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默言)

                         - 문태준

 

절마당에 모란이 화사히 피어나고 있었다

누가 저 꽃의 문을 열고 있나

 

꽃이 꽃잎을 여는 것은 묵언

 

피어나는 꽃잎에 아침 나절 내내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말하려는 순간 혀를 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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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오나전 눈팅만 했삼” 세대간 의사소통 벅차

 

[도깨비 뉴스]10대들 외계어(?) 사용 어른들은 알쏭달쏭… 활자를 음성화하는 성자(聲字)의 시대

KBS의 ‘상상플러스-올드 앤 뉴’를 보다가 종종 놀란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말을 알아맞혀야 하는 10대들의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처음에는 웃지만 나중에는 10대와 성인의 언어 격차가 이렇게 심했나 싶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 90%가 모르는 말 중에 ‘너스레’가 있다. 수다스럽게 떠벌리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 이 말을 두고 10대들은 뭐라고 했을까? ‘슬리퍼의 우리말’ 혹은 ‘너는 술래’라고 답했다. 기발하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나. 또 10대의 85.4%가 모르는 말 중에 은근슬쩍 관심을 보낸다는 뜻의 ‘추파’도 있다. 10대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가을에 먹는 파’란다.

빠르게 변한 환경 … 세대간 의사소통 너무 벅차

어른이 본관과 파를 물어보면 “제가 아는 관은 왕관, 파는 대파밖에 없는데요”라고 답한다니, 10대와 50대의 격차는 이 정도면 소통이 아니라 선문답에 가깝다. 실제로 요즘 10대는 설마 이런 걸 모를까 싶은 말을 정말 모른다. 회수권, 부지깽이, 넝마주이, 마수걸이, 터울, 주전부리 같은 단어는 모두 10대가 모르는 말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교통카드를 쓰는데 어찌 회수권을 알 것이며, 24시간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는데 어찌 마수걸이를 알 수 있으랴.



최근 책으로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상상플러스’.


‘미역 감고 놀던 어린 시절에…’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다가 “옛날에는 미역을 몸에 감고 놀았나요?” 하고 묻는 것이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불과 30여 년 사이에 검정고무신에서 유비쿼터스까지 빠르게 변한 우리 삶과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어른들 역시 10대의 말 중에 모르는 말이 많다. 어느 세대나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은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요즘 10대의 말은 은어라고 하기엔 너무 낯설고 다르다. 그래서 외계어다. 인터넷의 게시판,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 등으로 대화를 하는 세대들의 언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대표적인 것이 특이한 말투다. ‘디시인사이드’를 시작으로 퍼졌던 ‘~하오’ ‘~했소’ ‘~아니오’ 같은 하오체나 ‘~하셈’ ‘~그러셈’ 같은 하셈체, ‘~했삼’ ‘~없삼’ 같은 하삼체가 그렇다. 이런 어투는 아바타 등으로 차별화를 꾀할 수 없는 비회원제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특성 때문에 등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동아리 학생들끼리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가시적인 차별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생겨난 게 특이한 어투다. ‘하오체’는 등장하자마자 디시인사이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른 사이트로도 급속히 퍼져나가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기본 말투가 되었다.

근영체나 나영체도 비슷한 이유로 탄생했다. 유명 인기 연예인들의 사진을 모아두는 갤러리 내에서 그들만의 차별화를 위해 쓰이기 시작한 어투다. 문근영 갤러리에서 쓰이는 ‘근영체’는 ‘그랬근영’ ‘아니근영’ 같은 어법을 쓰고, 이나영 갤러리에서는 ‘그렇나영?’ ‘~않나영?’ 같은 ‘나영체’를 쓰는 식이다.



상상플러스 출연진들


어투뿐만 아니라 신조어도 많다. 이중에는 말을 변형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터넷 신조어들이 있다. “본좌가 생각하기론 이 말은 사실과 다르오!”라든가 “난 매일 눈팅만 해”에서 ‘본좌’나 ‘눈팅’ 같은 단어는 어원이 없다. 본좌는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로 무협지 등에서 쓰였다고 하나 믿거나 말거나다. 눈팅은 댓글을 달지 않고 보기만 하는 예의 없는 누리꾼의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다.

10대들이 신조어를 만드는 절박한 이유 중 하나는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10대들은 실시간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그렇게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의도적으로 글자 수를 줄여야 한다. 드디어를 ‘드뎌’, 제대로를 ‘지대’, 많이를 ‘마니’ 하는 식으로 모음 하나라도 줄여보겠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터넷 신조어만큼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

문자를 이렇듯 구어에 가까운 표현방식으로 주고받다 보니 의미 없이 우리말을 변형하거나 오타가 유행어로 뜨는 경우도 생긴다. 한때 ‘활엽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 삶의 활력소’라고 써야 하는데 ‘내 삶의 활엽수’라고 잘못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오나전’도 비슷한 예다. ‘우리 학주(학생주임) 오나전 무섭다’라거나 ‘이거 오나전 맛있다’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완전’이라는 뜻이다.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야동(야한 동영상)’ ‘야설(야한 소설)’ 같은 줄임말은 애교스러울 정도다.



MBC의 ‘말 달리자’와 KBS의 ‘우리말 겨루기’.


이니셜 화법도 10대들이 즐겨 쓰는 영어식 줄임말이다. “오늘 완전 SM 모드였어”라는 말에 “SM에서 새로운 음반이 나왔냐”라고 묻지 말길. SM은 Small Mind, 즉 ‘소심하다’는 뜻이다. DDM은 ‘동대문’의 영어 조어다. 우리말이면 어떻고 영어면 어떠랴. 일단 줄이고 보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디지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어투와 인터넷 신조어가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세대 간 언어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으로까지 발행된 ‘상상플러스’ 외에도 ‘우리말 겨루기’ ‘말 달리자’처럼 우리말이나 사투리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전에 없이 인기다. 뿐만 아니라 2~3년 전부터 글쓰기를 다룬 책도 여럿 선보였다. 최근 출간된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이 책 제목도 줄임말로 ‘국밥’이라고 불린다)는 우리말의 뉘앙스를 다룬 책인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이 같은 아날로그적 행위가 각광받는 이유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쓰는 행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문자를 보내고, 메신저를 하고, 메일을 쓰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의 친절한 자막을 읽으며 우리는 전에 없이 문자 홍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자는 과거의 문자가 아니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로 문자는 문자지만 말하는 것처럼 쓰는 새로운 구어, 좀더 어렵게 말하면 활자의 음성화를 통한 성자(聲字)의 시대다. 요즘 유행하는 10대의 외계어는 새로운 문자시대의 개막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이번 주에 발매된 시사주간지 주간동아 561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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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11월25일 03시22분   동아일보   크게 작게
"[멀리 가는 책의 향기]수능은 다 잊고 책속에 푹 빠져보렴"
[동아일보]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이에게 책을 권해 보자. ‘책의 향기’는 각계 명사들이 편지에 실어 책을 권하는 ‘멀리 가는 책의 향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첫 회로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논술 때문에 책을 참고서처럼 분석하고 외워야 했던 조카 나영에게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다섯 권을 추천했다.》

나영아,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정말 애썼다. 수능 치른 날, 시험 잘 봤냐고 물으니까 넌 이렇게 말했지. “나 오늘 답안지 안 맞추어 볼 거야. 하룻밤만이라도 편히 자고 싶어!”

그래,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렴. 일단 큰일을 무사히 끝냈으니까.

이모가 고3 때도 잠 한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었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전·후기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단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다고 좌절하며 몇 달 동안 네 외할머니 속을 얼마나 썩여 드렸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수험생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서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가 보다. 너도 고3 내내 식구들에게 짜증 부린 것 미안하다고 했지? 미안하긴. 머릿속이 압력밥솥처럼 안팎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꽉 차 있는데 그마저 못했다면 아마 터져 버리고 말았을 거야. 너희들을 가마솥 같은 교육제도에 집어넣고 푹푹 삶아 댄 어른들이 오히려 미안해.

나영아, 곧 정시 원서 써야 한다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에 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이모는 네가 대학 이름보다는 원하는 전공을 택했으면 좋겠어.

이모 고3 때는 본인의 적성과 관심과는 상관없이 담임선생님이 가라는 대학에 가야 했단다. 철저히 간판 위주였지.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그때는 그랬어.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대학에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니었으면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했을 거고,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없었을 테니 말이야.

세상에는 ‘적당히 맞추어 살면 되지’라는 말은 없는 것 같아. 낙타는 사막에서, 호랑이는 숲에서 살아야지 제 타고난 기질과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물론 호랑이가 사막에서도 살 수야 있지만 늘 맥을 못 추며 남보다 못났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게 뻔하잖아. 그치? 숲에 있었다면 천하를 호령할 동물의 왕이 말이야.

그러니 이모는 나영이가 사막의 낙타, 숲 속의 호랑이로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신나서 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뜨겁고 풍요롭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하여간 나영아, 아직 기말고사 등이 남았지만 수능 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을 테니 당분간 실컷 자고, 실컷 수다 떨고 영화나 책도 실컷 보려무나. 그러려면 용돈이 필요하다고? 알았어. 5만 원 줄게. 됐지? ㅋㅋㅋ.

― 언제나 널 보고 싶은 막내 이모가.

[1]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호시노 미치오 지음·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요절한 야생사진가의 아름다운 사진과 소박한 글이 마음에 그대로 와서 박힌다.

[2]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보림) 한 조선시대 선비의 책과 친구들 이야기가 창호지에 스미는 아침 햇살같이 잔잔하다.

[3]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지음·정성묵 옮김·두란노) 읽고 있으면 가슴이 콩콩 뛰면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게 하는 기분 좋은 책.

[4]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지음·양억관 옮김·나무심는사람) 우리가 왜 좋은 말과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말해 준다.

[5]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지음·창작과비평사) 줄거리도 줄거리려니와 작가 특유의 입담과 능청이 곳곳에 묻어 있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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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교사 인터뷰 1 - 신## 선생님


1. 특수 교사가 아닌 교사와 같은 반 아이들이 특수아에게 다가가기 좋은 방법??

   비장애 아이들과 구별되는 특수아의 능력차를 인정하셔서(그렇다고 제외시키라는 것은 아닙니다.) 특수아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 평가를 부여해 주시고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며 특수학급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주실 때 그 아이도 선생님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특수아들은 누가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악의적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보호된 환경에서 자란 특수아들은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모르는 특수아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공책 필기도 도와주고 교실 이동할 때 챙겨주고 준비물을 메모해 주고, 체육시간에 동참시키고, 특수학급에도 놀러올 때 특수아들은 그 친구를 “수호천사” 처럼 좋아하게 될 겁니다.


2. 반 아이들이 특수아와 친해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다른 아이들과 차별되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관심이나 편애와는 다릅니다.  담임 선생님이나 지도 선생님들의 태도는 충분히 반 아이들에게 모델링이 됩니다.

 

   반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급우” 중의 한명으로 선생님께서 같은 규율가 칭찬, 역할 부여를 하실 때 특수학생을 “급우”로 받아들이겠지요. 행사나 활동에서 특수아가 소외되지 않도록 도우미를 붙여주신다면 어떨까요?? 드러나지 않은 관심으로 지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반 아이들이 특수아를 어떻게 보살펴 주어야 하는가?

   반 아이들은 특수아를 동일한 연령과 비슷한 덩치의 아이도 받아들여서 귀찮아하거나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5 ~ 6살 유치원 아이의 행동과 말은 우리가 재롱으로 받아들이고 쉽게 수용하지만 특수아의 행동과 말에는 짜증을 내곤 합니다. 특수아들의 정신연령은(정신 지체일 경우) 자신의 생활연령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수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대해 주길 바랍니다.

   특수아의 상황을 이해할 때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겁니다. 또 무조건적인 보살핌은 의타심을 키울 수도 있고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합니다.


4. 특수아에 대한 편견은???

   세상 사람들 저마다 똑같은 이가 하나도 없듯이 특수아의 개인 간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특수아들은 온전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애도, 반 아이들 사이에서 조롱받고 멸시 받을 만큼 바보도 아닙니다.


  ‘바보’라고 놀린 아이들에게 힘센 호랑이가 되어 혼내주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특수아들도 마음을 다치고 감정을 상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픕니다. 반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특수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늘 웃고 있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닙니다.


5. 특수교사로서 힘든 점??

   뿌린 대로 거둬들이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고 수확의 양이 내 욕심에 안 찰 때가 많은 걸 보면 또 다시 자괴감이 듭니다. 특수교사로서 내 역량의 부족이라는 생각 때문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특수학교의 경우, 나날이 중증화 되어 가는 아이들의 부적응행동에 지칠 때가 많고 특수학급의 경우 비장애 학생들을 위주로 한 교육방침아래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픕니다. 특수학급은 현재 과도기로서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입장을 앞선 생각으로 통합교육에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고, 특수학교의 물적 ․ 질적 지원에 비해 특수학급에 대한 교육당국의 지원도 부족합니다.

  특수교사에게 요구되어지는 “만능”이 벅찰 때가 많습니다.


6. 일반 교사와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입시’라는 물줄기 아래(우리 학교는 인문계이므로) 서로 바쁘고 힘든 게 사실이지만, 남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스트레스를 특수학급 학생에게 풀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론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다수이지만  그 소수의 학생들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걸 볼 때 안타깝습니다. 언어적 ․ 신체적 폭력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특수학급에서 아이들이 무슨 공부를,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 주세요.  통합학급에서 움츠러져 있던 아이들이 특수학급에서 만들어내고 쌓아가는 것들은 아주 많습니다.


   특히 통합교육은 특수에서 아무리 일반을 향해 손짓을 한들 이워지지 않습니다.  일반에서 특수를 향해 다가올 때 진정한 통합교육이 이뤄집니다.


7. 특수교사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언제인가?

  지체부자유 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기 중에 결혼을 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틈틈이 축가를 연습해서 당일 날 식장에서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늘 내가 도와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빠짐없이 참석해서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 것에 대해 감사했고 그날 식장에 오셨던 하객들과 주례 선생님께서도 감동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특수교사 인터뷰2 - 신** 선생님


1. 특수교사가 아닌 교사와 같은 반 아이들이 특수아에게 다가가기 좋은 방법??


일반교사와 비장애 친구들이 장애학생에게 다가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특수교사인 나는 참으로 기쁘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장애학생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 거부감을 떠나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장애학생들은 당연히 또래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어하고 그들과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아왔던 그동안의 상처들 때문에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어떤 경우는 심각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장애학생들은 참 매력없는 친구들이다. 지저분 할 때도 있고, 귀찮게 할 때도 있고, 수업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우리가 매스컴에서 보는 영화 마라톤의 “배형진”이나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처럼 그들의 장애를 넘어 다가 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애인은 드물 것이다.

나는 그런 문제점들을 다 감수하고 장애학생의 친구가 되어 달라는 억지같은 요구를 비장애학생들에게 하고 싶지는 않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지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되어서 사회에 더부살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가는 것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심”과 “사랑”으로 짧은 눈인사, 정다운 말 한마디를 나눈다면 아마 그들의 사이는 이미 좁혀졌다고 믿는다.

2. 반 아이들이 특수아와 친해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장애학생이 학급에 배치되면 담임선생님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 아이에게 특별히 잘 해 줄것인가, 아니면 일반아이들처럼 대할 것인가? 정답은 무엇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차이를 인정한 배려를 바탕으로 동등하게 대우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싶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 한마디,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선생님이 장애학생을 동정의 눈길로 본다면 아이들도 장애학생을 동정의 눈길로 볼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장애학생을 일반아이와 동일하게 바라보고 그 학생의 장애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서만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면 아이들 스스로도 “저 친구는 원래 저러니까 저런 도움이 필요하구나..”라고 인정할 것이다.

예전에 특수학급 학생에 대해 지나치게 잘해 주셨던 선생님께 비장애 학생들이 차별한다고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누구나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런 관심과 사랑을 장애학생이 독점한다면 비장애학생 눈에는 장애학생이 “공공의 적”이 아닐까?

그리고 무심결에 내뱉는 말에라도 비장애 학생들에게 “너 그러면 특수학급에 갈래?”라는 식의 농담은 하지 말길 바란다. 그 말 속에 이미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의 상하구분이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에 특수학급에 가는 장애학생에 대해 비하할 가능성이 크다.

장애학생의 장애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문제가 없는 한, 학급 일을 공정하게 맡기는 것도 좋다. 주번활동이나 청소에서 제외시킨다던지, 지각을 해도 아무말 없이 넘어간다면 아이들의 시기심을 살 것이다.


3. 반 아이들이 특수아를 어떻게 보살펴 주어야 하는가?


“보살펴 준다”는 말보다는 차이를 인정한다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장애학생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하등한 존재가 아니라 독특한 요구를 가진 아이들이다. 학생의 장애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장애학생 중에는 매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각자가 가지는 장애를 그 학생의 “특성”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서로 돕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4. 특수아에 대한 편견은???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이 활발해지면서 일반학교에 장애학생이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수학급에 있으면서 가장 큰 벽에 부딪히는 말이 바로

“그 아이들이 왜 일반학교에 다녀요?”

“그런 아이들은 그냥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로 보내는게 더 낫지 않나요?”

하는 말들이다.

장애학생들도 당연히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또래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그것이 장애학생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


5. 특수교사로서 힘든점??

통합교육 현장에 있다보면 어느 것이 장애학생에게 좋은지 특수교사인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스스로의 정체성을 놓쳐갈 때가 가장 어렵다.

그리고 아직까지 장애학생에 대한 통합교육의 필요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계와 사회전반적으로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잘못한 체계를 바라봐야 하는 아픔이 크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장애학생들 한명 한명이 장애상태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명확하게 장애학생의 상태를 파악할 만한 근거나 판별도구가 없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나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가르쳐야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6. 일반 교사와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말한다.

“왜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 그들이 없다면 더욱 건강할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애인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 모두 장애인들과 같은 처지가 된다. 걷기도 힘들고, 기억력도 감퇴하며, 시대의 흐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도 못한다.

장애인들의 삶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장애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통해 앞으로의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교훈을 얻는 것이다.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보지 말고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바라본다면 그들에 대한 편견이나 무시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7. 특수교사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언제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언제나 보람을 느낀다.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끝없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길을 걷고 있음에 감사하다.

교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라면 아마 아이들이 성장해 가고 싶다는 것을 느낄 때가 아닐까? 마냥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새 비밀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고, 때로는 이성 때문에 고민을 하고.. 이런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들을 장애학생들이 겪어가고 배워가는 모습을 볼 때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끝이 보이지 않던 이 길에 희망이 보인다. 그 희망을 붙잡고 오늘도 나는 학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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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

 

그후로 지금까지

내 눈빛이 얼마나 허망한지

내 간과 쓸개가 얼마나 공허한지

내 영혼이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지

이 모든 헛일이 나를 얼마나 비루하게  만드는지

 

나도 모른다

내가 어디까지,

내가 언제까지,

가라앉게 될지...

언제 바닥을 치고 드디어

떠오르게 될지...

 

그러므로 내게 '어색'이란 단어는 사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내가 대범하지 못한 소인배라는 것을 알듯이

이 상황이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 또한 나는 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왜 돌아서서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왜 이러는지.

왜 이런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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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1-2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시 맞아요?

BRINY 2006-11-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해콩 2006-11-2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울 다녀온 것, 눈치채셨군요? 브리니님 이거 극비인데..쉿! 조사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거든요. 근데 어제 9시 뉴스에서도 이 지침을 알려주더라구요..ㅋㅋ

글샘샘, 詩스럽지 않죠? 누군가가 쓴 글이라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