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사교육, 그리고 정치적 진보
성은애 | 단국대 영문과 교수

내신-논술과 더불어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대학입시의 주요 관문인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근본적으로는 도대체 4년간 수업을 들었을 뿐인 대학의 이름이 과연 한사람의 일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겠지만,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일단 이 세 겹의 관문을 '통과'하는 문제가 절박하다.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대한민국 수험생 엄마들을 동원하면, 북핵문제쯤은 한달 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농담은 대학입시가 학생과 부모들에게 얼마나 치열하고 절박한 과업인지 잘 보여준다. 이 관문 앞에서는 정치적 입장이나 철학의 차이가 아무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에 대해 개탄하고, 공정한 경쟁과 기회균등의 정의를 주장하며,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는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자녀의 교육문제로 들어가면 그 모든 멋진 원칙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그리 보기 드문 것이 아니다.

매년 수능 출제위원장이 인터뷰에 나와 '고교 3년의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면 누구나……'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황상태를 이용해 자꾸 커져가는 사교육시장은 이제 공교육의 규모와 수준을 훌쩍 넘어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진 팽창세를 보이는 것은 단연 논술이다.

현재 고교교육의 틀에서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으면서도, 대입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변별력이 나타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신이나 수능처럼 학습효과가 수치나 등급으로 바로 표시될 수 없으니 속터질 노릇이다. 학원으로서야 수요자의 불안감, 높은 교육비, 제로에 가까운 책임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분야이니, 이렇게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공교육에서 가르칠 준비가 안되어 있는 분야를 입시에 포함하는 것은 부당하며, 따라서 공교육의 틀에서 글쓰기교육에 필요한 교사와 씨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학교간 편차를 고려할 수 없는 내신성적과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 외에 다른 선발기준이 필요하다는 대학의 요구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고래들의 힘겨루기에 등이 터지는 새우 신세인 학부모들의 화제는 어쩔 수 없이, 어떻게 아이의 사고력과 글쓰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된다.

최근 주변 어른들의 대화는 이러하다. 어떤 학원이 논술을 잘 가르쳐요? 글쎄요. 글쓰기가 학원에 다닌다고 좋아지나.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저절로 글쓰기가 되냐고요. 그래도 논술학원에 오래 다니면 글이 틀에 박히게 돼서 오히려 안 좋다던데. 그건 그럴 것 같아요. 글쓰기라는 게 생각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학원에 다니면서 들입다 외워서 쓰는 것만 배우면…… 안 좋겠지. 그럼 학원엘 보내, 말아? 일단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던데. 그럼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학원에 보내야 하는 거예요? 집에서 엄마가 붙들고 책을 읽혀야지. 그걸 어떻게 엄마가 일일이 다 해. ○○학원이라는 데가 있는데요. 거기가 책 읽고 토론수업하고 글 쓰고 하는 걸 잘 시킨다던데. 어떻게 시키는데요? 글쎄, 하여간 그 학원 원장이 왕년 □□대학 △△써클 출신이래요. 응, 운동권? 아, 대학에서인들 토론수업, 글쓰기수업 제대로 했나? 그나마 책 읽고 논쟁하고 글 쓰는 훈련 제대로 한 건 그 시절엔 운동권써클뿐이었잖우. 그거 말 되네. 만날 토론하고 대자보 쓰고 팸플릿 쓰는 게 일이었잖아. 그러니까, 논술선생으로는 딱이라니깐. 그래도 정치적으루다가 편향이…… 아니, 프로그램이 꽤 괜찮더라고. 학교에서 하기 힘든 철학·역사공부도 이것저것 많이 시키고, 방학 때는 유적 답사도 간대요. 그거 괜찮겠네, 우리도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으면 훨씬 더 유식해졌을 텐데. 그래도 애들은 지겨워해. 어쨌든 시험이잖아. 학원비는 또 어쩌고. 어제 TV에 논술학원 강의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강사가 그러던데. 논술문제 푸는 방향도 보수 신문보다는, 약간 진보적인 신문의 논조를 따라가는 게 유리하대. 북핵문제다 하면, ‘한미동맹 공고히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하는 것보단, ‘평화의 원칙을 지키며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이렇게 나가는 게 좀더 세련되어 보인다나. 믿거나, 말거나. 참, 웃기네, 사교육시장에서 그런 식으로 진보를 가르치며 돈벌이를…… 하하. 전교조는 요새 뭐 하나? 교원평가 받네 마네 그런 거 하지 말고, 이놈의 입시제도가 제대로 되어먹은 건지 그 얘기나 좀 계속 해보지. 하여간 이놈의 논술이 사람을 잡아요, 잡아. 학교에선 못 가르치고 안 가르치는 걸 어쨌든 해야 하니깐, 답이 없다니깐요, 에혀.

대개의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니, 이야기를 해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교육기회의 평등, 개인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 일사불란한 서열화의 해체, 획일적이지 않은 평가기준, 공교육의 강화, 다양한 진로의 가능성, 이런 진보의 원칙들은 당장 자기 자식의 눈앞에 닥친 내신-수능-논술의 뻑뻑한 올가미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부모의 돈과 에너지와 문화자본이 많이 투여될수록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세태 탓에 부모들은 자신의 무능에 자괴감을 느끼고, 학생들은 뭐든지 다 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낀다. 살벌한 경쟁사회로 자식들을 내몰아야 하는 약하디약한 부모들 앞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더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단호한 시장의 논리는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다가선다. 그리고 사고력과 논리력, 창의력에 대한 평가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쓴 논술시험이 바로 그 최전방에 버티고 있다.

글쓰기 교육, 사고력과 창의력, 지적인 잠재능력, 모두 좋은 얘기다. 그러나 그것이 공교육이 아니라 주로 부모의 경제력과 문화자본에 의해 배양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진보의 이념과 어긋나는 것이다. 비판적인 진보 논리의 세련됨으로 글쓰기 교육에서 유리한 지점을 점유하는 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교육을 시장논리에 맡겨놓을 수밖에 없게 하는 정책 자체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 진보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통과하는 와중에 행여나 정말 제대로 사고력을 키운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이 시험의 타당성과 의의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타당하지 않으므로 동의할 수 없는 경쟁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입시제도의 입안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셔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성은애
단국대 영문과 교수. 저서로 《에드워드 싸이드 다시 읽기》(공저), 역서로 《더블린 사람들》 《세상의 이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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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1-14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이미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다 배워버렸습니다.
가르칠 것이 별로 없는 게 요즘 선생이지요.
영어, 국어, 국사 능력 평가 잘 보는 법이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죠.

해콩 2006-11-15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집중력 키우고 싶은데,어떻게?
한겨레
» 전문가들은 평소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측정한 뒤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훈련을 하면, 점차 집중하는 상태에 익숙해지면서 결국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뇌파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학습클리닉에서 이런 원리를 이용한 뇌파 조절기기로 집중력 강화 훈련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관련기사]
게임할 때는 집중을 잘 하는 아이가 공부할 때는 영 집중을 못한다면, 그 아이는 집중력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수업 시간 내내 딴 짓만 하던 아이가 “문제를 빨리 푼 순서대로 집에 가도 좋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문제를 푼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면, 그 아이는 집중력이 높은 것일까, 낮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집중력이 부족한 경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집중력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이나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이지만, 이 설명에는 한 가지가 빠져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흥미를 느끼는 것에 몰입하는 것은 집중력과 별로 관계가 없다. 흥미를 덜 느끼더라도 꼭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그 상태가 지속되어야 비로소 ‘집중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집중력이 학습능력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이유다.

행복한아이연구소 서천석 소장(소아정신과 전문의)은 “해당 상황에 몰입하는 순간 주의력, 그 몰입을 지속할 수 있는 주의 유지력, 필요한 요소별로 적절히 주의를 분산할 수 있는 능력, 집중이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선택하는 능력, 한 가지에 집중하다가 또 다른 것으로 집중 대상을 옮길 수 있는 능력 등이 총체적으로 한 개인의 집중력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이런 능력이 부족하거나 이와 관련한 뇌발달이 더딘 아이들이 앓는 질환이다. 서천석 원장은 “아이가 수업 시간에 수시로 교실을 뛰어다닐 정도로 산만하거나 가만히 앉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해야 할 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면, 무조건 나무라거나 버릇을 고치려들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가 에이디에치디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집중력은 타고 나는 것일까? 김봉수학습클리닉 김봉수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말한다. “뇌에서 집중력을 관장하는 기관은 전두엽으로, 이 부분의 신경 회로가 잘 발달하고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원활하게 분비되는 사람은 집중력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집중력이 거의 없지만, 뇌 발달과 더불어 점차 주변 사물이나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핀다. 아주대 학습능력개발연구실 박동혁 실장(심리학과 교수)은 “개인 차가 있으나 초등학생은 한 번에 30분, 중고등학생은 40~50분 정도 학습과 관련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중력은 또한, 심리적·물리적 환경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어른들은 종종 “요즘 아이들은 우리 어렸을 적에 비하면 몹시 산만하고 어수선하다”고 하는데, 이는 일리가 있는 얘기다.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처럼 자극적인 것에 몰입하는 요즘 아이들은 그보다 더욱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마련”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므로 집중력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 개인이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물리적 환경을 먼저 살펴야 한다.

집중력 높이기 1단계 : 동기를 파악하고 불안을 없앤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아이들의 집중력은 크게 차이가 난다. 박동혁 실장은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부하는 과정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 이를 ‘숙달 동기’라고 하는데, 가장 이상적이지만 드문 경우지요. 많은 아이들이 ‘경쟁 동기’로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다른 이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욕구, 주변의 인정, 결과에 대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이 때문에 집중력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결과가 나쁠까봐 자신에게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는 모습도 보이지요. 가장 나쁜 경우는 야단을 맞거나 창피 당하기 싫어서, ‘회피 동기’로 공부를 하는 것인데 과목마다 성적 편차가 심하고 심리 상태가 몹시 불안정하며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자아존중감이 낮아지죠.”

박 실장은 “경쟁 동기나 회피 동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결과(성적표)를 중심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부모의 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단 10분을 집중하더라도 스스로 원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 집중을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뇌파의 상태는 확연히 다르다. 뇌파의 변화를 눈으로 보면서 ‘집중하는 상태’를 오래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 최근 양방·한방 학습클리닉에서 두루 쓰이는 방법이다. 이정아 기자
한방에서는 집중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불안과 긴장’을 꼽는다.

수험생 전문클리닉인 구산한의원 이종한 원장은 “불안과 긴장은 순간적인 집중력을 높여주지만, 엄청난 피로감 때문에 집중을 지속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한방에서는 뇌의 기능을 신장과 연결지어 생각하는데, 신장은 몸의 전반적인 기운과 관련이 깊은 장기”라며 “몸이 튼튼하고 좋은 기운이 흐르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라야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어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으로 인삼, 대추, 보리차 등을 꼽고, 가장 해로운 것은 커피라고 한다.

심리적 불안이 집중력을 흩뜨린다는 것은 한방과 양방에서 모두 공감하는 얘기다. 명상이나 최면 등을 활용하는 각종 학습클리닉들 역시 ‘긴장과 불안을 해소해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든다’는 것이지, 학습클리닉들 덕분에 곧장 학습능력이 향상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중력 높이기 2단계 :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훈련을 시작한다

책상 혹은 집안 곳곳에 자극적이고 유혹이 넘치는 물건들이 넘친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한 어른이라 해도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갖추는 일은 집중력을 높이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또 아무리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하루 종일, 매사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으로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생물학적 시간대는 오후 2~5시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이 처한 여건과 능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덜 피곤하고, 유혹이 적으며,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이 언제인지 한번쯤 따져보는 것이 좋다. 그 시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적절한 휴식시간을 배치해 계획을 세우고 해야할 과제를 정한다.

실제로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의 집중력이 궁금하다면, 아이가 한 가지 과제에 몰두해 지속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 시간 안에 무엇을 얼만큼 해내는지 측정하고 기록해 본다. 한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어도 실제로는 십 분도 책을 안 읽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빠르게 몰입하지만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이처럼 아이의 특징을 파악한 뒤에는, 실질적인 집중 시간을 조금씩 늘리는 연습을 해본다. 주의할 점은 10분쯤 집중할 수 있는 아이에게 30분씩 걸리는 과제를 부여하는 등 의욕이 앞서서는 안된다는 것.

행복한아이연구소 서천석 소장은 “집중을 더 오래, 깊이 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아이 스스로 집중하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고, 자신감이 붙으면 점점 더 집중을 잘 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중에 판매되거나 학습클리닉에서 활용하는 집중력 강화 보조기구들은 이런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집중력을 발휘할 때는 특정한 뇌파가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기자극을 통해 이 뇌파를 지속적으로 생성되도록 함으로써 아이가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지고 결국 스스로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박동혁 실장은 “집중력의 핵심은 자기조절 능력”이라며 “아이 자신의 의지로 해야할 과제를 정하고, 몰입의 즐거움, 집중의 힘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집중력 관련 자가 진단 설문

다음 설문은 개인의 집중력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중력 발휘에 도움이 되는 물리적 환경이나 생활 습관을 갖추었는지를 점검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각 문항별로 ‘아니다=1점, 약간 그렇다=2점, 그렇다=3점, 매우 그렇다=4’로 표기해 합산하세요.

1. 공부할 때는 전적으로 공부에만 집중한다.

2. 시험 칠 때 답을 알고 있는데 실수로 틀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3. 학습 계획 짤 때 휴식 시간을 두어 잠깐씩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편이다

4. 공부할 때나 책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몰입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자주 있다.

5. 하루 중 가장 공부가 잘되는 나만의 시간대를 알고 있다.

6. 시험 때가 다가오면 평소보다 공부가 더 잘된다.

7. 집중력이 떨어지면 과목이나 공부 계획을 바꾸어서 공부할 줄 안다.

8.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계획한 것을 마칠 때까지 일어나 돌아다니지 않는다.

9. 공부할 때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어놓는 일이 없다.

10. 시험 기간에는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컴퓨터 게임을 자제할 수 있다.

38~45점 : 집중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알고, 필요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30~37점 : 일상에서 자신의 집중력을 흩뜨리는 습관과 환경들을 꼼꼼히 따져 보완하세요.

21~29점 :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세요.

20점 이하 : 체계적인 집중력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주대 학습능력개발연구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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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방당한 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1> '디아스포라'는 누구인가?
  2005-07-26 오전 11:59:11
  프레시안은 돌베개 출판사와 공동으로 재일 조선인 도쿄 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서경식(54) 교수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번역ㆍ연재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デイアスポラ紀行-追放された者のまなざし)은 서 교수가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세까이(世界)>에 기고했던 인기 연재로 일본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며 국내에서는 프레시안 연재 후 보완을 거쳐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경식 교수의 둘째, 셋째 형은 바로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의 희생자 서승, 서준식 씨이다.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후 모국을 알기 위해 또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는 목구의 동포들과 함께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20대 초반의 재일 조선인 형제는 1971년 봄 간첩으로 몰려 각각 19년, 17년의 수감 생활을 했다. 서승 씨는 현재 일본 리츠메이칸대 법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고, 서준식 씨는 석방 후 국내에 남아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을 만드는 등 인권운동에 헌신해 왔다.
  
  두 형이 모국에서 정치범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서경식 교수 역시 '한국의 동포들과 더불어 좋건 싫건 정치적 폭풍의 눈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 경험은 서 교수가 끊임없이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으로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서 교수는 이 개인적인 경험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그들의 연대로 승화시켰는데, 이번에 연재할 '디아스포라 기행'에는 그 사상과 고민의 정수가 담겨 있다. 서 교수는 온갖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세계 각국의 디아스포라들의 사연을 1990년대 초에 소개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박이엽 옮김, 창비)나 최근 출간된 <소년의 눈물>(이목 옮김, 돌베개)에서 잘 드러난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서경식 교수의 안내를 따라 세계의 디아스포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2회에 걸쳐 진행된다. <편집자>

  
  프롤로그 : 수레바퀴 자국 고인 물 속의 붕어(학철부어)
  
  세계 각지를 여행하게 된 지 어언 이십 년이 된다. 돌이켜 보면 여행 중 나의 눈과 마음을 끄는 것들은 항상 어딘가 디아스포라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건 내가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쓰기 시작하는 문장을 '디아스포라 기행'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란 어떤 의미인가, 왜 나는 스스로를 디아스포라라고 느끼는 걸까. 대문자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이자 '팔레스티나를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커뮤니티를 가리킨다'고 한다.(『世界大百科事典』, 平凡社) 그러나 그것은 물론 사전 상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티나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보다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착륙 이후 수백만, 일설에 의하면 실로 이천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인들이 신대륙에 끌려갔다. 그들과 그 자손을 '블랙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19세기 이후부터 많은 중국인들이 쿨리(苦力, coolie)라는 모멸에 찬 명칭의 하층 노동자로 중국으로부터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는데 이들이 '차이니즈 디아스포라'이다.
  
  이전에 아메리카 서해안을 여행하던 중에 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 공원을 향하는 길에 그 이름도 차이니즈 캠프라는 지명의 마을을 지나친 적이 있다. 대륙 횡단 철도의 건설 공사에 투입된 중국인 노동자들의 숙영지였던 지역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근대의 노예 무역, 식민지 지배, 지역 분쟁 및 세계 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 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많은 경우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조선 사람들 역시 과거 한 세기동안 식민지 지배, 제2차 세계대전과 내전, 군사 정권에 의한 정치적 억압등을 경험해 상당수의 달하는 사람들이 뿌리의 땅인 한반도로부터 세계 각지로 이산했다.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총수는 현재 대략 600만 명이라고 한다. 재일 조선인은 그 일부이며 나는 그 한 사람이다.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 ⓒ프레시안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후, 전 세계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태어나 자란 땅을 뒤로 했을까. 더욱이 그들 디아스포라들은 이주한 땅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며 소수자(minority)이다. 다수자(majority)의 대부분은 '선조 전래의 토지, 언어, 문화로 구성된 공동체'라는 견고한 관념에 안주하고 있다. 그와 같은 상황 안에 있는 한 다수자들에게는 소주자의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진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이하의 글은 나 서경식이라는 한 사람의 디아스포라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각각의 장소에서 접한 사회적 양상과 예술 작품을 테마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탐색하고자하는 시도이다.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의 모습이 근대의 뛰어난 역사적 소산이라고 한다면, 이 시도는 디아스포라로부터의 시선으로 '근대'를 다시 보는 것, 그리고 '근대 이후'의 인간의 가능성를 탐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일 조선인이란 누구인가?
  
  그럼 어떻게 써 나갈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설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지금까지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얼마나 여러 번 이 물음과 마주해 왔던가.
  
  내 아버지 서승춘은 1928년, 아직 여섯 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를 따라 한반도의 충청남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나는 그의 넷째 아들로 1951년 교토 시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재일 조선인 3세이다.
  
  이처럼 문자로 쓰면 단 몇 줄이지만, 여기서 벌써 번잡스러운 주석을 덧붙여야만 그 다음을 써 나갈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용어의 개념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이루어져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호칭과 '재일 조선인'이라는 호칭이 애매하게 뒤섞여 존재하는데, 후자는 일본에 거주하는 '북한 출신자'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재일 한국ㆍ조선인'이라든가 '한국어'라는 말도 상당히 보급되어 있다. 이들 용어는 모두 재일 조선인이 형성된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과 '한국'은, 전자는 '민족'을 후자는 '국가'를 나타내는 용어이며 관념의 레벨에서 차이가 있다. 혼란은 이와 같은 개념상의 구별이 애매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그 배경에는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 단일민족국가환상이 뿌리 깊게 가로놓여 있다.
  
  조선 민족의 생활권은 현재 현존하는 국가들의 경계를 넘어, 조선 반도의 남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 중국, 구소련의 중앙아시아 국가들, 아메리카, 유럽, 중남미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사람들을 뭐라고 총칭할 것인가. 나는 현재로서 '조선인'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에서는 '한국인'이나 '한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외래어 표기 문자인 가타카나로 '코리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구소련의 조선 민족은 스스로를 고려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민족의 호칭 문제 하나를 보아도 속 시원한 통일은 어렵다. 이런 상황 자체가 식민지 지배, 민족 분단, 민족 이산을 경험해온 조선 민족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민족의 총칭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란 민족 전체의 광대한 생활권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일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의 호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이라는 호칭은 국민적 귀속을 나타내는 한정된 의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재일 조선인 2세이지만, 국적은 '한국'이다. 즉 내 경우 민족적으로는 '조선인'이며 국민으로서는 '한국인'인 것 이다.
  
  읽는 분들은 여기서 이미 참 복잡하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복잡한 것을 써내려가야 한다. 디아스포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国語)
  
  나의 모어(母語)는 일본어이지만 모국어(母国語)는 조선어이다.
  
  '조선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국어'라고 하면 한국이라는 한 국가의 '국어'를 가리키게 되기 때문에 민족어의 총칭으로서는 '조선어'라는 말이 적합하다.
  
  일본에서는 모어와 모국어의 구별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원래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기에, 조선의 공립 소학교에서 한 조선인 생도가 넘어졌을 때 엉겁결에 "아야!"라고 외쳤다가,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심한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야!' 일본말로는 '이타이(아퍼)!'이다. 여기서 생도에게 '아야!'는 모어이며 '이타이(아퍼)!'는 강요된 모국어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상의 땅인 한국을 방문한 재일 조선인 3세가, 모여든 친척에게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했더니, "한국 사람이라면 '안녕하십니까',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지"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여기서 이 재일 조선인에게 '곤니치와'는 모어이며 '안녕하십니까'는 모국어이다.
  
  다나카 가츠히코 씨에 따르면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혀 무지각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형성된 말이며 한 번 익히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없는' '근원의 말'이다. 통상, 그것은 모친으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모어'라고 한다. (『ことばと国家』, 岩波新書)
  
  한편 모국어란 스스로가 국민으로서 속해있는 국가, 즉 모국의 국어를 가리킨다. 그것은 근대 국민 국가에서 국가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그들을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이다.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하나의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뿐이며, 실제로 어느 나라에든지 모어와 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 소수자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무시하거나 망각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모어와 모국어를 동일시하는 것도 단일 민족 국가 환상의 소행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언어 소수자란 하나의 국가 내부에서, 그 나라의 다수자와는 다른 모어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영국의 웨일스인, 스페인의 바스크인, 중국의 위글인 등이 그들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했던 시기, 일본은 조선 사람들의 모어를 부정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는 정책을 철저히 행했다. 즉 당시의 조선 사람들은 대일본 제국의 언어소수자였다.
  
  게다가 재일 조선인의 경우 사태는 한층 복잡하게 꼬여있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재일 조선인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국어로 해서 성장한다. 즉 재일 조선인은 일본의 다수자 쪽에서 보면 같은 모어를 지닌 '에스닉 마이너리티(소수민족)'이며, 본국(한국 또는 북한)에서 보면 같은 민족이면서 모어를 달리하는 언어 소수자인 셈이다. 식민지 피지배의 후손이면서, 구식민지 종주국에 태어난 탓에 지배자의 국어를 자기의 모어로 지닌 아이러니컬한 운명을 짊어진 것이다.
  
  재일 조선인과 국적
  
 
ⓒ프레시안

  나는 태어나서 50년 남짓을 죽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국적은 '한국'이지 '일본'이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가끔, 투표를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전에 고등학교 동창생이 지방 선거에 출마했을 때, 동창회 명부에서 보았는지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참정권이 없다'고 이쪽에서 설명해야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며, 때로는 "어 왜?"라도 저쪽에서 물어오기라도 하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요즘은 그런저런 상황이 귀찮아져서 일일이 진지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우리들 재일 조선인의 지방 참정권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일본인은 결코 많지 않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이 일본 국민과 똑같이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납세하고 있는데 참정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개의 경우 "원 심하군요"라고 동정의 반응을 보이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어서 "당신은 완전히 일본사람인데…"라고 할 때가 있다.
  
  우리들 재일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다. 과거 일본은 동화 정책,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의해, 조선 사람들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개조하려고 한 적이 있다. '완전한 일본인'이라는 말을 듣고 좋은 기분이겠는가? 재일 조선인은 크게 나와 같은 '한국 국적 소지자', '조선 국적 소지자', '일본 국적 소지자'의 세 부류로 나뉜다.
  
  여기서 '한국 국적' 소지자란 사실상, '한국 국민'과 거의 동일한 의미이다. 그럼 '조선 국적'소지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1910년대 이후 조선 사람은 '야마토(大和) 민족'과 똑같은 천황의 '신민'이 되어, 싫고 좋고에 관계없이 일본국적을 지니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대략 80년 전에 당시의 내지(内地) 일본에 건너왔다, 그때는 '외국인'으로 일본에 이민 온 것이 아니라 일본 국적 소지자로서 일본국의 영토 안을 이동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 사람과 '야마토 민족' 간에는 가혹한 차별이 존재했지만 적어도 국적 상으로는 조선 사람은 '일본 국민'이었으며, '일본 국민'으로서, 일본 내지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 사할린, 남양 군도에 이르기까지, 대일본 제국이 식민지 지배와 점령의 촉수를 뻗쳤던 전역에 확산했던 것이다. 나아가 1939년 이후의 총력전 시기에는 대략 70만 내지는 100만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내지의 탄광, 광산, 토목 공사 현장, 군수 공장 등에 강제 동원되었다. 그 결과 1945년 일본 패전시에는 적게 잡아도 230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 내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 후 즉각 이와 같은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구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이 연합국과의 강화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 유효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구식민지 출신자도 일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법에 복종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재일 조선인이 자력으로 설립 운영하고 있던 민족학교의 폐쇄를 명한 것은 이와 같은 논리에 의거한 조치였다. 그런 한편 1947년, 재일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하는 외국인 등록령이 발포되었다. 이것이 쇼와(昭和) 천황 최후의 칙령이었다.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 조선인들은 외국인 등록 수속을 할 때, 자기의 '국적'을 신고하고 기입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 민족 분단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된 상태로 조선 사람들의 독립 국가는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적을 신고하라는 것이다. 할 수없이 많은 재일 조선인은 국적 란에 '조선'이라고 기입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 반도 출신, 조선 민족의 일원이라는 의미, 즉 국적이 아니라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기호였다.
  
  일본 국적의 박탈
  
  이듬해인 1948년, 38선의 남과 북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가의 수립을 선언했다. 마침내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는데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분단국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1950년에는 조선전쟁(한국전쟁)이 발발해 1953년의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전투상태가 계속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일본 패전 후 7년째인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되어 그 조약의 발효와 함께 재일 조선인들, 구식민지 출신자들은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 상실 선언을 받게된다. 강화 조약 회담장에는 한국, 북한, 재일을 불문하고, 조선인 대표는 일절 참가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당사자인 조선 사람들의 의향을 전혀 묻지 않은 채, 국적 상실의 선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온 사람, 강제 연행된 사람, 그 자손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 모든 재일 조선인이 한순간에 사실상 난민이 되었다. (계속)
  
  번역 : 김혜신 가쿠슈인대학 강사(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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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구광본 - 오래 흔들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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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알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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