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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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대구의 첫눈은 더욱 짧아, 대문을 나서며 만났던 눈송이가 살금살금 가냘파지더니 교문을 들어설 때는 벌써 멎어 있었다. 까슬한 짧은 머리에 콧수염도 드문드문 돋은 아이들이 교실로 하나둘 모여 들었지만, 첫눈을 말하는 입은 없었다. 아이들은 정해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찬 손을 비비거나 괜히 바닥을 쿵쿵 차기도 했으나 꼭 3일 만에 끝난 겨울방학을 욕하는 입은 없었다. 아이들은 이 방학이 끝나면 고3이 될 것이었다. 3은 입이 없는 법이라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알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은 짧은 방학 세 밤을 보내는 동안 저마다의 상자에 입을 넣어두고 등교했다. 그 입을 수능 시험일 마지막 답을 체크한 컴퓨터용 사인펜의 뚜껑이 닫힐 때 돌려받기로 약속한 탓에, 아이들은 입이 없었다. 아이들은 꿈도 없고 웃음도 없었다. 꿈은 수능 성적표에 적혀 있는 숫자들에 따라 조정을 거칠 예정이었고 웃음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되찾아 와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꿈도 웃음도 없이 서너 해를 더 살아야 할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끝없는 잠과 오르지 않는 숫자를 가지고 있었다. 비밀과 고민과 성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왜 잠을 줄여야 하나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지. 우리는 쉬는 시간 내내 생각했다. 다음 시간이 시작되자 다른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왜 잠을 줄이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나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지. 우리는 수업시간 내내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반장이 경례도 없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왜 잠을 줄이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하나요. 더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따면 사회에 나가서 더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대답을 마친 선생님은 인사도 받지 않고 교실을 나갔다. 우리는 없는 입을 닫고 밤까지 생각했다. 샤프를 휘갈기며, 다리를 떨며, 이어폰을 꽂고 잘 들리지 않는 영어대화를 엿들으며, 우리는 생각했다. 오늘의 끝과 내일의 시작이 뒤섞이는 시간까지 학교의 불은 밝았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책갈피를 꽂아놓고 그만 가방을 쌌다. 오늘도 수고했다. 담임선생님의 눈도 떼꾼했다. 선생님, 우리는 하루의 끝을 잠으로 맺지 못하고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열며, 더 좋은 성적을 받고 더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따서, 그렇게 기를 쓰고 나간 사회에서 왜 싸움을 해야 하나요?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그 잠깐 사이에 오늘이 사라지고 내일이 도착했다. 선생님의 대답과 함께. 사회가, 원래 그렇다.

 

사회에 채 나가기도 전에 선생님의 그 대답이 진실로 밝혀졌다. 우리는 단지 좋은 삶을 꿈꾸었지만 좋은 삶은 특별한 삶이었다. 세상은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링이었고 우리는 자기계발과 힐링의 늪에 엎어져가며 그저 하루하루 자신을 꾹꾹 눌러 살았을 뿐인데, 사회에 나갈 때쯤에는 누구나 내가 받은 상처와 내가 입힌 상처의 대차대조표를 그릴 줄 알게 되었다. 손익분기점은 넘겼나? 우리의 결론은 하나같았다. 적자. 우리는 모두 내가 입힌 상처보다 내가 입은 상처가 더 큰 사람이었다. 어딘가 자신은 다치지 않고 온 세상을 할퀴면서 모두가 나누어야 할 좋은 삶을 쓸어 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것은 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너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네가 미워졌다. 나를 보며 화를 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게 웃음을 건네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웃음이 더러워졌다. 저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멀고 높은 사람의 거대한 탐욕보다 가깝고 낮은 사람의 작은 욕심이 추해졌다. 날카로운 단어들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홍어, 된장녀, 지잡대, 편입충, 문과충, 의전충, 공시충, 틀딱충...... 벌레의 이름을 빌린 혐오가 벌레가 되어 사회를 좀먹고 있었다. 벌레를 말하는 입에서 한없이 벌레가 나오는 싸움이 길게 이어졌다. 누군가 우리를 벌레라고 불렀고 우리는 지지 않으려 더 많은 벌레를 만들며 대항했다. 이 사회에는 왜 이렇게 벌레들이 많은 거지? 사회가, 원래 그렇다. 저 벌레들 다 없앨 방법은 없나? 사회가, 원래 그렇다. 날보고 벌레라는 저 벌레들은 또 어쩌지? 사회가, 원래 그렇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특별하지 않은 좋은 삶을 꿈꿨던 것뿐인데, 좋은 삶을 위해 좋은 대학을 나왔고, 좋은 대학을 나오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잠을 줄인 것뿐인데, 왜 누구도 우리에게 좋은 삶을 주지 않았나요. 선생님. 왜 우리는 벌레가 되었나요. 왜 사회는 원래 그런 것인가요. 선생님. 왜 그때, 그 대답을 하시는 사이 하루가 지나갔을까요. 그러고도 왜 정답을 알려주지 못하셨나요, 선생님. 선생님도 혹시 해답을 모르셨던 것은 아닌가요.

 

어떤 책이 해답이라면 이내 그 소문은 세상에 퍼질 것이고, 세상은 금세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어떤 책도 영원한 정답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내리면서 가냘파지는 첫눈처럼 금세 사라질 대답에서 또 그 다음 대답으로, 섬을 건너뛰어 다른 섬으로 가듯이 분주하게 살아야 한다. 다시, 그 어떤 책도 영원한 정답이 되지 못하므로, 어쩌면 우리가 손에 쥔 책들은 늘 읽으면 곧 벗어나야 하는 간이역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혹시 당신도 나처럼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의 한 마리 거대한 해충이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면, 그리고 혹시 아직도 그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방 이곳저곳을 기어 다니며 괴로운 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책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좋은 삶으로 당신을 실어다 줄 기차가 아주 잠시 멈춰서는 조붓한 간이역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우리는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그리고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좋은 삶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요구한다. 좋은 삶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능숙하 사용해서 세상과 교류할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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