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걸작선 - 세계미스테리특선 8
이경재 옮김 / 명지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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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전에 한 번 읽었었는데, 우연한 이유로 다시 읽게 되었다. 첫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이 이 작품집에 소개되어 있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라는 점이다. 영화 팜플렛을 보고, 제목이 낯이 익어서 찾아보았더니 이 단편집에 실려있었다. 둘째, 또 올해 출간 예정작 중에 일본추리소설애호가분들께서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린다는 니키 에스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모임에서도 니키 에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읽었던 이 책에 니키 에스코의 단편 <빨간 고양이>와 <엄마는 범인이 아니다>가 실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얄궃게도 두 작품 모두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용을 잊어버린 정도라면 내가 성의없게 읽었거나, 작품이 심하게 별로겠다 싶어서 호기심에 다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협박자>는 재미있긴했지만, 감탄할 수준은 아니었다. 트릭 자체는 평이했다. 오히려 그 속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의 삶의 애환이 더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점은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수험 지옥>도 마찬가지였다. 협박자로 인해 무너저가는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의 변화, 그리고 결말부분의 엄청난 페이소스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니키 에스코의 작품은 달랐다. 내가 왜 이 작품을 그냥 설렁설렁 읽었지 싶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자는 트릭이, 후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한된 시각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둘 다 뛰어났지만  나는 <빨간 고양이>가 본격 중의 본격이라 할 정도로 좋았다. 짧은 분량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을 꼼꼼하게 채워넣고, 교묘하게 단서를 흘리는 필력, 사이사이에 언뜻언뜻 들어나는 인물의 개성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탐정 역의 노부인은 마플의 외모과 링컨 라임의 장애과 홈즈의 괴퍅함과 그 속의 따뜻함을 섞어놓았다고 해야하나. 두 작품만 가지고 본다면,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표현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기대가 된다. 짐작이지만, 이 두 단편은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부분적인 원형인 듯 하다. 설정 자체가 비슷한 면이 있다. 고양이가 등장하고, 탐정으로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많지 않은 작품 목록에 이런 설정이 많다고 하니 이 작품만의 특징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취향 운운하는 것은 건방지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의 취향은 하드보일드인 것 같다. 때문에 그 외의 작품, 특히 본격 혹은 고전기의 작품들은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 형님의 말씀처럼 본격이나 고전기의 작품들은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고향과도 같다. 두 단편이 주었던 즐거움은 간만에 고향에 온 기분과 비슷했다. 추리소설독자치고는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 나의 독서에도 작은 반성이 되기도 했고... 

비단 이 두 편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 단편집의 수준은 상당히 고른 편이다. 구태의연한 태작이나 범작이 적다. 개인적 관점에서의 범작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수직의 함정>은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고,-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은 식상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도모노 로의 <홍콩 힐튼 살인사건>은 단편으로 담아내기에는 소재가 컸던 것 같다. 중편정도의 분량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잠자는 추녀>는 설정이 기괴해서 읽을 때는 잘 읽혔는데, 읽고 난 후에 찝찝한 느낌이 들었고, 재미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도모노 로는 <두 동강이 난 남과 여>에서 <식인상어>라는 단편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보다는 나았다. <식인상어>는 너무 안전한데다가 <잠자는 추녀>처럼 기괴한 맛조차도 없었다.

여기서 범작이라고 떠들어 봐야, <두 동강이 난 남과 여>보다는 퀄러티가 좋다고 본다. 그리고 <200X 올해의 추리소설>보다는 훨씬 낫겠지라는 약간은 자조적인 감정도 들었다. 읽어보지 않고 미리 단정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지만, 계간 미스테리에 충분히 덴 나로써는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일본추리문학은 퇴적물이 삼각주를 이루듯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해 가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왜 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었다. 읽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 단편집과 고려원에서 나온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을 동시에 읽었는데, 내 취향이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에 맞는지, 이 단편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설 연휴에 다시 읽었을 때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 나온 작품을 찾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모 형님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추신)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인 <친절한 협박자>의 내용을 알았으니, 영화는 얼마나 원작과 충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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