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반도 모둠별 수행평가를 했지? 너희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네.. 다들 함께 열심인 모습.. 정말 예쁘지. 수행평가도 일종의 시험이기에 자리를 뜨는 것이 맘에 걸려 잠시 망설였지만 너희를 믿기로 하고 잠깐 교실을 나와 교무실 책상 서랍 속에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왔단다. 일부러 폼 잡지 않아도 너무 예쁜 너희들 모습을 너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거든.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


오늘은 토요일! 아침에 신문을 함께 보았지? 이런 구절을 읽어주었는데...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다양성은 하나의 풍요로움이지 장애가 아니다. 각각의 얼굴은 하나의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타하르 벤 젤룬 지음. 홍세화 옮김『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다 듣고 난 연지가 대뜸 "샘~ 우리 얼굴이 정말 모두 다 기적이에요?"했지? (이럴 때 연지는 정말 깜찍.. 그 거리낌 없는 질문을 사랑해~) "그럼, 기적이지. 세상엔 똑같이 생긴 얼굴이 하나도 없다니깐 기적이겠지? 그 전에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기적이구."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랬구.. 이어서 잠깐 이런 얘기도 했네. "사람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고 냉정하지. 옛날엔 그렇지 않았을텐데 거울이 발명되면서 다른 사람과 나의 모습을 서로 비교하게 되었고, 또 TV가 발명된 후로는 TV에 나오는 소위 예쁘다는 사람과 또 나를 비교하게 되었지. 그러면서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쭈쭈빵빵이 아닐까? 스트레스 받고... 그런데 그런 아름다움은 주로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단다. 예를 들면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그런 목걸이, 옷, 화장품, 구두, 가방.. 등등 그런 물건들을 갖추어야 그 연예인들처럼 예뻐진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주면서 물건들을 사도록 만들지... 그런데 실은 너희들도 나도 똑같이 생긴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적이고 우리들은 모두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야~."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는데.. 너희들에게 얼마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쉽고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하는데 내 이야기는 항상 조금 힘들지?)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끔 외모 때문에 주눅이 든단다. 그렇지만 요즘은 자신 없는 내 신체의 부위를 더 많이 이뻐해주려고 노력하는 중~


개별 수행평가.. 그리고 모둠별 수행평가.. 한 학기에 늘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수행평가를 치르는 이유는 너희들 개별 능력도 중요하고 또 모둠별로 주어지는 과제를 여럿이 함께 조직적으로 몰두해서 해내는 '함께하는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란다. 아직 채점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너희들 모두 시간 내에 쉽지 않은 그 한문문장을 풀이해내었지? 말풍선에 대사도 써 내었을테고 말이야.. 혼자했다면 어땠을까? 시간 내에 해낼 수 있었을까? 갸우뚱스럽지?

모둠별 수행평가를 할 때마다 우리 반이건 다른 반이건 너희들이 너무 예뻐. 서로 도와가며 스스로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은 소풍 때 한껏 가꾸고 멋을 낸 너희들 모습보다도 훨씬 예쁘단다. 그래서 마구마구 사진을 찍어댔는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튕기는지..쯧!! 사진 나오면 보여줄게. 너희들 모습 얼마나 귀한지 너희들이 직접 확인하렴.


생일잔치 때, 소풍 때... 이런 일상적인 모습들.. 지금은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조금 더 세월이 가면 너희들의 지금 모습도 사라지겠지?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테니... 그땐 샘이 찍어준 사진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을 거야. 조금 밉게 나온 사진이라도, 다른 아이들만 나온 사진이라도 그땐 그리워지지 않을까?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나중에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할 추억들을 그냥 스쳐보내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워서 말이야.... 2학년도 이젠 몇 달(두달? 세달?)남지 않았고 미우나 고우나 함께했던 우리 1년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네. 그래서 이렇게 사진 이야기가 길어지나보다.


남은 기간 동안도 너희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여고 2학년 시절이 되길 바래. 너희도 나도 노력해야겠지?


그리고 마지막.. 공부! 이야기... 지금 3학년 중엔 내신이 좋지 않아서 수시에 떨어지는 아이들이 엄청 많단다. 그런 모습 보는 것이 너무 맘 아파. 내년에 너희들.. 웃는 모습이 보고 싶구나. 다른 과목도 중요하지만 국영수는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힘들더라도 수업 시간에 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분명히 아는 말이 나온단다. 처음부터 다 알아듣는 사람은 없거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듣다보면 그렇게 알아듣겠는 말들이 하나 둘 늘어나서 그것이 점점 내 것이 된단다.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오늘의 '나'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진정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 20가지는 해야한다는 사실도... 


노력하고 열중하는 자기 자신이 되기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길 바래. 모든 사람에게 늘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란다.

우리 모두에게 '홧팅'이다. 아자!!


2004. 11. 6. 늦은 밤에 샘~


지금부터 답장..

 

1. 연지('딸랜뚜스타'라고도 불리우는 우리반의 귀염둥이.. 어찌나 발랄하고 사랑스러운지 수업들어오시는 샘들마다 칭찬이다. 사실 공부는 좀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 확실하고 또 열심히 하니 녀석의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이 안된다. 정반장이랑 아주 친한 이 녀석.. 정도 많아서 엄마 생각도 깊고 지난번에는 잡종 멍멍이를 한마리 사서 키운댄다.. 그 멍멍이를 '우리 애기'라고 부르며 어찌나 이뻐하는지... 자신의 일에 또 학급의 일에 항상 열심인 녀석.. 지난 번엔 정반장 '봉사상' 못주는 문제로 어찌나 뽀족한 질문 (그럼 상줄 아이, 조사는 왜 했어요?)을 해서 잠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지만 그런 뽀족함까지 사랑스러운 아이가 우리 딸랜뚜스타 연지 이 녀석이다... ^^)

 

"오늘 하루 종일 왜 안보이셨나요? ㅎㅅㅎ" (2004년 11월 08일 월요일, 밤 10시 27분 42초)

쌤.~ㅎ 오늘 하루종일 왜 안보이셨나요.ㅎ?

저는 무사히 쫌 정신을 차리고 아침 운동장 조회라길래. 서두룬마음으로 학교에 일찍 들어갔어요..~! 서있기가 불편했지만..ㅎㅎ 점심밥도 먹으면 안될꺼같아서 안먹고 계속 자고..ㅋㅋ

쌤 어디 아프셔서 못오셨어요.?ㅎ 수진이도 조퇴하고 가고.. 분위기가 영~~+_+.. 또 울반애들 남은 야자 같은거다 하고 갔는지 모르겠어요.. 쌤 빈자리가 꽤 커요..~!!ㅎ 조-종례 항상 하나씩 듣고 시작하고 끝내야 학교를 왔다가 간다는 기분이 들거든요.ㅎㅎㅎㅎㅎ

날씨가 꽤 추워지고 낮도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니깐 진자 겨울.. 11월..!!흐흐. 쫌만 지나면 쌤이랑 헤어질시간이 오겠죠.?ㅎ 아직 한참 초기때 같아요..~!ㅎ

한문 수행평가때 우리조 열심히는 했는데.ㅎ 결과는 잘 모르겠어요.ㅎ 풀이하면서 우리 스스로 놀래고 제가 잘난척좀 했는데.ㅠ!ㅎㅎ 크크.ㅎㅎ 약간 차질이 생긴다면..ㅎ 애들 보기 얼굴팔려서 ㅋㅋㅋㅋㅋㅋㅋㅋ 

흐흐.ㅎㅎ 쌤 가정쌤은 너무 성.격.파탄자.!!ㅠㅠ 난 가정쌤 좋은데 한번씩 큰소리칠때마다.. 금방 웃고 소리치고..ㅎ 아마 그런게 좋겠죠.? 꿍~~해 계신것 보다는..크크.ㅎㅎㅎ 

내일은 학교에서 보아요.ㅎ  아마 지금 이글을 학교서 보시고 계시는중.ㅎ?  저희때매 피곤하시겠지만.ㅎ 앞으로도 정성듬뿍 담긴 쌤 마음을 생각하며 학교도 열심히 댕기고.~ㅋㅋ

이만 쓸께요.ㅎ!! 말이 너무너무 많았어요.!!!ㅎㅎㅎㅎㅎㅎㅎ

밑에사진 아직 안보셨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누구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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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빨간 열매..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겨울을 맞는.. 조락...

그래도 갈 때는 가야지요~ 그것이 자연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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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나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 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 호 승 (82年, 시집[서울의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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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1-0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 학생의 날... 반아이들에게 코팅해서 나눠준 시. 일년 동안 잘 보관하다가 내년 학생의 날 그대로 가지고 오면 선물을 주겠다 하였다. 학생의 날도 스스로 챙기도록 하고 내년엔 고3되는 아이들 챙겨주고 싶어서.. 근데 현정이가 아이들 것 다 받아서 자기 자리 옆에 스카치테이프으로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
 

       植木祭(식목제)

                                         - 기형도

어느 날 불현 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소리
단단히 묻어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生(생) 속에 섞여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한때의 헛된 집착으로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植木祭(식목제)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立像(입상)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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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事物)의 꿈·1

                                               - 정 현 종

나무의 꿈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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