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 3월에 친한 선배의 생일이 있었다. 선물을 챙기다가 알라딘 메인에 뜬 정여울의 신간을 보았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라는 제목에 프라하 성의 야경 사진. 표지만 보면 누가 봐도 사진과 여행 정보가 그득그득 실려 있을 것만 같은 책. 으엥, 정여울이 썼을 것 같은 책이 아닌데.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선배가 좋아하겠다 싶어 카트에 넣었다. 받아본 책은 비닐로 싸여 있었고, 한 장도 들춰보지 않은 채로 선물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이 책이며, 후속편인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이 이어 출간됐다는 뉴스를 읽기 전까지, 까맣게.


정여울과 베스트셀러라니 엄청 안어울리네, 그래도 베스트셀러가 좋긴 좋다, 이렇게 2권도 나오고…라 중얼거리며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취향 탓이기도 하고, 여행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별히 가고 싶지도 않은 외국 땅 정보가 빽빽이 들어있을 거라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던 탓이기도 하고…뭐 그랬다. 처음엔 설렁설렁 표지를 넘기고 대충 건성으로 읽다가 아이고, 이거 이럴 책이 아니네, 싶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음도 바로잡았다. 집중해서 마지막까지 읽었다.



2.『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은 다행히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정여울의 글들이 흥미로웠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유한한 시간을 가치 있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의 그림자가 구석구석 묻어 있어 좋았다.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책-그러니까 여행 정보를 사전처럼 토해놓고 있는 책도 아니었고 어디어디는 꼭 가야 되고 무엇무엇은 반드시 봐야 된다고 명령하는 책도 아니라 더욱 좋았다. 외국의 유명한 관광지를 번듯하게 찍어 놓은 사진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온몸을 자유로 흠뻑 적신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책이라 더더욱 좋았다. 누군가는 내가 이 책을 맘에 들어했던 이유 때문에 이 책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이 부분에서 기획 출판이란 참, 베스트셀러란 참, 대중도서란 참…하고 혼자서 중얼거려본다ㅋ) 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오히려 나는 정여울의 흥미로운 글을 더 읽고 싶어 아쉬웠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열 곳의 지명이 소개된다. 예를 들어 제1장인 '특별한 하루를 부탁해'에서는 파리, 마드리드, 몬세라트, 헬싱키, 쾰른, 시나이아, 암스테르담, 런던, 보드룸, 아레초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이 중 파리, 마드리드, 몬세라트 부분에만 정여울의 글이 실려 있다. 파리 부분에서는 뒤마 파스의 춘희가, 마드리드 부분에서는 박노해의 다른 길이, 몬세라트 부분에서는 댄 핸콕스의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가 정여울의 경험과 감상과 기억 속에 녹아든다. 이렇게 흥미로운 글 세 편을 읽은 후에는, 헬싱키와 쾰른과 시나이아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이 붙어 있는 페이지가 한 쪽씩 이어진다. 아아 뭔가 시원하지 않아…하는 기분으로 나머지 일곱 지역을 대충 훑고-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글보다 사진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를 염두에 둔 기획 출판이라니 이것 역시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정여울의 또다른 여행기가 나온다면, 그땐 이 책보다 많은 글이 실려있으면 좋겠다. 그녀의 폭넓은 독서가 여행과 함께 어우러져 '당장 그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이 책이라도 읽겠어!!!!'하고 마음먹게 하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쩌구저쩌구한 유럽 TOP10'이라는 제목 대신 좀더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제목이었으면 좋겠고. 물론 이 희망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판매량은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의 반도 안 되겠지만 허허허허;



3. 특히 좋았던 부분은 제 8장,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글이었던 헤르만 헤세 부분이 참 좋았다. 작년 이맘 떄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꽤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 책에 등장했던 헤세의 카사 카무치를 정여울의 책 속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어지는 정여울의 문장들과 루가노 호수의 사진들…한참을 바라보았다. 헤세의 문장들을 읽으며 그 아름다움에 전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글의 맨 마지막 부분에 실린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을 때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만년설이 뒤덮인 몬타뇰라의 산들과 계절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루가노 호수, 손수 가꾸던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작가 스스로 그린 자신의 알터에고로 보인다. 겉으로는 늘 비슷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시시각각 천변만화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몬타뇰라의 이미지는 헤세 자신의 격정적이면서도 고요한 성찰로 가득한 영혼의 풍경화이기도 했다.


- 카사 카무치에서 시작되는 헤세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루가노 호수를 넘어 아련하게 내다보이는 이탈리아 접경지대 마을들이 보인다. 매일 이곳을 산책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을 헤세를 상상하며, 비로소 그가 그리워 한 '예술의 어머니'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 것만 같았다. 


- 헤세가 손수 씨를 뿌리고, 흙을 파내고,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을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원에서 손녀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는 헤세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헤세의 집 카사 카무치에서 겨울 속에 숨어 움을 틔울 틈새를 엿보고 있는 봄의 기대에 찬 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는 헐벗었지만 벌써 바지런히 꽃망울을 터뜨린 꽃도 있었다.

(265-267쪽)



4. 여전히 나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데다가 방구들을 딩구르르하며 베개에 얼굴 묻고 있는 게 가장 편한 인간이므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유럽행 티켓을 예약하거나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여행 루트를 그릴 리는 없을 것이다. 대신 정여울이 알려준 여행자로서의 자세를 기억하려 한다. 세상의 떠들썩한 소리에 신경쓰면서 손익을 계산하는 '일상적 삶'을 좀더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와 주위를 대하고 싶다.



그 때문일까, 반드시 이번 겨울에는 여행을 가야겠다는 다짐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가 있는 장소를 내 마음이 머물고, 쉬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는 일이 여행보다 훨씬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여행을 수많이 다녀 온 그녀도 말했으니까. 떠나고 싶다는 충동으로 현재 머물러 있는 곳을 증오하고 지금의 시간을 괴로워하며 보내는 사람이나 언젠가 가게 될 미지의 장소에 대한 동경으로 팍팍한 현실을 버티는 사람 대신,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5.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을 떠올려 본다. 혼자 고속버스 타고 찾아갔던 겨울 바다. 다음에 갈 여행도 혼자 가야지. 분명 찬 바람이 몰아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포근했던 그때처럼 다음 여행도 외롭지 않길. 여행에서의 나도, 일상에서의 나도, 모두 자유롭길.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우려고 치열하게 살아가길, 부디.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p.127)

윤대녕의 소설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 때 이미 성인 여자 같았던 그녀에게, 대학교 2학년 때쯤『은어낚시통신』을 선물받았다. 집에 돌아와 쭈뼛거리며 책을 펼쳤다. 책 속 사람들은 쓸쓸했고 모호했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갔다. 두터운 안개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멀리 떨어져 힘들게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나는 아직도 너와 친구가 되었던 중학생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너는 내게 이 책을 주다니. 다른 책을 읽어 볼까 하고 도서관에서 몇 권의 소설을 빌렸다. 여전히 힘겨웠다. 그 정서와 분위기는 내 것이 아니었다. 반도 읽지 못하고 반납 날짜를 넘겼다.


그 이후로 윤대녕의 글을 읽지 못했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기 전까지 쭉. 표지를 바라보며 과연 내가 이걸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의심했다. 책 속의 남자는 여전히 쓸쓸했고 어두웠으며 책 속의 대화들은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인쇄된 듯 낯설었다. 변한 건 나였을까? 술술 잘 읽혔다. 스무 개 남짓의 장소들에 얽힌 윤대녕의 이야기들이 쏙쏙 흡수됐다.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생각했다. 나도 유령처럼 서성대는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이 책이 이렇게 잘 읽히는 건 그 때문이겠구나.




얘야, 이것이 과연 삶이라는 거냐? (p.26)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윤대녕의 기억 속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과거에 머물렀던 곳이기에 지금은 장소로만 남아 있는 곳들을 그는 섬세하게 공간화한다. (그가 생각하는 장소와 공간의 차이점은 광장에 대한 이야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 광장은 약속의 장소이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그곳에서는 자주 음악회나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할 때 광장은 자연스럽게 공간화된다.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은 광장은 단순한 장소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집이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 어머니의 집, 결혼한 이후 살고 있는 집, 잠시 지나쳤던 휴게소와 영화관과 공중전화 부스와 우체국, 아버지와 함께 갔던 역전 다방이나 아들과 함께 갔던 바닷가나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찾았던 노래방 등 다양한 장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차분한 말투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시절들을 담담히 정리하는 듯한 여유마저 엿보인다. 그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254쪽)고 고백한다.



비록 어두웠던 기억일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p.106)

에세이라면 응당 그러함이 당연함에도, 나는 자세하고 솔직하며 사사로운 일들을 다수의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가들의 대담함에 새삼 놀라곤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불도에 귀의하고자 절을 찾았던 얘기나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며 방송통신대 뒤편에 있는 술집 문을 두드리던 얘기를 읽으며 슬픔에 젖어 서성대는 남자의 구겨진 어깨를 떠올리다가, 매일 꼬박꼬박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운동을 하며 아들과 함께 낚시를 다니고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간다는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단단한 뒷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억압을 많이 받고 자란 외아들 출신으로 선천적으로 병약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을 일삼았으며 혼자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데 익숙했던 이는, 부엌에서 꼼꼼히 밥을 차려 먹고 성실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이와 같은 사람이다. 둘 중 하나가 진짜고 하나가 가짜인 것이 아니다. 진짜인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공간 속에서 진솔하게 펼쳐지는 모습에, 야릇한 감동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도서관에 관한 글이었다. 도서관을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에 비유한 그의 표현은 매우 신선했다. 도서관을 찾았던 소년 윤대녕이 엄숙하고 권태롭고 음울한 사서의 침묵에 압도당해버렸기에, 한참 전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도서관을 죽은 말의 세계이자 밤마다 유령들이 출몰할 수 밖에 없는 공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거겠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이들의 뒷편에서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가 카뮈가 웅성거리기도 하며, 때로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되살아나 주위에서 서성거리기도 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휙 돌아보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별빛속에 수많은 나그네들이 길을 가며/ 또 그대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p.157)

나도 때때로 과거를 떠올린다. 경사가 많고 골목이 어지럽게 엉켜 있던 서울 변두리의 주택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과일 냄새와 만두를 찌는 열기와 빵 굽는 냄새와 허여멀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던 생닭의 축축함이 섞여 있던 시장 골목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신기한 건 구체적인 일이나 사건, 같이 있던 사람들의 얼굴보다 먼저 '어떤 장소'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거다. 언제, 누구와 같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장소가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져 당황하기도 했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서야, 과거를 떠올릴 때 장소가 가장 먼저 기억났던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없어졌고, 그 시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고, 그 때를 같이 보낸 사람들과는 헤어졌다 할지라도, 그 때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장소는 남아 있으니 이 기억이 내 상상은 아니라고, 기억 속의 나는 분명 있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그 때의 나와 그 때의 시간과 그 때의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것과 달리, 그 장소엔 가 볼 수 있을 거고 그 땅은 밟을 수 있을 테니까. 


광장에 관한 글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문득 그려 본다. 약속의 장소이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 사람이 존재하면 그 순간 공간으로 변하는 곳. 어떤 관계도 만남도 상상도 가능한 곳. 미래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곳. 지금 그 곳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천막 속에 앉아 있고, 유민이 아버님께서 30일 넘게 단식을 하고 계신다. 노란색 리본을 달고 광장을 찾는 사람들 덕분에 공간화되는 그 곳. 오늘 수척해진 유민이 아버님의 손을 잡아 주었던 교황님의 마음은 그곳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 줄까.  모든 일은 늘 '그 이후'에 가서야 의미가 확인되는 법일 테니,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인간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공간이기를, 아름다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기를 기도해 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열대야다. 잠도 안 온다. 노트북을 켜고 한동안 트잉여짓거리를 하다가 오늘이 칠석이라는 걸 알았다. 구글이 알려주었다.



어머 이번 두들은 예쁘기도 하지…하고 혼자 좋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8월 신간평가단 마이페이퍼를 써야겠구나. 직녀와 견우가 오작교에서 만나듯, 나는 에세이 신간을 알라딘에서 만나야지(-_-;;;).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밤 열심히 꼽아 본, 이번 달에 읽고 싶은 책 다섯 권을 차례로 나열해 보자면…


  


뽑히지도 않는 동물 관련 책을 혼자 열심히도 추천하고 있다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꺾이지 않고!! 이번달도 꿋꿋이!!! 고양이에 관한 책 두 권과 코끼리에 관한 책 한 권을 올려 본다. 달려라 코끼리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는 동물을 만남으로써 변화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고, 로스트캣은 동물을 잃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다. 


달려라 코끼리의 주인공은 라오스에서 온 짠디, 쏘이, 템 등 열 마리의 코끼리들. 한국에서 9년간 생활했고, 지금은 일본으로 떠났단다. 코끼리를 곁에서 계속 지켜봐 온 수의사선생님이 필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는데, 코끼리를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고백이 괜히 감동적이어서 첫 번째로 꼽아 본다. 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는 책 표지와 제목을 통해 이 책의 성격과 내용을 50% 이상 노출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아 뭔 맨날 나오는 동물과 인간의 따뜻한 만남 어쩌구저쩌구 아녀-_-'하고 진부하다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의 주인공인 빌리가 주인에게 버림받고 고양이 보호소에 있었던 고양이였다는 게 눈길을 잡아끈다. 세상을 버린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고양이를 만나 세상을 되찾게 되는 이야기일까. 만약 맞다면 참신하지 않을 수 있을지언정 분명 아름답지 않을까.


로스트캣은 잃어버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라는데-조동섭씨가 번역한 책들 중 재미있게 읽은 것이 많으며(번역을 잘했다 못했다는 내가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특히 조동섭씨가 번역한 고양이 책들은 인상적인 것들이 몇몇 있었으므로(마지막엔 울며불며 읽었던 노튼 시리즈!!!!!!!) 읽어 보고 싶다. 고양이 티비의 그림이 실려 있다는 것도 읽어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


    


또다른 두 권은 헤세의 여행엄마의 도쿄. '집 아닌 다른 곳'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책. 엄마의 도쿄는 그야말로 '엄마'와 '도쿄'에서 생활한 이야기인데…도쿄보다는 엄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엔 '시인 김민정 씨?'하고 클릭해 봤다가 조금, 아주 조금, 실망하기도 했는데(죄송합니다 또다른 김민정씨) 조그마한 딸아이가 훗날 이 글을 읽고 외할머니를 아름답게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라는 문장을 읽고 울컥해버렸다. 외할머니를 아름답게 기억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니 세상에나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부분'에 약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이름 역시 딸이므로. 그렇다면 헤세의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아 뭐 딴 게 있을 리 있나, 헤세니까! 헤르만 헤세니까!! 그 외 어떤 이유가 더 필요하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사랑은,

자신이 쓴 모든 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단 한 명의 사람을 가진 작가가 있다. 행복한 사람일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질문이 끝나자 마자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몇 개의 조건을 덧붙인 후에야 대답할 수 있겠다. 행복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한 명과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같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래서 그 단 한 명과의 사별을 이 땅에서 겪지 않아도 된다면, 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불운하게도 사별을 겪어낸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겪어냈다는 표현은 불완전하다. 그럼 뭐라고 해야하지? 통과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이 책을 읽어 보아도, 사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걸.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적확할까.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단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주체할 수 없게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 다시 집중력을 회복해 전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게 될 때, 휴게실 공포증에서 벗어날 때, 유품을 처분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사별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 해야 할까.


책 표지에 떠 있는 기구를 보며 생각했다. 왜 줄리언 반스는 기구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을까. 왜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내용의 문장으로 각 장을 시작해야만 했을까. 왜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앞에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더 높은 하늘로 더 멀리 날아올라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결국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기구의 운명에서 영원을 꿈꾸지만 결국은 헤어짐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운명을 연상한 걸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헤어진 후에는 처음부터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지고 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비상과 죽음을 이야기한 후에야 기구를 타고 날아다니듯 아름다웠던 팻과의 사랑을,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격렬한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뭘 알 수 있을까. 사별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본 적도 없는 내가. 팻을 만나본 적도 없는 내가. 줄리언 반스도 아닌 내가. 그러니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이는 사별의 회귀선을 건너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선 대개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 책까지도 줄리언 반스는 팻에게 바쳤다.




2. 그렇게,

다만 나는 힘겹게 짐작할 뿐이다. 에르네스틴이 떠난 세상을 오래 버티지 못했던 나다르의 비통함, 기구를 타고 있을 때조차 자신을 부르는 사라의 목소리를 듣곤 했던 프레드의 가슴 아림, 창으로 목을 찔린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삶의 심장과 심장의 생명을 잃고 말았던 줄리언 반스의 울분을. 더듬어 예상해 본다.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을 숨겨야만 할 때, 얼마나 세상이 끔찍하고 추악하게 느껴질 것인지.


그렇다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라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 된 후, 사라를 놓고 병원을 나설 때 그가 느꼈던 분노는 한때 나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쌕쌕거리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기계 소리와 기침 소리로 가득한 병동을 뒤로 하고 나왔던 밤, 이를 악물고 울분을 삼키다가 결국은 화를 내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울고 울며 걸었던 그 길. 다른 때와 똑같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버스와 승용차들.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통화하던 사람들. 달콤한 냄새와 따뜻한 김을 뿜어내던 군고구마와 호떡과 군밤. 노랗고 빨갛게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온화하게 빛나던 교회의 십자가. 나의 세상이 내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도 나 아닌 이들의 세상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느꼈던, 내 목에 차오르던 분노와 억울함. 왜 지금이냐고, 왜 내 아버지냐고, 왜 내 아버지에게 하필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결국 도달한 결론은 겨우 이것이었다-The world is changed. People may not notcie at the time, but that doesn't matter. THE WORLD HAS BEEN CHANGED NONETHELESS.


어떤 면에서 줄리언 반스는 나보다 운이 좋다. 말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손과 발의 움직임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를, 글 읽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글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씹어 삼킨 음식을, 웃었던 때를, 울었던 때를, 화냈던 때를, 알지 못하기에 기억할 수 없는 나와 달리 그는 다 알고 있으니까. 아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 함께 본 연극과 영화와 콘서트와 오페라와 미술전시회, 아내가 마지막으로 마신 와인, 마지막으로 산 옷,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그의 글, 마지막으로 쓴 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가 부럽다.



3. 끝나지, 않는다.

아직 나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숨소리에 감사하고, 손발의 따뜻함에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는 공포감에 짓눌리지 않으려 스스로를 힘들게 곧추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내가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와도 덜 당황하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준비할 수 없다는 걸. 그 어떤 인간도 준비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죽음, 그 진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처하기엔 턱없이 미숙하다. 우리에겐 더 이상 죽음을 더 넓은 패턴의 일부로 삼을 능력이 없다. 그리고 E. M. 포스터가 말했듯,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별 이후에 당연히 찾아오는 비탄의 감정도 우리에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 되고 만다. (112쪽)


아내를 잃게 되면, 갑자기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다른 운전자들, 배우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114쪽)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그녀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육신, 그녀의 영혼, 그녀가 인생에 대해 품었던 빛나는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상실자이며, 진정 사별을 겪은 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인생은 더 이상 그녀의 빛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29쪽)


또다시,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는 더더욱 끝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은 애도해야만 한다. 애도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자신을 부조리하게 느끼며, 그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음이 기이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파먹는 비탄이 시간을 바꾸고 공간을 바꾸고 영토를 새로 발견하게 한다고 느낄 것이다. 원래 알던 것과 전혀 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려 하다가, 비탄은 패턴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도 파괴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패턴을 찾거나 재정립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애쓸 것이다. 사별의 고통과 무관한 사람이든,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일 테니까.


사별 정리가 얼마나 이어질지, 사별의 발전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건 사별로부터 얼마나 지난 후일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사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오게 될지, 지금의 나는 짐작도 못하겠고 예상도 못하겠다. 대신 기억하겠다고 되뇌인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팻을 잃은 후에도 팻을 기억하는 줄리언 반스처럼,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아버지의 숨소리를, 따뜻한 발과 손의 느낌을.


입술을 깨문다. 미리 울진 않을 것이다. 사랑은 끝나지 않으니까. '그 때'가 지난 후에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신해철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중간 즈음에 DJ로서의 신해철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을 잠못들게 했던 음악도시 때문에 '애들이 늦게까지 저거 듣고 와서 존다'고 교사들이 푸념했다는 문장을 읽고 낄낄 웃었다. 나도 그랬지. 청취자들을 쥐고 흔들며 웃겼다 울리다 결국은 넋나가게 했던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종교집단이나 피라미드 집단의 모임 같아 한 회라도 듣지 않으면 벌받을 것 같았으니까. 음악도시뿐인가. 별밤, FM 인기가요, FM 데이트, 볼륨을 높여요, 밤의 디스크쇼, 기쁜우리젊은날, FM 영화음악, FM은 내친구, 음악캠프…소년 시절의 밤에 윤동주가 부른 이름들이 프랑시스 쟘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면, 소녀 시절의 밤에 내가 부른 이름들은 저것들이었을지도.


 

나는 오랫동안 언젠가는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p.13)

라디오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애틋함과 아련함이 어디 나만의 것일까. 지금도 라디오를 매일 듣고, 가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나만의 일일 리 있을까. 그러니 라디오 제작과 관련된 얘기, 특히나 그 뒷얘기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할까. 책 제목인 마술 라디오를 보자마자 굴비 두름처럼 줄줄 묶여나올 수 있었을 저 생각이 책을 다 읽은 이후에야 떠오른 건 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책을 펼쳤던 탓일 게다. 라디오에 얽힌 마술 같은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으면 됐을 걸.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 말투는 뭐지? 언제까지 이 말투를 쓰는 거지? 이 프롤로그는 뭐지?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왜 갑자기 팬 얘기가 나오지? 김어준과 일곱 개의 오렌지와 황병기 선생과 윌리엄 포크너와 몇 개의 공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응? 엉? 엥? 등의 말들이 혀끝에서 튕겨져나왔다. 그래도 투덜대지 않고 노오란 페이지를 계속 넘겼던 건 이 '계단' 이야기가 꽤 인상깊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의 계단, 수치심의 계단, 자책의 계단, 결심의 계단, 핑계의 계단, 책임 공방의 계단, 감탄의 계단, 놀라움의 계단, 암중모색의 계단, 발견의 계단…내가 매일매일 딛고 오르내렸던 온갖 계단에도 저런 이름들을 붙일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가.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해내는 능력이, 혹은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나 쉼의 여유가 내겐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일까. 이 생각이 들고 나니 이 책에서 펼쳐질 얘기가 무엇이든간에 나는 이것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어처구니없게도!) 생겨 버렸다.


혼란하던 게 천천히 가라앉고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건 프롤로그 중반을 훨씬 넘겼을 때였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수년 전 보물 릴테이프를 만들 때처럼 편집해서 통째로 넘겨. 나는 이 이야기들이 좋았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야…(중략) 이야기 속 사람들이 질문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라는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도 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져 주기를,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나 역시 나의 질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이야기들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내 왕국에 살고 있어. (p.307)

프롤로그가 끝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열 네 개의-하지만 어쩌면 하나의 내용인 것도 같은-이야기들이 주욱 이어진다. 아내와 함께 배를 타는 어부 아저씨, '빠삐용'의 아버지, 브람스 교향곡을 듣는 선배, 장승을 만드는 노인, 일흔 여덟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 젊은 2세대 노점상, 헤엄칠 때 노래를 부르는 해녀……'세상에 이런 일이'나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TV 프로그램 같은 데서 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긴, 아무리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도 요약해 놓으면 평범하고 뻔해 보이는 거다. 내 인생이 아니라면 더더욱. 내게 일어난 발톱만한 일은 머리통만하다고 펄펄 뛰면서도 파도 같은 남의 일은 물장구 같은 거라 여기며 흘낏 보고 마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서 정말 마술 같은 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한 요약본이라기보다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살아보고, 겪어보고, 부딪쳐본 후에 만들어진 생각들. 실낱 같은 순간들, 조각 같은 경험들이 꼬아 놓은 새끼처럼 서로 엮이고 엉켜 만들어진, 단단한 알맹이들. 그것들이 언어화된 결과물을 눈으로 짚어가다가 문득,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거칠고 투박하고 때로는 쉬어 있는, 고달픈 삶의 무게가 성대에도 얹혀 있는 듯한 주름진 목소리들. 그런데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헉헉대지 않고 깊은, 귀 안에서 오랫동안 울림을 남겨 놓는, 따듯한 목소리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계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중략)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고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89쪽, 빠삐용의 아버지 중)


혼자 장승 깎는 걸 배워서,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장승을 만들고 구절을 새겼지요.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것들, 책에서 읽고 가슴에 남은 것들을 새겼어요. 장승의 글귀들이 이래 되잖아요. 걸레처럼, 바다처럼, 흙처럼, 빗자루처럼. 이런 글귀들을 새긴 거죠. 걸레처럼, 빗자루처럼 마음을 닦고 살자는 말이죠. 마음을 닦고 흙처럼, 바다처럼 살자는 말이죠. (196쪽,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중)


원래 사람이 그래. 떳떳치 못하면 세상 모든 게 자기를 탁한다고 해싸토만. 항상 떳떳해야 해. 사방에서 탓하는 소리가 들린당게. (256쪽, 간월도의 달 중)



나는 나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믿고 소중한 이야기를 해서 소중해지고 있어요. (p.304)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다른 약자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약자들이란 점이었다. 남의 아픔은 외면하거나 경시하면서 나의 아픔만 내세우며 징징대는 이들의 목소리란 얼마나 추한가. 그에 비해 사는 게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힘들다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는 약자, 그래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약자의 목소리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렇기에 표고버섯 아저씨의 이런 노점상 일 하면서 딱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표고랑 비슷한 것 같아요. 딱딱한 현실에서 피어나잖아. 나는 내가 표고 같다고 생각해요…라는 말 앞에서, 한달에 2만 원씩 꼬박꼬박 기부한 경비원 아저씨의 왼종일 좁디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이 방법 말고 어떻게 우주를 꿈꾸겠어요? 우주의 한 귀퉁이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세상과 접촉하겠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생선 파는 노점상 할머니의 인생은 딱 이거야, 어떻게 살아왔냐야. 행복, 최후의 순간에 말하는 거야. 인생은 다 살고 끝에 가서 말하는 거야라는 선언 앞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른다. 일등을 하기 위해서 딴 데 신경쓰지 말고 앞만 보라며 엉덩이를 맞는 말처럼,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성공과 권력을 위해서는 남 따위 생각하지 말고 전진하라며 초단위로 채찍질당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에게 소중한 건 무엇이니? 라고. 


너에겐 무엇이 소중하니? 네 돈이? 네 집이? 네 차가? 네 위치가? 네 통장 속의 숫자들이?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니? : 저는 인생에서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아요. 저는 우리들이 살면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산다는 것을 알기 떄문에 더는 그것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녀랑 이야기하는 순간은 마치 여기가 시장이 아니고 학교인 것 같아요. 그게 살아가는 것을 쉽게 해주진 않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줘요.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니? 그렇다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 없을 때, 너라는 존재는 소중하지 않니? 그렇지 않다면,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




내가 보이는 세계를 자신도 상상해보려 해. (p.322)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은 계단 위라는 것. 아직 나는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불행과 불운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을 나눠 갖는 것 아니겠느냐던 작가의 질문처럼, 나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과 또다른 시간을 계속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고민과 이야기와 비밀과 눈물과 웃음을 나누다가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다가 그러다가 함께 변해가면 될 거라는 것.


그러니 그때까지 저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할 테다. 그리고 상상력을 잃지 말아야 할 테다. 우리가 헛되이 살면 가장 크게 오래오래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뒷세대,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사람들일 테니까, 비록 그들의 모습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상상해야 할 테다. 죽음 이후에 대한 감각, 나의 삶과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란 그 감각을 손끝에 기억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찾고 듣고 읽으며 불을 밝히고 일을 해야 할 테다. 그래야만 할 테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