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칼럼]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를 위하여
한겨레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기획연재 : 박노자 칼럼
어린시절 필자에게는 한 가지 헷갈리는 일이 있었다. 늘 선생님들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의 청소년이 존경해야 할 사람인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었을 때 그의 삶은 ‘착한 아이’의 모습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잘나가는’ 법률가가 되기를 기대했던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린 채 젊은날을 ‘쓸모없는’ 철학 공부로 보냈다가 빚더미에 앉은 망명객이 돼버린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자본론〉을 쓰고도 자신의 자본은 못 만들었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마르크스의 그러한 ‘탕아 행각’도 만만치 않았지만 부모의 허락도 없이 급진파 유대인과 약혼함으로써 집안에 ‘불명예’를 안겨준 그 부인 예니의 행동 또한 불효막심이 아니었던가? 예니의 이복오빠가 독일 내무장관이 되었어도 예니는 망명지 런던에서 태어난 아이의 요람을 살 돈이 없었고, 아이가 일찍 죽어도 관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탕아들끼리 평생 그렇게도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150년 전의 유럽 유산층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일처럼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월인천강, 하나의 달 그림자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경쟁주의·출세주의는 부모의 마음에 내면화해 가정마다 ‘학업 장려’와 같은 미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의 꿈을 꾸어볼 여유도 없이 부모의 꿈은 곧 아이의 꿈이 되고 만다. 입시 전쟁에서 패배하면 ‘불쌍한 무능아’ 아니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 못하는 배신자’가 되는 줄 알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전쟁 준비’에 몇 해를 허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꼭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서양음악을 아이에게 시켜야 상류층이 된다는 ‘통념’을 익힌 부모들이 “신분 상승을 도모하라”는 사회의 절대명령대로 음악과 별 인연도 없는 자녀에게 악기 공부를 무리하게 시키는가 하면, “조기 유학을 안 보내면 안 된다”는 새로운 ‘상식’대로 부모 곁을 떠날 마음도 없는 불안한 아이들을 억지로 이역으로 떼어 보낸다.

사회가 강권하는 이런 폭력의 결과는 무엇일까? 평생토록 부모에 대한 원망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아이의 심신을 파괴시킬 수도 있으며, 또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찾아내 사고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고 남을 따르기만 하는 세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작은 개발독재와 같은 ‘가국’(家國)에서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인격을 지키고 싶다면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하겠는가? 뜻이 굳건한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겠지만 그에게는, 효도를 아직도 엄숙한 최고 덕목으로 주입시키는 사회에서 150년 전에 카를과 예니가 겪은 고뇌보다 한층 더 심각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역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내세우는 부모라 해도 자신의 자녀가 마르크스처럼 행동할 경우 마르크스의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수능날에 시험장에서 벽이나 문에 기대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 필자는 감동되기는커녕 답답해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아이가 암기 경쟁에서 남을 잘 눌러 올라서서 승리하기를”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하셨듯이 (부모의 의도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도록 기도하는 것이 진정 종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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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연인] ‘공부기계’ 치유한 운명의 여인/김영민
공부 회의감에 우울증 빠진 스물넷 밀 테일러 부인 만나 20년간 정신적 지적 도반관계로
남편 죽은 이후에야 결혼한 감명적 사랑보다 둘 사이의 진정한 평등과 조화 높이살만
한겨레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⑨ J.S. 밀-해리엇 테일러 부인

철학을 내 전공으로 삼은 이래로 명개 먼지 한 톨만큼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으니, 박복한 중에 그나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철학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위태롭지만 나는 오히려 그 무능을 ‘급진화’시킬 궁리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철학공부에 따르는 쾌락의 한가지는 사상가들의 인간미에 취하는 가운데 그 삶의 양식을 배우는 일이다. 이렇게 회고하자면, 토마스 모어, 브루노, 스피노자, 로크, 남명 조식, 흄, 볼테르, 연암 박지원, 니체, G.E. 무어, 그람시,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윤노빈 등등, 적지 않은 이들의 인문(人紋)은 그 자체로 내 삶의 일차적 주이상스(jouissance)였으니, 이 선학들의 삶과 사상에 오직 머리 숙여 감사, 감사할 뿐이다.

철학으로만 치면 굳이 밀(1806~1873)을 웅변할 일은 없겠지만, 그의 글과 삶에서 느낀 인간적 겸손과 지혜의 맛은 공부길의 조미료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는 모어나 야스퍼스 같은 현인이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특히 내게는 테일러 부인과의 감명적인 사랑과 현대 여성학 연구사의 뿌리인 <여성의 복속>(1869)으로 독특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해 최초의 분명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가한다: “어떤 일반적인 전제 아래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한 권위의 경계를 침범하는 짓이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칼라일(1795~1881)에 대한 밀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러셀이 그 성정상 니체를 좋아할 수 없었듯이, 현명한 합리주의자인 밀이 그 성급한 격정의 보수주의자 칼라일을 좋아할 수 없었으리라는, 혹은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직관적 분개였다. <영웅숭배론>(1841)의 저자이기도 한 칼라일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한 귀족주의자였고, 따라서 진보적 개혁주의자인 밀과는 어울릴 수 없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성의 복속>과 같은 해에 출간된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1869)는 밀의 급진주의와 칼라일의 보수주의 사이에 놓이는 중도우파적 사회비평의 노작이다.) 물론 <자서전>(1873)의 곳곳에서 밀은 자신의 지적, 인간적 변화와 더불어 칼라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 놓았기에 그 궁금증은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 비밀마저도 테일러 부인(Harriet Taylor)에 있었던 것! 밀은 예의 겸손을 잊지 않고 칼라일의 직관과 시적 감성을 여러 차례 추겨세우기도 한다. 나는 성급한 독자로서 이 대목이 영 마뜩치 않았지만, 밀은 곧 테일러 부인을 소개하면서 남자들 사이의 지적 허영과 경쟁의 지형을 단숨에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칼라일과 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이자 사상가인 이 사람(테일러 부인)이 나에게 그(칼라일)를 해석해 주기 전에는 나는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그를 판단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녕 이 사람의 정신과 성품은 칼라일의 정신과 기품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학재(學才)였던 밀의 이 한 마디는 여성에 대한 태도를 뿌리부터 뽑아버리는 태풍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부친의 교육체계 아래 그야말로 희대의 ‘공부기계’로 성장했던 밀은 스무 살을 넘기면서 우울증과 인생의 회의에 젖는데, 이 때에 워즈워스의 서정적 시세계와 테일러 부인이라는 운명의 여인은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놓을 치유적 매개자로 등장한다. 밀이 24살이던 1830년에 만난 해리엇 테일러 부인과의 사랑은 이후 20여년간의 플라토닉한 관계,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존 테일러가 죽은 이후에야 성사된 결혼 등으로 이미 유명하지만, 그러나 정작 유명해야 할 가치는 그 둘 사이의 진정한 평등과 조화의 실질적 관계에 있다.

밀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지적, 도덕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은 것을 주었던 인물로서 주저함이 없이 테일러 부인을 꼽는다. 그리고 세상이 이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밀이 소개하는 그녀의 ‘도덕적 특성’은 밀의 정밀한 합리주의적 품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고매한 긍지와 결합된 가장 진정한 겸손; 무릇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모든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순진성과 성실성; 무엇이든지 비열하고 비겁한 것에 대한 극단의 경멸, 그리고 잔인하거나 포악한 행위와 성격에 있어서 신의없고 파렴치한 모든 것에 대한 타는 듯한 의분.”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남성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의 운명은 흔히 남자와 엉키고 만다. ‘장사가 유대인의 운명’(아도르노)이라거나 ‘흑인의 운명은 백인’(파농)이라거나 혹은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이라는 사정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종종 남자라는 운명의 막을 걷어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여자들이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곤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안타깝게 목도한다. 그들의 희생과 비용은 역사적 진보의 증후이자 가능성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개중에도 정녕 안타까운 것은 그 무소의 뿔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겪는 자기방어의 비용이다. 똑똑한 약자에게서 특유한 깊은 우울과 얇은 명랑, 지나친 반응형성적 냉소와 무례는 흔히 자가당착의 독소가 되어 그들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 나는 외롭고 성급한 이 무소의 뿔들에게, 밀이 테일러 부인에게서 배운 최선의 것이라던 ‘현명한 회의의 태도’를 주문해 본다: 혁명이 아니라면, ‘현명한 회의의 태도’는 어떨까?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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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8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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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교지 idea 꼭지들...

1조 : 선생님 사진을 이용해서 영화포스터에 합성. 포토샵으로 처리.

2조 : 행정실 분들, 목공 아저씨, 목공오빠, 공익오빠, 야간경비할아버지... 인터뷰?
        인터뷰로 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듯...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하루 엿보기] 정도가 어떨지..

3조 : 선생님들의 2세.

4조 :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나의 사랑 이야기-

5조 : 1, 2학년 각 반 유행어/ 담임샘 특징 장단점or 담임샘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전체사진 첨부 + 아이들마다 남기는 말(주제어or제시어 주어도 좋고. 준다면 아이들이랑 같이 만들어보기)

6조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기쁘게 하는 것들.. 1,2학년 전반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Top10..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밖에 흘러가는 생각들..

1. 인터뷰 : 글밭나래우주인 (1학년들)

2. ㅈㅎ샘글 : "지키자 나의 권리"

3. 2-4 모둠일기

4. 각종 글짓기 대회 수상작품들(환경의 날 4컷 만화/한글날 작품/학교폭력)

5. 부모님글 :아이들과 나눈 편지글+사진
                       학부모님 격려사

6. 선생님들글
     교장샘/교감샘 격려사
     ㅇㅅㅎ샘 : 학생부장으로 느끼는 애환
     ㄱㅎㅅ샘 : 유렵탐방기
     

7. 표지: 미술부 아이들에게.. 찢어붙이기

8. 동아리 광고글

9. 포토갤러리... 우리 학교 가장 아름다운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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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1-1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샘이 교지 담당하세요?
저도 교지 담당인디... 아, 글고 저는 문예도 담당하고, 독서지도도 담당하고, 학교 홍보도 담당하는 거의 사무원 수준입니다. ㅋㅋ
3학년 담임샘들께 '마지막 종례'를 부탁드리면 어떨까요. 졸업식날 교지 받아 가는데, 애들이 좋아할 듯...

해콩 2006-11-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요, '마지막 종례' 부탁드려봤는데 글 쓰는 걸 공포스러워하시는 샘들이 생각보다 많은지라 두 분께만 OK받았어요. 글 부탁하는 기술.. 뭐 이런거 없을까요?

글샘 2006-11-1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좋은 방법은... 원고료로 꼬시는 것인데... 원고료가 얼마 안 되니, 그건 어렵고요. 항상 두리번 거리고 관찰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샘에게 가서, 이번 여름에 다녀온 터키 사진 좀 주시고, 간단하게 일정 정리 좀 해 달라고 하면 잘 해 줍디다. 글 써달라면 질색을 하지만요. ㅋㅋ 조삼모사 전법.
학급일기 쓰시는 분께도, 학급 일기 몇 편 뽑아 달라고 한 뒤에, 운영해 본 뒤에 느끼신 좋은 점과 나쁜 점도 덧붙여 주시면 고맙겠다고 꼬드기고요.
저는 제 혼자 교지를 만들기 때문에, 혼자서 북도 치고 장구도 다 칩니다. ㅎㅎㅎ
 
 전출처 : 바람구두 > 평생 나를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는 비밀의 사랑이다.
살아가는 동안 줄곧 사랑으로 자신을 태우고,
사랑하는 자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사랑으로 인해 죽는 것, 그러한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평생 나를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므로
자신의 일부를 세상에 내 놓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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