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날
- 박일환
여름방학 끝나고 다시 출근했더니
등꽃이 먼저 반겨 주더군
다른 놈들은 이미 서너 달 전에 피었다 졌고
휘감아 올라간 넝쿨마다
기다란 씨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쩌자고 뒤늦게 몇 놈
수줍게 고개 내밀고 있더군
늦된 게 부끄러운 줄 알기는 아는 모양
무성한 이파리 틈새에 숨어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보고 있자니
꼭 그런 놈들이 떠오르더군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끝날 무렵
엉뚱한 질문이나 해 대는 놈
남들 다 해 오는 숙제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내는 놈
몇 박자씩 꼭 늦는 놈
하지만 그런 놈들도 꽃은 꽃 아니냐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졌지만
언젠가 한번은 꽃 피는 인생 아니냐
개학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군
선생 노릇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