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호 (2007.3.7)


다산과 유토피아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어떤 굉장하고 거룩한 생각을 접하면 늘 이 생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유토피아가 있는가, 또 그 내용은 무엇인가 되물어본다. 대개의 경우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어떤 행복지(幸福地)를 갖고 있다. 예컨대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말한 천국(天國)이 그것이 될 터이다. 예수는 늘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 천국의 구체성은 늘 소연하지 않지만, 대체로 현실에서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진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종교가 약속하는 유토피아는 늘 애매하지만(애매해야 해석의 가능성이 넓어지는 법이다), 거기서는 현실에서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으니, 공자와 맹자, 석가의 유토피아 역시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이라 했지만, 그의 사상의 종착지 역시 종교적 유토피아의 일종이다.


차등과 차별 있는 세상은 이미 유토피아가 아니다


조선의 국가이데올로기, 곧 성리학이 꿈꾼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이 역시 애매하다. 다만 기묘사화로 죽었던 개혁가 조광조(趙光祖)에게서 그 희미한 단초를 본다. 조광조가 생전에 추진했던 개혁책을 검토해 보면, 그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윤리적 인간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시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형편없는, 비윤리적 인간들로 인해 고통을 겪는가. 모든 인간이 윤리적 인간이라면, 우리의 고통은 아마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한데 조광조가 생각한 그 윤리는 과연 일점의 오류도 없는 진리인 것인가. 중세의 윤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등과 차별을 근거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차별과 차등을 전제하는 윤리가 진리인 세상은 이미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뿐인가. 조광조의 사유가 궐한 것은 경제적 평등이었다. 경제적 평등이 없으면 사회적 평등이 있을 수 없고,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다. 구조화된 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고 개개의 사회 구성원의 윤리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경제적 평등을 지향한 유토피아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여전론(閭田論)은 경제적 평등을 골자로 삼고 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요약해 본다.


산골짜기와 하천 같은 천연의 경계로 땅을 자연스럽게 구획한다. 그 한 구획을 여(閭)라 부른다. 대개 30호로 구성되는 1여(閭)는 농촌 공동체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으로 분배한다. 분배의 원칙은 노동량이다. 여장(閭長)은 개인의 노동 일수를 장부에 꼼꼼히 기록하고, 가을 수확 때 노동 일수에 따라 수확물을 분배한다. 노력에 따른 분배니 불평이 있을 수 없다. 농민이 아닌 수공업자는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상인은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을 곡식과 교환하니, 역시 걱정할 것이 없다. 선비와 노동이 불가능한 신체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처우할 것인가. 선비 역시 농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농민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게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지식을 밑천 삼아 교육에 종사하거나 또는 농사법과 농기구의 개량 등에 기여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여를 노동일수로 환산해 곡식을 분배한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것이 다산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세상은 가망 없는 세상


독재정권 시절, 독재만 사라지만 모든 것이 좋아질 것 같았다. 이제 독재정권은 사라졌다. 독재정권이 사라진 뒤 나타난 것은 무엇인가. 독재를 걷어내자 오로지 물신(物神)을 향해 경쟁하는 인간의 욕망이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경제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만인을 적(敵)으로 삼는 무한경쟁이 인간 행위의 유일한 가치가 된 것이다. 독재정권을 걷어낸 과거 민주화 운동의 동력 속에는 역시 애매하지만 무언가 유토피아를 향한 갈망이 스며 있었다. 한데 지금 그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다산의 여전론 역시 실현 가능성 없는 공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다산의 사유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공상이 없는, 곧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는 세상은 가망 없는 세상이다. 21세기의 실학이 있다면 분쟁 없는, 만인이 평등한 유토피아를 다시금 상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푸른역사,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소명출판,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길, 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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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언어 귀족주의


민주주의란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을 믿는 바탕 위에서 성장한 이념이다. 국왕이나 귀족의 생각이 일반 민중의 생각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런 곳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엄밀하게 나뉘게 된다. 중세 이전의 유럽의 성직자, 귀족 등 지배층은 라틴어라는 언어적 도구를 이용하여 일반인이 지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 루터는 이런 언어 장벽을 거둠으로써 일반인도 신의 말을 읽고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지식이 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일반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이런 통로가 잘 닦인 곳부터 차례로 일어나서 발전해 나갔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갈라 놓는 언어 사용

동양에서는 한자라는 글자가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 깊은 골을 파 놓았다. 중국이 대단한 문명을 일으켰지만 지금도 수많은 민중은 글자 문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중국에 발을 붙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나 일본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은 한자가 자기 말과 맞지 않아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은 자국어를 철저히 활용하는 방법으로, 한국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이용하여 민중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20세기 이후 한국처럼 역동적으로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없다. 한글이 지식을 급격하게 대중화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겨우 한자의 장벽을 거두어 가는 시점에서 국민과 정부,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새로 설치되고 있다. 새로운 장애물은 영어라는 장벽이다. 정부와 기업은 영어를 아는 자와 영어를 알지 못하는 자, 영어를 사용하는 자와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 사이에 점점 깊은 골을 파고 있다.

민주주의는 일반 민중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자라는데 정부와 기업이 영어를 지나치게 강요함으로써 일반 민중보다는 소수 영어 능력자에 좌우되는 비민주적 사회로 떨어질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자로 대변되는 구파와 영어로 대변되는 신파 또는 이들을 합친 언어 귀족주의자들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대학을 나온 자나 나오지 못한 자나 관계없이 영어를 아는 자가 아니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시기가 올지 모른다. 과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일까?

28년 전인 1979년 영국에서는 신기한 운동이 하나 일어났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운동인데, 이 운동을 시작한 ‘크리시 마허’라는 여성이 이런 주장을 했다. “우리는 공적 정보를 민중이 듣거나 읽어서 즉시 이해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게 적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는 정부, 기업 등의 공적 의사표시를 국민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정확한 이해 없이 민주주의는 설 수 없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관계는 소통에 의존한다. 어려운 글은 소통에 걸림돌을 만든다. 정부처럼 큰 기관이 일반인과 소통을 할 때 오해가 생긴다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많은 경우에 뽐내는 단어, 복잡한 문장, 끝없이 긴 글은 간결성과 투명성을 소멸시켜 그런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쉬운 영어 운동’, 공적 정보를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요즘 고위 공무원들은 공적 의사표시에 영어를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영어 약자를 사용한 정부 계획서가 난무하고, 영어 약자를 사용한 공사 이름, 행사 이름, 산하단체 이름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한 스타일(Han Style)’을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이런 말을 쓰거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대학로 문예극장 이름을 ‘아르코예술극장’으로 바꿨는데 무슨 극장인지 더 어렵게 되었다. 노동부는 기능대학을 ‘한국폴리텍대학’으로 바꿨다. 그래서 한국폴리텍여자대학, 한국폴리텍바이오대학 등 듣기 거북한 대학 이름들을 양산해 놓았다. ‘폴리텍대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행정자치부는 정부중앙청사 현관에 ‘INNOVISION’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내걸고 정부의 혁신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영어 아는 사람들끼리만 혁신하면 되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정보통신부는 “행복한 U-Life와 함께 하는 U-Korea 실현”이라는 표어로 목청을 돋우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외교통상부에는 ‘외교 CyWatch’라는 모임이 있는데 시민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모임인 것 같지만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임을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서울시가 ‘Hi Seoul!’이라고 누구에게인지 모를 인사를 하고, 시민들의 발을 ‘서울 메트로’라고 바꾸고, 산하 공사 이름을 ‘SH공사’라고 바꾼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꾼 사람들은 어깨를 으스대고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은 그것을 하나하나 이해하면서 국가 정책을 따라가자니 힘들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니 차라리 외면하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다. 크리시 마허의 생각을 원용한다면 우리 공무원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시행할 의사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은 배운 자들이 세우는 것이고, 정책을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하려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사회 건설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들에게 과감히 맞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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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남영신
· 서울대 법대 졸업
· 국어문화운동 회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장
· 저서: <남영신의 한국어 용법 핸드북><4주간의 국어 여행>
          <국어 한무릎공부><문장 비평>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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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7-03-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잠시... 한자의 뜻을 좀더 풍부하게 설명하려면 영어를 공부해야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언어귀족주의'라는 비판에 '허걱'싶다. 지난 주엔 수업중에 아이들을 향해 '그들의 언어를 파괴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한다'고 했다. 물론 그들의 음험한 언어귀족주의를 내려놓으라는 요구도 함께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딜레마가 느껴진다. 그들의 논리를 제대로 알고 깨부수기 위해서는 그 언어도 알아야하는 것 아닌가? 그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암 문학에 매진하는 김명호 교수>

'국역 연암집'ㆍ'연암 선집' 동시 선봬

 

[연합뉴스 2007-03-06 11:45]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옛날이나 지금이나 '글쟁이'라면 묘지명이라든가 책 서문처럼 남들이 청탁해서 쓰는 글은 모름지기 피하려 했다. 한데 이처럼 귀찮고 내키지 않는 글에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펼치며 그것을 주옥 같은 예술로 승화한 인물이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23살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문집 '초정집'(楚亭集)을 내면서 그 서문을 써 달라고 하자 연암은 거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아! 소위 '법고'(法古)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임이 병통이요, '창신'(창<井+刃>新=創新)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곤 하는 게 걱정거리다. 진실로 법고할 줄 알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典雅)하다면 요즘의 글이 바로 옛 글이다."

연암은 그다지 시는 즐기지 않았다. 그는 산문의 귀재였다. 초정집 서문에서 주장한 법고창신을 시종 시험하려 했다. 괴짜 민노인, 한양 거지 광문(廣文)을 과감히 문학소재로 발탁, 데뷔케 하는가 하면, 똥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이라 추숭했다.

김명호(金明昊. 54)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연암은 마르지 않는 샘이요, 평생 화두다.

우직할 정도로 연암이라는 한 우물만 파는 그는 주변 많은 한문학도가 문화사 전반으로 관심 영역을 확대해 가지만, 오직 박연암(朴燕巖)에만 매진한다.

요즘은 박규수(朴珪壽. 1807-1877)에 뛰어들었으나, 그 역시 연암의 손자이니 연암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정리된 박사학위 논문이 '열하일기 연구'요, 그 외 다른 단행본도 제목이 '박지원 문학연구'다.

고전 국역전문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에서 지금껏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연암집'(燕巖集) 완역을 의뢰하자, 김 교수는 안식년 1년을 통째로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 이를 포함해 2년만에 '국역 연암집'은 사거 200주기에 맞춰 2005년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김 교수는 1년을 더 연암집 정리에 쏟았다. 도서출판 돌배개가 민추와 판권계약을 하고 연암집 국역서를 재편집해 출간하기로 함에 따라, 새로운 판형에 맞는 수정작업을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국역 연암집'에서 발견된 "번역이나 인쇄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한문문집총간' 표점본(標點本)에 의거한 원문 구두(句讀)를 전면 교열하여 완역을 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돌베개에서 전집 3권으로 최근 재정리돼 선보인 '연암집'은 나아가 번역과 각주를 수정 보완했으며 새로운 이본들을 추가 대조해 원문교감에 반영했다. 김 교수는 그 결과 "각주와 원문 각주를 합해 약 4천개에 달하는 주석이 붙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질 7만5천원)

민추본 '국역 연암집'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연암집 판본을 생산한 셈이다.

김 교수는 또한 이참에 연암문학을 대표하는 글들을 추려 뽑은 선집을 '지금 조선의 시를 쓰다'라는 제목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별도 출간했다. 이 선집에는 소설 10편, 산문 75편, 시 15수의 도합 100편을 수록했다.

김 교수는 이 선집이 1960년 북한에서 나온 홍기문(洪起文. 홍명희 아들)의 '박지원 작품선집'이 이룩한 성과를 "진정으로 극복하리라 다짐하던 결심을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554쪽. 1만8천원)

김 교수에게 연암 외에도 우전(雨田) 신호열(申鎬烈)이란 그림자가 항상 어른거린다. 이미 고인이 된 저명한 한문학자이자 고전국역가인 우전에게 그는 한문을 사사했으며, 특히 20여 년 전에는 그가 개설한 연암집 강독을 수강했다.

민추본 '국역 연암집'과 마찬가지로, 이번 돌베개본 '연암집'에도 김 교수가 옮긴이로 우전을 굳이 앞세운 까닭은 우전이 당시 강독회에서 구술한 국역문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박지원 문학이 "탈근대를 외치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대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면서 "연암은 당시 양반들의 고루한 사상과 복고적인 문풍을 혁신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 사물을 늘 새롭게 인식할 것을 촉구한 점이 연암 문학이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고전으로 빛을 잃지 않는 비밀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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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의 서  - 한용운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로 진보하는 것인데 여기서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 열패·약육 강식의 이론이 만고 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백, 몇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에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 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침략만을 일삼는 극악 무도한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그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하고 하늘이 슬퍼한 구라파 전쟁은 대략 1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 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전세계를 유린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 초사 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 마일의 싸움터에 배치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 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카이제르의 호언은 한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을 뜻하는 종곡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호언 장담뿐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 게획도 실로 탁월하였다. 휴전 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측의 군대는 독일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는 하늘에서, 잠수함은 바다에서, 대포는 육지에서 각각 그 위력을 발휘하여 싸움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군국주의적 낙조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아아, 1억만 인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게에 선전 포고했던 독일 황제. 그리하여 한때는 종횡 무진으로 백전 백승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 황제가 하루 아침에 생명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이냐. 이는 곧 카이제르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실패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그 개인을 위해서는 한가닥 동정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 연합국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 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간의 지구전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측 준군국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이다.

독일 혁명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룩된 것인 만큼 그 유래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 혁명의 자극을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의 잘못을 통감한 사람들이 전쟁을 스스로 파기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 혁명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하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연합국뿐만 아니라 또한 독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면 그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이 한때 승리를 거두었가 하더라도 반드시 연합국의 복수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한 것이 아니고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때에 단연 굴연적인 휴전 조약을 승낙하고 강화에 응한 것은 기회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 회담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 조약에는 무조건 승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3월 1일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라 할 것이다.

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 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제르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 선언, 체코의독립, 아일랜드의 독립 선언, 조선의 독립 선언이 그것이다 (3월 1일까지의 상태).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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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동적 인물로 피체・투옥되었던 1919년 당시 왜인(倭人) 검사의 심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기 위해서 옥중에서 기초한 것이다. 정연한 논리와 조리 있고 해박한 이론,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 선생의 탁월한 사상과 고결한 식견은 담당 왜인 검사로 하여금 예우(禮遇)와 경의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 왜인 검사의 입으로부터 ‘이론은 정당하나 본국 정부의 방침이 변치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라고 언명한 유명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사상과 이론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1919년에 기록된 이 논문에서 이미 미래에 다가올 세계사조와 몇 개의 정치적 문제의 예언을 적중시키고 있어 선생에 대한 위인으로서의 흠모의 정을 더욱 깊게 한다.
그 당시 선생은 옥중에서 기초한 이 글의 전문을 작은 글씨로 휴지에 적어, 접고 접어서 종이노끈을 만들어, 형무소로부터 차출하는 의복 갈피에 삽입, 간수의 감시를 피해 형무소 밖으로 유출시킨 것이 원문 그대로 등사되어 만주방면의 우리 동포들에게까지 전해졌었다고 한다. 원문이 기재된 원고는 선생이 별세한 해인 1944년에 유씨 부인과 김관호(金觀鎬) 님이 선생의 문갑을 열고 유고를 정리하다가 찢어진 봉투 속에 26년간 보존된 그대로의 원고가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인데, 그 후 다른 종이에 배접해서 다솔사(多率寺)의 최범술(崔凡述) 님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독립선언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민족사상서로서 우리 겨레의 영원한 재산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뜻에서 1971년에 발행된 《나라사랑》제2집에 실렸던 이 글을 원문 그대로 다침이 없이 여기에 전재한다.
<순국지 3월호 서문 : 황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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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7-03-19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朝鮮獨立에 對한 感想의 槪要 - 原 文

韓 龍 雲

一. 槪 論

二. 朝鮮 獨立宣言의 動機
(1) 朝鮮民族의 實力
(2) 世界大勢의 變遷
(3) 民族自決條件

三. 朝鮮獨立宣言의 理由
(1) 民族自存性
(2) 祖 國 思 想
(3) 自 由 主 義 (自存主義와 *別 )
(4) 對世界의 義務

四. 朝鮮 總督政策에 對하여

五. 朝鮮獨立의 自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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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槪 論

自由는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는 人生의 幸福이라, 故로 自由가 無한 人은 死骸와 同하고 平和가 無한 者는 最苦痛의 者라 壓迫을 被하는 者의 周圍의 空氣는 墳墓로 化하고 爭奪을 事하는 者의 境涯는 地獄이 되느니 宇宙의 理想的 最幸福의 實在는 自由와 平和라. 故로 自由를 得하기 爲하여는 生命을 鴻毛視하고 平和를 保하기 爲하여는 犧牲을 甘飴嘗하느니 此는 人生의 權利인 同時에 또한 義務일지로다. 그러나 自由의 公例는 人의 自由를 侵치 아니함으로 界限을 삼느니 侵掠的 自由는 沒平和의 野蠻 自由가 되며 平和의 精神은 平等에 在하니 平等은 自由의 相敵을 謂함이라. 故로 威壓的 平和는 屈辱이 될 뿐이니 眞自由는 반드시 平和를 保하고 眞平和는 반드시 自由를 伴할지라.


自由여 平和여 全人類의 要求일지로다. 그러나 人類의 智識은 漸進的이므로 草昧로부터 文明에, 爭奪로부터 平和에 至함은 歷史的 事實에 證明하기 足하도다. 人類 進化의 範圍는 個人的으로부터 家族, 家族的으로부터 部落, 部落的으로부터 國家, 國家的으로부터 世界, 世界的으로부터 宇宙主義에 至하도록 順次로 進步함이니 部落主義 以上은 草昧時代의 落謝塵에 屬한지라 回首의 感懷를 資하는 外에 論述할 必要가 無하도다. 幸인지 不幸인지 十八世紀 以後의 國家主義는 實로 全世界를 風靡하여 騰奔의 絶頂에 帝國主義와 其實行의 手段 卽 軍國主義를 産出함에 至하여 所謂 優勝劣敗, 弱肉强食의 學說은 最眞不變의 金科玉條로 認識되어 殺伐强奪 國家 或 民族的 戰爭은 자못 止息될 日이 無하여 或幾千年의 歷史國을 丘墟하며 幾十百萬의 生命을 犧牲하는 事가 地球를 環하여 無한 處가 無하니 全世界를 代表할 만한 軍國主義는 西洋에 獨逸이 有하고 東洋에 日本이 有하였도다.

그러나 所謂 强者 卽 侵掠國은 軍艦과 鐵砲만 多하면 自國의 野心壑欲을 充하기 爲하여 不人道 蔑正義의 爭奪을 行하면서도 그 理由를 說明함에는 世界 或 局部의 平和를 爲한다든지 爭奪의 目的物 卽 被侵掠者의 幸福을 爲한다든지 하는 等 自欺欺人의 妄語를 弄하여 儼然히 正義의 天使國으로 自居하느니 例하면 日本이 暴力으로 朝鮮을 合倂하고 二千萬 民族을 奴隸待하면서도 朝鮮을 合倂함은 東洋平和를 爲함이며, 朝鮮民族의 安寧 幸福을 爲함이라 云云함이 是라.

嗚呼라 弱者는 從古의 弱者가 無하고 强者는 不盡의 强者가 無하니 曝寒의 大運이 其輪을 轉하는 時는 復讐的 戰爭은 반드시 侵掠的 戰爭의 踵을 * 하여 起할지니 侵掠은 戰爭을 誘致하는 事라 어찌 平和를 爲하는 侵掠이 有하며 또한 어찌 自國幾千年의 歷史는 他國侵掠의 劍에 斷絶되고 幾百千萬의 民族은 外人의 虐待下에 奴隸가 되고 牛馬가 되면서 此를 幸福으로 認할 者가 有하리요. 何民族을 莫論하고 文明程度의 差異는 有할지나 血性이 無한 民族은 無하니 血性을 具한 民族이 어찌 永久히 人의 奴隸를 甘作하여 獨立自存을 圖치 아니하리요. 故로 軍國主義 卽 侵掠的主義는 人類의 幸福을 犧牲하는 最魔術일 뿐이니 어찌 是와 如한 軍國主義가 天壤無窮의 運命을 保하리요. 理論보다 事實,

嗚呼라 '劍'이 어찌 萬能이며 '力'이 어찌 勝利리요. 正義가 有하고 人道가 有하도다. 侵掠又侵掠 惡極慘極의 軍國主義는 獨逸로써 最終幕을 演치 아니하였는가? 血耶肉耶 鬼哭神愁의 歐洲 大戰爭은 大略 一千萬의 死傷者를 出하고 幾多億의 金錢을 *費한 後에 正義人道를 標榜하는 旗幟下에서 講和條約을 成立하게 되었도다. 그러나 軍國主義의 終極도 實로 色彩를 莊嚴함에 遺憾이 無하였도다. 全世界를 蹂躪하려는 海欲을 充하기 爲하여 苦心焦思 三十年의 準備로 幾百萬의 健兒를 數百*의 戰線에 立하고 鐵騎飛船을 鞭馳하여 左衝右突 東聲西擊 開戰 三個月 內에 巴里를 陷落한다고 自期하던 카이제르의 聲言은 一時의 壯絶을 極하였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訣別의 終曲일 뿐이며, 理想과 聲言 뿐 아니라 作戰計劃의 事實도 卓越하여 休戰을 開議하던 日까지 聯合國側 兵馬의 足跡은 獨逸國境의 一步地를 踰越치 못하였으니 航空機는 空에서 潛航艇은 海에서 自動砲는 陸에서 各各 其 妙를 極하여 實戰의 作略에 絢爛한 色彩를 發하였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落照의 反射일 뿐이다. 噫, 一億萬 人民의 上에 君臨하고 世界 一括의 雄圖를 自期하여 對世界에 宣戰을 布告하고 百戰百勝의 槪를 有하여 神耶人耶의 間에서 縱橫自在하던 獨逸皇帝가 一朝에 自己生命의 神으로 認하는 '劍'을 解하고 *凉落拓, 天涯淪落의 知蘭 遐*에 殘喘을 僅保함은 何等의 突變이냐? 此는 곧 카이제르의 失敗 뿐 아니라 軍國主義의 失敗니 一世의 快事를 感하는 同時에 其人을 爲하여는 一線의 同情을 禁치 못하리로다. 그러나 聯合國側도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한다고 聲言하였으나 其 手段 方法의 實用은 亦是 軍國主義의 遺物인 軍艦 鐵砲 等의 殺人具인즉 是는 蠻夷로 蠻夷를 攻함이니 何의 別이 有하리요. 獨逸의 失敗가 聯合國의 戰勝이 아닌즉 數多한 强弱國의 合致한 兵力으로 五年間의 持久戰에 獨逸을 制勝치 못함은 此는 또한 聯合國側 準軍國主義의 失敗가 아닌가. 그러면 聯合國側의 砲가 强함이 아니요, 獨逸의 劍이 短함이 아니거늘 戰爭의 終極을 告함은 何故뇨? 正義 人道의 勝利요 軍國主義의 失敗니라. 然하면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聯合國의 手를 借하여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인가. 曰 否라.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獨逸人民의 手를 假하여 世界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이니 곧 戰爭中의 獨逸革命이 是라. 獨逸革命은 社會黨의 手에서 起하였은즉 其 由來가 久하고 또한 露國革命의 刺戟을 受한 바 有하나 統括的으로 말하면 戰爭의 苦를 感하여 軍國主義의 非를 痛切히 覺悟한 故로 談笑容從의 間에서 戰爭을 自破하고 怒濤驚浪의 軍國主義를 發揮하려던 劍을 倒하여 軍國主義의 自殺을 遂하고 共和革命의 成功을 博하여 平和的 新運命을 開拓함인즉 聯合國은 其隙을 乘하여 漁父의 利를 得함이라. 今番 戰爭의 終極에 對하여는 聯合國의 勝利 뿐 아니라 또한 獨逸의 勝利라 하리로다.

何故오? 今般戰爭에 獨逸이 孤注一擲의 最後 一戰을 決할지라도 勝負를 可히 知치 못할지요. 假使 獨逸이 一時의 勝利를 得한다 할지라도 聯合國의 復讐戰爭이 一起再起하여 獨逸의 滅亡을 見치 아니하면 兵을 解할 日이 無할지라. 故로 獨逸이 戰敗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戰勝이라고 할 만한 境遇에 在하여 斷然히 屈辱的 休戰條約을 承諾하고 講和를 請함은 곧 機를 見하여 勝을 制함이니 講和會議에 對하여도 可及의 屈辱的 條約에는 無條件으로 承諾함을 推知하기 不難하도다 (三月 一日 以後의 外界消息은 不知). 그러하면 現今主義로 見하면 獨逸의 失敗라 할지나 遠視的으로 見하면 獨逸의 勝利라 하리로다.

噫라 曠古 未曾有의 歐洲戰爭과 奇怪 不思議의 獨逸의 革命은 十九世紀 以前의 軍國主義 侵掠主義의 餞別會가 되는 同時에 二十世紀 以後의 正義 人道的 平和主義의 開幕이 되어 카이제르의 失敗가 軍國主義的 各國의 頭上에 痛棒을 下하고 威日遜의 講和基礎 條件이 各領土의 古査에 春風을 傳하매 侵掠國의 壓迫下에서 呻吟하던 民族은 騰空의 氣와 決河의 勢로 獨立自決을 爲하여 奮鬪하게 되었으니 波蘭의 獨立이 是며 체코의 獨立이 是며 愛蘭의 獨立宣言이 是며 印度의 獨立運動이 是며 比律賓의 獨立經營이 是며 朝鮮의 獨立宣言이 是라 (三月 一日까지의 狀態). 各民族의 獨立 自決은 自存性의 本能이며 世界의 大勢며 神明의 贊同이며 全人類의 未來 幸運의 源泉이라. 誰가 此를 制하며 誰가 此를 防하리요.

출처 : http://www.manhae.or.kr/library.htm
 

신채호 「조선혁명선언」전문

 

http://blog.naver.com/creep0606/120035642918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과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 내내 소득으로 자기 한 몸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 바치어 그 살을 찌워 주는 영원한 소·말이 될 뿐이오, 끝내는 그 소·말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고 빠른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가 굶주린 귀신으로부터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발짝의 행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과 원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 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스사노오노미코토(表잔嗚尊)의 형제'라 하여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라 한 일본놈들의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 정치를 찬미하는 반(半)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하는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당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팔다리를 달아 매는, 콧구멍에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감옥 문에서 나온대야 평생 불구의 폐인이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처한 형편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채찍질·구박·압제를 받아, 바다에 둘러싸인 삼천리가 하나의 큰 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지푸라기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 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선천 등이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몸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잔혹하게 다룬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 도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조선'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재산 자유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 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 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 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민원식 등 한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따위 미친 주장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뇌동하는 자-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사한 무리가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이들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 민족은 온통 굶주린 귀신이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 대의사(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굶어 죽는 화를 면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자치임을 막론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帝國)'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여기에 딸려 있는 조선 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헛된 이름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갑자기 부처·보살이 되어 하루 아침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돌려주며, 내정과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이름뿐인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모두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받든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정치 하에서 문화 운동을 부르는 자-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 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 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오랜 옛날 자유롭게 발달한 남은 혜택을 지킴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 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사람의 피를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지킨 전례가 있더냐? 검열·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자치·참정권 등을 주장하는 자)나 강도정치 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름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첫째는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세에 더욱 심하여, 갑신(甲申) 이래 유신당·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국의 원조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이 나라를 끌어 들여 저 나라를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로 하는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甲午)·갑진(甲辰) 양 전쟁에 일본이 수십 만의 생명과 수억 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러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한 자루의 칼과 한 방의 총알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포악한 관리나 나라의 원수에 던지지 못하고, 청원서나 여러 나라 공관에 던지며 탄원서나 일본정부에 보내어 국세(國勢)의 외롭고 약함을 슬피 호소하여 국가존망·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山林儒生)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기 있는 자로 보면 침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어진 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나라가 망한 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아무개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 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미일전쟁·러일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 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중의 용기 있게 분발하여 전진하는 의기를 쳐 없애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둘재는 준비론인, 을사조약 당시에 여러 나라 공관에 빗발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밀사도 독립 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성패를 생각하지 않고 의병을 모집하여 높은 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총을 몰아가지고 조일(朝日)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쪼가리나 본 이들-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러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오늘 이 시간에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을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졸병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 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느껴지고,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庚戌)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물하여 십여 년내와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 없는 모임 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게 생산 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고 먹을 방법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되게라도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 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 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 중 누가 더 어질고 누가 더 포악하며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악한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한 뿐이요, 직접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목을 베어 백성을 위로한다'가 혁명의 유일한 근본 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한 미담이 되었거니와, 오늘날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팽창의 뜨거운 정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 상의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돈 없는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도 구착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첫 걸음은 민중 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은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神人)이나 성인(聖人)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이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불합리한 민중 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 각오의 첫째 길이니라.


일반민중이 굶주림·추위·피곤·고통, 처의 울부짖음, 어린애의 울음, 납세의 독촉, 사채(私債)의 재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 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때려누이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四海)에 전하며 뭇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굶어죽음'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라 하 길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기 있는 자의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한 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사·교활·잔혹·포악한 강도 일본이 마침내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십만이 한 번 던진 폭탄만 못하며 억천 장 신문·잡지가 한 차례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 지나온 경과로 말하면 갑신 정변의 특수 세력이 특수 세력과 싸우던 궁중의 한때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 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뒷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 운동의 만세 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언뜻 보였지만 또한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폭력' 둘 가운데 하나만 빠지면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장렬한 거동이라도 또한 번개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니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가사 교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뒤에는 어두운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앞에는 빛나는 활기이니, 우리 조선 민족은 그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을 기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파괴·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찰꾼·매국노


4) 적의 일체 시설물


이 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을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 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사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첫째는 이족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둘째는 특권 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 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 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 민중은 자유적 조선 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 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 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셋째는 경제 약탈 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 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 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 제도를 파괴함이라.


넷째는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 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들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탈, 서로 질투, 서로 원수로 보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마지막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끝내 숫자 상의 공(空)이 되고 말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다섯째는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전해 내려오는 문화 사상의 종교·윤리·문학·미술·풍속·습관 그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 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 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 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 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 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 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 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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