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쳐 창조한 지식과 축적한 경험은 정치나 이념적으로 말해도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고 무쌍하다. 그리고 그 사이는 끝없이 풍부하다. '우'의 극단에 서면 우주의 모든 것이 '좌'로 보이게 마련이다. 조금 거리가 멀면 보든 것이 '극좌'로 보일수밖에 없다. '좌'도 그 극에서 서서 보면 모든 것이 '우'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극'의 병리학이다. 벽에 걸려 있는 부랄시계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착각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한 번 오른쪽 끝까지 갔다간 왼쪽 끝까지 돌아가고, 다시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아니 그래야만, 시계는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화가 나서 시계 부랄을 오른쪽 끝에 못박아보았더니 시계는 죽어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진자나 저울의 바늘도 중앙에 돌아와 서려면 좌와 우를 조금씩 왔다갔다 하면서 편안하게 제자리를 잡는 것 같다. 그러고는 느긋이 안정을 누린다. 왜 그럴까? 8*15이후 반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약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리영희, [자유인, 자유인: 리영희교수의 세계인식], 범우사, 1990.
- 강준만 편저,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177쪽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