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 정 공 채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 때 필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
오랜 동안 걸어온 뒤에
돌아다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여숙旅宿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수표처럼
기억의 언덕 위에 잠깐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 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었던가
간이역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우리들은 다 완벽하다
- 임 보
독수리는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부엉이는 부엉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보라매의 부리는 먹이를 쪼는 창이지만딱따구리의 부리는 집을 짓는 연장이다물에 사는 오리의 발은 물갈퀴요뭍에 사는 닭의 발은 흙갈퀴다창공에 날개 드리운 수리부엉이여한 마리의 벌 나비를 비웃지 마라그대가 어이 알리꽃 속의 달콤한 이 꿀맛을
영혼의 눈
- 허 영 만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 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냄새와 물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 점 모시나비
기린초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