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4] ‘웬’, ‘웬일’, ‘왠지’, 제대로 알고 바로 씁시다.

‘왠일’이라고요? 정말 ‘웬일’이십니까?

▲ 인터넷에서 '왠일'을 검색해 보았더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잘못 쓰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국어의 현주소가 아닐까요?


(ㄱ) 오늘은 ‘웬지’ 공부가 하기 싫다. 날씨 탓일까?
(ㄴ) 네가 ‘왠일’로 전화를 다했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둘 다 맞는 표현일까요? 틀린 표현일까요? ‘왠’과 ‘웬’의 발음이 비슷해서 자꾸 헷갈린다고요? 둘 다 틀렸습니다. 다음처럼 써야 바른 표현입니다.

(ㄱ) 오늘은 ‘왠지’ 공부가 하기 싫다. 날씨 탓일까?
(ㄴ) 네가 ‘웬일’로 전화를 다했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서 ‘왠지’를 ‘웬지’로, ‘웬일’을 ‘왠일’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의 글은 물론이고, 유명 문인의 책에서도 눈에 띄고, 심지어 신문 활자나 방송 자막에서도 이런 틀린 표현들을 더러 보게 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왠’과 ‘웬’의 발음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서, ‘왠지’의 ‘왠’과 ‘웬 떡’의 ‘웬’을 ‘왠’으로 써야 하는지, ‘웬’으로 써야 하는지 혼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웬’과 ‘왠’은 분명히 형태와 의미뿐만 아니라 품사까지도 다른 말입니다.

(ㄱ)의 경우에는 ‘왜 그런지(모르게)’를 의미하므로 ‘웬지’를 쓰면 안 되고, ‘왜인지’가 줄어든 ‘왠지’를 써야 합니다. ‘왠지’는 ‘왜 그런지 모르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를 뜻하는 부사로, 의문사 ‘왜’와 ‘인지(서술격 조사 ‘이다’에 어미 ‘-ㄴ지’가 결합한 꼴)’가 줄어든 말입니다. 그래서 ‘왠지’는 의미상 ‘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① 그 소식을 들으니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② 어제는  그런 실수를 했는지 나도 모르겠구나.

①의 ‘왠지’는 ‘왜 그런지(모르게)’라는 뜻과 통할뿐더러 이들은 서로 쉽게 바꾸어 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왠지’의 ‘왜’가 ‘무슨 까닭으로’, 또는 ‘어째서’를 의미하는 부사인 ‘왜’(②)에서 기원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 그런지(모르게)’라는 의미로 쓸 때에는 ‘왜’와 의미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왠지’라고 적어야지 ‘웬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 (ㄴ)의 경우에 ‘웬’은 ‘어찌 된’ 또는 ‘어떠한’, ‘의외’의 뜻을 지닌 관형사로 쓰이거나 합성어의 일부분으로 쓰입니다. 의미상 ‘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영문인지 몰라 한참을 생각하였다.
④ 이게떡이냐?
⑤ 철수가 웬일로 결석을 했을까?

③~④의 ‘웬’은 각각 ‘어찌 된’과 ‘어떠한’의 의미를 갖는 관형사로, ⑤의 ‘웬’은 ‘웬일’이라는 합성어의 일부분으로 쓰인 예입니다. ‘웬’이 ⑤의 경우처럼 합성어의 일부분으로 쓰인 예로는 ‘웬만하다’, ‘웬만치/웬만큼’, ‘웬셈’ 등을 더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웬’의 어떤 예도 의미상 ‘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때에는 ‘왠’이라고 적어서는 안 되고 ‘웬’이라고 적어야 바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주의할 점은 ‘웬’이 명사 앞에 쓰일 때는 원칙적으로 띄어쓰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어, ‘웬+일’(어찌된 일, 또는 어떻게 된 일), ‘웬+걸’(‘웬 것을’의 준말)은 두 음절이 합쳐서 별도의 독립된 단어가 된 경우이므로 붙여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웬일’과 ‘웬걸’은 합성어이기 때문에 붙여 쓰는 것입니다. 우리 문법에서 합성어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들 알 것입니다.


참고로 단어의 짜임새를 살펴보면, ‘어머니’,‘하늘’처럼 하나의 실질 형태소로 된 말은 <단일어>라 하고, 하나의 실질 형태소에 접사가 붙거나, 두 개 이상의 실질형태소가 결합된 말을 <복합어>라 합니다. <복합어> 가운데에서 실질 형태소에 접사가 붙은 ‘덧버선’(접두사 +실질 형태소), ‘사람들’(실질형태소 +접미사)과 같은 말을 <파생어>라 하고, 두 개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된 ‘집안’,‘등불’과 같은 말은 <합성어>라 합니다.



아직도 ‘웬’, ‘웬일’, ‘왠지’의 쓰임이 어렵게 느껴지십니까? 그럼 더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을 꾸밀 때는 ‘웬(어떤)’을, 그 밖에는 ‘왠지(왜인지)’를 쓰시면 됩니다.

다른 구별 방법으로는 ‘어떤’으로 바꿀 수 있는 말은 ‘웬’을, ‘무슨 까닭인지’로 바꿀 수 있는 말은 ‘왠지’를 쓰시면 됩니다. 따라서 우리말에 ‘웬지’나 ‘왠일’, ‘왠’은 없습니다. ‘왠’을 쓰는 경우는 ‘오늘은 왠지 마음이 서글퍼진다.’의 ‘왠지’밖에 없습니다. 즉 ‘웬일’, ‘웬 말’, ‘웬 사람’ 등에는 모두 ‘웬’을 쓰고, 오로지 ‘왠지’에서만 ‘왠’을 쓴다고 기억하시면 틀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한번 연습 삼아 몇 개만 더 해 볼까요?

- 오늘은 웬지 비가 올 것 같다. ( )
- 선생님, 어제 사람이 왔었습니다.( )
- 서울에는 차가 이리도 많으냐?( )
- 이게 떡이냐?( )
- 저 친구가 오늘 웬일이지?( )
- 모래밭에 꽃이 다 피어 있지?( )

* 정답 : X  /  X  /  O  /  O  /  O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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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3] '-이오'와 '-이요'는 어떻게 다른가요?

장동건 씨, '-이요'가 아니라 '-이오'입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의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안성기, 박중훈 씨에 이어 장동건 씨도 광화문 교보빌딩 네거리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가 2천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국회 앞으로 장소를 옮기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때 장동건 씨의 손팻말(피켓(picket)의 순화용어)을 보셨는지요? 거기에는 '스크린쿼터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요. 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겠습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며 부끄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되어주십시요'는 틀린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되어주십시오'로 고쳐야 합니다. '주십시오'는 '주다'의 어간 '주-'에 합쇼체 종결 어미 '-ㅂ시오'가 결합한 것입니다. '주세요, 해요, 먹어요' 등에 쓰이는 보조사 '요'는 높임의 '-시-' 다음에 바로 결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는 '어서 오십시요', '안녕히 가십시요', '참고하십시요', '수고하십시요' 등은 모두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입니다. 우리말에서 종결어미는 '-요'가 아니고 '-오'이기에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참고하십시오', '수고하십시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한글맞춤법 제 15항을 보면,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 이것은 책이오 - 이것은 책이요.
이리로 오시오이리로 오시요.
이것은 책이 아니오.       - 이것은 책이 아니요.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 ㄱ -----------------------------------------ㄴ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 이것은 책이오, 저것은 붓이오,
또 저것은 먹이다         또 저것은 먹이다

'이것은 책이오', '이리로 오시오'에서 밑줄 친 부분은 각각 [채기요],[오시요]로 소리나지만, '책+이(서술격 조사) +오', '오+시(높임을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오'와 같이 종결어미 ‘-오’가 사용된 경우이므로 소리나는 대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다.’에서는 종결어미 ‘-오’가 아니라 두 문장을 연결해 주는 어미 ‘-이요’가 쓰인 것이므로 소리나는 대로 적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오'와 '-이요'를 혼동하는 데에는 비격식체인 '해요체'의 영향이 큰 듯 보입니다. 우리말에는 격식체로 <아주높임(하십시오체):-습니다, -ㅂ시오, -ㅂ니까 / 예사높임(하오체):-오. -소 / 예사낮춤(하게체):-네, -게, -나 / 아주낮춤(해라체):-는다, -어라, -느냐>이 있고, 비격식체로 <높임(해요체):-요 / 낮춤(해체):-어, -지, -는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서구화의 영향인지, 민주화의 반영인지 점점 '합쇼체(하십시오체)'와 '하오체'는 사라져가고 대신 반말인 '해체'와 그것의 높임형인 '해요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예전에는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는데, 요즘은 여학생들처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청자를 높이는 상대 높임법 가운데 해요체가 있습니다. 이 높임법은 합쇼체 즉 '-습니다'와 달리 격식적인 자리에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일례로 군대에서 이 높임법이 금지의 대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곧 합쇼체는 격식적인 말인데 비해 해요체는 비격식적인 말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대신 그만큼 인간적인 거리가 가까운 경우에 쓰이므로 합쇼체보다는 친근감이 더하다는 특징이 있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사용 빈도가 좀 더 높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화법이라고도 할 만하다. 이 높임법은 그동안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복잡한 등급의 높임법을 어렵게 가르칠 것 없이 반말인 해체와 해요체만 가르치면 충분하다는 반 농담 섞인 이야기가 들릴 정도입니다."(창원대 허철구 교수)


이렇게 점점 세력을 확장하는 '해요체'로 인해, 격식체와 비격식체의 근간이 흔들릴 지경이고, 덩달아 '-이오'와 '-이요'의 쓰임까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질문: "‘-이오’와 ‘-이요’가 자꾸 헷갈립니다. 다음 중 어떤 것이 맞는지요?"
- 당신은 왜 그 야단이요? / 이오?
- 생각하면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요? / 아니오?

답변: "'요'는 문장 끝에 붙어 쓰이는 특수한 조사입니다. 물론 어미로 쓰이는 '-요'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절과 절을 이어주는 연결어미이고, 문장 끝에 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는 문장 끝에 올 수 있는 종결어미이므로, 어간이나 선어말어미 뒤에 쓰여야 합니다.

'당신은 왜 그 야단이요?'는 '이다'의 어간 '이-'에 조사 '요'가 붙은 것이 되므로 틀린 것입니다. 이때에는 어미인 '-오'가 쓰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야단이오?'가 맞습니다. '생각하면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요?' 역시 같은 이유로 '아니오?'가 맞습니다. 대답에 쓰이는 '아니요'는 '아니'라는 감탄사에 조사 '요'가 붙은 것이기 때문에 '아니요'가 맞습니다. '-오'는 어미이므로 감탄사 뒤에 쓰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와 '요' 앞에 오는 말의 문법적 성분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제는 우리말에서는 서술격 조사 '이-' 다음에 보조사 '요'가 바로 결합한 형태인 '이요'는 종결형으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공책이요, 저것은 연필이요, 그것은 책입니다'와 같이 사물을 열거할 때에 쓰인 '이요'는 종결형이 아닌 연결형 어미로 쓴다는 사실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조사 '-요' 때문에 어렵다고요? 보조사 '-요'가 문장 끝에 올 경우에는 앞말이 문장을 끝맺는 종결어미로 끝나야 합니다. '나는 차가 없어요', '봄이 오니 새싹이 돋는군요', '어서 병원으로 가지요' 등이 그 예입니다.

물론 보조사 '요'도 체언에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문장의 끝에 오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철수요', '영희요'에 나오는 '요'는 '이오'의 준말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요'가 '-이오'로 줄어든 경우는, 일반적으로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앞에 언급한 내용에 대해 다시 확인을 하기 위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후문으로 나가야 한다. 알았니?'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경우에 '정문 말고 후문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쓰입니다. 또한 '지난해 몇 월에 제주도 갔지요? 10월요', '너 지금 어디 가니? 도서관요'처럼 체언의 받침 유무와 관계없이 보조사 '요'를 종결형에 쓸 수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말이 쉬워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글이 쉽다고 맞춤법이나 우리말 전체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영어 등 외국어 못지않게 우리말을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말 그까짓 것 우습지 뭐!" 하며 무심코 넘기지 말고 모국어인 우리말부터 제대로 구사합시다.

그리고 영어의 철자나 발음을 틀리면 무척 창피해하면서도 우리말 우리글을 틀리는 것에 대해서는 당당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또한 우리말과 글을 쓸 때 가급적 교양 있고 품위 있게 구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비격식체에서 격식체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격식체에서 비격식체 전락하고 있는 오늘의 언어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못지않게 문화대국을 꿈꾸어야 합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불명예를 언제까지 안고 가시렵니까? 우리 국민의 노력에 따라 우리말이 난초도 되고 잡초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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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2] 솔직히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고 있지 않나요?

'뜯으니까 너무 좋다'는 과연 올바른 표현일까요? 

“자옥은 부러울 뿐이다. ~ 뜯으니까 너무 좋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 광고내용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여기에서 ‘너무 좋다’는 과연 우리말 어법상 올바른 표현일까요?

또한, 모 방송국 프로그램 진행자 최모 아나운서는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너무 고마운 것 같아요, 너무 너무 축하해요.” 등 ‘너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우리말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한 누리꾼은 “개그맨이나 연예인도 아니고 명색이 아나운서인데, 더구나 그가 하는 말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할 것인데, 고치지 않고 계속 사용한다면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며 우려를 표시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너무 맛있다. 너무 예쁘다. 너무 고맙다.’ 등 강조를 나타낼 때 '너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영상매체의 책임이 크다 하겠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젊은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드라마, 영화, 심지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까지 이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로부터 어른들까지 덩달아 생각 없이 따라 쓰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너무'를 '참'이나 '매우'를 써야 하는 자리에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너무'는 '참'이나 '매우'와 같이 느낌이 강하여 그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한계나 정도에 지나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가 너무 내렸어요'처럼 '지나치게'의 의미로 쓸 때는 '너무'를 사용할 수 있지만, '꽃이 너무 예쁘다'와 같은 문장에서는 '참'이나 '매우'를 써야 바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인 '너무 기쁘다', '너무 슬프다'와 같은 말도 '참'이나 '매우'를 써야 바른 말이 됩니다.”

<우리말 배움터> 김주은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너무’라는 낱말은 부사어로,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니, 김 연구원의 말처럼 ‘한계나 정도에 지나게(지나치게)’라고 나와 있습니다. 원래는 ‘지나치고 넘쳐서 오히려 더 못한’의 뜻으로,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 붙이는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너무 좋다’의 정확한 뜻은 ‘좋긴 한데, 지나치게 좋아서 안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긍정적 상황에서 강조하고 싶을 때는 ‘참 기쁘다’, ‘아주 좋구나’, ‘무척 예쁘네’, ‘정말 잘했어’ 등 ‘참(으로), 아주, 무척, 매우, 정말, 굉장히, 대단히’ 등 다양한 부사어 가운데 알맞은 강조어를 선택하여 구사하면 됩니다.

우리말에 강조할 때 쓰는 부사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너무’라는 말 하나만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사이에, 우리말의 좋은 강조어들이 하나 둘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너무 좋다’가 일반화되면 일반화될수록 ‘참 좋다, 아주 좋다, 매우 좋다’라는 표현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쓰면 되지 뭐 골치 아프게 이것 저것 따지냐’고 반응합니다. 그러나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더 아름답고 세련되게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자꾸 훼손해서야 되나요? 그것은 마치 ['벌써' 도착했다]를 ['아직' 도착했다]라고 써도 좋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언어는 자꾸 쓰면 때가 묻어 더러운 말로 바뀐다. ‘너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그리운 사랑 때문에’(동숙의 노래), ‘너무나 기쁜 소식’(이희승 국어대사전) 등에도 쓰이는 말이다. 왜 부정문에만 쓴다고 하는가? 금성사 국어대사전에는 '너무 어렵다' 거나 '월급이 너무 적다'라는 보기를 들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반가워 얼싸 안았다'라는 보기도 있다. 이 때의 '너무나'는 '반갑다'를 강조한 말이다. 부정문도 아니고 안 좋은 일을 표현한 말도 아니다. 말이란 자꾸 써서 때가 묻으면 뜻이 안 좋게 바뀌어 나쁜 쪽으로 쓰는 버릇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 다듬기>에 올라온 최 0 0 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언어란 강물과 같아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어가 물길과 같다는 표현은 분명 옳습니다. 그러나 그 강물이 바다가 아닌 주택가나 농경지를 향하고 있어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당연히 물길을 바로 돌려 바다 쪽으로 흘러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라는 말을 아예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법에 맞게 사용하자는 것이지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났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국이 짜서 도저히 못 먹겠다’ 등 부정적 의미를 붙여야 할 곳에 써야 맞는 표현입니다.

‘너무’라는 낱말이 그 영역을 점점 확대해가고 있는 추세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의견차가 있는 듯합니다.

(가) '너무'의 기본적인 의미가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이기 때문에 '너무 예쁘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착하다'처럼 긍정적인 말과 어울려 쓰는 것이 잘못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를 '매우'의 의미로 '너무 예쁘다, 너무 기쁘다, 너무 재밌다'처럼 널리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사전에서는 '너무'의 둘째 뜻으로 '매우'와 동의어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매우'의 의미는 인정하지 않았고, 용례도 "너무 크다 / 너무 늦다 / 너무 먹다 / 너무 어렵다 / 너무 위험하다 / 너무 조용하다 / 너무 멀다 / 너무 가깝다 / 너무 많다"처럼 부정적인 말과 어울려 쓰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 '매우'와 같은 의미인 '너무'의 뜻이 인정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어원의 입장으로는 '너무 고맙다'는 '너무'의 바른 쓰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고맙다."는 "매우 고맙다." 정도로 고쳐 쓰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 ‘너무’는 ‘너무 심하다, 너무 아프다, 너무 많다, 너무 못생기다, 너무 싫다’와 같이 주로 부정적인 문맥에 쓰입니다. 따라서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와 같은 표현은 ‘매우 예쁘다, 매우 좋다’와 같이 고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휘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갑니다. ‘너무’ 역시 부정적인 문맥에서만 쓰이다가 점차 긍정적인 문맥에서 ‘매우’와 비슷한 뜻으로 그 쓰임이나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와 같은 표현을 꼭 잘못된 표현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조금 시각을 달리 하면 어휘 의미가 점차 변화하고 있는 예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가)의 가급적 어법에 맞게 쓰자는 ‘원칙론’과 (나)의 좋든 싫든 언어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영론’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물길은 한국인입니다. 언중(言衆)이 어느 쪽으로 그 물길을 잡느냐에 따라 언어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부디 우리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하여 우리말과 우리글을 좀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국어의 물길이 농경지나 주택지를 침범하지 않고 강을 따라 바다까지 유유히 흘러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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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1] '파이팅' 대신 더 멋진 우리말로 응원과 격려를...

'파이팅'은 이제 제발 그만 하자고요~ 

'파이팅'이라는 말이 국적 불명의 가짜 외래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말이 두루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번 시험 삼아 인터넷에서 이 단어를 검색해보았더니, '파이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이트, 카페, 블로그'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책, 음악, 게임, 이미지, 동영상' 등에도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태극전사들, 경쟁은 결국 팀이 이기기 위해서 펼치는 것일 뿐이다”(일간스포츠)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자, 주변에서 경비근무를 서고 있던 전투경찰들이 박씨와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몰려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세계일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귀기울여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대입 수험생들 모두 파이팅!”
“쾌유를 기원합니다. 파이팅!”
“아빠, 오늘 하루도 승리하세요. 파이팅!”

이렇듯 ‘파이팅’이라는 말은 어느새 각종 경기장은 물론이고, 신문·방송, 심지어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심지어 교회와 가정에서까지 무분별하게 쓰고 있습니다.

'fighting'은 분명 '싸움'을 뜻하는 영어로, 상스런 표현입니다. 모두들 알고 애용하시는지 모르고 애용하시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 마치 우리말글이 겨울나무 같습니다. 햇빛이 나무들을 보듬어 지켜주듯 우리가 우리말글을 지켜주고 아껴줘야 하겠습니다.
ⓒ 김형태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것은 엄연한 국어 파괴 현상’이라며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파이팅, 파이팅 하면 어디 싸움난 줄 안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호전적인 쌈닭들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파이팅 외치게……” 하며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이제 그것이 얼마나 살벌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무의미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얼빠진 짓인지 되돌아봅시다. 이제 '파이팅'은 끝내기로 합시다. 21세기에는 상황이나 맥락에 맞는, 분명한 우리말 구호로 새 세상을 가꾸어 나갑시다.”

리의도 교수의 주장입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파이팅(fighting)이 전투나 격렬한 싸움을 할 때 쓰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어에서 그러한 것이고, 우리 국어에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내는 감탄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핸드폰, 선팅, 백미러, 포볼’처럼 한국식 영어로 정착했기에 사용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이 말은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이 말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는 정도의 뜻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하자’ 뜻으로는 속어로 ‘키프 잇 업’(keep it up)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파이팅’은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인 셈입니다. 이런 국적 불명의 가짜 외래어가 우리말을 더 갉아먹기 전에 우리말의 순수성을 살려 새 말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말은 일본외래어 ‘흐와이또’, ‘화이또’(영어의 'fight’)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이고 있는 굳이 표현하자면, ‘2차 외래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어떤 유식한(?) 우리나라 사람이 여기에 ‘ing’를 붙여 동명사형으로 바꿔, 더 엉터리 영어를 만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위도 모르고, 그동안 우리 국민은 그것이 맞는 표현인 줄 알고, 미국사람들도 두루 쓰는 세련되고 멋있는 표현인 줄 알고 주체성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따라 쓰다보니 이렇게 널리 퍼진 것입니다.

“'파이팅'은 영어 어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상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주는 말이다.”(대한매일 2002. 3. 23),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만의 구호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한겨레 2002. 4. 20) 등 응원이나 상대방 격려의 뜻으로 쓰이는 '파이팅'은 원래의 뜻과도 다르고, 격려의 뜻에도 쓰기 곤란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마침내 국립국어원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원래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국어 순화 자료집>에는 ‘Fighting’의 순화어가 ‘힘내자’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지난 2004년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http://www.malteo.net)를 통해 일반 국민의 참여로 ‘파이팅’을 ‘아자’로 다듬었습니다.

▲ 인동초처럼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국화, 이 꽃을 보면서 우리말글을 생각합니다. 우리말글도 국화와 많이 닮아서 힘겨운 가시밭길을 걸어왔으나 끝내는 그 꽃을 활짝 피우리라 확신합니다.
ⓒ 김형태
그러나 순화어 ‘아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 낱말을 결정하는데 있어 투표라는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다보니 일부 계층의 의견만 수렴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아자’보다 더 좋은 ‘아리아리’, ‘지화자’ 등의 표현들이 탈락되었다는 것이지요.

‘아자’의 유래와 어원도 논란거리입니다. 감탄사 '아'와 '자'의 합성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원과 유래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요즘 퍼지고 있는 ‘아싸’와 마찬가지로 ‘아자’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일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이는 ‘아자’의 어원을 ‘아작내다’라는 북쪽 사투리에서 찾고 있는데, 그 표현이 너무 과격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아내’라는 표현 외에도 ‘집사람, 안사람, 부인, 마누라’ 등 여러 표현을 함께 쓰는 것처럼, ‘아자’라는 순화어와 함께 ‘아리아리’, ‘힘내자’, ‘영차’, ‘잘해라’, ‘지화자’, ‘얼씨구’,‘뛰어’, ‘가자’, ‘최고야’, ‘어기여차!’ 등의 멋진 우리말을 두루 쓰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특히 ‘아리아리’는 ‘아리랑’의 앞부분에서 따온 말로 ‘여러 사람이 길을 내고 만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예술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민족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이 없어서 외국어를 빌려다 쓰는 것이라면 문제 삼기 어렵지만, 분명 우리의 좋은 말을 숱하게 두고도 국적불명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로 보나 주체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쓸 수 있는 불어가 있음에도 영어를 쓰면 벌금까지 물리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모국어’를 지켜내자는 줏대 있는 정책이지요. 반면 우리의 경우, 한자나 영어 대신 우리 고유의 말을 살려 쓰자고 하면, ‘촌스럽다’, ‘평범하다’는 반응들을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들 무의식 속에 ‘우리 것은 천하고 남의 것은 고상하다’는 사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옛날에야 우리나라가 못 살고 가난했으니, 다시 말해 세계사의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니 외국 것이 좋아보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사의 선봉에 서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직도 이런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한번 한다면 해내고야 마는 대한민국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말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에 모두들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나라사랑이고 겨레 사랑입니다.

전에 한 교육정보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더니, 수능시험을 앞 둔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가장 해주고 싶은 말로 ‘넌, 할 수 있어’를 꼽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파이팅’이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 대신 멋진 우리말로 된 현수막으로 응원과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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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28. 금요일. 날씨? 어디보자. 황사인지 뭔지 희끄므레 한 것이 암튼 쾌청하진 않다.


지난 주 어느 날, 우리 반 '모'양을 야단쳤다. 간만에 교무실에서 고함 질러가며 얼굴 시뻘게지도록... 지금은... 솔직히 후회하고 있다. 녀석이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야단하지는 말아야했는데...(속 쓰리게 나만 맨날 반성하는 것 같다.ㅠㅠ) 제 딴에도 민망하고 자존심 상하고 그랬을 거다. 그런데 그 후로 녀석이 나를 '안'본다. --; 나도 드디어 진정한 스타 반열에 들어선 듯 싶다. 안티가 생겨버렸으니. 흠흠..  어쩔까? 그냥 이대로 견디기로 했다. 애들이 담임 욕하는 재미도 있어야 학교 다닐 맛도 나겠지.. ㅋㅋ


반장, 부반장 뽑자마자 '체육대회'만 기다리는 우리 반!! 대체로 성격이 와일드하다. 그 중 몇몇 녀석은 특히 나랑 성격이 안!맞!다! 녀석들은 존재의 '진지함'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것 같다. 요즘 이것이 나의 화두이다. 성격이 안 맞는 사람들.. 특히 우리 반 아이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를 '싫어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실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고백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늘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과 '내 방식'을 '교육적'이라는 포장으로 비교적 쉽고 만만한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이렇게 생각만 무성하다. 행동은? 나 역시 아이들 못지않게 즉각적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로 비슷한 성격인걸까?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스리는 일은 역시 쉽지 않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끔 들이대는 것까지 포함해서 올해 2학년 아이들 참 귀엽다. 수업이야 뭐, 늘 목 아프고 힘들지만 아이들이 내 시간만이라도 조금 마음 편안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엔 장애인에 관한 글을 함께 읽으면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감전사고로 두 손을 못 쓰시는 우리 '아버지'이야기를 했다. 수업시간에 '아버지'이야기를 한 건 발령 후 처음이다. 남학생들 중에 몸이 불편한 몇 아이가 걸렸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맘을 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이야기했다. 내가 '애자' '병신' 등등의 단어에 특히 민감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평소에 그렇게 떠들던 녀석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해주었다. 행복했다.


이번 주 내내 방통대 숙제로 바쁘다. 인터넷에서 인물 음식에 관한 글 2,000자 짜리를 검색해서 번역해야한다. 이번 주 내내 잡고 있는데 아직도 다 못했다.ㅠㅠ 어렵다. 왜 맨날 사서 이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 일요일 과제 제출에 시험도 한 과목 봐야한다. 그래도 이 공부에서 손떼지 못하는 건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언젠가 꼭 중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려고. (샘들 그땐 놀러오세요~ㅋㅋ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가이드 해드리죠 호호호) 그런데 오늘, 우리 부서 사다리 회식에 꼭 참여해야 한단다. (우리 부서 사람들 요즘, 사다리타서 뭐 사먹는 거에 재미 붙였다 ^^;) 부장 샘까지 합세하시어 학교에 남아서 숙제하겠다는 나를 보쌈해 가시겠단다. ㅋ

그까잇꺼 보쌈 못이기는 척 당해주지뭐~ 쿄쿄


평화로운 2006년의 봄날이 이렇게 조용히 가고 있다.

(나라 안팎은 여전히 시끄럽고, 여러 가지 일로 힘든 사람들 생각에 잠시 머뭇! --;)


* 앞으로 색지에 인쇄해서 붙이는 건 모두 제 글이 되것습니다.

경험하셨겠지만 필체가 나빠 샘들 읽으시는데 ‘짜증’나실까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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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2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샘들과 돌아가면서 '일기'를 쓰고 있다. 막상 일기장을 대하면 막막한 생각뿐이다. 다른 샘들은 어찌나 필체도 좋고 글도 잘 쓰시는지 그냥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컴으로 글 쓰는 게 버릇이 되어서인지 이 막막함을 어쩌지 못하고 나는 다시 한글 2002를 열고 이런 저런 생각나는 일들을 주절거리게 된다. 샘들과 '생활나눔'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편하게 쓰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