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날

- 박일환

 

여름방학 끝나고 다시 출근했더니

등꽃이 먼저 반겨 주더군

다른 놈들은 이미 서너 달 전에 피었다 졌고

휘감아 올라간 넝쿨마다

기다란 씨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쩌자고 뒤늦게 몇 놈

수줍게 고개 내밀고 있더군


늦된 게 부끄러운 줄 알기는 아는 모양

무성한 이파리 틈새에 숨어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보고 있자니

꼭 그런 놈들이 떠오르더군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끝날 무렵

엉뚱한 질문이나 해 대는 놈

남들 다 해 오는 숙제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내는 놈

몇 박자씩 꼭 늦는 놈


하지만 그런 놈들도 꽃은 꽃 아니냐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졌지만

언젠가 한번은 꽃 피는 인생 아니냐


개학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군

선생 노릇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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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아이들을 참아준다'는 표현을 하게 된다. 자라는 속도가 아이들 별로, 또 아이들 개개의 특성도 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 것 같다. 어떤 아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빨리 자라는 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늦게 자라고 또 다른 아이는 성실성은 빨리 자라면서 사회성은 늦게 자라는 등... 이런 성향들로 개성이라는 것이 형성될텐데..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기다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들 언젠가는 꽃필 아름다운 인생들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