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이 카테고리에 이제서야 글을 올리다니. 그동안에 책 읽기에 얼마나 소홀해졌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느누나. 그렇다, 나는 약 세 달 가량 한 없이 가볍게 가볍게 그리고 빠르고 빠르게 비워내기에 급급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소화가 힘든 것들은 외면하고, 말캉말캉하고 단순한 것들만 집어 삼켰다. 씹지도 않고 흡입한 후에 그대로 다시 내보냈다. 근육과 살뿐 아니라 머리 속까지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을 나는 느끼고 있다. 유약해진 정신은 그 단단함을 잃었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력도 상실한 채 미친듯이 이리저리 머리채를 집어당겨지기 마련이다. 나는 흐름을 쫓기 급급해 흔적을 남길 정신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나의 나태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로 먼저 나타났다. 바지 위로 빼꼼히 나오는 살이라던가, 걸을 때 느껴지는 몸뚱아리의 묵직함, 지방의 미세한 진동으로 인한 피로감 등등. 굳이 머리를 싸매고 나의 나태라는 놈의 정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형태를 지니고 여기저기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내 책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내 책상 위에는 컴퓨터, 책, 노트, 연필 등등 많은 것이 있지만 그들 못지 않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온갖 빵종류의 간식거리이다. 간식 중에서도 가장 나태함률이 높은 것은 바로 크림치즈+초코크림+식빵 조합. (나는 이 조합을 마녀빵이라고 보른당.)이 조합은 그 강렬한 맛으로 혀만 흐물거리게 하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 멍해지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나이프질 두세 번이면 완성된다는 면에서 높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이 나태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경계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조금 더 육체의 노동과 집중력을 요하는 커피도 끓여 함께 곁들였다. 내 특제 커피로,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끓여내 따뜻한 우유와 베일리스를 섞어 마시면 적당한 달콤함과 부드러움, 쌉쌀함이 섞여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 





내가 이 소중한 점심시간을 포기할 수 없듯 나태가 제공하는 편안함은 정말 거부하기가 힘들다. 떠날 줄 모르는 그 손님은 내 몸과 마음에 자리를 꿰차고는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미에서 커피를 탔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집중력이 요구된다. 커피메이커에 물을 넣고 커피 가루를 넣고 커피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우유를 뎁히고 베일리스를 살짝 섞을 땐 눈과 귀를 쫑긋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오래 끓여도, 조금 끓여도, 약하거나 강하게 끓여도 안 된다. 그렇게 완성된 커피는 또 다시 시간을 들여 흡수해야 한다. 커피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마녀빵은 네 입이면 쫑나는 반면 커피는 조금씩 홀짝거리며 여러번에 걸쳐 비워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카페인이 충분히 흡수될 수 있도록 약간의 시간 텀을 두면서 쌉싸르함이 가시기 전에 다시 한 모금을 들이키면 혓바닥 가득 커피 향이 물든다. 커피가 제공하는 그 여유로운 시간에는 유독 독서가 하고 싶어 진다. 가끔 독서하다가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키게 되는 경우가 생기긴 하지만 주로 커피는 더욱 향기롭고 맛있어지며 글자는 쭉쭉 소화가 된다. 





그래서 오늘 마녀빵과 커피를 곁들인 시공간에 책도 초대하였고, 여전히 나태가 여기저기 묻어있는 까닭에 책 메뉴 중에서 비교적 담백하고 몰입도가 높은 아이들을 골라보았다. 종이책이 아니라 ebook 중에서 골라야 했기에 선택 폭이 매우 좁았는데, 오히려 이것이 고민의 폭을 줄여주어 고르기가 수월했던 거 같다. 일단 한국 소설일 것. 번역을 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정서와 관념을 담은 언어는 머리로부터가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들여지기때문에 이해하기가 더 쉽다. 일상적이고 공감될 만한 주제일 것, 그리고 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남녀의 연애를 다루면 더욱더 좋음. 단 갖가지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있을 법 하지 않은 로맨틱함은 사양. 이러한 선별과정을 거쳐 이러한 책들이 오늘의 커피타임에 초대되었었다. 나와 만나지 못한 손님은 다음 커피타임 때 다시. 나른한 오후햇살과 방에 배어있는 은은한 향수냄새, 쌉싸름한 커피 그리고 적당한 나태함과 어울리는 손님은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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