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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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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소설을 추천했을 때는 기분이 좋고, 좋아하지 않는 소설을 추천했을 때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선후가 바뀌었을 때, 그러니까 좋아하는 작가가 좋다고 한 소설을 읽을 때다. 그분이 좋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 책이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 대단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하는, 참으로 이상한 부담감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것이다-_- 게다가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니, 더 슬픈 일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기 전에도 그랬다. 이 책은 소설리스트(sosullist.com)의 '금요일의 리스트'에서 이 주의 책으로 당당히! 선정된 책이다(그 주의 '표지갑'에도 선정됐다ㅎ). 김연수소설가님을 비롯한 여러 소설리스트의 필진들은 이 책을 '2014년의 소설 베스트 3' 중 한 권으로 꼽았다. 정이현소설가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된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집을 극찬했다(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믿을 만한 작가들이 이렇게까지나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인데, 당연히 나도 '참 좋은 책이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틀린 거 아닌가. 만약에 틀려버리면 어쩌나. 이번에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나…하면서 책 표지를 덮었다 폈다 한 게 삼일쯤. 어쩌긴 뭘 어째,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하며 '제라늄'부터 읽기 시작했고, 두 번째 소설인 '이발사'를 다 읽어갈 때쯤 이 책이 마음에 들어 버렸다. 성급하게도.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시간 동안, 나는 자주 불편했고 자주 머리칼이 쭈뼛 섰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계속 비쳐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들은 어딘가 일그러지거나 균형을 잃은 것이어서 나는 자꾸만 부끄러워졌다. 깜둥이 옹호자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던 이발사와의 바보 같은 대화를 계속 되새기면서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대응했을 말들'을 밤새도록 떠올려 보는 '이발사'의 레이버, 어머니가 들으면 머리를 후려갈길 말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에게 들려 주며 폭소하는 '칠면조'의 메이슨, 뒤집혀진 자동차 밖으로 나가서는 신이 난 목소리로 "사고가 났어요!"라고 소리치다가 절뚝거리며 차에서 나오는 할머니를 보고서는 "하지만 아무도 안 죽었어."라며 실망하는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준 스타, 계단 꼭대기로부터 곤두박질쳐 중간 즈음에 거꾸로 뒤집힌 노인을 그대로 두고 지나간 '심판의 날'의 '뉴욕 사람'…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곤혹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등골이 서늘했던 것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인간들이 인정사정없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아야만 헀을 때였다. 책 속의 구절을 빌리자면, 이런 인간들 말이다.


어머니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좋은 의도로 세상의 미덕을 우롱하는 것, 미덕을 너무도 생각 없이 추구해서 거기 힌 모든 사람이 바보가 되고 미덕 자체도 빛을 잃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정의 안락' 중, p.516


친절한 말투와 표정으로 선의에서 비롯해 보이는 행동을 한 후에 나 지금 지나치게 친절했어,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하고 깨달을 때가 있다.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을 적극적으로, 심지어 친절하게 해치워 버린 내 마음의 바닥에 '나는 이 정도의 친절을 아무렇지 않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워진다.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크지 않은 내게 가식적인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은 거의 없다. 남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든지 말든지 나는 선하고 정의로우니까 상관없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내겐 더 가깝고, 그렇기에 더 무섭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을 읽는 내내 이런 종류의 공포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조금도 기쁘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불쌍하고 배고픈 아이들'이 찾아와 기쁘다고 말해 놓고는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끼칠 피해와 불편함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불 속의 원'의 코프 부인을 보면 너그러운 척 친절을 베풀고는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총을 든 부적응자를 "당신은 좋은 핏줄이에요! 숙녀를 쏠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다독이다가 "너도 내 아기들 중 하나야. 내 새끼들 중 하나!"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총에 맞아 죽은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할머니를 보면서 다른 이의 아픔이나 상황을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하다가 진실을 알아챈 상대의 반응에 난감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주변을 보세요, 지금 어머니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오르는 것이 한데 모인다' 중에서, p.547


31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플래너리 오코너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얼마나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남을 속으로 깔아뭉개고 있는지, 얼마나 겁먹고 있으면서 안 그런 척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 똑바로 고개를 들어 직시하라고 뒷통수를 한 방 갈겨준 게, 이 책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자주 읽을 생각이다. 길게 시간을 두고 한 편씩 천천히 다시 읽을 생각이다. 다시 읽을 때는 어떤 인물이 또 나를 부끄럽게 만들까 싶어 기대나 설렘 대신 두려움이 먼저 일어나지만, '진짜 현실'에서 뒷통수를 맞는 것보다야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으며 부들부들하는 게 낫겠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은 그녀의 장편소설과 전기도 곧 읽을 수 있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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