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 명쯤은 올리버를 연민해 주어야겠기에.그래, 나는 올리버를 연민하기로 했다.이 소설의 핵심은 한 인간의 다층적 내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일방적 비난인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때, 그 비난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나는 좀 불편하다.
어떤 삶은 그저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그저 들어주는 것조차 고달플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고개를 돌리게 할 수 있다.그래서 종종 들어주고 바라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윤리적일 수 있다.웃기시네.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은 꺼져라.나무 밑에 붙들려 나무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올 수 없는 앨리시어의 뼈 아픈 일갈이다.
한때 슬픔은 전염된다고 믿었다. 한때의 믿음이었다. 한때 슬픔이 힘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비극을 슬퍼하지도 못하고, 이 비극을 다른 어떤 힘으로 전환하지도 못하고 그저 지나가길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나 어떤 슬픔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고 채 치워야지 못한 골방에 고여 누군가를 벼랑 앞에 서게 한다. 왜 늘 약한 이들만이 죄책감을 갖게 될까?? 2014년은 어떤 이들에게는 슬픔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