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연인] ‘공부기계’ 치유한 운명의 여인/김영민
공부 회의감에 우울증 빠진 스물넷 밀 테일러 부인 만나 20년간 정신적 지적 도반관계로
남편 죽은 이후에야 결혼한 감명적 사랑보다 둘 사이의 진정한 평등과 조화 높이살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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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연인/⑨ J.S. 밀-해리엇 테일러 부인

철학을 내 전공으로 삼은 이래로 명개 먼지 한 톨만큼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으니, 박복한 중에 그나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철학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위태롭지만 나는 오히려 그 무능을 ‘급진화’시킬 궁리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철학공부에 따르는 쾌락의 한가지는 사상가들의 인간미에 취하는 가운데 그 삶의 양식을 배우는 일이다. 이렇게 회고하자면, 토마스 모어, 브루노, 스피노자, 로크, 남명 조식, 흄, 볼테르, 연암 박지원, 니체, G.E. 무어, 그람시,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윤노빈 등등, 적지 않은 이들의 인문(人紋)은 그 자체로 내 삶의 일차적 주이상스(jouissance)였으니, 이 선학들의 삶과 사상에 오직 머리 숙여 감사, 감사할 뿐이다.

철학으로만 치면 굳이 밀(1806~1873)을 웅변할 일은 없겠지만, 그의 글과 삶에서 느낀 인간적 겸손과 지혜의 맛은 공부길의 조미료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는 모어나 야스퍼스 같은 현인이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특히 내게는 테일러 부인과의 감명적인 사랑과 현대 여성학 연구사의 뿌리인 <여성의 복속>(1869)으로 독특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해 최초의 분명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가한다: “어떤 일반적인 전제 아래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한 권위의 경계를 침범하는 짓이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칼라일(1795~1881)에 대한 밀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러셀이 그 성정상 니체를 좋아할 수 없었듯이, 현명한 합리주의자인 밀이 그 성급한 격정의 보수주의자 칼라일을 좋아할 수 없었으리라는, 혹은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직관적 분개였다. <영웅숭배론>(1841)의 저자이기도 한 칼라일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한 귀족주의자였고, 따라서 진보적 개혁주의자인 밀과는 어울릴 수 없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성의 복속>과 같은 해에 출간된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1869)는 밀의 급진주의와 칼라일의 보수주의 사이에 놓이는 중도우파적 사회비평의 노작이다.) 물론 <자서전>(1873)의 곳곳에서 밀은 자신의 지적, 인간적 변화와 더불어 칼라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 놓았기에 그 궁금증은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 비밀마저도 테일러 부인(Harriet Taylor)에 있었던 것! 밀은 예의 겸손을 잊지 않고 칼라일의 직관과 시적 감성을 여러 차례 추겨세우기도 한다. 나는 성급한 독자로서 이 대목이 영 마뜩치 않았지만, 밀은 곧 테일러 부인을 소개하면서 남자들 사이의 지적 허영과 경쟁의 지형을 단숨에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칼라일과 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이자 사상가인 이 사람(테일러 부인)이 나에게 그(칼라일)를 해석해 주기 전에는 나는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그를 판단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녕 이 사람의 정신과 성품은 칼라일의 정신과 기품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학재(學才)였던 밀의 이 한 마디는 여성에 대한 태도를 뿌리부터 뽑아버리는 태풍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부친의 교육체계 아래 그야말로 희대의 ‘공부기계’로 성장했던 밀은 스무 살을 넘기면서 우울증과 인생의 회의에 젖는데, 이 때에 워즈워스의 서정적 시세계와 테일러 부인이라는 운명의 여인은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놓을 치유적 매개자로 등장한다. 밀이 24살이던 1830년에 만난 해리엇 테일러 부인과의 사랑은 이후 20여년간의 플라토닉한 관계,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존 테일러가 죽은 이후에야 성사된 결혼 등으로 이미 유명하지만, 그러나 정작 유명해야 할 가치는 그 둘 사이의 진정한 평등과 조화의 실질적 관계에 있다.

밀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지적, 도덕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은 것을 주었던 인물로서 주저함이 없이 테일러 부인을 꼽는다. 그리고 세상이 이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밀이 소개하는 그녀의 ‘도덕적 특성’은 밀의 정밀한 합리주의적 품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고매한 긍지와 결합된 가장 진정한 겸손; 무릇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모든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순진성과 성실성; 무엇이든지 비열하고 비겁한 것에 대한 극단의 경멸, 그리고 잔인하거나 포악한 행위와 성격에 있어서 신의없고 파렴치한 모든 것에 대한 타는 듯한 의분.”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남성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의 운명은 흔히 남자와 엉키고 만다. ‘장사가 유대인의 운명’(아도르노)이라거나 ‘흑인의 운명은 백인’(파농)이라거나 혹은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이라는 사정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종종 남자라는 운명의 막을 걷어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여자들이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곤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안타깝게 목도한다. 그들의 희생과 비용은 역사적 진보의 증후이자 가능성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개중에도 정녕 안타까운 것은 그 무소의 뿔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겪는 자기방어의 비용이다. 똑똑한 약자에게서 특유한 깊은 우울과 얇은 명랑, 지나친 반응형성적 냉소와 무례는 흔히 자가당착의 독소가 되어 그들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 나는 외롭고 성급한 이 무소의 뿔들에게, 밀이 테일러 부인에게서 배운 최선의 것이라던 ‘현명한 회의의 태도’를 주문해 본다: 혁명이 아니라면, ‘현명한 회의의 태도’는 어떨까?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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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8 0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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