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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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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을 읽고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읽고 도마뱀을 읽고 암리타를 읽던 시절이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글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요시토모 나라 그림의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마음이 무조건 반응하던 때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비현실적인데도 왠지 공감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청춘이나 소녀, 상처와 치유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곤 했다. 예민하면서도 단단한 그녀의 문장들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그녀의 책을 찾아 읽지는 못했지만.


꿈꾸는 하와이를 받아들고 반짝이듯 눈부신 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파랗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저 바닷빛이라니. 책 제목처럼, 바다의 꿈 같은 색깔이었다. 진초록빛을 내뿜는 야자수 아래 펼쳐진 파라솔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묻어났다. 내심 부러움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예의 '요시모토 바나나'스러운, 오컬트적이면서도 소녀스러운 하와이 이야기가 펼쳐지겠거니 짐작했다.


오랜만에 읽는 그녀의 문장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련하면서도 따스하고 예쁜 말들. 아 그래, 이런 느낌이 바나나의 느낌이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었다. 하와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 있는 글들을.


이 바람이야말로 하와이구나, 하고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몸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딱 맞는 온도의 물에 언제까지나 포근히 잠겨 있는 느낌.

아무리 상상해 봐야 실제로 가지 않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눈을 감고 있어도 언제나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 느낌.

그렇게 멋진 풍광을 안고 있는 지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8쪽)


상처 입은 자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 역시 변함 없었다. 담담한 말투에서 타인이 입은 상처를 조용히 응시하는 사려 깊음과 진심 어린 슬픔이 느껴져 나의 마음도 아팠다. 단순한 동정이나 냉정한 타자화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와이키키에는 빛만이 아니라 다양한 어둠도 존재한다.

할머니는 인형 하나하나를 껴안고 볼을 비비고, 그러고는 땅에 내던졌다가 다시 주워서 껴안으며 사과했다.

이 할머니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하고 나는 무척 슬퍼졌다. 아마 이 장면과 비슷한 어린 시절이었겠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30-31쪽)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한 아들의 엄마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늘 소녀 같고 청춘 같았던 요시모토 바나나가 엄마라니, 어머니라니, 학부모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금세 잊혀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조금 더 따듯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염려,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이 책 속 가득 펼쳐졌다.


마음껏 비에 젖고, 화창하게 갠 날에는 빨래를 널어 뽀송뽀송해진 옷에 얼굴을 묻고, 반짝거리는 숲 속을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고, 잔디에 누워 데굴데굴 구르고, 그 언저리에 돋아 이는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 샐러드를 만들고, 바닷속에 들어가 성게를 캐다 먹는 일,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기쁨, 신의 선물이다.

그럴 수 없는, 모든 것이 오염된 날들을 우리는 지금 보내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중략) 이상론을 내세우지 말고, 문제 하나하나에 대책을 마련하고, 매일을 성실하게 주의하며 살 수밖에 없다. 있는 힘을 다해. (138-139쪽. 개인적으론 저 '있는 힘을 다해'라는 부분이 지극히 요시모토 바나나답다고 생각한다)


하와이에 대한 여행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분명 탐탁지 않을 것이다. 꿈꾸는 하와이는 '하와이 여행기'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마우이 지역의 맥주가 맛있다든지, 와이키키 구석에 색다른 호텔이 있다든지, 하나우마베이 해변은 유료라든지 등등…) 하와이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 하와이에서 보낸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이라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싶다. 하와이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나 스펙터클한(!) 여행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독자에게는 불만족스럽겠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선물을 받은 듯 반갑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을 읽은 후 하와이에 가고 싶어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듯. 이런 문장을 읽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데?


하와이는 정말 천국과 비슷하더군요. 그 바람과 햇빛의 느낌이. 그래서 다들 하와이에 가면 천국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천국이 하와이 같을 겁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145쪽)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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