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 이름씨
대명사 : 대이름씨
수사 : 셈씨
동사 : 움직씨
형용사 : 그림씨
부사 : 어찌씨
조사 : 토씨
관형사 : 매김씨
감탄사 : 느낌씨

주어 : 임자말
서술어 : 풀이말
목적어 : 부림말
보어 : 기움말
수식어 : 꾸밈말, 꾸밈씨
관형어 : 매김말
부사어 : 어찌말
접속어 : 잇씨, 이음씨
체언 : 몸말, 임자씨
용언 : 풀이씨
관계사 : 걸림씨
접사 : 씨가지
어간 : 줄기
어미 : 씨끝

종결어미 : 맺씨
의태어 : 꼴흉내말
감탄사 : 놀
합성어 : 겹씨
파생어 : 번진말
복합어 : 거듭씨
복음 : 겹소리
자음 : 닿소리
복자음 : 거듭닿소리
모음 : 홀소리
이중 모음 : 거듭홀소리
마찰음 : 갈이소리
보조사 : 도움토씨
시제 : 때매김
서술형 : 베풂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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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걸어온 길  
창비주간논평. Comments (0)

한홍구 / 성공회대 교수, 한국사

2007년 9월 18일 오전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적인 사유 등으로 집총(입영)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군대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했다"며 그 후속조치로 "내년까지 병역법과 사회복지 관련 법령, 향토예비군설치법 등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병역 이행이라는 국민의 의무와 소수 인권 보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병역거부 분위기의 확산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구한다는 차원에서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분야를 가장 난도가 높은 부문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6년여 동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어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해결의 가닥이 잡히게 된 것이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1년초 《한겨레21》의 한쪽 짜리 짧은 기사가 반향을 일으키면서부터지만, 그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일본에서 징병제가 확대되면서 일본내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하자 일제는 1939년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도 탄압을 가하여 신자 38명을 투옥하였는데, 이들 중 5명은 옥사하고 나머지 33명은 신앙양심을 지키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옥문을 나섰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은 그저 신앙양심을 지켰을 뿐이라고 했지만, 정부기관이 편찬한 각종 독립운동사에는 이들의 '등대사 사건'이 일제 말기의 주요한 저항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무겁게 처벌해온 우리 사회

'여호와의 증인'들은 일제하에서나 독립된 대한민국에서나 똑같은 행동을 하였을 뿐인데, 대한민국정부는 그들의 일제 말기의 행동은 독립운동으로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행동은 엄히 처벌해온 것이다. 인권운동가들조차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 정부수립 이후(실제 광범위한 처벌은 5·16군사반란 이후) 무려 1만 3천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이 묵묵히 징역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제기된 시점도 매우 상징적이다.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여러가지 인권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비전향 장기수의 석방과 북송 문제가 첨예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김대중정권의 출범으로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두 석방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비전향 장기수가 북송되면서 90년대 내내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인권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비전향 장기수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문둥이'보다 더한 천형이라 낙인찍힌 '빨갱이'들이 아닌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는 극도의 반공지상주의, 국가주의, 군사주의가 판을 친 한국에서 '빨갱이'의 인권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드러난 그런 문제였다.

병역거부자의 99퍼센트는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이들이 산 징역 햇수를 모두 합하면 족히 3만년은 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여섯배쯤에 해당하는 징역을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산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남을 해친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인 총을 드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과연 이 일이 그토록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대체복무제 도입의 긍정적 효과

전세계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지만, 한국처럼 엄하게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전세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수감자 900여명 중 현재 830여명이 한국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르완다가 근 3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었지만, 내전의 종식과 함께 이들을 석방한 바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군사대국, OECD 가입국,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제야 이런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나, 일제시대에는 할아버지, 군사정권시절에는 아버지, 그리고 민주화되었다는 오늘날에는 아들, 이렇게 3대가 감옥에 가는 현실을 보면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처음으로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된 뒤부터 따지면 약 4천명, 2004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을 행정부와 입법부에 권고한 다음부터 치면 2천여명의 청년들이 전과자가 되고서야 이번 조치가 발표되었다.

일부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사회복무제로 포용하는 조치가 국방력을 약화시킬 것이라 하나, 오히려 군의 효율적 운영과 병역제도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선 군부대에 가보면 지휘관들이 큰 부담으로 느끼는 것은 이른바 '문제사병' '관심사병'이라 불리는 복무 부적응자들에 대한 '관리' 문제이다. 일선 지휘관들은 이들이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이들의 '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2000년에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타이완의 경우, 열악한 복무환경과 형편없는 사병의 인권상황으로 인해 해마다 군대 안에서 많은 인명사고가 발생했는데,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복무 부적응 사병이 될 소지가 있는 청년들이 사전에 대체복무제를 지원함으로써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얻은 성과 중 하나는 사병들의 복무환경과 인권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서도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변화시키려면 현역병들의 복무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군인인권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2002년 일당 7백원, 월 2만원 정도에 불과하던 사병의 급여는 아직도 급여라 부르기에는 미흡하지만 올해 기준 평균 8만 8천원으로 4.4배 인상되었다. 군인인권은 아직도 적잖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인권상황이 가장 많이 개선된 부분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군당국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종교적 이유 '등'이라고 하여 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들에 국한하지 않고 일정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은 잠재적인 '복무 부적응자'들을 대체복무로 유도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군인 인권과 복무환경 개선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동안의 뜨거운 논쟁에 비하면, 막상 정부의 방침 발표 이후에는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은 편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도 대체복무제 실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병역기피에 악용되지 않도록 감독과 운영을 잘해야 한다는 선으로 물러섰다. 사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을 계속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이번 정부의 조치는 큰 흐름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시행이 2009년으로 미루어져 있는데, 여러가지 실무적인 준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현정부 임기 내에 입법화 등 가시적인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당장 입영통지서를 받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경우 이들을 계속 잡아들여 감옥에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매년 7∼800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오는 현실, 즉 하루에 2∼3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오는 현실에서 이들의 입영연기와 고소고발 취하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아가 현재 수감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각각의 조건에 따라 가석방, 형집행정지 등의 전향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반대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대체복무의 기간과 조건이 충분히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병역거부자들 입장에서 한센병환자 재활기관이나 결핵요양소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겠지만, 현역복무의 2배라는 긴 기간은 재고되어야 한다. 유엔도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복무의 2배로 잡는 것은 너무 길며 징벌적 성격을 띤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출범 이후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운동 상황의 악화, 국가보안법 폐지의 좌절, 양극화 심화, 한미FTA 강행 등으로 지지기반이었던 진보-개혁진영을 계속 실망시켜왔다. 그나마 이번 조치가 일련의 과거청산 작업 ― 여전히 문제가 많고 더디기만 하지만 ― 과 함께 그래도 노무현정부니까 이 정도라도 했다는 평가를 받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2007.10.2 ⓒ 한홍구
병역거부,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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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0-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야기가 처음 나오던 2000년의 한겨레21에서 한홍구 교수도 꾸준하게 관련된 이야기를 내놓고 했었죠. 이제 수면 위에서 이야기되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1.
나는 경남 밀양에 있는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한다. 우리 반에는 스물 네명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지만,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하려 드는 아이도 있고, ‘슬기샘’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학교 도서실에서 대출해 온 책에 푹 빠진 아이도 있고, 가끔은 바깥에서 사고를 치는 아이도 있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아쉬운 점이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청소에 서툴고, 물건을 잘 간수하지 못하는 점이다. 나는 이런 기초적인 습관을 바로 잡아주려 갖은 애를 쓰지만, 잘 되진 않는다. 방황하거나 사고를 친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야단치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다 보면, 한동안은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생활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더러 이 녀석들에게 제 부모님들 고생하시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녀석들은 눈물을 비치기도 한다.

나는 이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진 못하지만, 저들과 내가 우정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래도 선생 노릇 하는 기쁨을 느낀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앞 분식집으로 우루루 몰려가 닭꼬치나 핫도그를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참 흐뭇하고 행복하다.

이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농사를 짓거나, 작은 가게를 하면서 말 그대로 ‘그럭저럭’ 사시는데, 이십여만원이 되는 수학여행비나 일년에 네번 등록금을 낼 때면 힘겨운 기색이 역력해 뵌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대학생이 되면,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스승의 날에는 꽃을 들고 한껏 차려입고 학교에 와서 옛 스승들에게 인사를 한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이나마 지탱되는 건, 아이들이 이 고통스런 멍에를 지고 살면서도 그 나이대의 고유한 선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스무살 이후에 만날 세상에 대한 동경만큼은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왜냐하면, 나는 20년 전에는 저 자리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이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저 아이들의 삶의 조건이 훨씬 더 가혹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도, 결국 저 아이들 대부분은 ‘88만원 세대’의 전사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결국 제 선함을 희생하고, 제 영혼을 팔아야 할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이 있는 힘껏 강퍅하게 자신을 다스리고 누군가를 짓밟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도록 빚어져 버렸고, 별로 나아질 전망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전교조 활동가로서 ‘이게 아닌게’ 하는 회의 속에서도 꾸역꾸역 전교조 일을 하는 건 전적으로 저 아이들과의 우정 때문이고,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에서 저 아이들을 살게 하고픈 소망 때문이다.

2.
현재로선 당선이 가장 유력해 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난 10월9일 교육정책비전이라는 교육 공약의 큰 밑그림을 펼쳐보였다. 지금껏 나는 쏟아지는 예의 그 ‘말폭탄’으로부터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써 그를 외면해 왔지만, 교육 정책만큼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그의 기자회견문을 내려받아서 프린터로 출력해서 두 번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서 세 번을 읽었다. 그가 만약 당선이 된다면, 내가 이 소도시의 작은 학교에서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평화도 사라질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껏 우리 공교육은 쉼없이 팔이 비틀리고 다리가 분질러져왔지만, 이제는 아예 숨통이 끊어질 차례가 된 것 같다.

이명박 후보가 발표한 교육정책비전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 교육을 3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비판을 한다. 이것도 어폐가 있다. 그건 30년 전보다는 지금이 그나마 낫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아이들의 삶은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워졌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학습노동량과 빼앗긴 자유의 크기는 30년 전보다 끔찍하리만치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비전이 현실화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 이건 평균 이상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문제일 터이다. 모르긴 해도 교육 현장은 전쟁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교육 5대 프로젝트를 읽어가다 4번 ‘영어 교육’ 관련한 부분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는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텐데, 굳이 한글날인 10월9일에 한국의 학교들을 영어 학원으로 바꿔놓겠다는 발표를 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날이 한글날임을 잊었음이 분명하고, 달리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 3000 대군을 양성해서 이제는 수업도 영어로 시켜보겠다는데, 대단히 안타깝지만, 이 공약 때문에 영어 조기 유학을 포기할 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최근의 조기 영어교육 바람을 잡아주진 못할망정 아예 기름을 드럼째 부어주는 격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애꿎은 아이들, 교사들 고생시키지 말고, 일단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국무회의랑 비서실 참모들과의 회의부터 영어로 하겠다고 먼저 모범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명박 후보는 전체 고등학교의 20%에 가까운 300개 고등학교를 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마이스터 고교 따위로 재편하겠다 한다. ‘20대 80’ 이론에 맞추려고 숫자까지 계산을 한 모양이다.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숫자가 부족해서 거기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니 아예 왕창 짓고 보자는 발상이다. 초6병, 중3병이 새로 생길 것이고, 아이들은 12년 내내 시험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이 미친 시험 열풍에 맞서 아이들이 죽음으로 저항할 것이 두렵다.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간 동안 정권은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의 그 눈물겨운 ‘부잣집 학생 데려가기 프로젝트’에 이른바 ‘3불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어깃장을 놓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화끈하게 풀어 줄 테니, 알아서 데려가라 한다. 우리 지역 아이들 일부가 그나마 ‘In Seoul’해서 ‘지하철 2호선’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내신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신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강남, 특목고 출신 아이들과 그럭저럭 경쟁이 된 것이다.

대학 입시를 대학에 맡기면, 상위권 대학에게서 내신이 홀대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이야기, 내 교육철학에는 정말 안 맞지만, 내신 1등급과 수능 1등급과 본고사는 각각 측정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의 준거가 다르다. 내신 1등급을 받기 위해 본고사 수준의 지적, 논리적 직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높은 내신 등급을 위해 3년 내내 기울여야 할 성실성과 꾸준한 정리, 흐트러짐 없는 자기관리는 그 자체로 고등 학문 탐구에 매우 긴요한 지적 자질이다. 내신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수능이나 논술로 입학한 학생들보다 대학 성적이 우수하다는 보고도 잇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내신을 이토록 홀대하는 것은 단 하나, 촌놈들, 가난한 집 애들도 좋은 등급을 받는 것이니, 그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고교 평준화는 지역별로 콕콕 박혀 있는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그리고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의 내신 홀대와 비 강남, 비 특목고 차별로 인해 거의 해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이명박 후보의 이번 발표는 아예 그 거추장스런 속곳마저 벗어던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는 기초학력 진단고사라는 일제고사를 치러서 ‘지진아’를 솎아내겠다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학교별 성적을 낱낱이 공개해서 일렬로 줄을 세운다. 그래서 국민들의 ‘알 권리’도 충족시켜 주고, 덩달아 집값과 땅값도 조절해 주고, 주거지의 등급도 확실하게 매겨 주고, 학교끼리 전쟁을 치르게 한다. 이쯤하면 공교육이라는 이름 대신 정글의 교육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맞다. 그리고, 공교육의 깃대는 뽑아 버리는 게 맞다.

3.
대통령 선거를 두 달 남짓 앞둔 지금, 이명박 후보가 한껏 만끽하는 대세론이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달리 다른 수가 안 보이니, 웬만하면 될 것 ‘같기도’ 한” 이른바 ‘같기도’ 대세론이다.

군에서 전역한 뒤 한달 가량 건설 현장에서 인부 노릇을 해본 나로선 ‘건설 사장님’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사장 노릇하기 쉬운 직종이 어디 있을까만, 체력과 카리스마, 무대뽀 정신까지 두루 겸비해야 하는 건설 사장님은 ‘사장 중의 사장’이라 생각한다. 바로 그 건설 사장님계의 선동렬쯤 되는 이가 이명박 후보니,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서울시장실에서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제 아들을 히딩크 감독과 기념 촬영을 시켜주었던 ‘자상한 학부형’이기도 하다.

그가 교육정책비전을 발표하던 10월9일, 그 날이 한글날인 것은 잊었겠지만, 교육 부문이니만큼 천하의 사장님도 긴장되긴 했을 것이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거울에게 물었을 것이고, 거울은 “당신은 모랫바람을 맞으며 열사의 중동 사막을 누비던 사장님이었고, 자식을 위해 위장전입을 마다않던 학부형”이라고 대답해주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확신을 갖고 기염을 토한다. “부르도쟈 운전석엔 제가 앉았습니다. 강남 학부형님들, 조중동 나으리들, 그동안 교육 때문에 힘들었던 거 제가 다 압니다. 이제 저만 따라오세요!”라고.

이명박 후보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우리 교육 현장에는 강남과 특목고와 거기에 갈 만한 아이들과 그들의 학부모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강남 아이들이건, 특목고 아이들이건,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이건, 그들은 세계화 시대의 전사로 살아갈 ‘인적 자원’이기 이전에 우선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지금 당장, 놀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삶의 의미 앞에서 방황하는 바로 그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곳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까지 이명박 후보가 집권했을 때 펼칠 교육 정책으로 인해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아니, 그저, 이 나라 어느 고등학교건 직접 찾아가서 피곤에 절어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단 몇 분만이라도 곁에 서서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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