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부터 꾸준하게 소개된, 그리고 내가 꾸준하게 읽고 있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아는 분이 관여한다는 이유로 읽게된 <게임의 이름은 유괴>부터 <호숫가 살인 사건>, 아직까지 최고라고 생각하는 <백야행>까지. 감히 작년에 발견한 최대의 수확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이고, 신작이 나오면 늘 기대하게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였고, <백야행>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약간 낯간지럽게 찬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구성도 좋고, 게이고 특유의 세태를 포착하는 차분하지만 예리한 묘사, 흥미진진한 스토리 모두 괜찮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내가 기대하던 '그 이상'이 없는 범작이 되고 말았다.

내가 게이고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한 번 읽고 마는 전형적인 소설을 쓰는 듯 하면서도 '그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이고는 독자와의 게임을 즐긴다. 제목부터 많은 정보를 누출하고 있으며, 자못 도전적이기까지 하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 책을 읽지 않고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유괴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안다. <호숫가 살인 사건>의 주된 내용은 호숫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그러나 작가의 도전적인 태도는 작가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지껏 읽은 그의 소설은 일단 잡게 되면 손을 놓게 되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은 게이고 특유의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내용이던, 형식이던 트릭이던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초반부에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에서 매듭을 짓겠지'라고 한다면, 얄밉게도 게이고는 나의 바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 발자욱을 더 디딘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 중반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의 결말부의 비틀림, <백야행>에서의 외부묘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레몬>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메디컬 스릴러에 편견이 있는 나로써는, 게이고가 의학적인 지식을 과다하게 나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담백했다. 그러나 트릭의 전형성이 과도한 편이긴 했지만, 예측했던 결말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읽으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떠올렸었고, 결말도 비슷할 거라 예측했는데, 정확해서 오히려 아쉬웠다. 물론 10여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고, 내용의 무게상 그 이상을 다루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부분은 따로 있다. 게이고는 상당히 가볍게 주제를 다루는 척 하지만, 그 주제가 결고 가벼운 울림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 드러난 일본가정의 비틀린 교육열을 예로 들어보자. 직접적인 언급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학부모의 대화에서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과도한 교육열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는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정서적인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레몬>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의 묘사가 조금 더 깊었다던가 감정적인 호소력을 발휘했더라면, 후반부의 모범생같은 결말이 조금은 용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이고는 특유의 가벼운 화법으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특히 아쉬운 것은 소재가 주는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어찌보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 혹은 젊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집어낼 수 있음직한 부분이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의 초반부의 대화나 <백야행>에서의 료지의 독백을 이끌어냈던 게이고의 필력이라면 더 넓게 파문을 일으킬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지금까지 아쉬움을 진하게 언급했지만, 게이고나 혹은 이 작품이 태작이라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게이고가 견지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문학관에 대해서 별 거부감이 없는 나로써는 그다지 반감을 가질만한 흠은 없다. 읽는 내내 즐겁게 읽었다. 게이고의 장점인 세태묘사는 군데군데 살아있으며-주인공이 도시락을 놓고 공원에 앉아있는 부분의 묘사가 가장 눈에 띄었다.-다른 작품과는 달리 형식적인 특이성도 눈에 띤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감을 유도해내는 구성도 인정해주고 싶고. 다만 이 작품을 다른 작가가 썼다면 사심없이 좋아했을 텐데, 더 좋은 맛을 본 사람으로써 아쉬움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추신) 번역은 좋았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면 우습고 안하면 어색하지만, 번역 문제로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 굳이 덧붙인다. 솔직이 나는 권일영 선생님의 번역을 선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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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생기는 문제더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2-2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좀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이드 2006-09-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이렇게 정이 안가는걸까요.. 라고 말하지만. 매번 책 읽을때는 완전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으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같은 독자 보면 억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레몬' 어제 다 읽고, 슬 리뷰 쓸까 들어와 구경하고 있어용.

상복의랑데뷰 2006-09-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왜 하이드님의 덧글이 계속 안보였을까용. 알라딘 서재도 이상하네요.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손꼽히는 페이지 터너인 것 같은데, 하이드님이 좋아하실 만한 어떤 임펙트가 부족해 보이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고만고만하게 잘하는 작가라고 할까요. '레몬'은 어떠셨는지 하이드님의 멋진 리뷰가 기대되네요 ^^
 
또 다른 나 - 시드니 셀던 자서전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홍보용으로 실린 외국신문의 리뷰는 잘 안 믿는 평이지만, 이 자서전 만큼은 동의하게 되더군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습니다. 차 안에서 읽다가 밤을 새면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 이제는 시드니 셀던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잘 팔리는 작가도 아니고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죠. 전성기에 무분별한 중복출간으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점이 가장 클 것입니다. 헌책방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들은 시드니 셀던의 팬일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으니까요. 책을 읽고 나서는 헐리우드의 고전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 쓴 작품이 지금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느낌입니다. 어찌되었건 시드니 셀던이 8~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흥미진진한 그의 인생을 보면서, 단순히 베스트셀러 공장장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3억부를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당연한 이야기인데 늘 잊어먹는 것 같습니다. 처절한 가난,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맞써 싸우는 그의 일대기를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구요.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마치 자랑하듯이 일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시드니 셀던의 삶에서 과연 개인적인 부분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50세 이전에는 계속 부침을 거듭했으니, 일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니었겠지요. 잘 나가는 시절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구요. 

또, 책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드니 셀던의 삶이 헐리우드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지금은 전설 속의 배우들이 된 캐리 그랜트, 도리스 데이, 버스터 키튼, 프랭크 시내트라, 데이빗 셀즈닉,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 심지어는 커크 더글라스 까지...수많은 등장인물을 보면서 헐리우드 기록필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드니 셀던의 노력과 맞물려 참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리고 더 놀랐던 점은 작가로서의 삶의 출발은 50세 이후라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에서의 시드니 셀던은 상당히 젊고 트랜디한 작가의 느낌이었는데, 그 때 이미 인생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완숙된 경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당대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가' 시드니 셀던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분명 그의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되서 좋긴 하지만, 소설가로써의 셀던을 알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그 부분이 <벌거벗은 얼굴>의 출판까지만 이루어지는 것이 영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들의 풍차>, <내일이 오면>, <게임의 여왕>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범작이었습니다. 가장 평이 좋다는 <천사의 분노(Rage Angels)>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기회가 되면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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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진 1 - 완전판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본 만화. 예전 모 님의 블로그에서 칭찬과 함께 암울한 느낌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해놓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더해진 87분서와 같은 형사'들'의 팀플레이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가지 이 만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피에 물든 활약상 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쿄야는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쫓고, 유혈과 함께 사건은 종료된다.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이 단조롭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주인공 교야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야는 비정하다 못해 무정한 형사다. 손에 쥐어진 총은 분명 그의 업보일 것이다. 앞모습이 싸늘해 보이다가도, 뒷모습이 지치고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인의 업보일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죽인다. 생각해보니 그는 결코 범죄자를 살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태도는 겨울호수과 같이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도 그는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감정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가 컸고, 상처가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감탄을 표하다가도 손에 피를 묻힌 채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작가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숨겨진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끝을 맺은건지, 아니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교야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오히려 교야의 성격이 뚜렷하게 들어나고 동정의 여지가 적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난 교야처럼 살 사진은 없다. 그처럼 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그보다 받은 상처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태도나 그런 태도를 지탱하게 해주는 B급의 전문가주의-백발백중의 명사수, 노련한 수사관, 카리스마-는 흠모하게 된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주위인물들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고, 원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입 대신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주변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심하다라는-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을 숟하게 들은 나로써는...-생각도 많이 하고, 나도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의 관심list에 오르내리기를 싫어한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적당한 무관심'을 꿈꾸니까. 내 밥벌이가 걱정없고,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드러나는 표면은 다르겠지만 나도 쿄야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할 사진은 없다. 세기의 차이가 크다. 내가 루키라면 그는 메이저리거이다. 아마도 그는 배리 본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서글픈 것, 역설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얼굴상이다. 작가의 공들인 그리고 우울한 그림체는 <프리스트>와 <베르세르크> 이후로 마음에 들었다. 흑백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좋다. 처절하게 묘사해냈다. 제목 '지뢰진'은 지뢰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뢰밭이라. 마음 편하게 한발한발 내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일본의 지뢰밭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밀입국자, 스토커, 정신이상, 과잉팬덤, 매스컴 중독....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흡혈귀가 살고 있는 것처럼 피를 원하고, 정상인 사람은 먼저 죽어나간다. 그럼 비정상은? 나중에 죽어나간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지뢰진의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에피소드의 잔혹성만으로는 'A'가 가장 처절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소문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지옥도를 그려놓고,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교활하게도 지옥도와 절망에 지쳐 포기할 때 쯤이 되면, 희망의 한자락을 슬몃 보여준다. 형사후배가 아이를 낳고, 새로 들어온 신참형사가 잠시나와 애인과 연애를 하고, 하지만, 자락이다. 다시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렇게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만화만 놓고 보자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절망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다. 희망과 절망의 진폭이 커서 마치 운동장의 끝과 끝을 끝없이 돌면서 뺑뺑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앞에서 A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는데, 비단 A뿐일까. 모든 에피소드가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하지만, 최고로 우울했던,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교야를 사랑하던 여자. 교야를 따르던 후배가 자식을 가지게 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에피소드인데, 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펼쳐놓은 절망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마치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가서, '희망을 가지세요.' 혹은 실연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하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히 그랬다. 경찰이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되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도 사람인데...

일본의 하드 보일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의 하드 보일드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할까. 이 작품도 그런 면이 있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함께,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우울한 어조의 하드 보일드. 두 주인공이 만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속으로는 흥미가 생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문득 작년에 서거하신 에드 멕베인의 유작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에드 멕베인 옹은 생전에 87분서의 마지막 권을 미리 집필해놓고, 사후에 출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내용일까? 내가 추측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데뷔작인 <경찰혐오자>의 속편. 다시 경찰들이 죽어나간다. 맨 마지막 희생자는? 카렐라이다. 혹은 카렐라가 범인인 에피소드. 이 두 가지가 결합한 내용일 수도 있고......너무 우울한가?

추신2) 대화 한 토막 : 업보를 짊어진 자의 슬픔

"살아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마다 그림자 색깔은 모두 달라.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림자를 본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한없이 어둡지..."

"선배님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져서 밝은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구별도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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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 더 못본 만홥니다 ㅠ.ㅠ 쿄야가 불쌍할것같아서요.

상복의랑데뷰 2006-0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꼭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근데 저도 감당이 잘 안되네요. 기분이 영.....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친구 녀석이 가네시로 카즈키를 열심히 읽기에 사서 봤다. 다른 책들이 더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 책들은 서지 정보를 보니 웬지 묵직해 보여서 포기하고, 제목부터 상큼한 <연애소설>을 먼저 읽었다. 가뜩이나 요즘 고민도 많은데, 손에 잘 안 잡힐 것 같았다. 부담없이 연애담이나 함 읽어보자하는 마음에...젠장 완전히 속았다.

부담없기는 커녕, 부담 만빵이었다. 엄숙하거나 심각한 소설은 분명 아니다. 설정은 엉뚱하고, 대화는 재기발랄하다. 하지만 김난주씨의 해설대로 특유의 유머 감각은 변함이 없는데, 애뜻함이 더해진 연애담이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연애담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인,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연애소설>, 불치병 환자의 기괴한 복수극인 <영원의 환>, 노변호사의 읽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다룬 <꽃> 세 편이다. 연애가 주된 소재이자 주제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블로그를 꾸준히 들어오신 분들이야 나의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은 익히 아실텐데, 이 소설은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 점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내가 느낀 바를 어설픈 삼단 논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연애(사랑)도 모든 것에 속한다. 따라서, 연애도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식의 접근과 그에 대한 부정-아니다. 연애는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이다. 모든 연애담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사람을 죽였다. 또한 죽음은 연애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죽음과 연애를 쌍으로 묶어서 움직인다. 물론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꽃피는 순간 혹은 사랑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은 곧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서도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지점이 화자가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리시의 소설들이 '예정된 죽음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질주'의 느낌이라면, 이 소설은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 혹은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이들은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아니 죽음을 뛰어넘는 연애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난 솔직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강박관념 탓이던,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말하기에는 먼지가 꼈던,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기이한 울림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들게 되었다. 아마 예전같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텐데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단편들마다 공통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 편 모두 등장하는 특정인물의 존재라던가, 특정한 행동 내지는 사물. 어쩌면 우리 주위의 일상-사랑하고 이별하고, 결국에는 죽는 사람의 모습들은 결국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다른 무엇보다도 세 편 모두 등장하는 그 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라는 호기심이 문득 일어났지만, 얄밉게도 작가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한데, 나처럼 강박증 환자가 아니라면 가볍게 읽기에도 충분하다고 본다. 재치어린 농담은 정말 유머러스하고, 하드보일드 팬인 나로써는 얼처구니없게 하드보일드 운운하는데에서는 좀 쓴웃음도 났다. 실제로 <영원의 환>은 작가가 생각한 하드보일드에 충실한 편이기도 하다. ^^   

세 단편 다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두 편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연애소설>은 화자의 전형적인 모습과 삐딱한 유머가, <영원의 환>은 작가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하드보일드 소설 애독자다운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연애의 애절함을 일부분 가렸다. 그리고 <영원의 환>은 연애담이라고 보기에는 전개가 이질적이다. 하지만 <꽃>은 기본적인 설정도 좋았고, 가장 가슴 아픈 연애담이었다. 가장 있을 법한 일이니까. 특히 제목이 꽃인 이유를 알았을 때는 신파적이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물론 약간 튄다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앞의 두 편도 괜찮은 듯 하다. 하지만 <꽃>이 주는 묵직함은 작가의 삐딱한 유머와 독특한 설정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서-솔직이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고맙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한다. 다른 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좋은 작가 한 사람을 알게 된 느낌이다. 친구 녀석의 책을 빌려서 더 읽어봐야겠다.

추신) 이 책만 구입하시기 아까우신 분은 알라딘에서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사시면 같이 줍니다. OTL

추신2) 김난주씨의 해설은 설렁설렁 작성한 느낌이 들어서 약간 별로였다. 번역도 그런듯 했고. 불량용 교복이라니. 불량학생용 교복이라면 모를까...그리고 서지정보를 보니 원제는 <대화편>이였던 것 같은데, 작품의 성격에는 훨씬 어울린다. 이 소설의 형식은 두 사람이 등장해서 주고받는 대화다. 그래서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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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걸작선 - 세계미스테리특선 8
이경재 옮김 / 명지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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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전에 한 번 읽었었는데, 우연한 이유로 다시 읽게 되었다. 첫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이 이 작품집에 소개되어 있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라는 점이다. 영화 팜플렛을 보고, 제목이 낯이 익어서 찾아보았더니 이 단편집에 실려있었다. 둘째, 또 올해 출간 예정작 중에 일본추리소설애호가분들께서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린다는 니키 에스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모임에서도 니키 에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읽었던 이 책에 니키 에스코의 단편 <빨간 고양이>와 <엄마는 범인이 아니다>가 실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얄궃게도 두 작품 모두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용을 잊어버린 정도라면 내가 성의없게 읽었거나, 작품이 심하게 별로겠다 싶어서 호기심에 다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협박자>는 재미있긴했지만, 감탄할 수준은 아니었다. 트릭 자체는 평이했다. 오히려 그 속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의 삶의 애환이 더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점은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수험 지옥>도 마찬가지였다. 협박자로 인해 무너저가는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의 변화, 그리고 결말부분의 엄청난 페이소스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니키 에스코의 작품은 달랐다. 내가 왜 이 작품을 그냥 설렁설렁 읽었지 싶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자는 트릭이, 후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한된 시각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둘 다 뛰어났지만  나는 <빨간 고양이>가 본격 중의 본격이라 할 정도로 좋았다. 짧은 분량 속에서 두 개의 사건을 꼼꼼하게 채워넣고, 교묘하게 단서를 흘리는 필력, 사이사이에 언뜻언뜻 들어나는 인물의 개성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탐정 역의 노부인은 마플의 외모과 링컨 라임의 장애과 홈즈의 괴퍅함과 그 속의 따뜻함을 섞어놓았다고 해야하나. 두 작품만 가지고 본다면,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표현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기대가 된다. 짐작이지만, 이 두 단편은 <고양이는 알고 있다>의 부분적인 원형인 듯 하다. 설정 자체가 비슷한 면이 있다. 고양이가 등장하고, 탐정으로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많지 않은 작품 목록에 이런 설정이 많다고 하니 이 작품만의 특징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취향 운운하는 것은 건방지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의 취향은 하드보일드인 것 같다. 때문에 그 외의 작품, 특히 본격 혹은 고전기의 작품들은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 형님의 말씀처럼 본격이나 고전기의 작품들은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고향과도 같다. 두 단편이 주었던 즐거움은 간만에 고향에 온 기분과 비슷했다. 추리소설독자치고는 책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 나의 독서에도 작은 반성이 되기도 했고... 

비단 이 두 편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 단편집의 수준은 상당히 고른 편이다. 구태의연한 태작이나 범작이 적다. 개인적 관점에서의 범작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수직의 함정>은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고,-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은 식상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도모노 로의 <홍콩 힐튼 살인사건>은 단편으로 담아내기에는 소재가 컸던 것 같다. 중편정도의 분량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잠자는 추녀>는 설정이 기괴해서 읽을 때는 잘 읽혔는데, 읽고 난 후에 찝찝한 느낌이 들었고, 재미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도모노 로는 <두 동강이 난 남과 여>에서 <식인상어>라는 단편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보다는 나았다. <식인상어>는 너무 안전한데다가 <잠자는 추녀>처럼 기괴한 맛조차도 없었다.

여기서 범작이라고 떠들어 봐야, <두 동강이 난 남과 여>보다는 퀄러티가 좋다고 본다. 그리고 <200X 올해의 추리소설>보다는 훨씬 낫겠지라는 약간은 자조적인 감정도 들었다. 읽어보지 않고 미리 단정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지만, 계간 미스테리에 충분히 덴 나로써는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일본추리문학은 퇴적물이 삼각주를 이루듯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해 가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왜 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었다. 읽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 단편집과 고려원에서 나온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을 동시에 읽었는데, 내 취향이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에 맞는지, 이 단편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설 연휴에 다시 읽었을 때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 나온 작품을 찾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모 형님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추신) <손님은 왕이다>의 원작인 <친절한 협박자>의 내용을 알았으니, 영화는 얼마나 원작과 충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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