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oo중학교 장oo입니다.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몇 가지 의문이 있어 먼저 그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첫째, 기획물 제목을 <흔들리는 학교>라고 했는데 '흔들리는'이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단어는 아닌 것 같군요. '변화하는' 같은 단어와 비교해 보면 대단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최근의 학생들의 변화, 특히 촛불집회 등에 대해 이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급적이면 제목을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기사 내용이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이고,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교권이 실추되었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일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어떤 전교조 교사는 이렇게도 보더라 정도의 내용으로 제 답변이 들어간다면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밝힙니다.
스승의 날 특집이라는 점, 인터뷰 질문 내용 등을 통해 그런 우려가 드는군요. 물론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점,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권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것이 학생들을 억누르는 쪽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권 실추의 원인을 학생들에게서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교권 실추의 원인은 굴곡많은 우리 현대사를 통해 사회, 역사적으로 찾아야 하고, 그 중 상당부분은 정부(과거와 현재의)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둘째, 9일 고등학생 대표단이 교육부장관을 면담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사실관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제가 알기로는 아이두넷운영자(대학생)와 서울에 있는 청소년단체 희망의 상근자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제가 잘못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학생들의 움직임이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사실과는 다릅니다. 올해보다 오히려 99년 두발자유화운동이 전면적으로 일어났을 때가 더 활발했습니다. 과거 89년 전교조와 함께 태어났다가 그 이후 유명무실해진 전국고등학생협의회(전고협)이 비록 소수이지만 다시 명맥을 이었고 학생인권과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학연)이 명실공히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활동을 대단히 열성적으로 하였으며(육이은이라고 하는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했죠. 저는 학연 전국 단위 연수에도 여러차례 옵저버로 참가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민주적인 조직이었고 역량도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연에서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민주학연)이 분리되어 나오고, 18세 선거권 운동이 일어나고, 아이두넷이 만들어지고, 탈학교 연대 라는 조직이 생기는 등 중고등학생 및 탈학교청소년 활동의 전성기는 99-2003년 정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의 촛불집회는 과거보다 학생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보기보다는 일부 언론에서 과하게 보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전의 두발자유화운동, 18세 선거권운동 등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던 언론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요란스러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집회를 크게 부각시켜 내신등급제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밑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저는 학생들이 집회를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내신등급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신등급제의 문제점을 강조해서 결국 대학별 본고사 체제로 가고자 하며, 궁극적으로는 고교평준화를 무너뜨리려는 게 이번 일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의도라고 보여집니다.
이제 질문에 답변을 하겠습니다.
1. 두발 단속 자체를 해서는 안됩니다. 흡연같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폭력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두발을 제한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며, 특히나 강제로 두발을 자르는 것은 명백히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며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합니다. 교칙을 어기는데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생각은 기본적으로 두발을 자유화하면 된다는 겁니다.
고1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집회를 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가르치기 힘든 것들은 사회에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로서의 '직접민주주의, 집회와결사의자유' 가 아니라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0만명의 고등학생들의 시위로 교육정책이 바뀌기도 했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우리나라처럼 시위나 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나라에서 학생들의 이번 체험은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최소한 이번에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 노동자들의 파업 등에 대한 인식이 적어도 지금의 기성세대와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이번 학생들의 집회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부 언론에서 이를 부각시켜 고교평준화를 흔들려고 하고 있고, 이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 중 상당수는 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입니다. 내신등급제로 인해 가장 불이익을 받는 학생들이 특목고 학생들이며, 내신등급제를 폐지한다면 결국 수능으로 돌아가거나 대학별 본고사체제로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결국 강남으로 대표되는 집단입니다. 즉, 이번 집회는 어느 정도 기득권 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집회를 일부 시민단체와 청소년 단체에서 도왔다는 것은 무척 아쉽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집회는 청소년들의 성숙한 의식을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하지만, 억눌려 있던 고등학생들이 오랜만에 자신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합니다.
2. 기본적으로 학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학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학교에서는 몇년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생활지도부(옛 학생부)에서 두발을 단속해서 잘랐고, 이에 대해 담임교사가 강력하게 항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은 참 다양했는데, 대체로 그 담임교사를 비난하는 쪽이 더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왜 교사가 학생 편을 드느냐, 같은 교사 편을 들어야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전국의 어느 학교에서도 학생이 학교 내에서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시원스럽게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에게 또다른 불이익이 가지 않으면 다행이죠. (저는 그런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간 학생들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이번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다시 불이익을 주는 게 우리 현실이죠.(강의석군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졌으니 잘 아시겠죠?)
어쩔 수 없이 지금은 경찰 처벌, 신문사 제보,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의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교조부산지부학생사업국장을 할 때에 저에게도 이런 제보, 도움 요청이 꽤 들어왔었는데, 저는 위에서 말한 방법들을 권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전교조가 나서서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럴 경우의 역풍을 우려한 분들의 조언으로 차선책을 권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힘을 가져오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고, 결국 학교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은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학교가 외부의 힘에 끌려다니거나 종속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지금도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교사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겠지요. 많은 분들이 교권이 무너졌다며 한탄만 하시면서 오히려 학생들을 억압하시는데, 이거야말로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입니다. 억압할수록 학생들은 경찰을 찾을 것이고, 결국 교권은 실추되게 됩니다.(단적인 예가 부산에서 시행되고 있는 스쿨폴리스입니다.) 앞에서 제가 교권 실추의 원인은 학생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고 한 말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3. 촌지는 양식있는 교사라면 당연히 거부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외부의 힘을 빌리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교육을 외부에 종속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들의 자정능력이 중요합니다. 교사 집단 내부의 강력한 도덕성 회복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런 짓은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교원평가 문제나 교원의 지방직화 등은 단순한 교사의 사기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95년 5.31 교육개혁안 이후부터 일관적으로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른 교원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히나 최근 정부에서는 촌지 수수, 수능 부정, 일부 사립고에서의 성적 조작 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교사집단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빌미로 교원들을 통제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사 집단은 앞에서 말한 촌지 같은 것들 때문에 국민적 인식이 나빠져 있어서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교조에서 교원평가제 저지를 내세우며 연가투쟁이라도 해 보십시오. 아마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겁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촌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런 맥락입니다.
4. 기간제교사 역시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일환입니다. 오히려 정부에서 부추긴 측면이 많습니다. 요즘은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심각해지니까 정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정규직을 몰아붙이고 있지 않습니까? 기간제 교사 문제를 방관하면 교사들도 같은 꼴을 당하게 됩니다. 기간제교사는 불가피한 경우(휴직과 휴과)에만 고용해야 하며, 정규직과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나아가 기간제교사뿐만 아니라 교무보조, 전산보조, 과학실험보조, 사서보조, 행정실학부모회직원, 영양사, 급식종사원, 청소용역, 야간당직 등 학교 내의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 나가야 합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51명 중 기간제 교사가 세 분이고, 모두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경우입니다. 예전에 제가 사립 인문계 고교에서 1년동안 기간제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그 경우는 휴직 등으로 인한 자리가 아니고 빈 자리인데 정규직을 뽑지 않고 기간제를 고용하더군요.
5. '학생들의 반항' 같은 용어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스승의 날 특집이다 보니 교사의 입장을 강조해서 교권을 세우자는 취지는 좋지만 방향이 틀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권 회복의 경로는 이렇습니다. 1. 교사들의 인식 변화(체벌 지양, 두발제한 철폐 등 학생 인권 존중, 촌지 거절, 전문성 신장 등)->2. 국민 인식 전환(교사들에 대해 우호적으로)->3. 국민적 지지를 업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고->4. 국립대통합네트워크, 교장선출보직제 등의 방법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
6. 장oo, **세(19oo년생), 남, oo중학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답변이 학생들을 억눌러서 교권을 회복하자는 기사에 들러리로 쓰이는 것은 사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