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가을입니다. 언제 오나 싶었는데 갑자기 가버렸어요. 원망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 기다리던 가을 대신에 예술을 사랑하는 책들을 넣어 봅니다. 눈에 띄는 11월 첫째 주의 예술 신간들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분야별로 한 번.

 

-미술-

     

-<보기 배우기>는 출간된 지 50여년이 흘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내용이 사뭇 도발적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결국은 어떤 스타일을 얼마나 잘 소화해냈느냐만이 관건이다. 하나의 작품은 그것이 담으려 한 주제부터 그 디테일의 표현에 있어서까지의 조형적인 완성도를(어쩌면 단지 그것만을) 필요로 한다. 그 모든 면이 완벽한 작품을 걸작이라 칭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다른 어떤 부가적인(이 경우 역사적인 경우가 많다) 요소가 추가된다고 해도 절대 위대한 작품이라 부를 수 없다.

이 원칙에 따라 수많은 작가들의 유명 작품이 도마 위에 오릅니다.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는 거의 위대한 작품이지만 통일성을 저해하는 풍경 묘사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라파엘로의 유작은 제자들이 뒤이어 겨우 완성한 '거의 졸작'입니다. 저자인 마랑고니는 그 어떤 외부적 요인이나 역사적 중요도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 자체의 시각적 완성도만으로 미술사에 남은 작품들을 재평가합니다. 특히 그림의 주제나 의도까지 조형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보는 그 기준이 논쟁적일 수 있겠네요. 국내 소개된 비 전문 미술서 중에서는 극히 드물게 정면 승부를 걸어오고 있기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1권에서는 미술 스타일의 척도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요건 및 비평과 작품의 관계를 다루며, 2권에서는 미술사를 연대순이 아니라 각각의 주제(인물, 종교, 풍경, 역사...)에 따라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특히 2권의 전투(?)는 치열합니다. 대체 누가 카라바조의 아성에 도전할 것인가라던가...등등.

최초의 입문서로 삼기에는 쉽지 않으며, 원서가 2도 인쇄였던 관계로 흑백 그림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이탈리아 쪽 화가들이 유달리 많은 것도 혹시 맘에 안드실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즐겁습니다. 연대기적인 소개 혹은 에피소드 발굴에 그친 기존 교양 미술사의 대안의 몫을 충분히 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이도 중상, 천편일률적인 교양을 넘어 자신만의 눈을 갖고 싶은 분들께-

-<아트 오브 페인팅>은 저 유명한 라루스로부터 날아왔습니다. 이 책의 목표는 어떤 그림을 마주쳤을 때 보다 잘 만들어진 그림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을 배워보자입니다. 이 책도 상당히 흥미로운 게, 회화 작법에 관한 거의 모든 범주를 한 권에 쓸어담아 놨습니다. 그림에 서명이나 제목을 하게 된 역사, 색채법, 원근법, 빛을 처리하는 법, 형태를 묘사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각 사조별 종합 특징 분석까지 가득하죠. 보통의 입문서들이 담고 있는 이론/사조적 접근뿐만 아니라 실제로 회화의 작법 과정까지 해설함으로써 보다 넓은 범위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짧은 챕터에 많은 내용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종종 전문용어가 사용되었고, 내용이 다소 압축적인 면이 느껴지지만, 다루는 범위로 보나 명확한 분류 시스템으로 보나 이 역시 만나기 힘든 기회임에 틀림없습니다.  -난이도 중상, 회화 감상에 있어 다채로운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들, 혹은 그 지식을 정리하고 싶으신 분들께-

 

 

-영화/클래식-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실전 시나리오 작법에 써먹기 좋게 재해석한 책입니다. 상당히 솔깃한 컨셉이죠. 실제로 <시학>을 읽어보신 분은 경험하셨겠죠. 쉽게 읽기에는 무리가 따름에도 불구하고 종종 던져지는 성찰에 깜짝 놀라게 되는걸요. 그렇다면 그 책을 더 쉽게 풀어서, 그리스 비극이 아닌 현대 영화들을 통해 풀이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적용 사례도 유명한 영화들이라 이해도 빠르구요. <시학>이 워낙 뛰어난 책이다보니 이미 다른 시나리오 책들에서 강조한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이 책처럼 본격적으로 그 전체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한 적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책이 <시학>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기대하는 것이 설마 <시학>의 완전한 변용은 아니겠지요? 부담없이 읽으시고, 가슴에 하나 이상을 담아두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시학>을 읽고 싶게 된다면, 그게 최고의 성과일지도 모르겠네요. -난이도 중하, 고전 기피증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창작 지망생 및 영화 팬들께-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는 의외로(?) 재밌습니다. 평범한 연대기적 구성, 게다가 교향곡의 역사라기에는 (비록 그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독일-오스트리아 계열에 지나치게 치중된 감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목차를 보고 있을 때는 과연 괜찮을까 싶었는데, 술술 잘 읽혔습니다. 각종 강연회나 칼럼 등을 통해 다져놓은 저자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일단 책이 상당히 쉽고, 특별히 어려운 이론적 난관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향곡과 유럽 사회간의 상호관계를 적절히 짚어갑니다. 교향곡이야말로 예술 작품 중에서 당대의 시대적 조류와 가장 크게 교감한 장르였다고 볼 때, 최은규 씨의 선택은 좋았다고 보이네요.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빨리 읽히며, 그러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최대한 잡아 놓는다... 어쩌면 이걸로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단, 매니아 분들은 심심하실 수 있습니다. 김문경 씨의 말러 시리즈를 아무 무리 없이 읽는 분들이시라면요. -난이도 중하, 즐겁게 읽으면서 충분한 지식 섭렵을 겸하고자 하는 클래식 팬들께-

 <올 댓 클래식>은 그야말로 클래식에 흥미를 동하기 시작한 분들께 드리는 추천입니다. 친절한 풀이와 해설로 이름나 있는 이동활 씨가 썼습니다. 재밌는 점은 모든 챕터가 경탄조로 시작한다는 겁니다. 마치 한 세대 이전의 글들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책의 분위기와 얼추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존대로 쓰여진 본문이라든가, 직접적인 전문용어 대신에 에둘러 풀어가는 묘사를 택했다는 점 등, 마치 친절한 아저씨처럼 느껴지는 묘한 강점(!)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여러모로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특이한 연출 위에서 빛을 발한다고 할까요. 이 책 역시 고수 분들께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면밀하고 상세한 분석과는 또다른 맛을 간만에 느끼고 싶으신 분께는 권해 드립니다. 저 초보 시절, 오로지 비유만으로 감동을 설명할 수 있던 시절의 벅차오름 말이죠. ㅎㅎ -난이도 하, 친절하고 재미있는 클래식 명곡 이야기를 찾는 분들, 혹은 초심으로 돌아가고픈 위기의 클래식 매니아들께-

 

-오늘은 여기까지! 사진, 디자인, 건축, 음악(안-클래식) 등등은 다음 주에 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 글을 보며 느낀 바가 과유불급이었던지라.. 하여, 오늘 평안히 보내시고 좋은 책 고르시기 바랍니다. 그럼 좀 더 행복해지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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