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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대학 시절, 강의 중간 비는 시간이면 학생회관 서점엘 갔다. 앞쪽에는 잡지와 교재들, 학교 엽서와 달력 따위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신간과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가볍게 훑어 보고, 소설이 진열된 책꽂이로 가서 한 권 꺼내 서점 뒷편의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몇십 페이지씩 읽었다. 사고 싶은 책은 늘 많았지만 지갑은 가벼웠다. 사고 싶은 책등을 쓸어 보고는 빈 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슬펐다.


내가 찾은 대안은 헌책방이었다. 가을의 다람쥐처럼 책을 사모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아니 이 책이 3500원? 헉 이 책은 2500원? 세상에 이 책은 2000원!! 하다 보면 나중엔 무거워 들고 가기 힘들었다. '누가 이거 사 가 버리면 안되는데…'라 불안해하며 오늘 살 책을 고심해서 골라낼 수밖에. 자주 다녔던 곳은 학교 주변의 공씨책방과 숨어있는책이었다. 숨어있는책 아저씨는 가끔 마음 좋게 500원씩 깎아 주기도 하셨다. 어찌나 기쁘던지.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며 그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피식 웃었다. 물론 일본의 책 시장과 한국의 책 시장도 다르고, 헌책방 문화도 서로 다르겠지만, 헌책방에서 눈에 띄는 책을 쓸어담으면서 장서의 괴로움을 향해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첫 단계를 자신도 모르게 밟는 건 여기서나 일본에서나 같을 테니까. 인터넷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 목록을 훑으며 마우스를 클릭해 카트를 채우고 마일리지를 계산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아날로그적이고 물질적이며 케케묵은 듯 하지만 마음 편한 무언가'가 거기엔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장서의 괴로움은 표지를 통해 이미 할 말의 80%를 다 해 버린 책이기도 하다. 벽면을 꽉 채운 책꽂이, 책꽂이를 가득 메우고 바닥과 소파에까지 탑처럼 쌓여 있는 온갖 책들, 오래 전부터 그 위에 앉아 있었던 듯 책 위에서 나른하게 하품을 하고 있는 고양이, 쌓인 책 위에 올라가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책 주인…뒷표지에는 앞표지의 '그 주인'이 결연해 보이는 얼굴로 책이 가득 든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드디어 장서를 처분하기로 맘을 먹은 걸까. 아니면 뭐에 홀린 듯 아무 생각 없이 또 책을 한보따리 사 온 걸 수도 있겠지. 보기만 해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난감한 표정의 아저씨, 아마도 장서가ㅋ


집을 무너뜨릴 정도의 책 이야기가 좌라락 이어지는 장서의 괴로움.



책 속에는 표지의 책 주인 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나온다. 입이 쩍쩍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책이 너무 많아 집이 무너진 사람들, 책을 위해 따로 트렁크 룸(창고 같은 거겠지?)을 임대해 쓰고 있는 사람들, 책을 잘 보관할 수 있도록 집을 새로 지은 사람, 이사할 때 책 상자가 4500개였다는 사람,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발굴용 장서 찾기 지도'를 그렸다는 사람(아니 집이 무슨 미로도 아닌데!)…세상에나, 아이고, 헉, 헐, 으어, 같은 감탄사들이 끊임없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런 장서가들을 위해 지은이는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준다. 책을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갈 수 있다든지(헉), 장서는 불에 잘 타니 불조심하라든지(헐),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생활력과 수집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고 가족들도 이해해 준다든지(수많은 덕후들을 위한 생산적 조언이라고 생각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잘 팔기 위한 핵심은 책값 매기기에 있다든지(깜짝 놀랄 정도로 싼 가격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상스러운 마음'은 버리고!!!!) 등등.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조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 역시 지금 책을 한정된 장소에 최대한 많이 집어넣겠다는 목적에만 눈이 팔려; 죽여버린 책이 많은지라. 흑흑.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다행히도(?) 나는 언젠가부터 책 속의 사람들과는 달리 물질로서의 책에 대한 욕심을 언젠가부터 덜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는 것보다는 읽는 게 중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 듯하다. 지금은 '믿고 사는 작가'의 신간을 주로 구입한다. 보통은 도서관을 이용하고, 빌려 읽은 책을 덮으면서 언젠가 이 책을 또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구입한다. 정기적으로 더이상 읽지 않는 책은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처분한다(선물하거나 공공도서관에 기증하거나 헌책방에 갖다 팔거나 알라딘 중고서점을 이용하거나…). 그게 나에게도 그 책에게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아서.


그 이유 때문인지, '적당한 장서량은 5백 권'이라는 10장의 내용이 참 인상적이었다. 독서가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서너번 씩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라는 말,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열어볼 수 있는 책이 책장에 5-6백권 있으면 충분하며 그 내역이 조금씩 바뀌어야 진정한 독서가라는 말. 결국 중요한 건 많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보관하는 게 아니라 좋은 책을 의미 있게 읽고 오래 읽을 책을 잘 갖추는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ㅋㅋㅋㅋㅋ 책을 쟁여두고 싶다!! 지금도 쟁여두고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쟁여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때,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책을 많이 사는 데만 몰두해 읽지 못한 책이 수만 권이었다는 장서가의 에피소드를 다시 읽으면서, '그만 욕심부리고 있는 책이나 열심히 읽자-_-'고 스스로를 진정시켜봐야겠다. 부디 도움이 되는 처방이었으면 좋겠는데. 흐흣.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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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녀 2014-12-0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괴로움을 가진 사람이 저 말고도 많이 있었네요..후후
 
[꿈꾸는 하와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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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을 읽고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읽고 도마뱀을 읽고 암리타를 읽던 시절이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글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요시토모 나라 그림의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마음이 무조건 반응하던 때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비현실적인데도 왠지 공감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청춘이나 소녀, 상처와 치유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곤 했다. 예민하면서도 단단한 그녀의 문장들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그녀의 책을 찾아 읽지는 못했지만.


꿈꾸는 하와이를 받아들고 반짝이듯 눈부신 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파랗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저 바닷빛이라니. 책 제목처럼, 바다의 꿈 같은 색깔이었다. 진초록빛을 내뿜는 야자수 아래 펼쳐진 파라솔과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묻어났다. 내심 부러움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예의 '요시모토 바나나'스러운, 오컬트적이면서도 소녀스러운 하와이 이야기가 펼쳐지겠거니 짐작했다.


오랜만에 읽는 그녀의 문장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련하면서도 따스하고 예쁜 말들. 아 그래, 이런 느낌이 바나나의 느낌이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었다. 하와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 있는 글들을.


이 바람이야말로 하와이구나, 하고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몸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딱 맞는 온도의 물에 언제까지나 포근히 잠겨 있는 느낌.

아무리 상상해 봐야 실제로 가지 않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눈을 감고 있어도 언제나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 느낌.

그렇게 멋진 풍광을 안고 있는 지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8쪽)


상처 입은 자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 역시 변함 없었다. 담담한 말투에서 타인이 입은 상처를 조용히 응시하는 사려 깊음과 진심 어린 슬픔이 느껴져 나의 마음도 아팠다. 단순한 동정이나 냉정한 타자화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와이키키에는 빛만이 아니라 다양한 어둠도 존재한다.

할머니는 인형 하나하나를 껴안고 볼을 비비고, 그러고는 땅에 내던졌다가 다시 주워서 껴안으며 사과했다.

이 할머니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하고 나는 무척 슬퍼졌다. 아마 이 장면과 비슷한 어린 시절이었겠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30-31쪽)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한 아들의 엄마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늘 소녀 같고 청춘 같았던 요시모토 바나나가 엄마라니, 어머니라니, 학부모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금세 잊혀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조금 더 따듯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염려,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이 책 속 가득 펼쳐졌다.


마음껏 비에 젖고, 화창하게 갠 날에는 빨래를 널어 뽀송뽀송해진 옷에 얼굴을 묻고, 반짝거리는 숲 속을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고, 잔디에 누워 데굴데굴 구르고, 그 언저리에 돋아 이는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 샐러드를 만들고, 바닷속에 들어가 성게를 캐다 먹는 일,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기쁨, 신의 선물이다.

그럴 수 없는, 모든 것이 오염된 날들을 우리는 지금 보내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중략) 이상론을 내세우지 말고, 문제 하나하나에 대책을 마련하고, 매일을 성실하게 주의하며 살 수밖에 없다. 있는 힘을 다해. (138-139쪽. 개인적으론 저 '있는 힘을 다해'라는 부분이 지극히 요시모토 바나나답다고 생각한다)


하와이에 대한 여행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분명 탐탁지 않을 것이다. 꿈꾸는 하와이는 '하와이 여행기'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마우이 지역의 맥주가 맛있다든지, 와이키키 구석에 색다른 호텔이 있다든지, 하나우마베이 해변은 유료라든지 등등…) 하와이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 하와이에서 보낸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이라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싶다. 하와이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나 스펙터클한(!) 여행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독자에게는 불만족스럽겠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선물을 받은 듯 반갑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을 읽은 후 하와이에 가고 싶어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듯. 이런 문장을 읽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데?


하와이는 정말 천국과 비슷하더군요. 그 바람과 햇빛의 느낌이. 그래서 다들 하와이에 가면 천국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천국이 하와이 같을 겁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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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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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헤세의 에세이를 읽었다. 정원을 가꾸며 쓴 글과 그림이 함께 실려 있는 책이었다. 헤르만 헤세라니, 참 오랜만이었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서, 싯다르타를 처음 읽었던 게 중고등학생 때였으니까 스물한두살 이후로는 헤세의 글을 거의 읽지 않은 셈이다. 데미안과 한스와 고빈다 대신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는 헤세의 초상을 먼저 떠올리고 말았다. 표지를 넘기며 여유롭고 평화로운 노인의 세상 다 산 이야기 같은 거라면 별로 읽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했더랬다. 다행히 몇 장 넘기지 않아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확인했지만.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 경험 때문이었다. 헤세의 에세이를 또 읽고 싶었다. 처음 몇 장은 잘 읽히지 않았는데-번역 때문인가? 라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더랬다-헤세가 보덴 호수 근처에서 살아가던 시기의 에세이를 모은 2부부터는 넋을 잃고 읽었다. 떠들썩한 놀음거리도, 화려한 구경거리도, 명예로운 자랑거리도 나오지 않는데 글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곤 하는데 2부엔 도저히 붙일 수가 없었다. 모든 장에 다 붙일 수는 없었으니까. 마음이 뭉글뭉글해지는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한때 소년으로서, 대담하고 뻔뻔한 소년으로서 삶에 관해 우리의 당연한 권리로 기대했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 중 실제로 실현된 것은 얼마나 형편없이 적었던가. 그렇지만 삶은 살만하고 아름답다. 삶은 신성한 힘으로 매일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중략) 그들은 나중에 장미 대신 하찮은 잡초가 자라는 한 뙈기의 거친 땅을 발견한다. 그들은 잡초를 꽃다발로 묶어 창가에 세운다. 저녁에 어둠이 색깔을 없애고 노래 부르는 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면 그들은 다발을 애무하며 미소 짓는다. 마치 장미라도 되는 것처럼, 또 바깥의 밭이 동화의 정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78쪽)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헤세의 글은 젊다. 자유롭고 청명하다. 종이끼리 부딪치면 쨍 하는 종소리가 맑게 울릴 것만 같다. 글 속 헤세의 영혼에는 소년이 있다. 두렵지만 겁내지 않는, 위협에도 미소로 답하는, 슬프지만 웃는, 유머러스함이 있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맹렬히 쏟아졌고, 마을 골목은 누런 개울이 된다. 지붕은 쏟아지는 호우로 인해 하얀 빛으로 반짝인다. 호수 너머 저쪽에는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하고 천둥 소리 울린다. 나는 이런 미쳐 날뛰는 광경에 소년 시절처럼 불손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긴 장화와 로덴 천으로 만든 비옷을 입는다.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는 크게 노한 시끄러운 뇌우 속으로 걸어 나간다. (100쪽)


그 유머러스함이 감동적인 건,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무책임한 낙관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움과 밝음을 모두 바라본다.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차분히 자신을 흐르는 물 위에 내려놓는다. 물질이나 명예를 탐하는 마음, 가식이나 허세를 부리는 마음이 물 밑 저 바닥으로 가라앉은 후 남은 그의 영혼이 물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친다. 뭐가 맘에 들고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현재를 향유한다. 컴퓨터로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타닥타닥 쳐내려간 글 같지 않고, 붓으로 유려하게 그려내려간 수채화 같다.


회고는 멀리 떨어진 날들의 즐거움을 다시 향유할 뿐만 아니라 매일을 행복의 상징이자 동경의 목표이며 천국으로 드높이면서, 자꾸만 새로 향유할 것을 가르친다. 짧은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생활감정, 온기와 광채를 짜낼 수 있는지 아는 자는 이제 모든 새날의 선물도 되도록 순수하게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고통도 더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그는 큰 아픔 역시 큰 소리로 진지하게 맛보려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두운 날들의 기억도 아름답고 신성한 소유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87-88쪽)


그래서 내게 이 책이 여행기라는 건, 사실 별 의미 없었다.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무슨 사진을 찍고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구경했는지 궁금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탈리아에서건, 말레이시아에서건, 열대 우림 속에서건, 테신에서건, 스위스에서건, 슈바벤에서건, 헤세는 헤세니까. 어떤 장소에 존재하든 방랑 중의 일시적인 머무름이었으니까. 떠나온 곳이 결국 돌아갈 곳이라면 무엇에게도 사로잡히지 않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삶이 죽어감과 동일한 의미라 할지라도, 어쨌든 지금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나 자신이니까.


방랑에 대한 동경은 고향과 어머니의 추억, 삶의 새로운 비유에 대한 동경이다. 방랑에 대한 동경은 집을 향한다. 모든 길은 집으로 나 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탄생이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죽음이다. 모든 무덤은 어머니다. (309쪽)


이 책이 여행기여서 좋았던 건, 동양을 바라보는 헤세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 줬다는 점이다. 아시아를 약탈의 대상이나 신비한 존재로 바라보았던 20세기 초반의 영미인들 및 유럽인들의 시각을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지만-사실 이건 그 시대를 살았던 유럽의 지식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아시아인들을 찬미하는 듯한 문장이 이어질 땐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나 역시 21세기를 사는 아시아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ㅠ) 유럽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차별과 약탈을 인식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를 냉철하게 서술해 나가는 부분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원시 민족 역시 즉각 나의 사랑을 얻었지만, 그것은 더 어리고 약한 남매에 대한 어른의 사랑이었따. 동시에 이런 민족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형제나 동정하는 친구, 도와주는 안내자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다만 그들에게 도둑, 정복자이자 착취자가 되었떤 유럽인의 죄책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주약) 유럽의 영혼이 그들에 대해 부채의식과 속죄하지 않은 죄의식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도 지역의 억압받은 민족들은 가령 유럽의 노동자 계급처럼 좀 더 오래되고 같은 근거가 있는 권리를 지닌 채권자로서 우리의 문명에 맞서고 있다. (259쪽)


물론 여전히 아쉬움이 남긴 한다. 글보다는 편집과 번역 때문이다. 주욱 숨을 죽이며 읽어내려가다가 문득 '어 이거;' 하게 되는 문장들이 체한 듯 가슴에 걸렸다. 중간중간에 헤세의 사진이 실려 있어 좋기도 했지만, 좀더 컸다면 그리고 컬러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욕심도 들었다. 헤세가 여행했던 지역들이 지도로 실려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이런 아쉬움들을 다 덮을 수 있을 만큼 헤세의 글이 아름답고 글 속에 묻어나는 그의 생각들이 감명 깊기에, 이 책 읽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헤세처럼 늙어가면 좋겠다고 소망하려다가, 아니라고, 그처럼 나이를 먹어도 먹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되뇌어 본다. 무엇을 만나도 웃으려 했던 그처럼 나 역시 웃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잘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며칠 정도나 귀향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추측건대 아직도 오랫동안 여행할 것이다. 아마 겨울 내내, 어쩌면 평생 동안. 결국은 곳곳에서 이런저런 친구를 만나 저녁이면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때로는 나의 천사가 어느 어스름한 시간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나리라. 또 내 청춘의 성소들이. 그리고 어디서나 내 자유의지로, 차가운 바람을 맞거나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고 단지 슬퍼하지만 않고 웃으리라. 내가 가끔 그렇게 생각했듯이, 아마 내 안에 어떤 해학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면 나는 잘 해나갈 것이다.  (470-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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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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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 삶이란 게, '물리학이라는 전공과 여타 딴짓'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일상이 아닌가. '도대체 물리학자로서 지금까지 뭘 한 거야?'라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게 난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피를 흘리며 썼던 수많은 물리학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싹 빼버린 것이 여기에 실린 '딴짓'이라는 이야기인데, 나쁘지 않다. 

-p.4,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라는 책 제목을 되뇌어 보며, 딴짓이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해 본다. 명사.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 전혀 관계없는 행동이라는 말에 마음의 모서리들이 비근거린다. 어떤 일과 전혀 관계없는 다른 일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리뷰를 쓰기 전 내가 어떤 문장을 써야 할까 생각하다가 나의 딴짓들을 생각하고, 그 딴짓들이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었는지 생각하고, 그와 비슷한 즐거움을 주었던 또다른 딴짓을 생각하고, 그 또다른 딴짓을 새삼 해 보면서 정작 써야 할 리뷰는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던 건 리뷰쓰기와 아주 조금의 상관도 없는, 쓰잘데없는 짓이었을까. 흠.


세상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무언가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그러한 딴짓들이 정작 진짜로 하려던 그 '어떤 일'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라고, 우겨 본다. 그래서 자꾸만 딴짓 하고 싶어하는 이 책의 저자도, 그 딴짓들 덕분에 행복했으리라 짐작한다. 그 딴짓이 오히려 저자가 진짜 하려던 일보다 더 즐거웠던 적도 많았을 거라 추측한다. 그 덕분에 이 책의 부제처럼,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살 수 있었으리라 싶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꼭 물리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일은 세상에 없고, 물리를 소통의 한 창으로 삼을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통거리는 많다. 음악 이야기, 물 좋은 클럽, 랩, 맛있는 음식점, 영화. 

-p.295, '세상에서 제일 싼 정어리 깡통' 중

이 책은 물리학자 이기진 씨가 자신이 가진 보물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그 보물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에 적용된 물리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도 섞어 놓았지만 교양이나 지식보다는 이기진이라는 사람의 비범하면서도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물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할 소통거리를 창문 가득 늘어놓고는, 누군가 다가와 "이게 뭐에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가 상상된달까. 아저씨의 얼굴은 당연, 싱글싱글 웃는 표정일테고, 시선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겠지.


보물이라는 말에 번쩍번쩍한 보석류나 보티첼리의 그림,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미발표 원고, 루이 십몇세들이 대를 이어 쓴 왕관 같은 걸 기대한다면 매우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보물들은 대부분 저자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니까. 오렌지 껍질 벗기는 플라스틱 칼을 꽂아 놓은 파란 비둘기 도자기, 깨진 손잡이 부분을 철사로 둘둘 감아 놓은 흰색 티팟, 강철 와이어로 만들어진 달걀 커터, 빨간 손잡이에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병따개, 나무 손잡이가 덜렁거리는 티 스트레이트…남들의  책상이나 부엌 위에서 본 것도 같은 물건들. 


각각의 물건들은 매우 흔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세상에 똑같은 또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장에서 매끈하게 뽑아낸 것에서는 나올 수 없는 투박함과 정겨움. 저자는 이런 물건들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놓는다. 어떤 벼룩시장에서 얼마를 주고 샀는지, 살 때 상인과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 하나하나 정확하게도 기억하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에 '혹시 지어낸 거 아냐?'라는 발칙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ㅎ 



나는 현재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려웠던 과거 시간은 어찌어찌 다 흘려보냈고, 과거의 영광이나 즐거움 역시 지나갔다. 남은 것 중 하나인 불확실한 미래를 뺀다면 제일 안전한 지금이 최고의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머물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는 상황에 놓이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또 어떨 땐 혼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오래되고 시간이 멈춰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숨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p.163, '막포도주를 담기엔 너무 예쁜 코발트 병' 중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독자들은 책 속 저자의 사진을 보며 눈을 흘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_-)는 교수나 되이니까 저렇게 로봇 만들고 아르메니아 갔다 오고 파리 벼룩시장에서 물건 사 오고 한옥집에서 지낼 수 있는 거지 일반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살 수 있나? 뭐 저렇게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어? 사는 게 엄청 여유로운가 보지? 나 역시 좀더 어릴 적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툴툴대며 책장을 넘겼을 것 같으니까. 대학생 때였더라면 아예 읽으려 들지도 않았을 것 같고.


물론 사는 건 점점 어렵다. 항상 불안하고 대부분 불확실하며 자주 즐겁지 않고 종종 뒤처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기에, 책 속의 어떤 문장들에 깊이 공감한다. 물건에게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은 갑갑한 현실로부터 마음을 쉬게 해 주고 싶은 욕망의 발로라는 고백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나 역시 번지르르한 물건들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어떤 것들'로부터 위로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너무 지치고 지긋지긋한 날,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는 쪽지 하나에 마음이 물컹해지는 경험이 많았으니까.


또 한번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저자가 부럽다. 물질적 여유 때문이 아니다. 대학교수라는 직책 때문도 아니다. 규격화되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움이 부럽다. 번지르르한 자랑거리들을 늘어놓으며 거들먹거리는 대신 소박하고 털털하게 작은 행복들에 관해 수다를 떠는 모습이 편안하고 자신 있어 보였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참 사랑하고 긍정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행복한 기억이라며 신 김치와 흰쌀밥을 만 김에 간장을 살짝 찍어 먹었던 어느 여름의 (자그마치) 성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저자처럼, 행복한 기억의 대부분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닌 자잘하고 소박한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생명의 존재는 그 원형의 유지에 있다. 어떠한 세상 풍파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켜 내는 것. 변형되거나 변질된 모습 없이 세월을 이겨 내고 의연한 존재 가치를 만들어내는 물건. 그런 것은 영원한 생명체와 같은 존재감을 지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감'이라는 정신적인 축복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 영감을 통해 물건의 존재와 대화를 시작한다. 

-p.215, '아니, 이제는 개집까지 모으냐?' 중

누군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이라면 딴짓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고들 한다. 학생은 공부를 하고 직장인은 업무를 하고 공무원은 공적 이익을 추구하고 자영업자는 사업장의 이익을 도모하는 게 맞는 거라고. 하지만 공부가 학생도 아니고 업무가 직장인도 아니고 공적 이익이 공무원도 아니고 사업장의 이익이 자영업자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해야 한다'고 의무시되는 일이 그 인간 자체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거나 큰 상관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오히려 딴짓이 나를 숨쉴 수 있게 하고 살아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딴짓하지 말라고, 할 일만 하라고 한다면, 어휴,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가끔씩은, 아니, 자주, 나도 딴짓 하고 싶다. 고유한 존재감을 가진 물건들을 마주하고, 그 물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 동안 너희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너희들이 이렇게 변할 동안 나는 어떻게 변했노라고, 듣고 말하고 싶다. 그 대화를 통해 힘을 얻고 위안을 얻고 영감을 얻고 싶다. 아, 아무래도 내일은 꼭 시간 내어 딴짓을 해야겠다! 오랜만에, 공들여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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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쓰는, 마지막 '이달에 읽고 싶은 책 리스트'. 14기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읽었던 에세이 중 베스트를 뽑는 페이퍼를 한 번 더 써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ㅋ 12기부터 14기까지 세 번, 그러니까 일년 반 정도 신간평가단을 했는데 이번 기수에 읽었던 책들이 가장 좋았다. 마지막에 선정될 책들과의 만남도 다 기쁜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



첫 번째로 고른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꾸는 하와이. 제목만 봐도 여행기ㅋㅋㅋㅋ '하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다. 도쿄 기담집에 실린 하나레이 만이라든지, 유키와 '나'가 함께 하와이에 갔었던 댄스댄스댄스라든지…다 읽은 지 한참 된 책들ㅎㅎ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우쿨렐레도 함께 떠오른다. 보기만 해도 폼이 뚝뚝 떨어지는 하와이산 우쿨렐레라든지,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우쿨렐레 페스티벌이라든지…이 책을 읽고 나면 하와이와 함께 요시모토 바나나가 떠오를까? 어떨지 궁금하다.


두 번째로 고른 책 두 권은 심리학자 장근영 씨의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 그림책 작가 선현경 씨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의도는 아니었는데, 고르고 나니 두 권 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장근영 씨의 책은 얼마 전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언급되던데, 혹시라도 이 책이 9월에 선정될까봐 읽지 않았다ㅋㅋㅋㅋㅋ 이럴 때만 철저한 준비성-_- 14기 신간평가단 하면서 동물 관련 책들을 꾸준히 추천했는데 한 번도 뽑히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뽑히지 않을 공산이 크지만 그래도 꿋꿋이 올려본다. 선현경 씨의 책을 추천하는 데는 '갖기'보다 '버리기' 쪽으로 삶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빨간책방-장근영 씨 책-선현경 씨 책, 모두다 위즈덤하우스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이런.



세 번째로 고른 책은 라말라를 보았다. 낯선 작가 이름이지만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최근 계속되고 있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인해 많이 심란하고 무력감을 느끼던 차였다. 난민 신분으로 며칠 밖에 고향을 방문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지식인의 '머물 수 있는 곳과 머물 수 없는 곳, 가도 되는 곳과 가면 안 되는 곳에 관련된 고민들'이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가 마음에 와닿는다.


마지막은 김승희 시인의 산문집,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 솔직히 나에게는 시인이라기보다 교수님이 더 익숙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수님은 당연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내 졸업 논문 지도교수님이셨으므로!! 아 부끄럽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부 때는 유명한 교수님 수업 듣다가 실망(혹은 절망-_-)했던 적이 꽤 많았는데, 적을 옮겨 간 대학원에서는 유명한 교수님들의 수업이 다 훌륭해서 기뻤었었다. "나는 100퍼센트의 나로 이루어진 무슨 초월적 자아가 결코 아니며 4분의 3의 당신들이 상상적으로 만들어 준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들이다"라는 책 속의 구절도 이거 참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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