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오늘 입대했다. 의정부 306 보충대로.

어제 저녁 대전에 사는 우리 가족은 서울로 총출동을 했다. 엄마, 아빠, 내 동생. 서울역에서 상봉한 우리 가족은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의 원룸으로 들어왔다.

작은 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다. 이렇게 네 식구가 한 방에 모여자기는 이십 몇 년 전 단칸방살이를 하던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물론 그 때는 네 식구의 멤버가 어제와 달랐다. 그땐 내 동생은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까. 내 동생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딸만 둘이던 우리 집에 늦동이로 태어난 막내다.

아침부터 집안이 들썩했다. 성미가 급하고, 늘 초긴장 상태인 우리 아부지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빨리 채비를 하라고 성화를 대셨다. 1시까지만 들어가면 되는 의정부 훈련소인데 뭐가 그리 급하신지...

의정부역에 도착하니 노란 셔틀버스가 있다. 훈련소 가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였다. 나는 부대에서 운영하는 버스거나, 입소날에만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영업 버스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군부대 앞의 식당에서 손님을 끌어가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 셔틀버스를 타고 군부대까지 간 사람들은 그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근데 식당엔 버섯불고기, 딱 한개의 메뉴밖엔 없었다. 평소엔 다른 메뉴도 있겠지만, 가려놓은 상태였다. 오늘 같은 날 한몫 잡자고, 손님을 빨리 빨리 갈아치우기 위해 한가지 메뉴로 통일을 시켜버린 것이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어 밥도 잘 안 넘어가는데, 무조건 고기를 먹으라하니... 곤혹스럽다. 이런 건 인터넷 지식모, 같은 데에 올려놔야 한다. '의정부로 훈련 들어가는 분들, 의정부 역에서 노란버스 타지 마세요. 육질도 질기고, 서비스도 그닥 좋지 않은 곳에서 무조건 버섯불고기를 드셔야 한답니다.'

연병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친구와, 가족과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온 빡빡머리 예비 군인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탠드에 앉아 있으니 사열하라는 방송이 들린다. 애써 여유로운 척 호기를 부리던 남동생이 일어난다. 이 자식, 인사도 제대로 않고 운동장으로 걸어간다.

앗, 근데... 코가 시큰해져 왔다. 나도 동생 군대보내는 이 광경이 신파가 될 줄은 몰랐다. 평소 '걔는 군대가서 고생을 좀 해야 정신차린다'를 지론으로 삼아왔던 나인데... '뒤 안돌아 볼테니까 울지 말라'는 둥 똥폼 멘트를 날리는 녀석에게 '이거 안 울면 섭섭하다는 얘기로 들리는데?'라며 갈궈준 나인데...

녀석은 터벅터벅 걸어 비슷한 모습을 한 사내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아이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끝까지 시선으로 쫓았지만, 더 이상은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수백명의 훈련병들 사이로 동생은 묻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녀석은 한동안 자신의 존재를 다르게 위치지어야 할 것이다. 응석받이 막내아들에서 이름없는 훈련병으로, 이병 아무개로, 일병 아무개로, 상병 아무개로... 그렇게 2년이 지나가면 아이는 돌아오겠지. 좀더 자란 모습일까? 아니야 바라지도 않지. 그냥 몸성히 돌아오는 거... 그것 하나만 바라자.

저녁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밥은 먹었냐, 집엔 잘 내려갔다, 하는 일상적인 대화였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잠겨 있다. 맹맹하게 콧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니 많이 우신 모양이다. 엄마의 눈물은 언제나 날 슬프게 한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지만, 엄마의 눈물잠긴 목소리라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녀석을 낳고 키우며 느꼈던 희노애락 같은 것이 갑자기 나를 덮치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졌다. 처음으로 품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 그동안 수백만, 수천만의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울었겠지만, 나 자신은 한번도 실감해보지 못했던...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아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버스 창밖엔 비가 세차게 내리고, 라디오에선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이 내리고 버스는 종점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기에 나 또한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이 눈물은 군대간 그녀석이 아니라 순전히 엄마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다. 부디, 그녀가 딱 오늘 하루만 울었으면 좋겠다.

...

전보다 자주 전화하고, 더 자주 집에 내려가야겠다. (나도 철 좀 들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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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2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편의 수필이네요 말 그대로......(그런데 그 셔틀버스 문제는 정말이지 ㅡ ㅡ) 2년의 시간 그렇게 떨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 단체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들 말하더라구요. 그런데 군대는 동생분께서 가시는데 정작 착해지는 쪽은 sunnyside님이 되실 것 같은데요? 그러고보니 첫 코맨트인 것 같네요. 게으름의 소치이니 너그러이 이해를 ㅡ ㅡ;;;;

starrysky 2004-06-2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께서 많이 외롭고 슬프시겠어요. 아들네미 군대 보낸 어머니들은 아무리 씩씩하고 대범한 분이시라도 한동안은 늘 눈물로 지새우시더라고요. 하긴 좋은 데 보낸 것도 아니고 그 힘든 군대로 들여보내놓고 돌아서시는 발걸음이 오죽 무거우시겠습니까. 집안의 텅 비어버린 자리는 또 얼마나 크고요..
sunnyside님께서 위로 잘 해드리고 동생의 빈 자리를 가능한 한 채워드리세요.

mannerist 2004-06-2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하셨군요. 의정부 306보충대 가는 애들에게 언제나 해주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의정부역 앞 버스 이야긴데요. 전날이라도 페이퍼 쓰셨더라면 말씀드리는건데요. 역 근처의 값싸고 양많으며 덤으로 무료버스도 운영하는 음식점을요. 의외로 착한 음식점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헌혈증 한 장을 주면 돌솥설렁탕 두 그릇을 공짜로 주는 곳도 있었구요. 매너의 동료들, 이덕택에 피 팔아 가끔 잘 먹었다죠. ㅋㅋㅋ... (매너의 근무지는 의정부역과 바로 붙어있는 부대여서, 오며가며 조금 줏어들었습니다)

동생분 몸 건강하시길 빕니다.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가는 부대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악명높은 모모사단은 피해가시길, 6주 훈련 무사히 받으시길, 몸 건강히 사랑하는 누이와 가족들 품에 2년(매너 전역하고 세달인가 후 두달 줄었음 T_T) 후 무사히 안기길 빌겠습니다.

sunnyside 2004-06-2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감사합니다. 첫멘트 남겨주셔서, 그리고 위로해 주셔서요.. 정말 제가 많이 착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은 자주 내려가지도 않고 전화도 않는 못된 딸이었답니다.^^;
starry sky님, 우리 엄니는 지금쯤 잠에 드셨을까요?... 그리움과 적막함에 몸을 뒤척이고 계시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매너님, 그게 그랬군요! 미리 말씀드려 조언을 구하는 건데... 저도 의정부 갔다가 악명높은 모모사단에 들어갔던 친구가 있어서 우려는 되지만.. 뭐, 별일 있겠나요. 잘 다녀오겠죠. ^^

찌리릿 2004-06-23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당분간 어머니께서는 밥상을 대하실 때마다 우실겁니다. TV에서 젊은 군인들이 나와도 우실거구요.
동생도 자다가 문득 깨고는 여기가 집인지 어딘지 몰라 한참 멍해하다, 20초가 안지나 어둠 속에서 여기가 훈련소 내무반이구나... 하고는... 집을 그릴겁니다.
이렇게 아들과 부모님은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각자, 멀리서 나눌겁니다.
가장 효자가 되고, 가장 아들을 그리는 시간...
하지만... 3번째 나온 휴가에서 집에 도착한 아들은 "엄마 오늘 계모임 간다. 국 끓여놨으니 데워먹어라"는 자기방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보게 된답니다. ^^

저도 괜히 1995년5월의 그날들이 생각나네요. 오래전의 일인데... 어머니를 생각하고, 내무반에서 새벽에 잠깐 깼을 때의 그 막막함이 생각나... 눈이 찡해졌습니다. ㅋㅋㅋ

ceylontea 2004-06-23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건강히 잘 다녀오시기를..
서니사이드님.. 부모님께 전화 자주하시고.. 더 잘 찾아뵈세요..
음.. 저도.. 그래야 겠어요..

nutmeg 2004-06-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사람 마음 엄청 찡하게 만드네 ㅠ.ㅠ 어서 통일이 되고 의무로 군대 안가도 되고 그런 세상 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2000년이 통일원년이 될 거라 확신했었는데!) 하지만 덕분에 써니사이드 님이 조금 더 효녀가 되신 건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결혼하기 전에 부지런히 효도해요. 물론 결혼하고서도 하는 거지만 조금이라도 이를 때 시작해야 (요즘 나의 생각 ;;)

水巖 2004-06-2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께 자주 문안드리세요. 우리 어머님은 장남인 내가 군대가고 6개월이나 밥상받으시고 우셨답니다. 나중에 휴가 나와서 살이 피둥피둥 찐(부엇겠죠)모습 보시고 다음부터 우시지 않었다고 하더군요. 막내니 오죽하시겠습니까.

sunnyside 2004-06-2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엄마 계모임 갈테니, 국 데워먹으라고 할 수 있는 날. ^^; 내동생이 마음이 너무 여려서... 울 엄마, 원래는 강하신 분인데 나이가 드시면서 예전 같지 않으시더군요. 두 사람,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서로를 생각하는 관계에 익숙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실론티님, 맞습니다. 오늘도 빼먹지 말고 전화해야겠어요.
예린님, 제가 정말 효녀가 되어야하는데.. ^^; 예린님도 요즘 부쩍 부모님 생각을 하게 되시나봐요. 조금이라도 이를 때에 효도하는 게 정답같네요.
수암님, 감사합니다. 요즘은 많이 짧아져서 망정이지... 예전에는 어머님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