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매우 어려워 보이지만서도, 정말 그 '자기 긍정'이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능해지기만 한다면 참 좋겠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지... 하는 그 생각이 자조적인 한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이상적이겠지만 말야... 이렇게 쓰고 있는 자신이 회의주의에 찌들어 있는 것 같아 좀 한심스럽긴 하다. 어쨌거나 운명이라는 거창한 말에는 거부감이 좀 있지만, 내가 지금까지 선택해서 만들어 온 그 결과물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살아가자는 태도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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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림책이 참 좋아 40
안녕달 지음 / 책읽는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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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을까요. 웃고 있지만 마음 속은 복잡할 겁니다. 비 내리는 날씨가 선택된 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거예요. 마음 한켠에 먹구름이 내내 끼어있었을 텐데요.

어차피 이실직고는 해야겠고,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망설여지고, 엉뚱한 소리만 하면서 돌아가다 돌아가다 말문 열릴 길을 찾은 아이의 천연덕스러움이 귀엽고, 대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조미료 같은데, 아이의 자백 아닌 자백을 웃으면서 받아주는 엄마의 너그러움이 부럽고,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 무한히 샘나고...

끝까지 보면 다시 한 번 앞장으로 돌아가 엄마 옆에서 유치원 나설 준비를 하는 아이 옆에 말풍선 너댓 개쯤 달아주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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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봇
앤드루 킹 지음, 최용은 옮김, 벤자민 존스턴 그림 / 키즈엠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실패하고, 실패를 수정하고, 새로 발견된 문제점을 다시 개선하고,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작은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은 잔소리가 되기 쉽다. 엔지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꾸준함은 엄마의 잔소리보다 쉽게 들어오지만 무겁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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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의 대답은 너무나 뻔해서, 뭘 굳이 묻고 있는건지 헛헛해질 정도. ㅎㅎ

 

이 인용문과 전혀 다른 얘기일수도 있고 같은 맥락의 얘기일수도 있는데, 공감이라는 건 결국 마음을 열어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는 의미 아닐까. 책이라는 것도 그런 '하고 싶은 말'이 좀 더 정제된 형태로 묶인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연구 성과든, 찾아낸 새로운 이론이든, 감동을 주는 이야기든, 결국 저자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것이겠지. 그런데, 갈수록 독서율이라든가 평균독서량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곤두박질치는데 글쓰기 수업 수강생은 갈수록 늘어난다는 게 어쩐지 요즘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어쩐지 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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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하나만 더 해줘, 하는 그 소리 좀 제발 그만 듣게 빨리 좀 커라, 커서 네가 직접 읽어라, 그렇게 속으로 빌어대던 때를 모든 부모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원을 비는 부모들이 하나 모르는 게 있다. 아이들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이야기를 파악하는 능력과, 읽어주는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같은 수준에 오르는 것은 꽤 늦게 온다는 사실을. 이것은 아래의 책에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왜 제법 큰 아이들에게까지 책을 꼭 읽어줘야 하는지, 그 수고스러움이 왜 가장 큰 교육적 투자인지에 대해 저자는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호소한다.

 

 

그리고 더불어 부모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교육 아웃소싱은(특히 영상매체에게) 적당히 해 두고, 책을 읽어주자고. 그러니까 부모들로서는 노동을 강권하는 책이므로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도 이 노가다에 가까운 읽기 노동을 기꺼이 실천하고 있는 1인으로서 더불어 권하고 싶으므로, 같은 논지의 책을 한 권 더 말하고 싶다. 

 

단어를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문장의 의미는 원자 폭탄을 맞은 듯 해체된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이 수도 없이 되풀이된다.

"조금 전에 읽어놓고도 몰라? 이게 무슨 뜻이냐고?"

 

(중략)

 

"다시 읽어봐.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란 말이야!"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파르르 떨리는 아이의 입술 사이로 울음 섞인 단어가 비어져 나왔다.

"우는 시늉 좀 하지 마!"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눈속임하려는 의뭉스러운 시늉이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북받치는 설움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절절히 호소하는 설움이었다. 더 이상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통한이었다. -56~57쪽

 

어른인 우리가 제각각 다른 책읽기 속도를 가진 것처럼, 아이들도 그저 자기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에 맞춰 읽기를 몸에 새겨나갈 뿐이다. 그걸 인내심있게 기다려주지 못하면서 책을 싫어하게 된다고 비난하면 어쩌냐고 페나크는 한탄한다. 나를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걸 내가 왜 좋아해야 하냐고. 도대체 세상 누가 자기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면서 때때로 트라우마적 기억을 소환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겠냐고. 그러니까, 몸이 그 박자를 익혀서 스스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때까지는 이야기와 더불어 어른의 목소리를 함께 귀에 심어주자고 열심히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눔은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요새에 자리잡게 된다. 책과 친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가까운 이가 우리에게 책을 한 권 읽으라며 주었을 경우, 우리가 책의 행간에서 맨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책을 준 그 사람이다. 그의 취향, 그가 굳이 이 책을 우리의 양손에 쥐여주었던 이유, 그와의 유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표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책의 내용에 빠져들어, 정작 책에 빠져들게 만든 장본인은 잊고 만다.

 

(중략)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나서 그 책을 문득 떠올릴 때면 책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이 함께 묻어나기 마련이다. 책의 제목에 몇몇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다. -110~111쪽

 

조금 자란 아이라면 이 예시에 맞을 것 같다. 조금 더 어린 아이라면 그 책을 읽어주었던 누군가의 목소리와 단단히 묶인 책들로 마음 속에 서가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낮의 자투리 시간에 잠깐, 또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조금씩 만났던 책들이 머무는 공간을 언제든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삶에서 버텨내야 하는 모든 순간들에 잠깐씩 들를 수 있는 휴식처가 되겠지.

 

책에서 만나는 가장 따끔한 말은 이것이다. 돌려 말하면 아무리 바빠도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이건 중차대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떠안고 있는 만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다들 살아가는 일에 치여 책 읽을 짬이 없다. 생활은 독서를 가로막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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