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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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r님의 블로그에 본 서평이 재미있어서였다. 지금은 r님의 글이 재미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호기심이 확 일어났었다. 추리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약간의 환기도 필요했고...

처음 읽었을 때 '이 누나 조낸 쿨해요.'류의 감탄이나 '에라~이 XX야'의 극단적인 비난을 기대했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내 마음 속이 무덤덤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예전에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그런데 웃긴건 그냥 놓아두기에는 괜시리 찝찝해졌다는 거다. 괜히 빛진것도 아닌데. 그래서, 다른 책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읽었다. 재미있었다.

왜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부끄럽지만, 김경이 펜으로 펼쳐놓은 공간은 조선시대 사람이 '컴퓨터 매뉴얼'을 보는 느낌이었음을 고백해야는게 맞는 것 같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 대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서는 신기원이었다. '버킨 백'은 고사하고 BAZAAR라는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그녀의 약력 덕분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그녀가 보여주는 별난 신세계를 이해하기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게다가 개성 제로의 지오다노 스타일의 남자가, 더욱이 집안이 가난해서 명품을 선물한 여자친구는 사귈 능력이, 아니 그녀들이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전무한 남자에게는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껏 소재의 유사성을 찾으라면 '청담동 댄디 보이'일텐데, 그래봐야 내 주위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그리 친하지 않은 청담동 출신의 컨설턴트나 IB 종사자가 몇 명 있을 뿐이니.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김경 플래닛의 청담동/패션/주류 투어 가이드와 비슷했다. 와~이런 사람이 있었네. 오호~이런 카페도 있었군. 그러니 처음 읽었을 때 신선했지만 무덤덤 할 수 밖에 없지.

엉뚱한 이야기는 집어치고, 몇 번 더 읽은 그녀의 책은 그녀도 순순히 인정했듯이 매력적이고 모순적이다. 모든 것이 모순적으로 보여야한다고 해야할까. 장정일의 서문과 본문을 보는 듯한, 극도의 자조적인 서문과 극도로 자아도취적인, 어쩌면 허영덩어리의 본문. 그 속에서 등장하는 댜양한 군상들에 대한 그녀의 애증이 섞인 태도. 별로 아쉽지 않은 척하지만, 그녀가 인용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인용자에게 붙여준 수식어는 나 뛰어난 사람들 많이 알아라는 호가호위성의 치기가 보인다.(솔직이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눈에 거슬렸다.) 인용의 목적이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자의 위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해야할까. 비주류에 대한 솔직한 그녀의 표현는 '컬티즌의 이영재라는 자'라는 문구로 대략 느낌이 왔다. 그렇지만 멋져 보이는 그녀의 삶과 그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문체. 설사 속빈 강정일지라도 드러나는 반짝반짝한 자신감을 모른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피해안가는 약자만 까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되었건 유쾌하게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설파하지 않는가?  

그래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전여옥이었다면, 나는 눈에 불을 키고, 앞장과 다음장의 여백사이의 모순을 찝어내느라 열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전여옥에 대한 그녀의 글은 정말 푸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다.) 누구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약간의 허영이 있으며, 돈없지만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녀는 통제가능한 범위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그녀가 좋아하는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말이다. 풀 바디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닌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그게 포인트였다. 마치 비계사이의 속살을 파고들듯 예쁘게 파고드는 그녀의 경계인적인 삶과 글쓰기는 솔직이 나의 기본적인 그것과 비슷할 터...그녀의 재능, 솔직함, 그리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에 나같은 사람은 그저 부럽고 감탄할 뿐이다. 다른거 다 제끼고, 글솜씨-지금까지 쓴 칙칙한 리뷰만으로도 그녀와 나의 차이는 아득해 보인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상식과 마음가짐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고. 어디에서 내가 쉬크, 버킨 백 등의 용어와 그 속에 담긴 단어를 배울 것인가?  

그녀는 A0다. A+이 되기에는 가진 것 없고, 속물이고, 교활하지만 A-가 되기에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녀의 책도 마찬가지다. 별 5개를 주자니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가 걸리고, 별 3개를 주자니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빛나는 개성이 아깝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별 4개가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힘닿는데 까지 즐겁게 살아가시길~

추신) 그녀의 인터뷰집, 최소한 BAZZAR 과월호를 은행에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비슷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동질감? 천만에.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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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구판절판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길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있다.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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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짐승 동서 미스터리 북스 85
에도가와 란포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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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에도가와 란포의 중단편집. 이름이 미국의 에드가 앨런 포우-포보다는 포우가 운율상 좋다.-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는 이제 구차하고...에도가와 란포 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일본)추리문학사의 위상과 가치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은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꺼려지는 일이다. 마치 <시민 케인>의 감상문을 쓰는 기분이랄까. 칭찬을 하자니 이미 남들이 다 하는 말을 하는 것 같고, 신랄하게 쏘아붙이자니 억지로 몰아붙이는 것 같고. 게다가 이 구식 작품을 읽기에는 더 매끈한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이제는 구매순위에서조차 밀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어찌되었건 몇 마디 적어본다.

oldhand 형님이 언급하신 대로 이 작품은 포우를 비롯한 초기 본격의 요소들을 당대 일본에 적절히 이식했다.(oldhand 형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기로 한다.) 

아마튜어 탐정과 화자인 나, 논리적인 추리 기법, 의외의 범인,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해당 요소들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도 이 중단편집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단편집에서는 란포가 좋아했으리라 짐작되는 작가들의 모습도 여럿 보인다. 포우나 도일은 기본으로 깔고, 나는 란포의 성향이 은근히 반 다인에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D언덕의 살인사건에서 추리소설가인 '나'에게 아케찌 고고로가 "당신 추리는 너무나 외면적이고 그리고 물질적이군요."라고 일갈하고는 "가장 좋은 추리법은 심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궤뚫는 일이지요."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심리시험>의 후끼야와 고고로의 박력넘치는 대화는 반 다인의 <카나리아 살인사건>의 포커를 연상케 했다. <심리시험>의 구조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유시한 부분도 있고. 내 소양이 부족해서 내 느낌은 이정도고, 다른 분들은 더 많은 작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란포의 위대한 점은 서구의 유명작가들의 흔적을 일본에 맞게 충실히 계승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발간된지 거의 100년에 근접하는 작품이라는 시차를 생각하면 놀랍기도 하다. 해당 요소들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도 이 중단편집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란포는 이것도 부족한지, 한 가지 양념을 첨가한다.

이상심리

이 작품은 FBI 심리분석관 류의 법의학 서적에 실제사례로 기록해도 별 문제없을 듯한 이상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변태들이 득시글거린다. SM은 기본이고, 관음증, 순수하게 살인을 욕망하는 사람. 살인 이외에 어떠한 자극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 좋아하는 대상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 기괴한 신체와 성욕의 불협화음.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살인과 욕망의 이중주를 보고 있자니, 내가 비교적 정상적인-이상심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소심한-사람들 주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감마져 든다. 초반 작품들은 그래도 추리소설과 이상심리가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후반부의 <거울지옥>이나 <배추벌레>를 읽고 있으면 단편 자체, 그 단편을 쓴 란포, 그리고 독자인 나까지 삼위일체 변태 세트가 되는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쓰고 나면 의문이 든다. 과연 란포는 우울한 망상에서 자유로웠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음울한 짐승>이나 의 주인공이 추리소설가이며 1인칭 시점이라는 점. <음울한 짐승>에서 '오데 슌데이'가 발표한 작품들의 제목은 란포의 단편를 묘사한 작품의 제목과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오데 슌데이의 묘사가 지나치게 강렬하다는 점은 적어도 이 단편집만 놓고 보면 란포 역시 이상심리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게다가 그런 것들이 변태성욕과 이어진다는 점도 그렇고...<음울한 짐승>에서 주인공이 사건을 설명하는 후반부에서의 사건의 설명보다도 설명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행동묘사만 봐도 란포는 보통이 아니다. 

예전에, <망량의 상자>를 읽으며, 망량이 담긴 상자는 추리소설과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의 욕망을 일부분 은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적이 있다. 몇 명의 사람이 죽어나가고, 그 과정을 풀어헤치는 과정에 호기심을 가지는 추리독자의 무의식의 심연에는 어두운 이상심리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던 간에. 일례로 아이리시처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숨어있을 수도 있고...추리독자가 모두 이상심리를 가진 변태라는 게 아니라, 조금은 그런 성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볼 수는 있지 않냐는 것이다. 나도 내가 변태취급 당하기는 싫지만, <음울한 짐승>은 작가와 독자가 공범일 수도 있는 사례라고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란포는 지적 노출증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지식인들의 특성이 과도한 솔직함이라고 한다면, 란포 역시 지식인이다.) 란포의 작품들은 종종 1인칭 관찰자 시점인지 주인공 시점인지 오락가락할 정도로 인물간의 경계가 모호하다. 명찰만 다를 뿐. 10여년 전의 풍월로 프로이드를 빌어 설명한다면, 추리소설가로 등장하는 '나'는 에고,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은 '리비도' 그리고 탐정-특히 범인과 게임을 즐기며, 범인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아케찌 고고로는-은 슈퍼 에고가 아닐까? 그냥 멋대로의 해석이다. 결국 란포는 자신의 일부분들을 추리소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풀어놓고 조종하는 것을 욕망했던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란포는 독자들마져 조종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것이 아닐까? 이 단편집의 결말이 에필로그를 통한 불유쾌함으로 끝나는 이유는 란포가 본격 추리소설의 비현실성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 것 같기도 하지만, 독자마저도 자신의 단편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욕망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음울한 짐승>, <빨강 방>, <2전 동화>와 같은 작품의 후반부는 특히 란포의 욕구가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까지 써놓고 나니 마치 모든 단편을 '란포의 지적 자위행위'처럼 묘사해서 란포 선생에게 상당히 죄송스러운데, 그래도 결과물의 수준이 워낙 좋다. 모든 단편이 기괴하고 독특하지만, <음울한 짐승>, D언덕의 살인사건 , <인간의자>는 추리단편으로 추천할만 하며, 번역상태가 좋았으면 아쉬움을 가진 <거울지옥>, 그리고 이상심리의 극치를 달리는 <배추벌레>도 좋다. 모파상의 단편을 연상케 하는 <두 폐인>도 좋았고.

점점 더워지고 있는 여름에, 읽고나면 상당히 시원한 느낌이 들 것이다. 단 상당히 불쾌하겠지만... 

추신) 이 작품은 절대 뒷표지를 봐서는 안된다! 가장 재미있는 <음울한 짐승>의 트릭이 노출되어 있다. OTL 난 낚였다. ㅠㅠ

추신2) 란포의 문체도 번역을 불구하고 기이하다.
"박물관 안은 인기를 잃은 스타처럼 퇴물스러운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러한 것들은 바깥채의 일본식 고유 주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황금 만능의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것들은 필립 말로인데...더 인용하려다가 단편들이 많은 관계로 생략 ^^)

추신3) 아케찌 고고로의 활약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것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소년탐정단 1~2 세트
에도가와 란포 지음 / 북박스
나의 점수 : ★★★★

 

추신4) 결국 써놓고 보니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밖에 없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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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2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탐정은 더 나왔으면 합니다. 좋은데요^^

상복의랑데뷰 2006-05-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감사합니다. ^^

oldhand 2006-05-2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축! 이주의 리뷰 당선! ^-^

상복의랑데뷰 2006-05-2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 덕분입니다. ^^ 흐흐 부끄럽네요 ㅠㅠ
 
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조나단 햄록은 정력적이고 유능한 멋쟁이 미술사 교수고 취미는 암벽등반, 그것도 전문가이다...사실 그의 정체는 암시장에서 멋진 그림들을 몰래 수집하고 자신의 풍족한 생활을 위해 활동하는 CII의 전문암살자다. 그는 슬슬 업계를 뜨고 싶어하는데, CII에서는 그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어려운 임무를 종용한다.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정상정복에 실패한 아이거 빙벽에 올라가는 일...그는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준 산과 맞서 싸우는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음모도 맞서 싸워야 하는데...  

<메인 스트리트>의 작가 트레바니언의 작품. 내 취향에는 밀리언 셀러 클럽은 모아니면, 도이다. 이 소설은 다행이도 모였다. 그것도 대박!

주인공 조나단 햄록은 내가 꿈꾸는 이상형이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재능이 충만하고, 자본주의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기에는 현실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마초. 그리고 자신의 의향을 굳이 숨기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전문가주의의 화신.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물론 나는 재능이 없고, 마초가 되기에는 얼굴과 몸이 꽝이고, 내 의향을 드러내기에는 소심하고, 아직 전문가가 아니다.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꼴린 대로 살고 싶으면 일단 전문가가 되라. 아니면 골방에 처박혀 평생 궁시렁대던가.

햄록 교수가 자신보다 세상을로 조롱을 일삼으면서 적절히 이용하는 모습은, 그리고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시작하면 보여지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주는 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암벽등반이라니! 게으른 성격답게 암벽 등반은 고사하고, 나는 군대시절에만, 20여 kg의 군장을 짊어지고 행군하면서 산을 넘어본게 전부지만, 그 때의 성취감을 떠올려본다면, 햄록이 가지는 무제한적인 자신감과 철저한 자기단련의 자세가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패러디의 의도가 강하다고 느껴지는 초반부의 첩보신에 비해 산악 사나이들의 땀, 열정, 우정이 배어나오는 후반부의 등반신의 몰입감이 몇 배 큰 이유도 묵직한 남성주의에 전문가주의를 맛깔나게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내내 펼쳐지는 조롱적 패러디의 릴레이! 최근 프로야구 모 팬들이 보여주는 자학 개그처럼 이 소설 내내 펼처지는 패러디의 향연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스파이 소설의 클리세들을 태연하게 보여주면서, 중간중간에 오버 한 방을 날린다. CII자체가 이미 CIA의 패러디이고-Agency가 Institute로 바뀐 재치란!-등장하는 인물들은 패러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희귀병으로 빛을 볼 수 없는 우두머리라니! 하긴 햄록이라는 이름 자체가 셜록 홈즈에서 온 것 같다고 느겨지는 판국에...스파이물을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껄껄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여년이 지난 후대 독자들에게는 시대적 덜컹거림까지 양념으로 제공되고 있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전문가주의와 냉소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햄록 교수와 더불어 아이거 빙벽을 정복하기를 바라는, 그리고 햄록 교수앞에 놓인 음모를 파헤치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Bravo! 꼭 이 작품의 속편인 <루 빙벽>을 보고 싶다. 햄록 교수가 두 작품 밖에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 안타깝다.

추신) 이 소설은 <니꼴라이>로 번역된 <쉬부미>와 비슷한 면이 다수 있다. 득시걸거리는 마초들과 그들을 사모하는 여인들. 주인공과 적대적 공생관계인 첩보부. 주인공의 천재성과 그에 못지 않은 반사회적인 혹은 냉소적인 태도. 그리고 동양에서 수련하는 과정. 그리고 공작 과정에서 보여지는 철저한 전문가주의. 다만 <니꼴라이>는 엄청나게 공들인 설정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동양에 대한 환상적인 동경이 덧입혀지는 바람에 동양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좀 엉뚱한 소설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이거 빙벽>은 과도한 패러디로 인한 덜컹거림까지도 재미있다.

추신2) 조롱조의 소설이 골수공화당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게 자본주의의 위력인가, 아니면 삶의 아이러니일까?

추신3) 대부분의 여성독자분이나 마초를 싫어하시는 남성독자분들께는 재미는 고사하고 거북함이 밀려올라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차라리 <아이거 북벽-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전>이 산악사내들을 이해하는데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농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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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5-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마초를 싫어하지만, 읽어볼랍니다...ㅋㅋㅋ

상복의랑데뷰 2006-05-2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실지도 ^^;;

하이드 2006-05-2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재밌겠다!
저는 이유있는(?)마초는 좋아요.
설마, 마이크 해머류는 아니겠지요?

상복의랑데뷰 2006-05-2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이 초라한 서재에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합니다. 아마 전형적이고 지루한 스파이물인 전반부를 잘 넘기시면 후반부는 재미있으실 겁니다만, 함부로 추천해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추신) 근데, 저 마이크 해머 팬인데요 ^^;;


Fiona 2007-01-1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보면 CII는 로마숫자 102인데요. ^^
 
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제퍼슨 파커의 2005년 에드가 상 수상작. 2002년에도 Silent Joe로 수상했다고 한다. 2001년에는 Red Light로 후보에 올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 번 후보에 오르고, 그 중 두 번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였다.

1. 이 작가가 천재 작가다. 2. 작품이 현재의 정서에 부합하는 면이 상당히 있다.

<캘리포니아 걸>만으로만 놓고 보면 단연 2번이다.  이 작품은 보수 강경파의 관점에서 회고한 5~60년대를 다룬 추리소설이다. 문제는 그 정서에 내가 동의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보수적 정서에 대한 반발심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범인이 누군가는 별 관심도 없다. 겉멋으로 느껴지는 액자구성으로 인해 범인은 중반부터 짐작이 가능하다. 작가는 과거가 불만스러운 것이다. '방종한 가수들, 무책임한 가출청소년, 난교의 여왕들, 부도덕한 약쟁이, 가정을 파괴하는 더러운 동성애자들'이 그 시대를 지배했고, 미국의 건강한 정신을 더럽혔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작품 속에 초지일관 흐르고 있다.(정중하게도 이런 직설적인 언급은 없다.) 나에게는 그것이 혐오감으로 느껴졌다. 찰스 맨슨까지 등장시켜 시대를 욕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주인공의 네 번째 아이의 운명도 마치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은유인듯 싶어 불쾌했었고...

정말 진지하게 묻고 싶은데, 프락치를 강요하는 사회가 젊은이들 탓인가? 매카시즘이라 대표되는 불안이 만들어낸 기성세대의 작품 아닌가? 그리고 작품에서 묘사하듯이 젊은이들이 개념없는 애들이었을까? 내가 양비론자인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작가가 묘사하는 개념탑재가 안된 젊은이들 못지않게, 개념 탑재가 된 젊은이들도 많았다고 믿는다. 제대로 된 젊은이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죽은 녀석이나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된 녀석 뿐이다.

공산주의를 막자고 저지른 베트남 전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이, 베트남전에 죽은 아들로 인해 응어리진 어머니의 마음이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관에 참전용사로 기록된 것을 보고 어머니의 응어리가 풀린 듯했다라고 말하는 후반부에 가면, <학도여, 성전에 참여하자>까지 떠오르는 것은 나의 과민반응일까?

아주 찝찝한 작품이었다. 내 자신이 진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추신) 거부감 때문에 별 세 개긴 한데. 거부반응 없이 읽는다면 별 네 개는 가능하지 싶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들어나는 인물들의 고통이나 연대기적 구성은 기성작가의 장인적 세련됨을 느끼게 했다. 위선적으로 보였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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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그렇고 좀 우익성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작품은 좋았는데 걱정되더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5-0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시민 빈스도 만만치 않다던데요...영림 카디널에서 내주면 읽어보긴 하겠지만, 찝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