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8. 02시네마에서 6시 20분 가족들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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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백석전집 - 미완의 전집
백석전집 - 증보판
백석 지음, 김재용 엮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백석전집" 혹은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자고 마음 먹은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제비손이손이하고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서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못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골족(族)' 중에서>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 중 뒷부분만 발췌해봤다. 과연 저 시를 읽으며 중간에 사전 혹은 다른 해설 없이 읽는 것이 쉬운 일일까? '엄매'는 엄마일 테고, '아르간'은 '아랫간'일 테지만, '조아질'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지금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백석이란 이름을 교육 과정을 통해서는 한 번도 접해볼 수 없었다. 그런 시인이 어디 백석뿐이랴. 우리는 김기림(金起林), 박팔양(朴八陽) 등 소위 월북작가로 분류되었던 이들의 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백석을 비롯한 이들이 해금되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었다. 시인 고은(高銀)은 백석의 시를 “근대 시사(詩史)에서 가장 빛나는 시 중의 하나”라고 평했다. 고은뿐만 아니라 시인 신경림은 "내가 우리 시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 해도 서슴지 않고 꼽는 시인이 백석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백석의 시 '남신의 주류동박시봉방'은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다"라고 말하며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에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그런 시인이 오랫동안 묶여 있었으니 우리 문학사에 드리워진 냉전과 분단의 그림자는 한반도의 허리만 두동강낸 것이 아니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했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뒤 그는 도쿄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가 필명으로 백석(白石)을 사용한 것은 일본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새로운 문물과 문화를 익혔고,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뒤 그의 별명은 '모던보이'였다. 그의 시가 한없는 토속성에 기대어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그의 잘생긴 외모와 풍기는 멋으로 인해 지어진 별명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백석의 고향 정주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그가 수원 백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시에서 백색의 이미지는 고향 정주의 휘날리는 눈발과 함께 백석의 시세계의 주된 심상 중 하나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그에게 내리는 눈은 그냥 내리는 눈이 아니라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기에 내리는 눈이다. 나타샤, 자야(子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영한은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원래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으나 어머니가 친척에게 속아 가산을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게 되어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 여인이었다. 자야의 기명은 진향(眞香). 당시 기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과는 다른 의미에서 신여성이었다.

김영한은 당시 함흥 영생여고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우연히 백석을 접하게 된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내 사랑 백석’에서>라고 말했다 한다.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子夜吳歌

李白

長安一片月 장안의 한조각 밝은 달 밤에
萬戶擣衣聲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들려오고
秋風吹不盡 가을바람 소리 그치지 않으니
總是玉關情 이 모두 옥관을 향한 정이리라
何日平胡虜 어느 날에야 오랑캐 평정하고
良人罷遠征 원정 마치고 우리 낭군 돌아올까

이 시는 서역 원정을 나선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정조를 그린 시이다.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호를 지어준 탓일까. 백석과 자야는 이렇듯 평생을 서로 연모하며 지내야 할 운명이었다. 자야가 서울로 돌아온 뒤 백석은 학교를 그만두고, 백석을 따라 서울 청진동으로 올라와 두 사람은 혼례도 없이 살림을 차린다. 이상과 금홍이가 이 시절 그러했던 것처럼... 백석은 자야를 통해 많은 시적 영감을 얻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느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다' 중에서>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백석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떼어내기 위해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결혼하였으나 자야를 잊지 못한 백석은 다시 자야에게 도망질쳐 온다. 동경 유학생 백석과 자야는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으나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백석은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쳐 살자고 했으나 자야는 이를 거절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자야, 아니 나타샤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자야는 자신 때문에 한 명의 훌륭한 시인, 아니 자신의 연인이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1939년 백석은 '100편의 시를 담고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홀로 만주 신경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만주에서 잠시 세관 업무를 하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엔 고향 정주로 돌아와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발표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중에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그가 분단 이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백석에게 '월북 작가'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남의 정지용, 북의 백석'이라고 하듯 백석은 한 번도 월북한 적이 없었다. 그의 고향이 평북 정주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월북'한 것이 아니라 '월남'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그에게 고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어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寞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故鄕' 전문>

백석의 시에서는 평안북도의 토속 방언들이 생생하게 묻어나고 있다. 해방 이후까지 박인환이 모더니즘의 독소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김수영이 모더니즘을 '근대를 향한 모험'으로 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 백석은 '근대'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과 '전근대'라 할 수 있는 '민족'을 결합해냈다.

오랫동안 금기였던 시인이었기 때문일까? 1987년의 해금 이후 이동순의 "백석 시전집"을 비롯해 내가 알고 있기로만 "백석 시전집"은 네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다. 평생을 살며 시를 쓰지만 전집은 커녕 한 권의 시집을 묶기도 쉽지 않은데 비해 어쩌면 그는 호사를 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백석의 시전집은 아직도 미완성일 게다. 이동순의 백석시전집에는 그가 북에 남아 있는 동안 쓴 시들은 누락되어 있고, 북한문학연구가 김재용(원광대 교수)의 이 전집은 백석이 북에 머무는 동안 쓴 동화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8.15이전에 발표된 그의 첫시집 "사슴"에 수록된 작품을 비롯해서 이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과 수필, 소설 등을 담고, 제2부에서는 8.15 이후 즉, 그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여기에는 국내에도 동화로 출판된 바 있는 백석의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가 포함되어 있다)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전부일까. 사실 김재용 교수의 "백석 전집"은 가치있는 책이긴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앞서 '여우난골족'에서도 이야기했듯 오늘날 우리에게 백석이 살던 시기의 평북 방언이 생생하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시어들에 대해서는 편집자주 처리를 해서라도 원뜻을 밝혀주었어야 한다. 다음 개정증보판에서는 이런 점들과 다른 미비점이 좀더 보충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동안 백석은 1961년 '돌아온 사람' 등 3편을 "조선문학" 지에 발표한 뒤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1963년 52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지난 1999년 세상을 등진 자야 김영한은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 하루 동안은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 백석은 1995년 1월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해에는 자야 김영한이 "내 사랑 백석"을 '문학동네'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김영한은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재원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토록했다. 시집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백석문학상은 1999년부터 수상되기 시작했다. 자야는 이 상이 처음 시행되던 1999년 11월 백석이 있는 세상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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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사람과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아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심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자신과 또 남을 위해 이렇게 자주 울고 울게되는 사람.. 또한 자신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고스란히 드러내보이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작가라해도 드물던데...

해서 그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가 감동받았다는 아래의 책들도 시간이 닿는다면 읽어보기로 한다. 물론 공선옥이 쓴 다른 글들도....

 

[無序錄]-이태준

"무서록의 산문들에는 가난하지만 아니 가난해야만 지닐 수 있는 어떤 품위가 배어 있다. 내가 지닌 것 없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의미로서의 품위 말이다."

"선생의 산문집은 읽고 있어도 위안이 되고 옆구리에 끼고만 있어도 흙탕물로 솟구쳐 오르던 심사가 은근히 가라앉는다"

 

[퐁경의 상처]-김훈

"상처를 통해서만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

 

[침묵의 뿌리]-조세희 사진 산문집

작가가,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 어떻게? 한없이 정직하게. 자기가 사는 시대에, 그 시대의 상처에 한없이 정직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 눈물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조세희의 많은 작품들은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정직하게 자신과 자신이 사는 시대를 응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의 주장]-서준식

나는 그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들은 늘 저쪽에 있는, 유황불에 던져넣어도 상관없는 간첩일 뿐이므로 그같은 이들이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사랑도 미움도 욕심도 호기심도 있는 연약한 한 사람의 인간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간첩은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간첩들이 있는 한, 피묻은 손을 감춘 이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죄 때문에 나는 그의 책 [나의 주장]을 읽으며 아니 '그의 절규'를 들으며 그가 감옥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을, 넘쳐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죄인은 그리하여 죄인을 고문하는 형리들이 아니라, 형리들에 속았던 이들이기도 한 것이니.

 

[역사 앞에서]-김성칠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 밖에 내거나 붓끝에 올리지 말 일."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교육일기] - 이오덕

 

[백석 시 전집] - 백석

옛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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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공선옥이 쓴 글 읽다 보면 왠지 시원해 지고, 같이 눈물 찔끔거려지거든요. 즐건 주말 보내세요~~~

해콩 2005-09-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슬퍼지기도 하고.. 좋은 소설 소개해주세요~
 

  50년을 새긴 조각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 러시모어 산은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스벨트 등 역대 대통령의 거대한
    두상 조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27km 떨어진 블랙힐스의
    산꼭대기에 인디언 수족의 추장이었던
    크레이지 호스의 바위 조각이 50년 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잘 모를 것이다.

    1877년 크레이지 호스는 금광을 찾아 나선
    백인들로부터 부족과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추장이었다.
    하지만 그를 잡기 위해 일부러 휴전을
    제의한 백인들의 작전에 휘말려 결국 숨지고
    말았다.

    1940년 수족의 지도자였던 스탠딩 베어는 근처
    러시모어 산에 역대 대통령의 조각이 차례로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 보며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조각가 코작 지올코프스키에게
    편지를 썼다.

    그 뒤 '우리 인디언에게도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있으니 그 얼굴도 조각해 줄 수 있겠느냐’는
    간곡한 부탁에 감동한 지올코프스키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1948년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82년 지올코프스키는 조각을 완성하지
    못하고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부인 루스와 10남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일을 계속했다. 이 소문이 전해지면서
    크레이지 호스 기념재단이 만들어졌고,
    미국 전역에서 수만 명의 후원자가 생겼다.

    조각을 시작한지 50년 만에 높이 27m, 너비
    18m에 이르는 크레이지 호스의 두상을 완성했고
    손과 팔, 말을 조각하는데 50년이 더 걸릴 것 같다.
    이것이 완성되면 높이가 자유의 여신상 두 배이며
    손가락 한 개가 버스만한 세계 최대의 조각품이
    될 것이다.

    정부로부터 아무런 자원 없이 계속되고 있는
    이 일은 처음엔 한 조각가의 손끝에서 시작
    되었지만 이제는 인디언의 역사를 남기는
    거대한 꿈이 되었다.


- 소 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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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상은
어렵사리 만들어지고 있기에 더 의미 있고
여러 사람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기에 더 빛납니다.
꿈도, 성공도, 사랑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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