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얇은 책인데 읽는 데 오래 걸린다. 책등을 세워 엎어둔 채 자꾸 앞 베란다 창을 통해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흐리멍덩한 날에는 산의 윤곽만 흐릿하게 보일 때도 있고, 그나마도 안 보일 때도 있는데, 유난히 맑고 쨍한 날에는 신기하게도 지독한 난근시에 시달리는 내 눈에조차 산에 빽빽하게 심긴 나무들의 실루엣이 도돌도돌하니 엠보싱 무늬처럼 들어와 박히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딱 그렇게, '갈 만한 짓을 했으니 갔겠지' 하며 한데 생각 속에 모아 생각했던 소년원 아이들이 제각각 심겨 있는 별개의 한 그루 나무처럼 도드라져 읽힌다. 글을 쓰신 선생님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질문이 내게서는 계속 떠나지 않는다. 하나하나는 이렇게 순한 마음이 여전한 아이들인데, 왜 이 아이들은 거기에 가 있을까. 


비슷한 때에 기획은 다르지만 어쨌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던 경험을 쓴 책이 출간이 됐었는데 그 책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었다. 책에서 내가 기대하는 기본적인 몇 가지 잣대가 있는데 그 중 어떤 것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책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앎을 가져다 주었고, 아마도 나의 인간성 어딘가에 바닥에 묻혀 있기는 있을 감정들을 흔들어 깨웠고, 우리가 뭔가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인 공감대와 이슈를 형성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했다. 어떤 면에서는 희망도 주었고. 그러니까 혹시 이 책을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활자가 주는 여러 종류의 재미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웃음, 슬픔, 안타까움, 분노를 느끼는 것,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아이들이 이 모두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살다가 심심할 때, 마음이 힘들 때, 외로울때, 무언가에 대한 지식을 더 알고 싶어질 때도 책을 펴게 되지 않을까. -44쪽


의도를 지닌 이야기였다. 그렇게 짐작되었다. 소년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무작정 방치하지 않는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모으든 공부를 하든, 어떤 노력이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길 안의 삶'을 살게 된다. 박찬일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슬쩍, 작은 일 하나 보여주고 "이거 하고 싶지 않니?"라는 말을 가만히 건넨다. 그 일 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이 소년들에게 맑은 물로 스미고 있다. -54쪽 


"아, 그러면 나는 처음으로 민우에게 책을 읽어준 사람이 된 거야? 17년 만에?"

"예, 그렇습니다."

"우아! 영광이야." 

민우는 생애 17년 만에 첫 번째인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났고,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어준 최초의 어른이 생겼다. 이 사실이, 나는 눈물겹다. - 15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1-06-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도 이 책 너무 좋았아요!

라영 2021-06-09 16: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 마음이 아파서 쭉 읽기는 힘들었는데 정말 읽은 보람이 있더라고요.
 


커버스토리가 구미를 당겨서. [우리에게 도착한 말] 이라고 한다.



내가 이런 걸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어떤 종류한 사소한 계기들이 무엇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켰을 때 큰 비극을 만들기도 했다더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열 아홉이 된 이후 생일날만 되면 원치도 않은 타임리프를 해서 생뚱맞은 시간대의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주인공이 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이 나이의 인생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도 아무것도 없는 주인공의 삶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고장나버린 시간 속에서 우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20대때만 해도 디자이너란 직업 앞에는 반드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자동차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기타 등등. 세월이 지나니 이젠 디자이너의 영역분계선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더라. 디자이너는 이제 디자이너보다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일이 더 흔해졌고 비전공자 크리에이터가 훨씬 더 많이 배출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럼 크리에이터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그게 궁금하다면 이런 책을 보면 되지 않을까?



상실의 고통과 후회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곧 인생일까. 그 흔적들을 보듬는 글들을 읽는 것으로 어쩌면 후회를 덜할 일들을 계획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테마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미디어 리터러시인 듯하다. 참고로 내가 이 책의 소개글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 건 순전히 최근 읽었던, 공용 컴퓨터에서 로그아웃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본인의 비밀을 동급생에게 털린 탓에 인생에 광풍이 휘몰아쳤던 한 소년의 이야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방점을 찍고 싶은 건 메타버스보다는 가상경제 쪽이지만. 



맞다. 금리와 환율 공부 많이 해야 하더라. 금융업계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의 질문에 점점 대답을 못 하고 헤매는 엄마는 이제 그만두고 싶다. ㅠ.ㅠ 



이것은 뇌 실용서인가요? 내용 살펴보다 대폭소. 

그러니까 어쩐지 게을러터진 뇌를 빠릿빠릿하게 만드는 비법서... 처럼 보이는데... 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ㅎㅎ 




그냥 추측이다. 굉장히 내밀한 사유이거나, 너무 몽상적인 관찰이거나. 좋아할 사람은 몹시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엄청나게 싫어할 것 같은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요것도 아주 관심있게 보고 있는 시리즈.



살림경력 10+x년이지만 여전히 살림력 빵점의 아줌마. 도움받을 내용이 있을까 목차를 살펴보니 저보다는 혼자 생활을 막 꾸리기 시작한 살림초년병들에게 더 유용하겠어요. 



'인문학'은 야망이 과하신 것 아닐까 지레짐작만 해보지만.... 아무튼 제목이야 그렇다치고 내용은 굉장히 재미있어 보입니다. 여기엔 사견 없... 



일단 목차 한 번 봐보시길. 아이들 철학 입문서로 굉장히 적절해 보이는데요. 목차만 봐도 재미있음.

• 짤과 밈 : 네트워크의 예술 장르
(feat. 리처드 도킨스 - 이기적 유전자)
• 모에, 본체 없이 걷는 그림자
(feat. 장 보드리야르 - 시뮬라시옹)

예를 들면 저렇더라고요 ㅎㅎ 한때 소피의 세계가 철학 입문서일 때가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언제적 얘기? 



이토록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의 자녀교육의 결실이랄까. 그가 딸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이 되어 남았는지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하기 짝이 없는 집청소의 과정... 만 있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끄트머리에 멋진 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듯. 청소에 관한 한 끝내주는 펀치라인이 들어가 있는 그림책이 또 있지만, 절판인 관계로... -_-; 



교육의 틀과 관점을 잡고 많이들 흔들고 있는(물론 흔들거나 부수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 



올가는 키오스크에서 일한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세상 전부다. 올가는 그럭저럭, 괜찮게 지낸다. 어느 날 올가의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제 올가는 어떻게 할까? 



이 시리즈에 관심이 많다. 타겟 독자층을 보면 너무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최신 연구 동향도 많이 반영되어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인 실용적 기술과 학문적 이론을 잘 접목한 책처럼 보인다(뚜껑은 열어봐야 알지만)



다시 나온 건지 예전에 번역이 나왔었던 건지 분간은 잘 안 가는데, 아무튼 루이스 새커니까!



내가 우치다 햣켄의 이 어려운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넣는데 일조한 작가는 교토명랑작가 모리미 도미히코다. 그의 에세이에서 읽었던가 인터뷰에서 봤던가 여하간, 그는 우치다 햣켄을 어지간히도 좋아한다는 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름 한 번 어렵네, 그러면서 머릿속에 밀어넣고는 수 년간 잊고 있었던 이름인데 신간목록에서 보고 순식간에 기억 소환.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롭게 옷을 입은 (그것도 무려 리베카 솔닛이...) 신데렐라 이야기. 드라마도 영화도 리메이크하는 판국에 옛이야기라고 비껴갈 수 없는거죠.


한 번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매번 쏟아지는 신간 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고른 책들만 추려두고 후에 다시 검토해 볼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한 리스트인데 어쩐지 가끔 이걸 제가 다 '사서 읽어보고 간단한 평을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처음에는 제가 오버센스했나 했는데 비슷한 뉘앙스로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계셔서 식겁했습니다). 절대 아니고요, 뭣보다도 제가 무슨 엄청난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닌 관계로 여기에 올려두고 구입해 봤다가 기대 이하였던 책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뭐 이런 책들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흥분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바로 독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책이 건네는 말을 찾는다. 작가들이 아무리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세상에! 이건 내 이야기잖아!' 라고 말하는 독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81쪽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에지간한 책에서는 분명 어딘가 나의 일부와 공명하는 인물이든, 사건이든, 배경이든, 어쨌건 그런 문장이 찾아진다. 


이 책에서 예를 들자면, 내 경우에 나 이거 뭔지 너무 잘 압니다 싶었던 건 이 대목. 


어떤 작품들을 읽으면 '나라고 쓰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평론가로서 오랜 길을 걸은 끝에 루슈는 질투와 좌절이 뒤섞인 심정으로 결국 소설 쓰는 걸 포기했다. 글쓰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니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는 원하던 일을 끝내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마음 한 쪽에 늘 묵직하게 남겨둔 채 살아왔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내려놓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222쪽


나이를 먹고 세상에 적응하면서 산다는 건 하나씩 마음에서 내려놓아가는 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홀 돌보기 -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튼튼한 나무 29
미셸 쿠에바스 지음, 강나은 옮김 / 씨드북(주)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난 새롭게 찾은 내 초능력이 생각났어. 여태 깜빡하고 아빠한테 얘길 안 했는데, 이 능력은 아빠가 아플 때 생겨난 거야. 그리고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후에 가장 강력해졌어. 그 능력은 깜깜할 때 적외선 안경을 써서 앞이 보이는 것과 비슷해. 우리가 사는 우주 말고 또 하나의 평행 우주가 보이는 거야. 전에는 안 보였는데 이제 보여.


님버스 아주머니가 정신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떠난 남편이 보고 싶으니까 그 석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얘길 나도 한 백만 번은 들었고 전엔 지루해 죽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젠 말이야,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나랑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 내 기분을 아주머니도 느끼는 것 같아. 전에는 아주머니를 봐도 그런 게 안 보였어. 그런데 이제 보여. -48~49쪽



시간이 가서, 세상을 더 배워서, 경험치가 늘어나서 '능력치 목록'에 새롭게 등재되는 항목들이 늘어날수록 한 존재의 성장을 실감한다. 긍정적인 경험치에서 얻는 능력만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장밋빛이겠냐마는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라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본의아니게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책들 중 가장 좋았다. 

별 것 아니라고들 생각해서, 뱉아놓고도 (그런 말들은 뱉았다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두지 않았던 말들에 숨어있던 은근한 적의와 악의, 멸시의 감정들이 누군가들의 마음과 삶의 한 시절을 상처입혔다는 엄연한 사실을, 적당히 잊어버릴 생각 따윈 하지도 말라고 조목조목 짚어 지적하고 있는 단편집이다. 

뭐, 현실이 그렇게 꼭 해피하지만은 않지만서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