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예수 랜덤소설선 1
정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책의 힘이란 정말 대단해서, 이 책은 중학교 때부터 외웠던 사도신경의 고백을 무색하게 했다. 빌라도는 그리스 철학으로 무장한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몰락한 가문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성정하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합리적으로 사람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수의 처형을 결정하며, 그저 손밖에 씻을 줄 몰랐던 어리석은 빌라도는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서서히 지워져갔다.

고백하자면 나는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보냈다. 아주 작은 개척교회에서 목사님을 아버지 삼아, 암울한 시절을 견뎌냈다. 그 때 여호수아는 나에게 또 다른 신이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나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했다는 그 말을 의지해 한 시절을 살아냈다.

정찬의 소설 <빌라도의 예수>는 역사와 철학, 인간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세계를 그려내려는 또 하나의 시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목적은 신에 대한 부정에 있지 않다.

작가는 소설 초반 구약의 시대를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해 냉철하게 비판해 나간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정치적인 상황 아래 만들어졌다는 그의 해석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신명기에 대한 빌라도의 이해는 예수에 대한 이해로 그대로 이어져 소설을 확장해 나가는 힘이 된다. 예수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 동정녀임을 부정하는 마리아의 고백이나, 예수를 향한 한 여인의 애절한 사랑, 분노하고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에 대한 묘사나, 밀고자가 사울이라는 암시는 분명 성경과 다르지만, 그것이 신성을 부정하는 결론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빌라도의 마지막 모습이야 말로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 소설은 빌라도의 매력으로 인해, 예수의 신성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의지하여 정세를 판단하던 빌라도의 신앙고백은 지루한 얼굴로 예수천국을 외치는 어느 전도자들보다 절실하게도 보이니까.

나는 어쩌면 오랫만에 성경을 읽기 시작할 지도 모르겠다. 성조기를 흔들며 기도를 하던 한국교인들의 모습에서 나라와 국가 원수를 위해 기도하던 청소년기를 떠올렸던 나는 이사하면서 성경을 한 구석에 숨겨버렸다.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을 부수고자 했던 예수, 그가 있다는 교회가 또 다른 강도의 소굴쯤으로 여겨지는 것이야 여전하지만, 나는 빌라도와 같은 심정으로 다시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그 아이의 고통을 함께 해서 그 아이보다 더 아파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울의 고백이 문득 가슴 절절히 느껴져서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했던 여호수아를 믿는 대신에, 나는 혹여 사람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예수를 만나고 싶다.

이 간절한 고백으로 그를 부르면, 그는 이스라엘을 누볐던 그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광화문 한 복판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을 향해 세상을 거꾸로 하겠다, 외쳐줄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소설의 힘은 참으로 위대해서, 잊고 있었던 옛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적으로만 알았던 한 인간의 이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 전혀 다른 어감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이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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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7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09-0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주신 님 > 안 그래도 비 그칠 것 같아 우산 없이 나섰다가, 오랫만에 달리기 열심히 해서 회사에 뛰어들어왔습니다. 이제서야 출근한 게으름쟁이 선인장입니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04-09-23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09-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주신 님 > 전요, 더위에는 무뎌도, 추위에는 민감해서요, 밤에 입을 겉옷과 얇은 목도리를 준비해서 다녀요. 사막의 밤이 얼마나 혹독한지, 전 잘 알고 있거든요. 동해의 맑은 날 한 조각이 서울에서 빛납니다. 고마워요...
 
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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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고, 가네시로 카즈키의 모든 소설을 다 사 두고도, 다음 소설을 읽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다른 책이라고 별로 읽은 것도 없으니, 나는 아직 이 작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다음 소설을 읽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80년대, 이름도 거창한 독후감, 글짓기 대회가 자주 있었다. 반공 독후감, 보건의 날 기념 글짓기, 한글날 기념 글짓기, 민족의식고취 독후감 등... 대회장에 가면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들을 몇 권 펼쳐놓고, 그 중에 한 권을 골라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세상에 주어진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까지 써야 하는 대회라니. 아무튼 그 때 나는 서울의 몇몇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우장춘 박사의 전기를 읽었고, 미래 사회를 그린 상투적인 SF 소설을 읽었다. 책 속에서 우장춘 박사는 길가의 민들레는 밟히면서도 자란다,고 했던가. SF소설에서는 2000년도가 되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바다 밑에 도시가 생겨난다고 했다.

말이 길어졌다. 그 때 읽었던 책 중 몇몇은 민단과 조총련, 현해탄 같은 단어를 품고 있었다. 그 책 속에서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그녀들을 만났다. 그들은 부모때문에, 혹은 폭력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쪽에 발을 딛고 있는 가련한 민족이거나, 왜곡된 민족주의로 똘똘 뭉쳐 생명도, 사랑도, 우정도 거부하는 폭력적인 인간들이었다. 계몽의 대상이거나,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그들. 나는 그들에 대한 혐오와 동정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글을 잘도 지어냈고, 이 글로 상을 타기도 했다.

물론 그의 소설을 읽기 한참 전에, 이미 그 때의 생각들을 버렸던 건 사실이다. 아니 조총련이니 민단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지금이라도 뭐 다를 것도 없지만...

<Go>는 한 아이의 성장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그의 절절한 연애 감정에만 집중하기에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재일"이라는 존재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난다. 민족이니, 국가니, 정체성이니 하는 관념적인 규정에 묶이고 싶지 않은 스기하라는, 그러나 너무도 절절하게 "재일"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서슴없이 주먹을 날리는 아버지를 이기고 싶다는 욕망에 똘똘 뭉친 어린 남자.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의 정서적 교류를 무엇보다 좋아해서 이것저것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 친구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대해 이해해 가는 녀석.

스기하라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한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스기하라가 제일의 쌈짱이 된 이유가 그가 민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때문이고, 그렇게 영혼을 공유하던 그녀와 가슴 아픈 갈등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그가 한국인의 피를 가졌기때문이다. 또한 가장 친했던 정일이의 죽음 역시 "재일"이라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 그래서 더욱 처절하게 생을 옭아매는 것들.

그래서 스기하라는 먼 인류의 조상에 대해 생각한다. 뿌리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생각인지, 이 아이는 피를 흘리며, 가슴 아픈 이별을 하며, 아버지를 향해 주먹질을 하며 깨달아간다.

그러나 내가 본 스기하라의 세계는, 유년시절에 엿본 현해탄의 아픔과는 분명 다르다. 작가는 아주 쿨하게, 뿌리라는 상투적인 개념을 확장시킨다. 뿌리와 피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인간은 더욱 자유로울 수 있음을, 나는 어린 녀석의 관념 속에서 깨닫는다. 나를 규정하고 있는 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이것들에 발목 잡혀 세상을 조소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지금의 내 나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나는 스기하라의 주먹질을 보면서 깨닫는다.

자기의 의식 안으로만 좁아지는 세상, 니편 내편 갈라놓고 싸움이나 하는 세상. 빌어먹을 이 세상 따위는 어쩌면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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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네요.
뿌리도 쿨하게~~ 스기하라의 주먹질~~

선인장 2004-08-1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영화도 나왔는데, 아직 보지 못했어요. 스기하라 녀석에게 반해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만큼 멋있을지...

2004-08-12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08-1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주신 님 > 모든 계절은 기다릴 때만 간절한 것 같습니다. 여름이 가면 또 여름이 기다려지겠지요. 이상하게도 올 여름은, 그리 더위를 타지 않습니다. 선인장이라는 닉네임에 적응해 가는 건지, 아니면 몸이 정상이 아닌 건지. 남들은 더워서 잠을 못 잔다고 하던데, 저는 혼자서 이불을 꺼내들고, 몸을 웅크리며 지냅니다. 그런 새벽이면 이상하게도 미워했던 사람들만 꿈에 나와, 꿈속에서도 엉엉, 울곤 합니다.
마음을 정리해야 할 터인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아서, 아직도 어서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곳의 선인장이 잘 자라고 있다 하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2004-08-16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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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오로지 책이 얇다는 이유. 책 한 권 제대로 붙들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던 7월, 나는 아무 부담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책은 무척이나 빨리 읽혔다. 담백하고 과장 없는 문체,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성찰하는 작가의 시선.

이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어릿광대 노릇을 하며 살아가야 했던 아버지의 사연. 아버지가 왜 어릿광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가며 역사에 대한 눈을 뜨는 아들의 성장기.

어떤 텔레비전 프로에 소개될 정도로 짤막한 이 이야기는 그러나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떤 역사도 기록하지 않는 독일군 병사의 따뜻한 위로,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자 대신 죽음을 길을 간 누군가의 아픈 선택, 그리고 그 모든 과거는 필연적으로 현재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는 명징한 인식.

그리고 생각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시간을 대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자식조차 부끄러워하는 어릿광대 아버지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저마다 자기변명하기에 급급해, 부끄러움도, 죄의식도 없이 살아가는 지금, 이 짧은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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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꽃을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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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나는 들국화의 콘서트가 있던 자리에 있었다. 함께 동행했던 지인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슴에 담고 먹먹해 하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특별한 흥분 같은 건 없었다. 들국화의 노래, 참 좋다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국화, 라서 두근거릴 이유 같은 건 담고 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가 열리는 내내, 나는 좀 슬펐던 것 같다. 무대에 열기가 가득하고, 객석에 번지는 동안에, 나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그 세계가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졌다. 그 슬픔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이유 따위 생각지 않고, 그대로 울어버릴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 날처럼 답답했다. 임기의 사연은 마치 직소퍼즐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그림이 기려지지 않았고, 코디어의 모습은 억지로 맞춘 퍼즐 조각처럼 자꾸만 어긋났다. 화자인 상현은 모든 사연을 알고 있지 못했고,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한 편의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다.

완성된 그림이 보이지 않아, 나는 내 슬픔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임기가 죽어서? 코디어도 죽어서? 상현과 미아, 혹은 미아와 코디어의 사랑이 애절해서? 비교적 명확한 줄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건 너무 어렵다. 상현과 미아의 만남은 너무나 짧고 임기의 사연은 그렇게나 막연하며, 코디어와 미아의 만남은 현실 같지 않다. 아주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여지는 오경택마저도 명확한 이미지를 갖기 어렵다.

아, 이건 결코 소설의 구조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긋나고 흩어져 있는 관계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긋남과 알 수 없음, 알지 못한 채로 덮어두고, 또 어긋난 채로 만들어지는 관계의 불가해함. 1mm의 차이만으로도 바뀔 수 있는 세상이, 1mm의 차이만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의 어쩔 수 없음. 우연과 필연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

문제의 핵심을 알고자 하는 상현의 의지가 부족할 때마다, 그것을 안타까워하던 어리석은 독자는, 나중에야 숨겨진 문제는 없음을 이해한다. 상현이 부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코디어와 임기의 자살기도를 막을 수 있었을까. 상현이 그 날 코디어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았다면 코디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상현이 그 날 미아의 눈을 가렸다면? 미아의 병실을 찾아갔다면? 임기의 집을 찾아간 것이 상현이었다면? 그런 질문 따위가 세상에 존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소설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정작 중요한 것은 1mm,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정작 이 소설을 읽고 또렷하게 남는 들국화의 노래. 나는 며칠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1mm의 차이로 어긋나버린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을. 혹은 1mm의 차이로 나를 찾아온 많은 인연들을. 그리고 이해한다. 직소퍼즐처럼 조각조각 맞출 수 있는 사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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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7-1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 날씨이기에 시원한 것이 그립군요.겨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함을 그리워하겠지만.일년에 몇 번 마시지 않는 코카콜라가 오늘은 좀 생각나네요.즐거운 한 주 보내소서.

선인장 2004-07-2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월요일부터 좀 꼬여버렸습니다. 불필요한 일들로 고민하는 게 싫어서,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복잡한 생각을 요하는 일이 벌어지네요.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솔직한 게 미덕이 아닐 때도 있나봅니다. 아무튼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야 할 텐데... 콜라 마시면 좀 나아질까요?
Paper-X-Ray님> 분명 누군가의 서재에서 뵌 기억이 있는데, 어디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클림트의 키스부터 시작해서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조각들을 열중해서 쳐다보면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지요. 며칠 전, 영풍문고에 갔다가 또 하나를 사 왔는데, 언제 시작할지 모르겠네요.

hanicare 2004-08-02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름의 꼬리만 넘기면 다시 가을이 온다는 게 실감이 안나는군요.나는 여름이면 겨울이 영영 안 올거 같아 걱정하는 바보랍니다.다시 가을이 오면 살아 돌아온 가을이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날 것 같지요.차가운 세숫물에 손을 담글 때 찌르르 울리는 우수같은 것.
아직은 여름하고 더 친해져야 할 사이입니다.선인장님 생각하며 미니 선인장들을 몇 개 샀답니다.너무 귀엽고 깜직해서 껴안아주고 싶은데 이 놈의 가시들은 어떻게 하지요?

선인장 2004-08-0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일은 많은데, 좀처럼 진도는 안 나가고, 저는 긴 이별 앞에 있습니다. 긴 세월 쌓인 정이야, 마음이야, 이 곳에 두고 간들, 그것 역시 모두 가져가는 것인데,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두근거립니다.
마디마디 가시가 박혀, 그걸 품에 안으면, 하니님 많이 쓰라리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가시들의 존재 따위는 잊고 꼭 안아주세요. 긴 여름 폭염에 지친 선인장 속에 고인 따뜻한 물 한 모금, 님의 가슴길로 촉촉이 배어들 수 있도록....
동생 보내고, 긴 글로 인사하겠습니다.

2004-08-04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08-0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주신 님>정말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너무 감동이에요... 영혼의 존재야 언제나 믿어왔지만, 인간이라는 이 어설픈 동물의 생이 부디 여기가 끝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는, 그래도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말로 우리 같은 동네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따금 속내 털어놓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곁에 있어 한 여름 시원하고 든든합니다. 저린 어깨 기대고 있으면 한 줌 그늘이 어찌나 시원한지요. 저도 꿋꿋하게 잘 견디겠습니다.
감사해요...
 
피터팬 죽이기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주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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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문학상", "작가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1월 1일이면 바지 주머니에 손 꼭 끼고 나가 문 연 가판대를 찼던 버릇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심사위원들이 아무런 주저없이 두 편이나 당선작으로 선택할 정도라면, 그 수준을 믿어도 될 것 같았기때문이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주문하고서 이 책을 먼저 읽은 건, 이왕이면 참신하고 새롭다는 그 소설의 맛을 보고 싶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 그리고 그 지독한 비린내.... 이 책에 대한 소개는 그런 기대를 하게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데 열 흘이 넘게 걸렸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태백산맥을 열흘만에 읽었던 내 독서습관을 고려할 때, 이 책을 읽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소설 속 화자 예규의 등장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몇 장이 넘어간 이후로 새로운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학교에 갇힌 예규와 영길이의 모습은 나의 이십대 후반과 그대로 겹쳐졌다. 그들은 한 시대의 나였고, 내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던 동기나 선배였다. 무기력이 바닥을 쳤을 때의 나, 너무나 한심스러워 눈을 돌리고만 싶었던 선배, 정말로 등이라고 한 대 쳐서 학교 밖으로 내몰고 싶었던 후배.... 어쩌면 너무 쉽게 감정이입이 되고, 너무 쉽게 그들의 일상에 빠져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그들에게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예규나 영길이는 그 때 내가 보았던 후배나 선배들의 모습, 혹은 내가 사람들에게 보였던 그 모습, 딱 거기까지만 고민하고 행동한다. 그래, 겉으로는 저래도 속으로는 뭔가 다른 세계를 꿈꾸겠지, 그래 혼자서는 더 많은 고민을 하겠지,라는 내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딱 내가 경험했던 것만큼의 세계만을 보여준다. 답답한 지하의 자취방과 몇 번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 21세기에 적응하지도 못하면서 20세기의 열정도 없었던 동아리방, 그 진부하고 권태로운 풍경들.

이 세상은 소설가가 만들어낸 한 편의 소설이며, 자신은 그저 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예규의 생각은 20대 청년의 헛된 망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이 겪는 세상도, 이들이 생각하는 소설도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막 소설책을 덮고, 나는 결국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예규는 두 번의 연애를 했고, 승태는 거짓말이나 오해로 인해 두 번이나 죽음을 경험했다. 이름을 댈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정작 이 소설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변화이다.

등장인물도, 작가도, 책을 읽는 독자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소설, 혹은 변하게 하지 않는 소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책 속에 등장하는 청춘의 지리멸렬함만큼 더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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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7-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이 아니라 변화.
마모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
이 리뷰를 보면서 생각하는 말입니다.

선인장 2004-07-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에 대한, 그것도 신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점차 사라지는 건, 나와 문학과의 거리가 멀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정작 이 소설이 씁쓸했던 이유는 그것이었어요. 어쩌면 소설 속에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독자인 내가 변하지 않아,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는지도...
그곳의 비냄새, 여기와는 다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