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하게 굴지 말자.
그들이 동성애가 소수라고 여기고 짓누를 때, 그들은 문화나 가치관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 섭리, 진리, 도덕, 인간 따위의 거대하고 추상적인 말을 시위에 매겨 소수자를 겨냥한다. 동성애는 문화나 가치관의 문제로 다뤄지지만 근본은 그 중의 무엇도 아니다. 향유하기 위해서 집단 문화나 개인적 가치관이라는 보조자의 힘을 빌려올 필요가 없는 타고난 권리일 뿐이다. 동성애자들은 그들을 향해, 그러지 말고 우리와 함께 동성애를 하지 않을래? 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대로 그런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구역질한다. 당사자도 이해관계자도 아니면서 자신들에게 허락하거나 금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말들이 자신들에게 그런 자격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추상적인 말의 화살을 계속 날린다. 소수자들은 문화나 가치관이라는 얇고 허약한 방패라도 빌려와 스스로를 지키고 싶지만, 그들은 들어주지 않는다. 자연, 섭리, 진리, 도덕, 인간. 거대한 단어를 투석기에 실어 계속 날릴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역전의 순간이 온다. 항상 그랬다. 그것은 추세다. 우리가 오늘날 노예나 신민이 아닌 것은, 처음에는 소수자였던 사람들이 자연, 섭리, 진리, 도덕을 제것마냥 휘두르던 다수자들로부터 다양한 자유들을 하나씩 찾아와 품에 안고 마침내 스스로 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는 아직도 노예거나 신민이라 해도, 같은 방식으로 언젠가 해방은 올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랬듯 자연, 섭리, 진리, 도덕, 인간과 같은 말들이 지금 소수자인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다수자로 만들어 줄 때, 오늘의 다수자였던 그날의 소수자들은 문화나 가치관이라는 얄팍한 말 말고는 손에 들 수 있는 것이 없어질 것이다. 그때 부끄럽지 않으려면, 제발 오늘 치사하게 굴지 말자. 거대하고 실체가 없는 말 말고는 상대를 때릴 수 있는 무기가 없을 때, 그건 지금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인간은 신에 의해 자기를 해명할 수 없다. 오히려 신이 인간에 의해 해명된다. 신의 부름이 들리는 것은 사람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인간이 거기에 응답하는 것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기획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만일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초월성을 인도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하다. 인간은 오직 다른 인간들로 이루어진 상황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_ 시몬 드 보부아르,『모든 사람은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