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 연인/⑨ J.S. 밀-해리엇 테일러 부인
철학을 내 전공으로 삼은 이래로 명개 먼지 한 톨만큼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으니, 박복한 중에 그나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철학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위태롭지만 나는 오히려 그 무능을 ‘급진화’시킬 궁리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철학공부에 따르는 쾌락의 한가지는 사상가들의 인간미에 취하는 가운데 그 삶의 양식을 배우는 일이다. 이렇게 회고하자면, 토마스 모어, 브루노, 스피노자, 로크, 남명 조식, 흄, 볼테르, 연암 박지원, 니체, G.E. 무어, 그람시,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윤노빈 등등, 적지 않은 이들의 인문(人紋)은 그 자체로 내 삶의 일차적 주이상스(jouissance)였으니, 이 선학들의 삶과 사상에 오직 머리 숙여 감사, 감사할 뿐이다.
철학으로만 치면 굳이 밀(1806~1873)을 웅변할 일은 없겠지만, 그의 글과 삶에서 느낀 인간적 겸손과 지혜의 맛은 공부길의 조미료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는 모어나 야스퍼스 같은 현인이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특히 내게는 테일러 부인과의 감명적인 사랑과 현대 여성학 연구사의 뿌리인 <여성의 복속>(1869)으로 독특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해 최초의 분명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가한다: “어떤 일반적인 전제 아래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한 권위의 경계를 침범하는 짓이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칼라일(1795~1881)에 대한 밀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러셀이 그 성정상 니체를 좋아할 수 없었듯이, 현명한 합리주의자인 밀이 그 성급한 격정의 보수주의자 칼라일을 좋아할 수 없었으리라는, 혹은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직관적 분개였다. <영웅숭배론>(1841)의 저자이기도 한 칼라일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한 귀족주의자였고, 따라서 진보적 개혁주의자인 밀과는 어울릴 수 없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성의 복속>과 같은 해에 출간된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1869)는 밀의 급진주의와 칼라일의 보수주의 사이에 놓이는 중도우파적 사회비평의 노작이다.) 물론 <자서전>(1873)의 곳곳에서 밀은 자신의 지적, 인간적 변화와 더불어 칼라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 놓았기에 그 궁금증은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 비밀마저도 테일러 부인(Harriet Taylor)에 있었던 것! 밀은 예의 겸손을 잊지 않고 칼라일의 직관과 시적 감성을 여러 차례 추겨세우기도 한다. 나는 성급한 독자로서 이 대목이 영 마뜩치 않았지만, 밀은 곧 테일러 부인을 소개하면서 남자들 사이의 지적 허영과 경쟁의 지형을 단숨에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칼라일과 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이자 사상가인 이 사람(테일러 부인)이 나에게 그(칼라일)를 해석해 주기 전에는 나는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그를 판단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녕 이 사람의 정신과 성품은 칼라일의 정신과 기품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학재(學才)였던 밀의 이 한 마디는 여성에 대한 태도를 뿌리부터 뽑아버리는 태풍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부친의 교육체계 아래 그야말로 희대의 ‘공부기계’로 성장했던 밀은 스무 살을 넘기면서 우울증과 인생의 회의에 젖는데, 이 때에 워즈워스의 서정적 시세계와 테일러 부인이라는 운명의 여인은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놓을 치유적 매개자로 등장한다. 밀이 24살이던 1830년에 만난 해리엇 테일러 부인과의 사랑은 이후 20여년간의 플라토닉한 관계,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존 테일러가 죽은 이후에야 성사된 결혼 등으로 이미 유명하지만, 그러나 정작 유명해야 할 가치는 그 둘 사이의 진정한 평등과 조화의 실질적 관계에 있다.
밀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지적, 도덕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은 것을 주었던 인물로서 주저함이 없이 테일러 부인을 꼽는다. 그리고 세상이 이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밀이 소개하는 그녀의 ‘도덕적 특성’은 밀의 정밀한 합리주의적 품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고매한 긍지와 결합된 가장 진정한 겸손; 무릇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모든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순진성과 성실성; 무엇이든지 비열하고 비겁한 것에 대한 극단의 경멸, 그리고 잔인하거나 포악한 행위와 성격에 있어서 신의없고 파렴치한 모든 것에 대한 타는 듯한 의분.”
남성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의 운명은 흔히 남자와 엉키고 만다. ‘장사가 유대인의 운명’(아도르노)이라거나 ‘흑인의 운명은 백인’(파농)이라거나 혹은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이라는 사정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종종 남자라는 운명의 막을 걷어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여자들이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곤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안타깝게 목도한다. 그들의 희생과 비용은 역사적 진보의 증후이자 가능성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개중에도 정녕 안타까운 것은 그 무소의 뿔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겪는 자기방어의 비용이다. 똑똑한 약자에게서 특유한 깊은 우울과 얇은 명랑, 지나친 반응형성적 냉소와 무례는 흔히 자가당착의 독소가 되어 그들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 나는 외롭고 성급한 이 무소의 뿔들에게, 밀이 테일러 부인에게서 배운 최선의 것이라던 ‘현명한 회의의 태도’를 주문해 본다: 혁명이 아니라면, ‘현명한 회의의 태도’는 어떨까?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