸어오고 있기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1권에서는 미술 스타일의 척도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요건 및 비평과 작품의 관계를 다루며, 2권에서는 미술사를 연대순이 아니라 각각의 주제(인물, 종교, 풍경, 역사...)에 따라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특히 2권의 전투(?)는 치열합니다. 대체 누가 카라바조의 아성에 도전할 것인가라던가...등등.

최초의 입문서로 삼기에는 쉽지 않으며, 원서가 2도 인쇄였던 관계로 흑백 그림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이탈리아 쪽 화가들이 유달리 많은 것도 혹시 맘에 안드실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즐겁습니다. 연대기적인 소개 혹은 에피소드 발굴에 그친 기존 교양 미술사의 대안의 몫을 충분히 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이도 중상, 천편일률적인 교양을 넘어 자신만의 눈을 갖고 싶은 분들께-

-<아트 오브 페인팅>은 저 유명한 라루스로부터 날아왔습니다. 이 책의 목표는 어떤 그림을 마주쳤을 때 보다 잘 만들어진 그림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을 배워보자입니다. 이 책도 상당히 흥미로운 게, 회화 작법에 관한 거의 모든 범주를 한 권에 쓸어담아 놨습니다. 그림에 서명이나 제목을 하게 된 역사, 색채법, 원근법, 빛을 처리하는 법, 형태를 묘사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각 사조별 종합 특징 분석까지 가득하죠. 보통의 입문서들이 담고 있는 이론/사조적 접근뿐만 아니라 실제로 회화의 작법 과정까지 해설함으로써 보다 넓은 범위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짧은 챕터에 많은 내용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종종 전문용어가 사용되었고, 내용이 다소 압축적인 면이 느껴지지만, 다루는 범위로 보나 명확한 분류 시스템으로 보나 이 역시 만나기 힘든 기회임에 틀림없습니다.  -난이도 중상, 회화 감상에 있어 다채로운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들, 혹은 그 지식을 정리하고 싶으신 분들께-

 

 

-영화/클래식-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실전 시나리오 작법에 써먹기 좋게 재해석한 책입니다. 상당히 솔깃한 컨셉이죠. 실제로 <시학>을 읽어보신 분은 경험하셨겠죠. 쉽게 읽기에는 무리가 따름에도 불구하고 종종 던져지는 성찰에 깜짝 놀라게 되는걸요. 그렇다면 그 책을 더 쉽게 풀어서, 그리스 비극이 아닌 현대 영화들을 통해 풀이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적용 사례도 유명한 영화들이라 이해도 빠르구요. <시학>이 워낙 뛰어난 책이다보니 이미 다른 시나리오 책들에서 강조한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이 책처럼 본격적으로 그 전체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한 적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책이 <시학>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기대하는 것이 설마 <시학>의 완전한 변용은 아니겠지요? 부담없이 읽으시고, 가슴에 하나 이상을 담아두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시학>을 읽고 싶게 된다면, 그게 최고의 성과일지도 모르겠네요. -난이도 중하, 고전 기피증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창작 지망생 및 영화 팬들께-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는 의외로(?) 재밌습니다. 평범한 연대기적 구성, 게다가 교향곡의 역사라기에는 (비록 그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독일-오스트리아 계열에 지나치게 치중된 감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목차를 보고 있을 때는 과연 괜찮을까 싶었는데, 술술 잘 읽혔습니다. 각종 강연회나 칼럼 등을 통해 다져놓은 저자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일단 책이 상당히 쉽고, 특별히 어려운 이론적 난관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향곡과 유럽 사회간의 상호관계를 적절히 짚어갑니다. 교향곡이야말로 예술 작품 중에서 당대의 시대적 조류와 가장 크게 교감한 장르였다고 볼 때, 최은규 씨의 선택은 좋았다고 보이네요.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빨리 읽히며, 그러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최대한 잡아 놓는다... 어쩌면 이걸로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단, 매니아 분들은 심심하실 수 있습니다. 김문경 씨의 말러 시리즈를 아무 무리 없이 읽는 분들이시라면요. -난이도 중하, 즐겁게 읽으면서 충분한 지식 섭렵을 겸하고자 하는 클래식 팬들께-

 <올 댓 클래식>은 그야말로 클래식에 흥미를 동하기 시작한 분들께 드리는 추천입니다. 친절한 풀이와 해설로 이름나 있는 이동활 씨가 썼습니다. 재밌는 점은 모든 챕터가 경탄조로 시작한다는 겁니다. 마치 한 세대 이전의 글들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책의 분위기와 얼추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존대로 쓰여진 본문이라든가, 직접적인 전문용어 대신에 에둘러 풀어가는 묘사를 택했다는 점 등, 마치 친절한 아저씨처럼 느껴지는 묘한 강점(!)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여러모로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특이한 연출 위에서 빛을 발한다고 할까요. 이 책 역시 고수 분들께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면밀하고 상세한 분석과는 또다른 맛을 간만에 느끼고 싶으신 분께는 권해 드립니다. 저 초보 시절, 오로지 비유만으로 감동을 설명할 수 있던 시절의 벅차오름 말이죠. ㅎㅎ -난이도 하, 친절하고 재미있는 클래식 명곡 이야기를 찾는 분들, 혹은 초심으로 돌아가고픈 위기의 클래식 매니아들께-

 

-오늘은 여기까지! 사진, 디자인, 건축, 음악(안-클래식) 등등은 다음 주에 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 글을 보며 느낀 바가 과유불급이었던지라.. 하여, 오늘 평안히 보내시고 좋은 책 고르시기 바랍니다. 그럼 좀 더 행복해지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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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는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p.178

-시몬 베유(시몬느 베이유)의 책이 재간되었습니다. <중력과 은총>입니다. 절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기독교적 진리가 넘쳐 흐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성경의 어느 인물들보다도 욥이 자주 등장합니다. 욥이야말로 버려짐과 비워짐의 신비를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입니다.

비움의 신비란, 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가 아니라 가져감으로써 사랑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들 자신의 '존재'라는 개념은 온갖 이미지와 욕망을 소유하려는 탐욕의 결정체, 그러므로 비극을 받아들이고 잃어버린 것들을 마음 속에서도 놓아 줌으로써 신의 본래 의지에 접근하자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 본래 의지란 곧 비어 있음, 공(空)입니다. 이 비어 있음은 (실존주의적으로) 세계 자체의 존재 양식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그러한 세계의 본질에 다다르려는 수단이 됩니다. 닮아감으로써 알게 되기. 그러나 모두 비워버리고 나면 어느새 닮아가기라는 목적마저 사라지며, 그때 그 수단으로서의 비움은 곧 완성 자체로 변합니다. 수단과 목적-원인과 결과가 하나가 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그 곳이야말로 허투른 천사의 이미지로 왜곡되지 않은 초극의 천국입니다.

치밀하게 쓰여진 논고가 아니라 단상들을 그러모은 아포리즘이라는 사실이 왠지 더 적합해 보입니다. 행간 사이의 넓은 틈이 그 빈 공간을 웅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파편들은 독자가 손쉽게 압축시킬 수 없으며, '나의 것, 나의 깨달음'이라고 손쉽게 말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듯이 망연히 손을 뻗는 정도에서 그치게끔 만듭니다. 그러나 별들은 손에 쥘 수 없기에 아름답지요.

갑자기 찾아온 가을에 걸맞는 종교 이야기이며, 철학 이야기이며, 인생과 잃어버림과 내려놓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인문 MD님이 먼저 편집자 추천을 걸어버렸습니다. 편집자 추천을 두 번 걸 수는 없네요)

 

 

 

예전에 무착문희 스님이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 팥죽 끓는 솥 위에 문수보살이 현신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문수보살을 직접 만나뵈었다고 대중을 모으려고 야단했을 터인데 무착스님은 팥죽을 저었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문수는 그저 문수일 뿐이며 무착은 나 무착일 뿐이다.          -원택, <성철 스님 화두 참선법> p.19

 버린다는 것은,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욕칠정에서 벗어났다고 자부하는 순간에 '자부심'이 찾아오고, 비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비어있음을 즐겨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온갖 함정이 도사리는가 하면, 비록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꿈 속에서 똑같이 깨닫지 못하면 '고작 잠에서 깨서 깨달아 보아야지 하고 노력할 때에나 깨닫는 인간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고 일갈이 떨어집니다. 해학스러운 말투 안에 심어진 용맹정진의 심이 무섭습니다.

비교적 쉽게 풀이된 화두 참선법인 이 책은 화두 하나 꼭 붙들고 가라는 가르침을 위한 몇 가지 힌트가 주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성철 스님이 다른 스님들과 나눈 화두 이야기도 실려 있고(아주 말 씀씀이가 걸출하십니다), 입문서 답게 용어 풀이도 최대한 상세히 하려는 친절함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성찰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깨닫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쉽게 설명해준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또 돌려서 보면 불법스러운 묘가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설법이며 일화며 무릎을 치게 하면서도 즐겁다는 점이 좋습니다.

(큰 스님 찾아 용담원에 온 주금강이 용담원에 다다라 얘기하기를) "오래전부터 용담(龍潭)이라고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하고 용담 숭신선사에게 말하니 숭신스님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참으로 용담에 왔구먼."                         -p.167에서

이런 센스쟁이들...

 

 

 

 

 그런데 재미있게도 위의 두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훈련하는 책이 또 마침 나왔습니다. 티베트 밀교의 방식입니다. 이 또한 수행법이며, 숙면일여로서의 꿈명상, 그리고 역경과 고난을 진리 수행으로써 긍정하는 역경 전환의 명상을 담고 있습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사색과도, 한국 선불교와도 다른 방향이지만 '진리로 가는 길은 여럿으로 보이되 어디로 걸어가도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문화사적으로도 흥미로워 일독을 권합니다.

 

 

 

발췌로 만나보는 비움과 사회적 의미를 둘러싼 한 판 대결.

성자 vs

     

폭력을 면전에 두었을 때라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에 대한 시야를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중략)...폭력은 소망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세상의 상황을 현실주의적으로 그리고 어떠한 거짓된 낙관주의일지라도 배제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폭력의 권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안다...(중략)...우리 안에 심기었고 우리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를 둘러싼 세력보다 더 강하다. 이는 '우리는 승리하리(we shall overcome)'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주님의 날에 주님이 승리하리라는 의미다. 폭력의 권세의 자만에도 불구하고,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그분의 통치를 시작하셨다.     -짐 월리스, <회심> p.163~164
"전쟁은 언제나 더 큰 악이다"라는 신조는 유물론적 윤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유물론적 윤리에 따르면 죽음과 고통이 가장 큰 악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저급한 종교가 고등 종교를 억압하는 것, 또는 저급한 세속 문화가 고급 세속 문화를 억압하는 것이 더 큰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쓰러지는 상당수 개인들이 무죄하다는 사실에도 제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중략)...이기심은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지고 희생정신은 커져 가는 상태에서 사심 없는 전투를 치르다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이 끔찍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끔찍한 일은 결코 아닌 듯합니다...(중략)...물론 전쟁은 아주 큰 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전쟁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악인지, 그래서 항복을 통해 어떤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전쟁보다는 나은지가 문제입니다.        -C.S.루이스, <영광의 무게> 중 '나는 왜 반전론자가 아닌가?', p.70

<회심>은 <하나님의 정치>로 최근 큰 주목을 받은 짐 월리스의 81년작입니다. 성경적이고 선언적이며, 참여와 행동을 중시하는 특유의 메시지가 (여전히) 강렬합니다. 월리스는 메아리쳐 부르는 목동들을 위한 전략가입니다. 모든 양들은 서로를 사랑해야 할 것이며, 그 어떤 유혹과 협잡(심지어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도 그 절대원칙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권세는 빈 주먹으로부터 온다는 오래된 비폭력의 신념을 성경과 현대 미국의 비교를 통해 드러냅니다.

<영광의 무게>는 저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C.S.루이스의 설교/강론집입니다. 루이스가 보는 그리스도는 인자하지만 완전한 권위 위에 있는 왕입니다. 병에 걸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찾아온 소년을 앞에 두고 말없이 돌아선,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왕 아슬란을 떠올리게 하죠. 루이스는 계시적이고 선언적인 기존의 강론집과는 다르게 치밀한 논증을 통해 종교적 원리를 구축합니다. 다른 기독교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풍채를 발하며, 진정한 보수적 복음주의가 무엇인가를 당당히 보여주고 있죠.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독교를 위주로 책들이 나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네요. 다들 좋은 책이겠으나, 자신과 맞는 책을 고르기가 그만큼 까다로워질 듯합니다. 연말 성수기가 지날 때까지 좀 더 다양한 소개를 바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조금씩만 내려놓으세요. 그럼으로써 내내 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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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1-0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위에 외침이 아니고 회심인뎁쇼.

외국소설/예술MD 2008-11-0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죄송합니다 -_-;;; 그렇지만 리플이 반가우니 앞으로도 오타를 종종 낼께요;;
 

이것이 화제의 책

우선 이 책으로 시작할까요? 인터넷 서점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 무려 1997년에 발간된 <웬디 베켓 수녀의 명화 이야기>입니다. 나름 오래된 책이지요. 저때 질풍노도의 고교생이었던 저는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_-;; 한마디로 말하자면 (좀 진부하지만) 상당히 탁월한 서양 미술사 입문서입니다. 난이도와 흥미 사이에서 상당히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줍니다. 늘 그렇듯 웬디 수녀님은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굳이 특장점을 조금만 꼽아 보자면, 

1. 미술의 사회/역사적 위치를 놓치지 않는 훌륭한 텍스트

<무서운 그림>에 드가 이야기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발레리나들에 대한 계급적 착취의 공포를 얘기하는 다소 특이한 꼭지였지요. 하지만 원래 드가를 언급할 때는 리의 신윤복급으로 당대의 데카당스한 시대상을 잡아내는 능력을 빼놓아서는 안됩니다. 많은 미술사 책들은 시각적 화풍의 특색을 설명하는 데 급급해서 이런 부분을 상당수 놓치고 있습니다. 미술사조가 역사나 사회의 흐름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간과할 경우, 그야말로 미술은 고급 유희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입문서의 단순한 맹점이라기에는 너무 위험한, 그러나 너무 널리 퍼져 있는 고정관념이죠.

그러나 이 책은 드가의 이러한 사회적 관찰력을 놓치지 않습니다.

드가의 대표작 <폴리베르제르의 바>를 볼까요. 웬디 수녀는 화면 왼쪽 상단 구석에 삐져나온 '여자 다리'를 지적하며 파리의 사창가를 언급하고, 미녀와 함께 늘 등장하는 '배경 속의 관찰자'를 확인하면서 비현실적인 원근감과 관객들의 자각(저 관찰자의 자리가 그림을 보는 관람객의 자리다)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인상주의 화가이면서 동시에 지독히 도시를 사랑했던 한 낭만주의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시절의 호기롭던 파리도 함께요. 저는 이런 '뉘앙스'야말로 드가를 말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참 좋은 건, 이 모든 설명이 원본과 함께 등장하는 확대 그림을 통해 친절히 부분별로 설명이 된다는 거죠)

물론 이 책은 내내 이렇습니다.

2.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인쇄

비록 1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와서는 다소 촌스러운 명조체가 신선(?)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컬러가 좋으니까요. 이 책의 컬러 인쇄는 현재 출간되는 책들에 비추어도 상당한 수준이며 (겨우 10년이 지난 지금) 세월의 흐름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4도 인쇄의 최대 난관이라 할 수 있는 검은색 묘사에 있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종이가 잉크를 받아내지 못해 번들거리는 검은색, 조명의 위치에 따라 역전(negative) 현상을 보이는 암부, 원본 소스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색 왜곡, 출판사의 의도적인 콘트라스트 강화 등은 이 책에서는 거의 만나실 수 없습니다. 색은 차분한 편이며, 색 균형도 준수합니다. 미술사는 뭐니뭐니해도 그림 보는 맛이 좋아야죠. ^^

p.s: 물론.. 수입산 화보와 비교하기는 약간 무립니다. 황색이나 녹색이 도는 경우도 종종(빈도는 매우 낮지만) 있고요. 그 정도는 감안해 주시길. ^^; 



                                  대세는 '네 마음대로'

                                               

A. 우선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입니다. 조윤범 씨의 입담은 유명하죠. 곡을 해설하는 센스도 좋고, 재미있는 비유들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책의 포지션이 약간 애매한 것은 아닌가, 즉 완전 초보용도, 매니아들을 위한 책도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게 이 책만의 매력이죠. 이 책의 목적은 어쩌면 완전 초보의 입문 단계를 지나면서 클래식 팬들이 겪게 되는 이런저런 고민들에 대한 멘토링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고 그대로 즐길 것, 남들의 말은 참고로만 듣고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을 것.

천재 작곡가들의 에피소드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특별히 파격적인 전개는 아닙니다. 코른골트 같은 근/현대 작곡가들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죠.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기넘치는 입담과 패기입니다. 마음껏 온 몸으로 내 맘대로 즐기는 음악이 클래식일 거라고 강변하는 조윤범 씨 그 자신이 이 책에서 제일가는 미덕이지요. 바야흐로 강마에의 시대니까요.

 B. <네 멋대로 찍어라>는 제목부터 느낌이 옵니다. 장비에 구애받지 말 것(이 책의 추천 카메라 목록에는 DSLR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말 것, 충고와 조언은 충고와 조언 수준으로만 담아둘 것. 마치 <월든>의 유명한 문구, 자기 마음 속의 북소리에 맞추어 걸어가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든 사진 초심자들이 명심해야 할 거의 유일한 덕목이죠. 실패도 괜찮으니까 멋대로 찍으라는 것 말입니다.

사진계의 매우 유명한 석학이나 학식으로 명망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선희 씨의 이 책은 중수 이상의 아마추어쯤 되는 분들은 별로 땡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안에 별 게 있겠나 싶을 수도 있겠고요. 물론 조선희 씨는 수잔 손탁이나 존 버거나 필립 퍼키스와 같은 인물은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다고 고백할께요. 그렇지만 의외로 간단한 사진의 핵심이 거기 있었고, 그 미덕을 수없이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사진을 시작하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이 책을 잡겠지만, 결국엔 누가 봐도 괜찮습니다. 가끔 잊어버릴 법한 진리를 끝없이 되새겨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니까요. 

-화제, 클

클래식 음악이 이렇게 뜰 수도 있을까요!!! 베토벤 바이러스가 대세입니다. 클래식 팬으로써 마냥 반갑습니다. 저변이 넓어지는 것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니까요. 좋은 게 좋은 거지요. ^^ 보시다시피 클래식 관련 책들도 예년에 비해 잘 나옵니다. 이전 글의 두 권에 이어 이번에도 또 소개드리게 되어 기쁘네요.

 
우선 눈에 띄는 책은 <음악가의 탄생>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음악에 종사하는 직업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변모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음악 사회학 책인데요,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현재 클래식 음악의 대세인 원전연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작곡 당시의 사회상에도 관심이 많으시리라 생각되는 가운데,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쓴 좋은 책이 (뒤늦게나마) 나온 것이죠.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키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보다 높일 수 있는, 드문, 좋은 기회입니다. <음악학> 역시 주목할만한 책이죠. 사람을 느끼고 세상을 듣는이라는 부제에 걸맞습니다. 화성 분석이나 존재론적인 탐구와 같은 어려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음악학이 충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마운 기회이기도 하죠. 입문서 수준의 쉬운 책은 아닙니다만, 기초적인 인문 지식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음악과 세계화에 대한 부분에서는 최근의 화제적 괴작 <굿바이 클래식>에 대한 우아한 대답이 될 수 있겠네요. 참고도서로 추천해 드립니다.

 
이번에는 연주가들입니다. 현재 BPO의 상임인 사이먼 푸들래틀 경과 피아니스트 랑랑이네요. 래틀의 경우에는 대담집 형식으로 구성되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휘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두드러집니다. 곡에 대한 느낌, 지휘의 포인트, 음반 판매고의 딜레마, 콘서트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 등등 '지휘자'의 삶에 대한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BPO의 팬, 혹은 래틀의 팬, 혹은 지휘와 음악에 대해 월드클래스 지휘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대담집이지만 가독성도 좋은 편입니다.<랑랑>은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성장기인데요, 꼭 영화 같습니다. 하긴 모든 천재들의 이야기는 다 드라마틱하죠. 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왜 녹음 연주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얘기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건 기대하지 마시구요.

 
다른 건축을 기대한다

정기용 선생님의 새 책입니다. 등나무 그늘로 가득찬 공설 운동장이라는 놀라운(?) 아이디어로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했던, 바로 그 '무주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책이죠. 건축이 인간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단순 명확한 진리를 지키고자 노력한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실제로 무주 주민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서, 주민들이 무엇을 원했고 무엇이 필요했는가를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건축이야말로 공학과 예술과 인류애가 만나야 하는 인간 정신 발현의 최전선이다! 라고 누가 말하더라도 저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그 무게가 만만치 않은, 즉, 좋은 책이라는 얘깁니다.

아참, 근래 주목할만한 건축 책은 더 있죠. 세 권 나갑니다.

<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은 그야말로 신나는 책입니다. 말빨이 대단하세요! 남대문이 불탄 걸 보고 '남은 국보들도 불타기 전에 얼른 구경하러 다녀오자'라는 얘기부터가, 눙치는 맛이 일품입니다. 딸과 아버지가 여행을 다니며 건축 국보를 답사하는 테마도 좋거니와, 말빨이 살아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건축 전공자이자 나름 다작(!)한 이용재 씨의 내공도 물이 올랐네요.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어디 놀러가서 '이게 이래서 좋은 건물이야'라고 자랑하실 수 있습니다. 농담이 절반이나 섞여 있어서 마치 자기 것처럼 얘기할 수도 있어요! -_-;;; 다른 건축은 아니고, 다른 건축 '이야기'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저자의 책이 두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소신있는 건축학자로 알려진 임석제 씨입니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의 경우에는 대학 교양 수준의 입문서로써, 건축이 인간 및 환경과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국 근대 경제와 건축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자본친화적 건축이 가져 온 여러 폐해 등등, 내실 있는 분석이 뒤따릅니다. <역사, 기술, 인간>은 북하우스에서 근성으로 발간하고 있는 서양 건축사 시리즈의 제 5권이죠. 저자가 직접 촬영한 유럽의 유명 건축물들과 그 도면, 각종 양식의 분석과 설계의 비결을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5권에서는 18~19세기의 건축물들을 따라가며, 특히 이 시대가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대단히 중요한 한 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돼, 아직 소개할 책이 많은데..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에드바르 뭉크>입니다. 정말 갓 나온 신간이라 오자마자 허겁지겁 읽어 보았는데요. 을유 예술의 거장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책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전기물의 기본을 지키는 무덤덤한 서술이 뭉크의 어두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뭉크도 뭉크려니와, 이런 느낌이 바로 전기물의 맛이죠.

한길사의 <성서 미술을 만나다>입니다. 미술작품을 통해 성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들은 많습니다만, 주로 입문의 관점에서 그린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본격적인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흥미진진합니다. 표지에도 나와 있는 파울 클레를 비롯, 몬드리안이나 그 이후 현대 미술의 성서적 측면까지 매우 흥미로운 관찰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강력 추천.

휴머니스트의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입니다. 이게 진짜 대안 교과서죠. 행동하는 미술교육의 사례를 밝히고 있는데, 대가들의 걸작보다 동시대 또래들의 결과물이 가득 들어 있다는 점은 상당한 '학습적' 효과가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유효!

시공사로부터 날아온 사진 에세이.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스케치에 가깝다고 봐야겠지만, 종종 범상치 않은 사진과 맞딱드릴 수 있습니다.

 -안녕히, 혹은 기습 사설

 <명랑한 고통> by 홍인숙

 

-대미;; 를 장식하는 책이네요. 국내 작가의 작품집이 단행본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참 드물고, 그 퀄리티가 일정 이상인 경우는 더더욱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키치류의 감수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그렇지만 이 책을 2주간 나온 수많은 예술 책 가운데 주목할만한 한 권으로 꼽으렵니다.

예술가들에게 '깊이에의 강요'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냅다 싸질러놓고 텍스트를 거기에 짜맞추는 식의 예술 작업은 이제 좀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로 세계를 불러 와서 수습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기가 안쓰럽고요. 프리스타일이라고 하면서 어디서 많이 본(이 경우 특히 일본꺼) 것들을 갖다놓는 것도 더 안 봤으면 해요. 차라리 다 깨놓고 맘대로 하는 걸 봤으면 좋겠습니다. (과정이든 결과든) 즐기거나 무너지거나, 결국 이 둘 사이에서 결판이 나는 게 아닐까요. 예술 작업이라는 것이요.

보드리야르의 사진전이 그의 책만큼 와닿지 않는 이유는 책만큼 재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하던 얘기를 사진으로 그냥 다시 만났죠. 설마 일부러 예술을 철학 개념의 하위에 두려고 계획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냥저냥 심심한 복제품을 구경한 기분이었으니까요. 이것도 '무너진 작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랑한 고통>은 괜찮습니다. 어린 시절의 낙서같은 인물화가 나오다가, 어느새 동양화가 그 안에 편입되고 한시가 편입됩니다. 어린애가 쓴 듯 삐뚤빼뚤한 한시가 여자아이 전용의 공주님 그림체와 동화하고, 정밀하게 묘사된 산수화가 애들 수준(?)의 그림 속에서 오브제가 되어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성인과 유아의 경계, 고전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생겨나는 독특한 느낌은 꽤 맛이 좋아요. 간만에 작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반짝반짝하면서 '작품집'을 봤습니다.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추천.

좀 뜬금없지만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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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칭 2008-10-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미술대안교과서 존경하는 학교 교수님도 필자진이신데 이제 나왔구나..항가항가 -ㅈ-

복숭아 2008-11-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글 정말 부럽게 잘 쓰십니다. 음.. 갑자기 소개해 주신 책을 모두 구입하고 싶음은.. 흠..
아침에 기분 좋게, 그리고 풍성한 느낌을 안고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08-11-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적인 댓글이네요... 기뻐서 모니터를 멍하게 쳐다봤어요(좀 이상한가). 감사합니다. 하도 반응이 없는 블로그라 글 퀄리티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했는데..;; 부족한 글에 기분이 좋아지셨다니 앞으로도 용맹정진하겠습니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엉엉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책의 810페이지, R.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을 소개하는 글 중 일부입니다. 작곡가가 직접 악보와 함께 인용해 놓았다는 괴테의 싯구라지요. 저는 이 난해하고 음울한 작품에 대해 이토록 알맞은 소개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드레스덴 대폭격이 남긴 참사에 대한 파괴적 추모곡인 <메타모르포젠>의 파괴적/혼란적 측면은 어디서 오는가, 이 책은 작곡가의 인용구를 실음으로써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심지어 그의 세계관이 이후의 20세기 음악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의 단초까지 제공하고 있죠. 이 책,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은 그 삐까번쩍한 이름과는 달리, 볼수록 깊고 특이하고 인상깊은 책입니다.

이상한 책, 색다른 음악 가이드이자 동시에 색다른 서양 음악사

그렇습니다. 1001곡에 달하는 클래식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책인 동시에 서양 음악사의 흐름을 잡아내는 게 가능한 책입니다. 기존의 책들처럼 단순히 색인별이나 작곡자별 소개가 아니라, 개별 곡들의 발표 연대순을 통해 정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성은 음악사의 보다 세밀한 흐름을 잡아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작곡가들이 다른 작곡가와, 혹은 당시의 세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여기 소개된 곡들의 음악을 실제로 들으면서 독파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야말로 서양 음악사의 궤적을 따라 걸어가는 경험이 될 겁니다.

이는 또한 중요한 유연함, 즉 작곡가 별로 취향이 굳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유연함을 제공합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베토벤의 각 교향곡 사이에 등장한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에 도전할 수 있으며, 모짜르트로 도배된 시대에 굳건히 껴 있는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에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겁니다.

 가이드북은 무덤덤하다, 그러나 역사 역시 그렇다

그래서 때로 묘한 상황도 느낄 수 있습니다. 모짜르트가 그렇지요. 그의 시대는 그 자신의 작품으로 거의 다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면은 그의 <레퀴엠>을 마지막으로 하이든의 곡들로, 그리고 거대한 신예 베토벤의 것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모짜르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음악 가이드 북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가이드 북'을 기본으로 하는 이 책의 무덤덤함은, 역사와 시간의 특징을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시대는 끝없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데 바쁘니까요. 모짜르트는 음악만을 남기고 그렇게 스러진 것이지요. 다만 중요 곡마다 들어있는 인용구가 <레퀴엠>을 쓰던 모짜르트의 마지막을 비춰주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이 레퀴엠은 나를 위해 쓰고 있다고..."    - 죽기 전 병중의 모짜르트 (p.186 중에서)

 업데이트 컴플리트 and 특전!

그런데 사실,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게 제일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출판사 측 이야기로는 이 책의 원서가 매년, 혹은 격년 간격으로 업데이트 될 것이며, 그렇게 개정된 원서를 속속 한글 개정판으로도 내겠다는 것이죠. 언제 구입하든, 가능한 최신의 음반 데이터가 녹아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펭귄 가이드를 부러워할 이유는 점점 줄어듭니다.

(사실 <죽기 전..> 시리즈는 개정판을 통해 조금씩 수정한 버전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만 예외는 아니겠지요. ㅎ)

아참, 혹시나 저작권에 걸릴까 싶어서 사진은 못 올리지만, 멋진 풀 페이지 사진들도 시원시원하고 좋습니다. 턱의 땀을 닦는 미켈란젤리의 무표정한 흑백사진은 '바로 저게 저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한 컷. 멋져요!

하늘 아래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책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양장본이라면 꼭 해 주었으면 하는 사철 제본 대신에 접착식 제본을 선택했다거나, 음악가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옮긴 사례가 보인다거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 곡들의 '차선 추천' 음반들이 (짧긴 하지만) 죄다 영어로 소개가 돼 있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누가 제게 '그렇다면 소장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에 손을 번쩍 들겠습니다. 하긴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군요.;;

애호가로서 놓치기 싫은 책이 나온 셈입니다. 혹시 고민만 깊어지는 분이 계시다면, 망설이지 말기를 권해 드립니다. ^^ 아참, 혹시 가이드북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는 분이 계시죠? 제가 왈가왈부 하는 대신에, 첼로계의 철학자 스티븐 이설리스의 서문 일부를 옮기며 이만 물러납지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을 통해 많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예를 들어 글리에르의 교향곡 제3번이나 플로렌트 슈미트의 <살로메>같은 작품은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사람마다 좋아하는 곡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왜 이 작품을 실었어? 하필이면 왜 이 공연이야?'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는 갑론을박을 하던 중에 우정이 돈독해지거나 흔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 스티븐 이설리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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