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친구 녀석이 가네시로 카즈키를 열심히 읽기에 사서 봤다. 다른 책들이 더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 책들은 서지 정보를 보니 웬지 묵직해 보여서 포기하고, 제목부터 상큼한 <연애소설>을 먼저 읽었다. 가뜩이나 요즘 고민도 많은데, 손에 잘 안 잡힐 것 같았다. 부담없이 연애담이나 함 읽어보자하는 마음에...젠장 완전히 속았다.
부담없기는 커녕, 부담 만빵이었다. 엄숙하거나 심각한 소설은 분명 아니다. 설정은 엉뚱하고, 대화는 재기발랄하다. 하지만 김난주씨의 해설대로 특유의 유머 감각은 변함이 없는데, 애뜻함이 더해진 연애담이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연애담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인,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연애소설>, 불치병 환자의 기괴한 복수극인 <영원의 환>, 노변호사의 읽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다룬 <꽃> 세 편이다. 연애가 주된 소재이자 주제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블로그를 꾸준히 들어오신 분들이야 나의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은 익히 아실텐데, 이 소설은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 점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내가 느낀 바를 어설픈 삼단 논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연애(사랑)도 모든 것에 속한다. 따라서, 연애도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식의 접근과 그에 대한 부정-아니다. 연애는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이다. 모든 연애담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사람을 죽였다. 또한 죽음은 연애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죽음과 연애를 쌍으로 묶어서 움직인다. 물론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꽃피는 순간 혹은 사랑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은 곧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서도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지점이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리시의 소설들이 '예정된 죽음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질주'의 느낌이라면, 이 소설은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 혹은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이들은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아니 죽음을 뛰어넘는 연애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난 솔직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강박관념 탓이던,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말하기에는 먼지가 꼈던,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기이한 울림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게 되었다. 아마 예전같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텐데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단편들마다 공통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 편 모두 등장하는 특정인물의 존재라던가, 특정한 행동 내지는 사물. 어쩌면 우리 주위의 일상-사랑하고 이별하고, 결국에는 죽는 사람의 모습들은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 편 모두 등장하는 그 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라는 호기심이 문득 일어났지만, 얄밉게도 작가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한데, 나처럼 강박증 환자가 아니라면 가볍게 읽기에도 충분하다고 본다. 재치어린 농담은 정말 유머러스하고, 하드보일드 팬인 나로써는 얼처구니없게 하드보일드 운운하는데에서는 좀 쓴웃음도 났다. 실제로 <영원의 환>은 작가가 생각한 하드보일드에 충실한 편이기도 하다. ^^
세 단편 다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두 편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연애소설>은 화자의 전형적인 모습과 삐딱한 유머가, <영원의 환>은 작가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하드보일드 소설 애독자다운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연애의 애절함을 일부분 가렸다. 그리고 <영원의 환>은 연애담이라고 보기에는 전개가 이질적이다. 하지만 <꽃>은 기본적인 설정도 좋았고, 가장 가슴 아픈 연애담이었다. 가장 있을 법한 일이니까. 특히 제목이 꽃인 이유를 알았을 때는 신파적이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물론 약간 튄다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앞의 두 편도 괜찮은 듯 하다. 하지만 <꽃>이 주는 묵직함은 작가의 삐딱한 유머와 독특한 설정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서-솔직이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고맙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한다. 다른 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좋은 작가 한 사람을 알게 된 느낌이다. 친구 녀석의 책을 빌려서 더 읽어봐야겠다.
추신) 이 책만 구입하시기 아까우신 분은 알라딘에서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사시면 같이 줍니다. OTL
추신2) 김난주씨의 해설은 설렁설렁 작성한 느낌이 들어서 약간 별로였다. 번역도 그런듯 했고. 불량용 교복이라니. 불량학생용 교복이라면 모를까...그리고 서지정보를 보니 원제는 <대화편>이였던 것 같은데, 작품의 성격에는 훨씬 어울린다. 이 소설의 형식은 두 사람이 등장해서 주고받는 대화다. 그래서 더 잘 읽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