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이것이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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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내야 할 것은 ‘장애’ 아닌 ‘두려움’이었다
가족서커스단 ‘플라잉 월렌다스’ 일원 활동
44년전 사고로 3명 숨지고 마리오 영구장애
30m 높이서 자전거로 쇠줄타고 시카고강 건너
한겨레
[이사람] 하반신 마비 극복 다시 서커스 도전한 마리오 월렌다

서커스 공연 도중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마리오 월렌다(64·사진 아래)가 19일(현지시각) 오전 시카고 강 위에서 다시 한번 줄타기 스턴트를 선보였다. 월렌다는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가족 서커스단 ‘플라잉 월렌다스’ 일원이었다. 플라잉 월렌다스는 7명의 멤버들이 피라미드 모형을 한 채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명성을 쌓았었다. 그러나 1962년 디트로이트 공연 당시 피라미드가 무너지면서 3명의 멤버가 추락해 2명이 숨지고 마리오 월렌다는 하반신이 마비됐다.

또 당시 4명의 멤버들이 자신의 몸에 매달린 상태에서 쇠줄을 잡고 견뎠던 가장이자 마리오의 양아버지인 칼 월렌다는 1978년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에서 두 호텔 사이에 연결된 줄타기를 하다 강한 바람으로 추락해 73살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등 비극이 이어졌다. 하반신 마비 사고 이후 서커스계를 떠나 콘택트렌즈 연구소에서 일해온 월렌다는 이날 오전 9시께 시카고 강 위를 가로지르는 쇠줄 위를 특수 제작된 전기 자전거 ‘스카이사이클’을 타고 건넌 뒤 다시 시작점인 머천다이즈 마트까지 뒤로 스카이사이클을 타고 가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 주변에 모인 시민 수천명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5분간에 걸쳐 진행된 월렌다 공연은 시카고 지역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월렌다는 “시카고 강 위 100피트 높이의 쇠줄에서 공연 도중 바람으로 줄이 흔들릴 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월렌다는 2001년 기네스북 기록을 위해 플로리다주 새라소타의 주차장 위에서 스카이사이클을 이용한 공연을 했다. 당시 높이는 40피트. 월렌다의 공연을 지켜본 시민들은 “저 높이의 쇠줄 위를 저렇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다니 놀라울 뿐”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연 장소 주변에는 시카고 소방국 소방관들과 시카고 경찰국 해상팀이 출동해 사고에 대비했다.

시카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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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삶터 깨운 ‘철마의 경적’
[기획]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① ‘성스러운 땅’이 열리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 지난 7월1일 개통한 칭짱(청장) 철도도 오지 티베트를 중국, 그리고 세계로 열어놓았다. 푸른 하늘과 설산으로 꽉 찬 자연 속에서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해온 티베트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베이징에서 라싸까지의 거리가 총 4000km가 넘는 칭짱철도의 열차가 설산 옆 철교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관련기사]
철길은 세상을 잇는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7월1일 개통한 칭짱(청장) 철도도 오지 티베트를 중국, 그리고 세계로 열어놓았다. 푸른 하늘과 설산으로 꽉 찬 자연 속에서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해온 티베트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독립적인 현대화와 본격적인 중국화의 갈림길에 선 티베트를 네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마지막 숨은 ‘성스러운 땅’ 하늘 길 넘어 방문객 급증

티베트에는 유난히 성스러운 땅이 많다. 자치구의 수도인 라싸 자체가 ‘성스러운 땅’ ‘신의 도시’란 뜻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색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아파트 창문에조차 조그마한 단청을 꾸민다. 화려한 색감은 티베트 자연의 수려한 풍광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티베트인들 만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겨레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 장례인 ‘토쭌’(천장)은 죽은 이의 살과 뼈를 찢어 독수리나 물고기한테 주어 치른다. 이승을 떠난 부모형제의 살을 먹고 자란 새나 물고기를 만날 수도 있다고 믿기에 티베트인들은 새나 물고기를 사양한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조차 먹이사슬의 둥근 원 안에 자리한다.

티베트인들은 한평생 ‘성스러운 땅’ 라싸를 맴돈다.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걸어(오체투지) 라싸까지 순례한다. 라싸에서는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인 포탈라궁이나 유서깊은 조캉 사원(다자오쓰) 주위를 기도하며 맴돈다. 이들의 발걸음은 한평생 둥근 원을 그린다. 죽은 뒤에도 윤회의 둥근 고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환생한다고 믿는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나 무량광불의 화신인 판첸라마가 숨지면, 온갖 힘을 기울여 그가 환생한 어린이를 찾아낸다. 티베트에서는 삶과 죽음조차 윤회의 원 안에 있다.


 

»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종교와 세속적 권력의 중심이었던 포탈라궁은 티베트인들에겐 여전히 마음의 중심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던 지난 12일, 중국 윈난성에서 온 티베트인들이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전통복장을 준비해 와 궁 앞에서 갈아입고 사진기 앞에 섰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윤회의 터전에 직선의 칭짱철도=모든 사람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아가는 라싸에 가장 직선으로 달리는 교통수단인 열차가 지난 7월 첫 경적소리를 울렸다. 철마가 마지막으로 숨은 경건한 땅까지 들이닥쳐, 지난 200년 동안 자신이 수행했던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 구실을 마지막으로 수행한 셈이다.

2002년 중국 서남 열차의 종점이던 칭하이성 거얼무에서 첫삽을 뜬 칭짱철도는 지난해 10월12일 거얼무∼라싸 구간의 공사를 마친 뒤 시험 운행을 거쳐 지난 7월 1일 성대한 개통식을 열었다. 개통식에는 1988~92년 4년 동안 티베트 공산당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평균 해발 4천m를 지나는 이 철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을 운행해, 이미 ‘하늘의 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고원 열차는 칭하이성 서쪽의 거얼무에서 고원용 기관차로 머리를 바꿔단 뒤 칭짱고원을 오른다. 시닝에서 라싸까지는 26시간, 베이징에서 라싸까지는 48시간을 꼬박 달린다.

‘원형’의 문화 가로지른 ‘직선’ 어디로
“물류 비용 1/5로 줄어” 윤택한 생활 기대
중국화 가속·자연친화적 삶 파괴 우려도

» 칭짱 철도 이용한 티베트 여행 안내
고원의 절경이 요구하는 대가인 고산병=거얼무에서 퉈쥐까지 11시간 정도 달릴 동안 차창 밖에는 삭막한 황무지가 이어진다. 황허와 양쯔강의 발원지인 싼장위안,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해발 5072m의 탕구라산역, <서유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지나갔다는 설산 등의 절경이 황량함을 달래준다.

퉈쥐를 지나 해발 4702m인 안둬에 이르면 이끼와 잔풀이 융단처럼 황무지를 감싸기 시작한다. 황무지 위로 풀빛이 짙어지면서 차창 밖에 등장하는 생명체 또한 양, 야크(들소), 노루, 까마귀 등 다양해진다. 철마가 춰나 호수를 지나면 풍광은 절정에 다가간다. 이끼와 잔풀은 고원의 바람에 나부끼며 무성해진다. 옛 서북방 민족들의 활동무대인 나취와 당슝을 지나면 눈산과 끝없는 고원, 부드러운 초원과 늪지대, 복류천과 강물 등 고원의 모든 풍광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대단원에 이르렀음을 고한다.

평균 해발 4000m에서 연출되는 절경들은 두통과 호흡곤란, 협심증 등 고산병 증세를 대가로 요구한다. 칭짱열차는 객실 좌석마다 산소를 공급하며, 두 명의 의사가 비상 대기한다. 열차 운행 때마다 3~10여명이 산소마스크 신세를 진다. 이 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 고산병 증세로 숨진 사람은 아직 없다. 칭짱철도공사 외사판공실의 왕페이쉰(51) 주임은 “칭짱철도 개통 이후 9명이 사망했다는 일부 중국 매체의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개발과 파괴의 두 모습, 칭짱철도=철도 개통 이전에 티베트로의 주요 교통수단은 불편한 버스나 비행기였다. 중국의 서민들은 감히 티베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다. 화물열차가 운행되면 티베트를 오가는 물류비용은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은 15일 “철도 이용 전 물류비용은 1t의 화물을 1㎞ 우송하는 데 5~6마오(약 62.5~75원)였으나, 철도를 이용할 경우는 1마오(약 12.5원)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싸시의 통계는 철도 개통 이후 라싸 방문객이 두 달 동안 50~60% 이상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도의 개통이 티베트인들의 삶을 한결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은 개발에 따르는 당연한 기대다. 티베트인들이 꾸려 온 자연 친화적인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따른다. 한족의 빠른 유입으로 티베트 지역의 ‘중국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가장 높다. 라싸 지역에서 택시 운전기사는 80%가 한족이다. 라싸의 경제는 외지에서 온 투자자들이 쥐락펴락한다. 분명한 것은 칭짱철도가 원형의 윤회 터전인 티베트에 현대화된 직선의 삶을 옮겨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직선의 삶이 외지인들에 의한 티베트 사회·경제 지배 현상의 심화일지, 아니면 티베트인들 스스로의 현대화된 삶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싸/글 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 지난 7월 첫 기적소리를 울린 칭짱철도가 티베트를 변화시키고 있다. 라싸 인근의 당슝 지역의 티베트 주민들이 철교 옆 들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성스러운 3대 호수 중 하나인 나무춰 호수가 설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해발 4718m에 위치한 이 호수는 서울 면적의 세 배 가까이 되며,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소금호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소금호수이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사원과 궁전, 산과 호수와 강, 마을과 가정집 지붕에는 ‘타쭤’라 불리는 오색찬란한 기도문이 만국기처럼 걸려있다. ‘타쭤’는 기도문이나 경전의 내용을 오색의 천에 새겨 줄로 꿴 것이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산에는 양들과 야크가 부족한 풀을 뜯기 위해 이곳저곳을 휘젖고 있다. 라싸 인근 4000여m 고원에서 목동이 풀먹는 양떼들을 지켜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종교와 권력의 중심지였던 포탈라궁.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기차 안에서 본 강. 하늘인지 강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색깔이 비숫하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하늘에서 본 티베트. 굽이 굽이 산 능선을 따라 길들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민가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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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부터 시험시작이다. 이것이 예비령인지 본령인지 어제 학년 회의에 못 갔더니만 당장 이렇게 표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 우우거리며 섰을 뿐 누구 하나 안내 방송 - 책상 정리며 시간표 판서 등에 신경쓰는 넘이 없다. 교탁을 세게 두드리며 "5열 8석으로 책상 배열해라~ 짝지 아직 안 온 사람은 대신 해주는 거 알제?" 하고 시험 시간표를 판서했다. 웅성웅성.. 20분 종이 울렸는데 겨우 자리에 앉혔다. ㅅ정이와 ㅇ주가 아직이다. 에구 어제 종례시간에 주의를 줘야했는데 닭알 까먹는다고... 문제지를 가지고 올 시간이 없어 그제서야 허둥지둥 교무실로 2학년실로 인쇄실로 쫓아다녔는데 교실에 가보니 친절한 ㅈ형샘이 배달해놓았다. =333

3교시 우리반 감독이다. 어제 조퇴한 ㅅ진이에게 꿍쳐둔 달걀을 쥐어주고 교탁에 앉았는데 녀석이 배가 고팠던지 시험 시간인데도 아랑곳없이 그걸 야금야금 까먹고 있다. 그 모습 예뻐라~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현ㅇ이에게 조금 나눠주고 앞자리에 앉은 ㄷ원이에게도 나눠주고.. 아! 카메라!! 2학기에는 아이들 모습을 많이 찍어두기로 마음 먹었지! 마침 시험을 다 친 듯한 ㅅ연이에게 부탁해서 교무실 책상 서랍에 있는 낡은 카메라를 가져와달라 했다.

그 큰 카메라로 줌인 줌아웃하며 아이들 모습을 살짝살짝 찍었다. "찍어줄까?"라고 물어서 선듯 "네~"하는 녀석이 없기에 그냥 허락 없이 몰래몰래 열심히 문제 푸는 모습, 책 읽는 모습,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 등 이러 저런 아이들의 모습과 평소의 교실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들은 뭔가에 몰입하고 있는 즈들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지금은 모른다. 이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은 모른다. 당연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교실을 어슬렁거리며 몇 판을 찍고, 3교시 종료령이 울리고. 즈들끼리 내가 사진 찍은 사실에 대해 뭐라뭐라 고시랑거렸다. "그래, 자다가 눈 떠 보니 샘이 교탁 위에 턱 서있는거라. 꿈인줄 알았는데 셔터소리가 나서..." "그래서 나는 얼렁 얼굴 숙였다 아이가"  불쑥ㅎ명이 녀석 왈 "샘~ 변태같아요~" 뭐, 변태? 아~ 변태란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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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유진오


  이렇다 할 아무런 업적도 남긴 것 없이, 벌써 인생의 절반을 살아 온 내다. 20 전후의 불타오르는 듯하던 정열을 생각하면, 지나간 열다섯 해 동안 무엇을 해 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깐으로는 허송 세월은 하지 않노라고 해 왔는데 결국 이 꼴이니, 앞으로 남은 반생이 또 이 꼴로 지나가 버리면 어찌될 것인가. 송연한 노릇이다.

  그 전에는 내 나이 젊은 것을 핑계삼고, 누가 무엇을 쓴 것이 몇 살, 누가 무슨 일을 한 것이 몇 살 하고,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위로해 왔다. 그러나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던 누구누구의 나이를 어느새엔가 나 자신이 넘어서고 말았으니, 인제는 무엇으로써 스스로 위안할까. 환경을 따져 보고 시대를 원망해보고 한댔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위대한 정신은 항상 시대나 환경에 지배됨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거꾸로 시대나 환경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이 말이 지나친 말이라면 그들은 어떠한 시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그대로 그 속에 매몰시켜 버리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철벽을 뚫고 자신을 키워 나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정신에 무엇인가를 플러스하였다. 나이 반생을 넘어서도록 아직 아무것도 일다운 일을 하지 못한 나는 결국 나 자신의 무능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7, 8평 되는 안마당에다 지난 4월 아내와 아이들이 두어 평 되는 화단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비록 크지는 않으나마, 무궁화를 한 나무, 라일락을 두 나무 심은 뒤에, 작약, 옥잠화, 국화, 은방울꽃, 칸나, 촉규화, 백합 등 속의 다년생 초본과 함께 채송화 봉선화 해바라기 양귀비 백일홍 분꽃 코스모스 한련 나팔꽃 등 속의 화초씨를 잔뜩 뿌렸다.

  20평 화단이라도 비좁을 만큼, 여러 가지 나무랑 화초랑 심길래 나는 여러 번 나무랐으나, 아내와 아이들은 듣지 않고 다 심고 나서, 아침 저녁 정성껏 물을 주었다. 며칠 지나니 나뭇가지에서는 파릇파릇 움이 돋고 땅에서는 소복하게 귀여운 싹이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신기한 것을 보는 듯 소리를 내 기뻐하고, 나는 내심 지난 번에 나무란 것을 점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린 화초들이 시루 안에서 콩나물 자라듯 비비고 나오기 때문에 밴 놈은 아깝지만 솎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약한 놈은 솎아낼 때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저절로 사그라졌다. 그리하여 두 달이 다 못 가서, 내 안마당 두 평 짜리 화단에는 두 평에 알맞은 만큼의 화초만이 남고 말았다.

  지금 우리 안마당에는, 해바라기 두 그루가 가장 키도 크고 줄기도 굵어서 좁은 화단의 주인인 양 버티고 섰고, 그 옆에 키 큰 촉규화가 자줏빛 꽃을 한창 달고 있을 뿐, 그 밖의 화초들은 모조리 볼품없이 되고 말았다.

  싱싱하게 자라는 안마당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나는 내 방 앞에 있는 병든 해바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서재 앞마당은 석 자도 못되는 넓이에다가, 6척이 넘는 벽돌 담이 남쪽을 가리어, 꽃을 심어도 안 되고 나무를 심어도 안 되는 곳인데, 5월달에 안마당에서 화초를 솎아 버리다가 그 중 키도 잎사귀도 제일 큰 해바라기 한 그루를 아깝다고 아이들이 옮겨다 심은 것이다.

  볕도 안 들고 바람도 안 통하는 담 밑에서 해바라기가 될 리 없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아이들이 하는 일이기에 내버려 두었더니, 예상한 대로 이놈은 발육이 시원치 않았다. 해 잘 드는 안마당 해바라기는 매일 매일 무럭무럭 자라나서 밑둥 직경은 벌써 한 치가 실하고 키는 내 키가 넘으며, 상수리에는 꽃봉오리를 달고 바람이 불면 쟁반같이 큰 잎사귀를 자랑스레 너울거리게끔 되었는데, 내 방 앞 해바라기는 올겨 심은 지 한 달이 지나도, 자라기는커녕 도리어 더 초라해만 지는 것이다. 줄거리는 언제까지나 새끼손가락 같고, 잎은 송편 크기만밖에 안 한다. 그럴 지경이면 키도 차라리 안 컸으면 좋겠는데, 키만은 나이값을 해 약간 자랐으니 도리어 탈이다. 워낙 가느다란데 키만은 자가웃 가량이나 크고 보니 바람기가 없어도 제풀에 쓰러질 듯 흐늘흐늘 하는 폼이 위태롭기만 하다.

  환경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같은 종자에서 나왔고, 어렸을 때 같이 자란 해바라기건만, 햇볕을 받고 못 받는 차이 때문에 안마당 해바라기와 내 방 앞 해바라기는 이렇게 아주 종자가 다른 것 같은 차이를 나타내고 만 것이다.

  이 사실만 해도 사람의 감회를 자아내기에 족한데, 이 병든 해바라기한테는 드디어 한층 잔학한 시련이 닥쳐왔다. 저번, 밤새도록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던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이 발육 부전의 해바라기는 무참하게도 담 밑 땅바닥에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보기 싫었다. 감정도 사고도 없는 식물이건만, 나에게는 그것이 생존 경쟁에 패배해 넘어진 인생의 패자 같이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운명을 저주하면서, 자기를 그런 운명속으로 몰아넣은 사람의 손을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장 뽑아버리기도 애처롭고 해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다시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꽃 필 희망은커녕 더 자랄 희망조차 없는 해바라기는 줄기와 잎이 흙에 묻힌 채, 그래도 또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물론 온몸을 쳐들 힘은 없기 때문에 맨 윗순만을 철사를 꼬부리듯 꼬부려 쳐드는 것이다. 햇빛 비치는 밝은 쪽을 향해 단 한 치라도 그곳으로 가까워지려고 .

  생명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해바라기에 무슨 목적이 있길래 그토록 좀더 살려고, 좀더 낫게 살려고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애를 쓰는 것인가. 나는 이 병든 해바라기의 악착같이 살려는 의지가 무서워 지금은 선뜻 뽑아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안마당에 서 있는 싱싱한 해바라기보다 정신적 부담은 돼 있을망정, 이 병든 해바라기 쪽으로 나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 집 안마당을 온통 제 차지인 양, 다른 화초들을 누르고 떡 버티고 서서, 제가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제가 잘나서 그렇기나 한 듯 바람이나 설렁설렁 불면, 그 커다란 잎사귀를 너울너울하며 우쭐거리는 꼴을 보면, 밉살스런 생각이 슬그머니 드는 데 반해서, 내 방 앞 병든 해바라기를 보면, 오직 애처로울 뿐이다. 애원하듯 가냘픈 목을 꼬부려 쳐든 광경은 그저 겸허하고 솔직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다 나의 부질없는 감상일 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원인이 무엇이든, 안마당 해바라기가 생의 승자임에 반해서, 내 방 앞 해바라기는 생의 패자임이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안마당 해바라기는 머지않아 훌륭한 꽃을 피우고 훌륭한 열매를 맺을 것이지만 내 방 앞 해바라기는 꽃을 피우기는커녕, 아마도 이 장마가 개이면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말라버리지 않기로선, 지금 이상의 무슨 장래가 이 해바라기에게 있다는 것인가.

  해바라기로서 할 일을 못다한 해바라기. 생에 실패한 해바라기. 실패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되, 실패의 모든 책임을 홀딱 자신이 뒤집어쓰지 아니하면 안 되는 내 방 앞 해바라기. 그러나 그러나, 나는 이 병든 해바라기한테로 쏠리는 나의 애착(愛着)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비록 보다 못해 내 손으로 뽑아다가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이 해바라기에게 쏠렸던 나의 애착은 영원히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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