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바다는 이 새벽을 건너 어디에 파도를 뿌리려는지, 인력과 척력에 올라타고 지구를 도는 물결 소리 들린다. 아무도 없는 밀물에서 모래들이 와글와글 씻은 얼굴로 파도를 들으며 자란다. 모든 모래들은 도시에서 왔다. 도시에서 그들은 산이거나 바위거나 돌멩이거나 했었다. 그들이 떠나온 도시는 시끄러운 소음만 남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모두 귀머거리다. 벙어리다. 배가 고프다. 오직 배고픈 이들만이 도시를 만든다. 밤을 위해 낮을 사는 이들과 낮을 위해 밤을 사는 이들이 마주보며 공전하는 궤도. 밀물도 썰물도 없는 곳에서 무람없이 증식하는 숫자들. 모래들이 도망친 곳에 모래보다 큰 숫자가 남았다. 도시는 그 숫자들로 무엇을 하려는지, 파도가 닿지 않는 도시에서 무엇이 있어 숫자들의 얼굴을 씻기려는지. 알코올은 당기고 카페인은 밀어내는 것, 이 간단한 물리학으로 기어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지. 그림자를 모조리 집어삼킨 밤의 혓바닥이 차다. 모래가 되어 흘러가지 못한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곳. 옥상의 난간에 줄지어 올라선 어두운 것들을 진맥하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이가 더 어두운 것이 되는 곳. 재무제표가 좋아지는 곳. 사람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언어가 쌓여있는 곳. 소금은 멀리 바람으로도 닿지 않는 곳, 그래서 가짜 소금으로 가짜 데킬라를 마시는 곳,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난해지는 곳. 내가 가는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라고 기꺼이 속으며 사는 곳, 그래야 또 하루 살아지는 곳,

 

모래가 되고 싶은 먼지들이 사는 곳.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맑스 말대로 "거대한 상품의 집적"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고그런 만큼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사회상품화하려는 사회다그것은 있을 수 있는 다양한 교환과 그것을 통한 삶의 순환을 상품화된 교환으로 바꾸어버리는 경향을 갖는다이는 비-상품마저 최대한 상품화한다계산하고 따지는 사람 하나가 관계 전체를 계산하고 따지는 관계로 만들어놓기 십상이듯이상품화된 관계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알다시피 선물의 교환조차 상품교환처럼 등가성을 따지고 계산하는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이진경자본을 넘어선 자본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주요 장면에서 클라이브 오언이 연기한 테오는 배터시 발전소에 있는 한 친구를 방문한다발전소는 이제 공공건물과 사적인 소장품 공간을 겸해 사용되고 있다그 자체로 재단장 된유물이라 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피카소의 게르니카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돼지 풍선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이것이 대규모의 불임을 초래한 어떤 재앙(한 세대 동안 아이가 전혀 태어나지 않았다)을 피해 틀어박힌 상류층의 삶을 일별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다테오는 질문을 던진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래 세대는 더 이상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돌아오는 답은 니힐리즘적 쾌락주의다.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으려 해.”

마크 피셔자본주의 리얼리즘

 


 

--- 읽은 ---

+ 그림이 위로가 되는 순간 / 서정욱 : 155 ~ 383

+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 95 ~ 195

 

 

--- 읽는 ---

= 상호대차 / 강민선 : ~ 74

= 읽을수록 빠져드는 회계책 / 권재희 :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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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0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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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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