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진 1 - 완전판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본 만화. 예전 모 님의 블로그에서 칭찬과 함께 암울한 느낌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해놓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더해진 87분서와 같은 형사'들'의 팀플레이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가지 이 만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피에 물든 활약상 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쿄야는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쫓고, 유혈과 함께 사건은 종료된다.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이 단조롭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주인공 교야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야는 비정하다 못해 무정한 형사다. 손에 쥐어진 총은 분명 그의 업보일 것이다. 앞모습이 싸늘해 보이다가도, 뒷모습이 지치고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인의 업보일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죽인다. 생각해보니 그는 결코 범죄자를 살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태도는 겨울호수과 같이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도 그는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감정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가 컸고, 상처가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감탄을 표하다가도 손에 피를 묻힌 채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작가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숨겨진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끝을 맺은건지, 아니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교야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오히려 교야의 성격이 뚜렷하게 들어나고 동정의 여지가 적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난 교야처럼 살 사진은 없다. 그처럼 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그보다 받은 상처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태도나 그런 태도를 지탱하게 해주는 B급의 전문가주의-백발백중의 명사수, 노련한 수사관, 카리스마-는 흠모하게 된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주위인물들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고, 원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입 대신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주변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심하다라는-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을 숟하게 들은 나로써는...-생각도 많이 하고, 나도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의 관심list에 오르내리기를 싫어한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적당한 무관심'을 꿈꾸니까. 내 밥벌이가 걱정없고,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드러나는 표면은 다르겠지만 나도 쿄야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할 사진은 없다. 세기의 차이가 크다. 내가 루키라면 그는 메이저리거이다. 아마도 그는 배리 본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서글픈 것, 역설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얼굴상이다. 작가의 공들인 그리고 우울한 그림체는 <프리스트>와 <베르세르크> 이후로 마음에 들었다. 흑백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좋다. 처절하게 묘사해냈다. 제목 '지뢰진'은 지뢰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뢰밭이라. 마음 편하게 한발한발 내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일본의 지뢰밭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밀입국자, 스토커, 정신이상, 과잉팬덤, 매스컴 중독....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흡혈귀가 살고 있는 것처럼 피를 원하고, 정상인 사람은 먼저 죽어나간다. 그럼 비정상은? 나중에 죽어나간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지뢰진의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에피소드의 잔혹성만으로는 'A'가 가장 처절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소문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지옥도를 그려놓고,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교활하게도 지옥도와 절망에 지쳐 포기할 때 쯤이 되면, 희망의 한자락을 슬몃 보여준다. 형사후배가 아이를 낳고, 새로 들어온 신참형사가 잠시나와 애인과 연애를 하고, 하지만, 자락이다. 다시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렇게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만화만 놓고 보자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절망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다. 희망과 절망의 진폭이 커서 마치 운동장의 끝과 끝을 끝없이 돌면서 뺑뺑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앞에서 A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는데, 비단 A뿐일까. 모든 에피소드가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하지만, 최고로 우울했던,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교야를 사랑하던 여자. 교야를 따르던 후배가 자식을 가지게 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에피소드인데, 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펼쳐놓은 절망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마치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가서, '희망을 가지세요.' 혹은 실연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하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히 그랬다. 경찰이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되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도 사람인데...

일본의 하드 보일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의 하드 보일드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할까. 이 작품도 그런 면이 있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함께,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우울한 어조의 하드 보일드. 두 주인공이 만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속으로는 흥미가 생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문득 작년에 서거하신 에드 멕베인의 유작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에드 멕베인 옹은 생전에 87분서의 마지막 권을 미리 집필해놓고, 사후에 출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내용일까? 내가 추측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데뷔작인 <경찰혐오자>의 속편. 다시 경찰들이 죽어나간다. 맨 마지막 희생자는? 카렐라이다. 혹은 카렐라가 범인인 에피소드. 이 두 가지가 결합한 내용일 수도 있고......너무 우울한가?

추신2) 대화 한 토막 : 업보를 짊어진 자의 슬픔

"살아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마다 그림자 색깔은 모두 달라.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림자를 본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한없이 어둡지..."

"선배님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져서 밝은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구별도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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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 더 못본 만홥니다 ㅠ.ㅠ 쿄야가 불쌍할것같아서요.

상복의랑데뷰 2006-0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꼭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근데 저도 감당이 잘 안되네요. 기분이 영.....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친구 녀석이 가네시로 카즈키를 열심히 읽기에 사서 봤다. 다른 책들이 더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 책들은 서지 정보를 보니 웬지 묵직해 보여서 포기하고, 제목부터 상큼한 <연애소설>을 먼저 읽었다. 가뜩이나 요즘 고민도 많은데, 손에 잘 안 잡힐 것 같았다. 부담없이 연애담이나 함 읽어보자하는 마음에...젠장 완전히 속았다.

부담없기는 커녕, 부담 만빵이었다. 엄숙하거나 심각한 소설은 분명 아니다. 설정은 엉뚱하고, 대화는 재기발랄하다. 하지만 김난주씨의 해설대로 특유의 유머 감각은 변함이 없는데, 애뜻함이 더해진 연애담이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연애담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인,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연애소설>, 불치병 환자의 기괴한 복수극인 <영원의 환>, 노변호사의 읽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다룬 <꽃> 세 편이다. 연애가 주된 소재이자 주제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블로그를 꾸준히 들어오신 분들이야 나의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은 익히 아실텐데, 이 소설은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 점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내가 느낀 바를 어설픈 삼단 논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연애(사랑)도 모든 것에 속한다. 따라서, 연애도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식의 접근과 그에 대한 부정-아니다. 연애는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이다. 모든 연애담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사람을 죽였다. 또한 죽음은 연애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죽음과 연애를 쌍으로 묶어서 움직인다. 물론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꽃피는 순간 혹은 사랑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은 곧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서도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지점이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리시의 소설들이 '예정된 죽음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질주'의 느낌이라면, 이 소설은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 혹은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이들은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아니 죽음을 뛰어넘는 연애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난 솔직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강박관념 탓이던,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말하기에는 먼지가 꼈던,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기이한 울림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게 되었다. 아마 예전같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텐데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단편들마다 공통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 편 모두 등장하는 특정인물의 존재라던가, 특정한 행동 내지는 사물. 어쩌면 우리 주위의 일상-사랑하고 이별하고, 결국에는 죽는 사람의 모습들은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 편 모두 등장하는 그 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라는 호기심이 문득 일어났지만, 얄밉게도 작가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한데, 나처럼 강박증 환자가 아니라면 가볍게 읽기에도 충분하다고 본다. 재치어린 농담은 정말 유머러스하고, 하드보일드 팬인 나로써는 얼처구니없게 하드보일드 운운하는데에서는 좀 쓴웃음도 났다. 실제로 <영원의 환>은 작가가 생각한 하드보일드에 충실한 편이기도 하다. ^^   

세 단편 다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두 편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연애소설>은 화자의 전형적인 모습과 삐딱한 유머가, <영원의 환>은 작가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하드보일드 소설 애독자다운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연애의 애절함을 일부분 가렸다. 그리고 <영원의 환>은 연애담이라고 보기에는 전개가 이질적이다. 하지만 <꽃>은 기본적인 설정도 좋았고, 가장 가슴 아픈 연애담이었다. 가장 있을 법한 일이니까. 특히 제목이 꽃인 이유를 알았을 때는 신파적이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물론 약간 튄다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앞의 두 편도 괜찮은 듯 하다. 하지만 <꽃>이 주는 묵직함은 작가의 삐딱한 유머와 독특한 설정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서-솔직이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고맙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한다. 다른 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좋은 작가 한 사람을 알게 된 느낌이다. 친구 녀석의 책을 빌려서 더 읽어봐야겠다.

추신) 이 책만 구입하시기 아까우신 분은 알라딘에서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사시면 같이 줍니다. OTL

추신2) 김난주씨의 해설은 설렁설렁 작성한 느낌이 들어서 약간 별로였다. 번역도 그런듯 했고. 불량용 교복이라니. 불량학생용 교복이라면 모를까...그리고 서지정보를 보니 원제는 <대화편>이였던 것 같은데, 작품의 성격에는 훨씬 어울린다. 이 소설의 형식은 두 사람이 등장해서 주고받는 대화다. 그래서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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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걸작선 - 세계미스테리특선 8
이경재 옮김 / 명지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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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전에 한 번 읽었었는데, 우연한 이유로 다시 읽게 되었다. 첫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이 이 작품집에 소개되어 있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라는 점이다. 영화 팜플렛을 보고, 제목이 낯이 익어서 찾아보았더니 이 단편집에 실려있었다. 둘째, 또 올해 출간 예정작 중에 일본추리소설애호가분들께서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린다는 니키 에스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모임에서도 니키 에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읽었던 이 책에 니키 에스코의 단편 <빨간 고양이>와 <엄마는 범인이 아니다>가 실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얄궃게도 두 작품 모두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용을 잊어버린 정도라면 내가 성의없게 읽었거나, 작품이 심하게 별로겠다 싶어서 호기심에 다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협박자>는 재미있긴했지만, 감탄할 수준은 아니었다. 트릭 자체는 평이했다. 오히려 그 속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의 삶의 애환이 더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점은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수험 지옥>도 마찬가지였다. 협박자로 인해 무너저가는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의 변화, 그리고 결말부분의 엄청난 페이소스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니키 에스코의 작품은 달랐다. 내가 왜 이 작품을 그냥 설렁설렁 읽었지 싶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자는 트릭이, 후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한된 시각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둘 다 뛰어났지만  나는 <빨간 고양이>가 본격 중의 본격이라 할 정도로 좋았다. 짧은 분량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을 꼼꼼하게 채워넣고, 교묘하게 단서를 흘리는 필력, 사이사이에 언뜻언뜻 들어나는 인물의 개성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탐정 역의 노부인은 마플의 외모과 링컨 라임의 장애과 홈즈의 괴퍅함과 그 속의 따뜻함을 섞어놓았다고 해야하나. 두 작품만 가지고 본다면,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표현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기대가 된다. 짐작이지만, 이 두 단편은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부분적인 원형인 듯 하다. 설정 자체가 비슷한 면이 있다. 고양이가 등장하고, 탐정으로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많지 않은 작품 목록에 이런 설정이 많다고 하니 이 작품만의 특징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취향 운운하는 것은 건방지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의 취향은 하드보일드인 것 같다. 때문에 그 외의 작품, 특히 본격 혹은 고전기의 작품들은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 형님의 말씀처럼 본격이나 고전기의 작품들은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고향과도 같다. 두 단편이 주었던 즐거움은 간만에 고향에 온 기분과 비슷했다. 추리소설독자치고는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 나의 독서에도 작은 반성이 되기도 했고... 

비단 이 두 편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 단편집의 수준은 상당히 고른 편이다. 구태의연한 태작이나 범작이 적다. 개인적 관점에서의 범작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수직의 함정>은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고,-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은 식상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도모노 로의 <홍콩 힐튼 살인사건>은 단편으로 담아내기에는 소재가 컸던 것 같다. 중편정도의 분량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잠자는 추녀>는 설정이 기괴해서 읽을 때는 잘 읽혔는데, 읽고 난 후에 찝찝한 느낌이 들었고, 재미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도모노 로는 <두 동강이 난 남과 여>에서 <식인상어>라는 단편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보다는 나았다. <식인상어>는 너무 안전한데다가 <잠자는 추녀>처럼 기괴한 맛조차도 없었다.

여기서 범작이라고 떠들어 봐야, <두 동강이 난 남과 여>보다는 퀄러티가 좋다고 본다. 그리고 <200X 올해의 추리소설>보다는 훨씬 낫겠지라는 약간은 자조적인 감정도 들었다. 읽어보지 않고 미리 단정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지만, 계간 미스테리에 충분히 덴 나로써는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일본추리문학은 퇴적물이 삼각주를 이루듯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해 가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왜 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었다. 읽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 단편집과 고려원에서 나온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을 동시에 읽었는데, 내 취향이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에 맞는지, 이 단편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설 연휴에 다시 읽었을 때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 나온 작품을 찾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모 형님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추신)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인 <친절한 협박자>의 내용을 알았으니, 영화는 얼마나 원작과 충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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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드래건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 창해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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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토머스 해리스는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건> 영화 3부작의 원작자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블랙 선데이>는 재미가 없다는 평이 많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영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굳이 책을 또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레드 드래건>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별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인트로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레드 드래건>은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죠. 영화를 보면서 책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잠깐 윌 그레이엄의 회상에서 언급될 뿐, 소설의 시작은 잭 크로포드가 윌 그레이엄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기긴 했는데,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은근히 있습니다. 

영화의 메인은 렉터와 그레이엄의 대결입니다. 딜러하이드는 그저 대결을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구요. 영화는 한니발 렉터와 의 거대하고도 음산한 그림자가 그레이엄과 딜러하이드를 덮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니발 렉터>윌 그레이엄>>딜러하이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엄과 딜러하이드는 한니발 렉터가 깔아놓은 체스판 위에서, 보이지 않는 렉터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체스말 같습니다. 우리가 <양들의 침묵>에서 이미 본 것처럼요. 그러다보니 영화 속에서 랄프 파인즈가 충분하게 표현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살인마인 딜러하이드의 캐릭터가 약한감이 있습니다. <양들의 침묵>이후에 나온 두 영화는 원작과 상관없이 렉터의 비중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딜러하이드의 개인사는 완전히 도려내졌더군요. 안소니 홉킨스가 워낙 인상적이라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마치 <양들의 침묵>식으로 <레드 드래건>을 뜯어고쳐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반대입니다. 소설은 윌 그레이엄과 딜러하이드의 대결 위주로 진행됩니다. 소설에서의 렉터는 <양들의 침묵>에서 스털링에게 그러하듯이 윌 그레이엄에게 영향을 주려고 합니다만, 윌 그레이엄은 렉터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어떻게든 딜러하이드를 잡으려고 합니다. 소설은 링 위에서 벌어지는 권투 경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주의라고 할까요? 윌 그레이엄과 딜러하이드는 서로 죽이려고 혈안이 됩니다.

대신 책에서는 많은 지면을 들여서 딜러하이드의 개인사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얄팍해보였던 딜러하이드의 정신세계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군요.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어렸을 때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이유로 꼬집히고 놀림당한 기억이 많았던 저로써는 딜러하이드가 당했을 끔찍한 고통이 어렴풋이 이해가 됩니다. 그 부조리함으로 인해 초월적인 힘을 숭배했던 거겠지만...예전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으면서, 우리 주위의 '다름'에 대해 얼마나 포용력이 적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딜러하이드의 일생도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연쇄살인범이 되고 말았지요.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 환경이 개인의 일생을 결정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전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딜러하이드의 어머니에게 화를 느끼게 되더군요. 한 줄로만 등장하는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그에 비하면 엄격했던 외할머니는 노력이라도 한 편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받았다면, 연쇄살인마 대신에 고통을 이겨낸 용감한 딜러하이드씨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해리스의 소설이 아니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왔겠죠? ^^

책을 덮고 나니 착찹하더군요. 과연 윌 그레이엄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레이엄은 그게 직업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몰리는? 한 사람의 악행은 그 자신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의 남겨진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겠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뒷맛이 개운한 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추리소설이 살인이 먼저 일어나는 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해리스의 현실적인 묘사와 이미 본 영화의 장면들 내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칩니다.

추신) 에드워드 노튼의 이미지 탓인지, 윌 그레이엄도 호감이 가더군요. 자신의 내적인 고통과 싸우면서 딜러하이드를 쫓는 모습은 신상적이었습니다. <양들의 침묵>에도 윌 그레이엄이 등장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아마 그러면 <한니발>이 나올 수 없었겠죠. 그리고 <800만 가지의 죽음>의 매튜 스커더도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망가졌는데, 비슷한 케이스를 보니 신기하더군요. 그렇지만 윌 그레이엄은 비교적 잘 이겨냈습니다.  

추신2) 제가 읽은 판본은 고려원입니다. 창해에서 두 권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내용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추신3) <블랙 다알리아>와 의 작가 제임스 엘로이도 이 3부작과 비슷한 3부작을 내놓았습니다. LLoyd Hopkins라는 경찰이 연쇄살인마를 쫓는 내용인데, 엘로이 선생은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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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3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윌 그레이엄이 너무 불쌍해요. 2편에 잠깐 언급되는데 알콜중독자가 되었다더군요 ㅠ.ㅠ

상복의랑데뷰 2006-01-3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결국 자신의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던 거였군요;;;;
 

운좋게 구한 작품입니다. 자유추리문고는 좋아하는 문고판입니다. 지금은 재출간과 전집출간으로 인해서 구하기 쉬운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당시의 리스트는 (지금까지도) 초역이 많았습니다. 비록 헌책이었지만, <주정꾼 탐정>, <새벽의 데드라인>을 자유추리문고를 통해서 봤을 때의 감동이란...그리고 딱 주머니사이즈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좋구요. 그리고 문공사처럼 번역이나 그림이 엉터리도 아니고 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먼탐정 캐러더스>는 어니스트 브래머(Ernest Bramah)의 단편선집입니다. 이 작품 역시 예전에 읽은 <구석의 노인사건집>처럼 셜록 홈즈의 등장 이후에 나온 고전기 작품입니다. 사고로 인해서 눈이 먼 캐러더스가 충실한 하인 퍼킨슨과 친구인 사립탐정 캐러일과 함께, 아니 정확히는 그들과는 별 '상관없이' 사건을 해결합니다.

캐러더스는 장님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의 증조부 쯤 되는 셈이죠. 작품 자체를 떠나서 '시력'을 제거한 브레머의 통찰력은 높이 사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주인공은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회색 뇌세포의 활동을 강조하기 위해서 탐정에게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주는 설정이 지금은 일반화되어있을지 몰라도 당시로는 신선한 발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브래머는 기존 작품들,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충실히 분석하고 변용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시력'의 제거는 셜록 홈즈의 추리가 많은 부분 관찰에 의존하고 있음을 저자가 알지 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또 캐러더스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퍼킨슨의 관찰에 대한 묘사는 상당부분 홈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또 셜록 홈즈의 영원한 클리세 중에 하나인 '~~에 대한 논문'이야기도 나오구요. 작품 자체보다는 홈즈의 흔적을 찾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작품의 구조도 도일의 단편들과 비슷하지만, 이건 브래머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면, 캐러일이 무능한 사립탐정이고 캐러더스가 유능한 유한귀족인 것을 보면, 은근히 홈즈에 대한 경쟁심리나 우월감이 배어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셜록홈즈는 가난한 블루칼라 중산층이라면, 캐러더스는 교양있고 부유한 유한귀족이니까요. 캐러더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자기는 무보수에, 시력이 없어도 홈즈 만큼 하니까요. ^^ 

그렇지만 제가 읽은 작품들은 거기까지입니다. 작품이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등장인물 간의 화학작용이 거의 전무합니다. 홈즈-왓슨 콤비에 비하면, 이 둘은 재미없는 영국신사들의 사교활동을 보는 것 같아서 영 심심합니다. 게다가 잠깐잠간 등장하는 퍼킨슨도 기계적으로 관찰만 하는 충직한 하인일뿐 그 이상의 매력은 없습니다. 캐러일은 사건을 가지고 오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상의 일을 하지 않구요. 둘 다 개성이 없습니다. 홈즈를 비롯한 다양한 경쟁작들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느낌은 나는데, 자신만의 양념을 첨가하는데에는 실패한 느낌입니다. 좋은 레시피에 맛깔나는 재료가 있었지만, 요리사가 손맛을 낼 줄 모르고, 조미료가 없이 많들어진 요리 같습니다. 

또 주인공은 어떨까요? 캐러더스는 워낙 차분하면서도 뛰어난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서, 당시에는 오히려 선호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보면 영 심심합니다. 그의 우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친구를 위해 자기 일정을 뒤로 미루는 정도밖에 없죠. 교양인이지만, <구석의 노인>같은 주인공의 강렬한 맛이 없습니다. 특징은 있죠. 시각이 없다는 점. 아이디어 자체는 높이살만 합니다. 그렇지만 시력이 없어서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퍼킨슨이라는 충직한 관찰자가 늘 곁에 있다고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실수, 한계 등이 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찰과 사고활동을 분리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이 작품에서는 그 둘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퍼킨슨이 아파서 캐러일과 사건을 해결하는데, 캐러일이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서 실수를 한다던가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해들럼 고지 비밀>에서 캐러더스의 약한 모습이 일부 비춰지긴 하지만, 이 단편은 재미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애국적인 모습이 강조되어 있구요. (번역되지 않은 단편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캐러더스가 취미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홈즈는 직업인입니다. 그래서 돈 앞에서도 비굴하기도 하고,-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에 하나가 <프라이어리 학교>인데 작품 말미의 홈즈의 태도는 읽으면서도 즐겁습니다. 천하의 홈즈도! 이러면서 말이죠.-고용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홈즈라는 인물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만의 괴퍅한 개성은 누구나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싱싱한 느낌이 캐러더스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 추리란 '선의의 도락'일 뿐이지요. 그가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남들을 도와주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 이상의 재미는 주지 못합니다. 캐러더스가 차라리 잰체라도 했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브래머의 야심은 '고품격' 추리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캐러더스의 활동은 올바른 감성과 뛰어난 이성을 가진 귀족이 벌이는 일종의 사회봉사같은 면이 있으니까요.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건에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작중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이 단편집은 오히려 그 시대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 풍속소설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래스웨이트경의 간지>에 드러난 귀족들의 허세, <매싱검 장의 유령>에 드러나는 신사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가치관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당시 프로이드가 상당히 위력을 떨쳤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작품은 <구두와 은그릇>, 그리고 <컬비 거리 범죄>였습니다. 특히 <구두와 은그릇>은 너무 노골적이지요. 하지만 엉성합니다;; 

트릭에 대해서라면...음 냉정하게 평가해서 미안하지만 눈에 띄는 트릭은 <매싱검 장의 유령>인데, 이 트릭은 일종의 밀실 트릭인데, 캐러더스의 설명을 들으면 상당히 과학적이고 신선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재미는 없습니다. --; 나머지 단편들은 초기의 일반적인 트릭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 제가 읽어본 최고의 작품은 <세계의 명탐정 44인>에 나왔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해당트릭이 캐러더스의 트릭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캐러더스의 개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고전기의 경향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만, 수작과 태작이 교차하는 작품선집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선집임을 고려하면 다른 작품의 질이 우려도 되구요. 개인적으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보다도 재미없게 읽혔습니다. 

추신) 이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분들께서 <브룩밴드 장의 비극(The Tragedy at Brookbend Cottage)>을 최고로 꼽으셨는데, 이 단편집에는 없네요. 혹시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추신2) 이 작가는 중국인이 주인공인 Kai Lung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제국주의적 관점이나 오리엔탈리즘이 배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에 재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읽어볼 길이 없으니 답답할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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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이 <명탐정은 영원하다>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또 다른 단편집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요.

상복의랑데뷰 2006-01-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6-01-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수는 죽어야 한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안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1-30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