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연인] 50년을 묶어둔 사랑이라는 권력/김영민
아렌트가 명성을 얻은 뒤에도 하이데거는 언제까지나 솜털난 여학생으로 대했다
저항못할 매력이자 권력으로 사제관계를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사랑의 환상!
한겨레
»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④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그 누구도 연인의 살(flesh)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는 없다. 애무는 정육(精肉)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해부학적 탐색도 아니다. 그렇다고 애무와 살 속에 레비나스(E. Levinas)류의 은현한 신학을 숨겨둘 노릇도 아니다. 카시러나 엘리아데의 말처럼 사람이 워낙 상징적 동물(homo symbolicus)일진대, 그 살은 이미 말과 섞여 있다.

‘말이 없는(억압된) 살’은 강간이거나 해부이거나 시애(necrophilia)다. 그리고 그 먼 반대편에는 말과 살이 한데 어울리며 스파크를 일으키는 인간적인 사랑의 무상한 쾌락이 자리한다. 말은 워낙 사랑의 구성성분이지만, 살의 매력이 드센 연애의 초기에는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연인의 살이 이윽고 고기(肉)로 느껴질 때,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밖에 없다(나는 그것을 ‘존재론적 측은지심’이라는 개념으로 몇 차례 해명한 바 있다). 인간의 사랑은 워낙 어리석은 짓이긴 하지만, 무릇 사랑의 현명함을 가꾸려는 이들이라면 살과 말이 섞이는 묘경(妙境)의 이치에 세심해야 한다.

당연히 지식인들의 사랑과 우정에서 말의 무게는 가중치를 얻는다. 전술한 보부아르-사르트르의 경우에도 말은 사랑의 묘약이었고, 서로의 육체가 상한 고기처럼 삭아갈 때에도 그 빛나는 말의 향연 속에서 관계의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 대개 살이 연정을 부르긴 하지만 그 살에 탐닉하는 것은 산망스러울 뿐 아니라 실로 치명적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에서는 살 이후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긴요하다. 보부아르-사르트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아렌트(1906~1975)-하이데거(1889~1976)의 경우에도 말을 가운데에 두는 ‘지적 반려’가 그 관계의 알속이었다.

30대 중반의 하이데거는 이미 사계의 명망을 얻은 탁월한 강사였고, 한나 아렌트는 그 재능을 따랐던 빛나는 눈동자였다. 지적 교류라는 관심으로 변형되어 유지되는 가부장적 지배로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연애만한 것도 없으리라. 하이데거는 첫 수업에 든 아렌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으며 즐겁게 회고하곤 했다. 시골 촌놈티가 역력한데다 마치 통나무에 총기있는 구슬 두개를 박아 놓은 듯한 외모의 하이데거에게, 이국적인 풍모와 우아하고 활수한 태도를 지닌 10대 후반의 아렌트는 매력적인 ‘현존재’였음에 틀림이 없다.

똑똑하고 자립적인 여학생이 똑똑하고 권위적인 남선생 속에서 연인을 키우는 방식은 무엇일까? 더구나 그 선생에게 이미 아내라는 기득권이 있다면?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허든댈 수밖에 없는 그 여학생의 위태로운 사랑을, 그 아내와 ‘함께’ 그러나 그 아내를 ‘넘어’ 건사할 가능성은 무엇일까? 이미 30여 개월의 애무를 끝내고 눅진해진 아내의 살을 대신할 새 살일까? 그러나 불륜의 낙인을 감수한 채 탐닉하는 젊은 여학생의 살이 과연 늙어가는 아내의 살을 대신하는 비용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보수적이며 무뚝뚝하고 가사에 치밀했던 전형적인 독일여성 엘프리데 하이데거의 바깥에서, 한나 아렌트라는 명민하고 당당하며 영감에 찬 여성 지식인에게서, 하이데거가 찾은 것은 무엇일까?

당대 최고의 철학적 지성 하이데거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나치-현인(賢人) 야스퍼스를 절망케 했던 바로 그 나치-답게 자기 생각 속의 완벽한 틀에 얹혀 오만하게 군림한다. 그것은 17살 연하의 여학생 한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훗날 그녀가 국제적 명성과 인정을 받은 이후에도 하이데거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학생’처럼 대하곤 했다. 이처럼, 사랑은 그 모든 지배의 최종심급으로 군림한다. <전체주의의 기원>(1951)의 저자가 ‘히틀러의 멋진 손’을 예찬한 그 나치에게서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던 이유도 ‘사랑이라는 환상의 물매’ 탓이다. 마르크스 이후 좌파의 역대 이데올로기론은 이 ‘사랑의 지배’라는 현실을 비교적 소홀히 했다. 가령 어머니-아기 사이, 그리고 신(神)-신자 사이의 상상적 일치 관계가 대표적으로 증거하듯이 그 모든 지배의 알파와 오메가는 사랑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마키아벨리조차 협박(timore)이 아닌 사랑(amore)의 지배에 방점을 두지 않던가?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자 권력이었다. 매력과 권력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세속이지만, 오직 사랑의 환상만이 그 일치의 환상을 선사한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신념을 때로 모질게 비판하면서도, 야스퍼스가 철학적으로 그에게 이끌렸듯이 아렌트는 그 시원(始原)의 연정 속으로 도리없이 미끌어지곤 했다. 그 사이, 하이데거는 사랑의 권력을 관철시켰고, 권력의 사랑을 즐길 수 있었다. 특별히, 그 누구도 포획할 수 없을만치 투철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이데거의 지적 자만을 충족시켰다. 근 50년에 걸친 연애 기간 내내 아렌트는 마치 여학생처럼 그의 방식대로 만나고 그의 뜻대로 기다리며 초기의 독일식 사제(師弟) 관계를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그 반복을 정당화한 동기의 바탕에는 은밀한 지적 소통의 확신이 있었다. 다변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프랑스적 관계와는 달랐지만, 하이데거에 대한 아렌트의 사랑에도 ‘지적 반려’의 믿음과 열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직 그녀만이 이 세기의 사상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녀만이 그의 뮤즈(muse)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정치윤리학적으로 상극을 달렸던 이 두 연인의 밀애를 가능케 했다.(살이 식고 삶의 양식이 달라도, 정신적 반려의 동질감에 대한 확신은 무섭도록 상대를 고집하는 법!)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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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1(목) 91/(금) 9/2(토) 9/3(일) 9/4(월) 9/5(화) 9/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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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02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디서 하나요?

해콩 2006-09-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도극장에서 한답니다. 어제 거북이~ 봤는데 깜찍했어요. ^^ 저도 시간 내서 몇 프로 더 보려구요. 어쩌면 스쳐지나갈 수도 있겠는걸요~
 

[동무와연인] 고고한 ‘학’과 불같은 ‘물소’/김영민
동지는 대의가 푯대요 친구는 시간을 먹고 산다면 동무는 차이가 만드는 긴장의 관계
병약하나 견고한 이덕무, 칼날눈썹의 당찬 박제가 다정한 듯 서늘하게 길없는 길을 갔다
한겨레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③ 이덕무와 박제가

잡된 글쓰기의 개척자인 이덕무(1741~1793)의 짧은 에세이 ‘나를 알아주는 벗(知己之友)’은 동무의 그윽한 멋을 뽐낸 기념비적 명문이다: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려서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 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이것을 가지고 뾰족뽀족하고 험준한 높은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 그 사이에 펼쳐놓고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권정원 옮김)

대의(大義)가 푯대라면 그 푯대 아래 ‘동지’가 모인다. 그들은 거사(擧事)에 함께 투신하고 혁명에 신명을 바친다. 그 과정에서 취향은 무시되어도 좋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부차적이다. 다만 배신만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대의도 이데올로기도 없다. 전두환들이나 김영삼들이 웃는 표정만으로 족하다. 이론이 부재한 자리를 정서적 일체감이 들물처럼 채우는 우연성, 그것이 친구다. 공유된 이념이 없으니, 원칙상 배신도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배타적 관계의 형식은 대의와 이념의 부재가 남긴 정서의 진공 속에서 생긴다. 대의가 없는 대신, 친구는 ‘시간’을 먹고 산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지는 무시간적 관계인데, ‘같은 뜻(同志)’은 원리상 시간을 초월해서 동아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차가 좋고 묵은 술이 좋다고 하듯이, 친구는 시간의 명암과 굴곡을 거치며 얻은 탁하고 묵은 관계다. 그것은 시간이 보존해온 향수이며, 그 향수를 공유하는 몸의 기억이 만든 관계다. 그래서 친구의 관계가 정실에 치우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동무는 동무(同無)! 오히려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 아래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 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잠시만 한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그것은 일찍이 짐멜(G. Simmel)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다소 흐릿하게 파악한 ‘신뢰’의 관계다: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동무의 예시로서 청장관 이덕무-초정 박제가(1750~1805) 등의 이른바 백탑파 지식인들의 관계는 그런대로 적절해 보인다. 담헌 홍대용(1731~1783)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을 종장(宗匠)으로 하는 이른바 북학파의 선비들이 유달리 교우도(交友道)를 강조한 것에는 그 나름의 뜻이 있었다. 무릇 동무란 부모의 집에서 벗어나려는 사춘기적 영웅숭배에 그 연원을 두는 법이다. 아이가 부모를 벗어나는 방식은 프로이트나 라이히(W. Reich)의 말처럼 성적 성숙만으로 읽어낼 수 없다. 동무와 결탁해서 아버지의 법과 어머니의 애착을 벗어나는 일탈 역시 성숙의 주요한 계기다. 이덕무와 박제가의 교우를 굳이 이 틀 속에 넣어 보자면, 담헌과 연암으로 대표되는 당대 최고의 아웃사이더 지식인들이야말로 인정투쟁의 대상인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개신유학적 체계(왕)와의 창의적 불화 과정에서 영웅/스승을 본뜨고, 동무를 사귀고, 외부(청나라)에 눈을 돌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절차였다.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유득공 등은 서얼 출신이라는 계급적 한계에 떠밀려 동무로서의 상호인정과 우의가 더욱 두터웠다. 명문세가 출신인 담헌이나 연암 역시 서얼의 존재구속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의청소통소(擬請疏通疏)’ 등을 통해 그 혁파를 주장하면서 후학들의 입지를 돕는다. 부르디외의 유명한 말처럼 취향이 계급의 문제일 수 있지만, 계급이 취향을 아우를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이덕무와 박제가는 그 대조적인 기질과 성향 탓에 동학(同學)이자 지기의 인연을 나누면서도 자잘한 긴장과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박제가는 열정적이며 당찬 성격으로 얼핏 무인(武人)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얼굴을 ‘물소 이마에 칼날같은 눈썹’이라 묘사할 정도였다. 박제가는 이덕무의 외모를 두고, “신체는 허약하나 정신이 견고함은 지키는 바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요, 외모는 냉랭하나 마음은 따뜻하니 몸가짐이 독실하기 때문”(안대회 옮김)이라고 했으니, 병약하고 고고한 암혈숙덕지사(巖穴宿德之士)의 풍모였던 듯하다.

이덕무가 아홉 살 아래의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는 사형(師兄)으로서의 애정이 은근하면서도 서늘하다. <북학의>(1778)의 저자인 박제가는 중국어 공용론을 주창할 만큼 급진적 북학론자였고, 당시의 경화사족(京華士族)간에 유행했던 중국의 소설류를 무척 즐겼다. 스승 연암이 탁출하게 예시했지만, 소설적 서사는 근대적 계몽과 해방의 기법으로도 쓸모가 많은데, 볼테르와 디드로 등에서 보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는 정신문화적 근대화의 맥락 속에서 철학소설의 기틀이 짜인 시대이기도 하다. 루카치나 머독(Iris Murdoch)의 지적처럼 근(현)대는 정녕 소설의 시대인 것.

그러나 박학한 실학자이면서도 정통 유학자의 틀 속에서 온건했던 이덕무는 초정과 달리 특히 중국에서 들어온 연의소설(演義小說)류를 싫어했다. 소설은 귀신이나 꿈과 같은 헛것을 내세우며 천한 것을 고취하고 경전을 등한시하는 등, 마음을 훼손하는 미혹된 것이라고 매도한다. 그는 초정의 와병도 나쁜 책을 읽는 탓이고, 그와 더불어 <논어>를 강독하면 병조차 물러갈 것이라고 훈계한다.

18세기 말, 연암의 물가에서 학(鶴)과 물소가 노닐었다. 무심한 듯 곰살갑고, 다정한 듯 서늘하다.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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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9-0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동무는 동무(同無)! 오히려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 아래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 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잠시만 한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그것은 일찍이 짐멜(G. Simmel)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다소 흐릿하게 파악한 ‘신뢰’의 관계다: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친구'마저 굶주리는 시대는 아닌가요? 격이 없다는 그 감정이 살아있는 관계마저 세상의 혼탁함에 휩쓸려 점점 혼자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요? '살아지는' 세상살이는 글쓴이가 말하듯 '동지''동무'란 말을 더욱 낯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주변의 지인과 관계를 헛갈려하고 혼동되어 제대로 된 표현을 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친한 지인들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관계를  '가까운 친구'들이란 식으로 남에게 이야기하던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낫고 함께 공유하였으면 하는 것을 두고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섞갈리었던 것 같군요.

 글쓴이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끼면서도, '동무'라는 표현이 맘 속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글 가운데 용어가 품고 있는 까다로움때문입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음' '끊임없는 무게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머무르지 않고 제 색깔을 갖춰야 하는' 등등 요건들로 선뜻 몸은 내켜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한번 되돌아봅니다. 남에게 '동무'가 되고 있는가?  세상살이를 회피하거나 돌아가거나 떠밀려가는 것은 아닌지? 그냥 부담없는 친구로만 남기만 바라려는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달라지고 변해가는 모습들을 못잡아내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제대로 하지 못해, '동무'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무'들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들고 부담스러워 손쉽게 '친구'들만 자리하길 바라는 것은 아닌가?란 주제넘은 생각까지 말입니다.

 '동무'란 말엔 '동지'와 달리 일상성이 담겨있겠죠.  서로들 '동무'에 굶주린 세상은 없을까요? 세파에 떠밀어 살아남을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뜻만 잔뜩담아 일상은 없고 '동지'만 요구하고 모으려고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긴장-공유-차이-일상이 녹아 있는, 사람들 관계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글쓴이의 뜻을 왜곡하면 '동지'에 중독되거나 '친구'의 관계만을 원하거나 ..... 주제넘고 정도를 넘어선 생각을 해봅니다.


해콩 2006-09-0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일정 부분 이념도?)을 '공유'하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관계가 동무일까요? 함께-同하되 구속되거나 거리낄 것이 없는-無 관계. 하여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고 늘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제껏 생각해본 적 없는 인간관계입니다. 알게 모르게 인간관계를 친구/동지로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

同無... 고민해보아야 할 화두가 될 듯 합니다.

여울 2006-09-0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일정 부분 이념도?)을 '공유'하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관계가 동무일까요? 함께-同하되 구속되거나 거리낄 것이 없는-無 관계. 하여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고 늘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제껏 생각해본 적 없는 인간관계입니다. 알게 모르게 인간관계를 친구/동지로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

同無... 고민해보아야 할 화두가 될 듯 합니다.

 돋아나는 생각으로 몇가지 더 남깁니다제가 맘담고 있는 묵은 생각 가운데 하나는 '사람'과 '관계'입니다.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사람과 맺는 '관계'나 '사회'와 대응하는 그런 '관계', '삶'이 꼭 지금과 같을까?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개떵 생각입니다.

 학자가 아니니 학문적으로 파고들 재량도, 여유도 있는 것도 아니고, 관여하는 것은 제 능력과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단지 주워듣고, 생각을 자극하는 편린들 속에 어렴풋하나마 무수한 경험과 방식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생각이겠지요.

'인생 뭐있어. 잼있게 살다가면 되지~' 그나저나 살다가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살아가기엔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드네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나요. 나라를 잘못 태어났나요?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동시대인으로(헉, 야기가 점점 커지는군요. 쯧~) 자본주의 시대의 한자락에 태어나 쓴물만 보고 겪고 사는 것은 아닌지하는 열패감때문입니다.

그리이스-로마 사람은 어떠했는지? 중세사람들은 그 인식틀에 갇혀 나름대로 행복했는지?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은 어떠하였는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렇게 남의 일에 무관심한 것인지? 경제인이란 코드로 그 대화주제만 득실거리는 것인지? 이렇게 야비하게 잡아먹으려는 관계가 정상적인 것인지?란 일상의 관계.

행복하지 않은 사람. 점점 더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 넘치는 재화, 넘치는 먹거리.

상황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였을 것 같습니다. 지구상의 다양한 삶과 방법을 들이대는 것은 동시대인으로 별로 약효가 없을 듯합니다. 저명한 학자들의 표현을 차용하여, 윤리적인 인간관, 예술-문화인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저의 소관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단지 다르게 살고, 관계맺고, 나누고 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일상으로 가져올 때, 그것의 누적분이 삶에 있어 전혀 다른 길로 가져오기에 캄캄해져 버린다고 여깁니다. 노예제도란 토대로 먹는 걱정-생활할 걱정에서 자유로웠던 나라. 그로인해 오히려 공적영역에 무관심하면 왕따를 당했던 시대.  자의식이란 개념보다 공적 개념에 익숙해, 자신을 단련하고 수양하는 것이 큰 의미를 부여해 그렇지 못한 것에 왕따를 당하는 윤리의식들.

신이라는 테두리에 삶 전체를 드리웠지만, 뭔가 색다른 맛이 있었을 시대의 관계맺기. 사회와 관계.

품다보니 샛길로 들어선 것 같군요.

세상탓만 하니 비루해지기는 것만 같습니다. 자기 고민하기에도 벅차고, 실존의 영역을 벗어나기도 벅차거나,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무슨 소리냐는 핀잔을 들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면에선 관계맺기가 야만의 시대와  손익의 노예가 된 정신의 야만의 시대까지 범벅이 되어있는 듯 싶습니다.

자본의 시대의 그늘엔 올바른 관계맺기가 제대로 되지 않겠지요? 오히려 '돈'문제가 사람을 쉽게 맺어줍니다. 꾼 사람, 빌려준 사람, 남기려는 사람, 갚아주어야 하는 사람끼리 더욱 잘 만날 수 있고 맺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고를 단순화시켜, 다들 먹고 살만하다면, 평생 1억이면 품위유지도 되고 입에 풀칠할 수 있다면, 큰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다, 제대로 돌아가다, 지구상에 흘러흘러 들어 굳이 '돈'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먹고 살 게 된다면(넘, 이상적이죠. 상상하는 것은 자유이니 넘 구박마세요. 일단 갑니다.) 어찌저찌해서 몇백년 뒤에 생각도 크고, 시스템에 제정신을 차린다면 굳이 '돈'으로 관계맺어지는 것을 바랄까요? '돈'때문에 아양을 떨고 만족을 시켜야 된다면... ...

웰빙찾고, 취미찾고, 자기 일하고 싶고  그러다보면.(이것 역시 과다합니다. 상상은 자유이니 이해해주십사.)

삶을 다른 식으로 관계맺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노는 것도 그렇고.... 농사짓기도 그렇구....사람에 부대끼지 않은다면 그래도 '사람'아닐까요?  무궁무진한 속재미, 삶의 보고.

예술-문화인에 앞서 '돈'을 '사람'이나 '관계'로 환치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에 환치되어 세상의 일상이 다시 자리를 찾아간다면... ... 예술弱-문弱과 '사람과 관계맺기'(동무)弱, '돈'없음이 괄시의 지표가 되는 현실, 제대로 살지 않음의 지표가 된다면... ... 인류가 생각하지 말아야할 금기일까요? 역시 주제넘은 생각이 지나쳤습니다. 죄송... ...

 

 


해콩 2006-09-0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긴 댓글... 암담하여라~ ^^;
열심히 읽어볼게요.
집중 시간이 영 짧아놔서 걱정이 좀 됩니다만..
그런데 이 긴 글을 한 호흡으로 쓰신 거예요? 우와~ @.@
 

[동무와연인] 여자의 조국은 사랑이런가/김영민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찾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스무살 연상 아벨라르를 향한 엘로이즈 사랑을 매개로 남자의 세상과 화해하다
한겨레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관련기사]
동무와 연인/②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조국은 남자의 발명품이다. 광개토대왕의 조국이든 윤도현의 조국이든 그것은 죄다 남자의 것이다. (21살의 내가 군대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내 실존이라는 ‘발견’을 조국이라는 ‘발명’ 속에 구겨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효도가 부모들의 발명품이고 우정이 약소자의 발명품이며 연애가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사실과 다를 바 없다.

여자에게는 워낙 조국이라는 게 없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도 조국이라는 게 마치 존재한다는 듯이 살아간다. ‘인생연극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혹은 프로이트 식의 ‘마치 ~처럼(as-if)’의 철학에 기대지 않더라도, 조국이 있다는 듯이 사는 것은 꽤 중요한 근현대적 삶의 조건이다. 그리고, 국민의 통상적 의무를 위해서라면 그것만으로도 넉넉해 보인다. (나 역시 조국이 있다는 듯이 선선히 입대했고, 그 조국을 위해서 32개월의 젊음을 바쳤다!) 그런 점에서는 유관순 열사나 한명숙 총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들 역시 충량한 국민으로서 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조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에 전념/투신하기에는 사회적 약소자로서의 여성은 너무 현실적이다. 반복하지만,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으로 흐르지만,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부권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형수들의 유언을 견주어 살펴도 여자의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공적, 사적 의사소통에서 여자와 남자가 달리 반응하고 운신하는 이유 중의 한가지는, ‘조국은 남자의 발명품이며 여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 속에 숨어 있다. 애국심이라는 것도 결국은 어떤 제도와 관행에 대한 일련의 반응양식일진대, 무릇 여자는 다르게 반응하며, 그로써 실존적 무국적자로서의 여성적 정체성을 설핏 드러낸다. 아, 명심할지라, 남자들이여, 여자는 남자들의 제도와 체제에 ‘직접’ 순종하지 않는다는 사실.

요지는, 여자는 사회적 유력자인 남자를 사랑함으로써만 비로소 그의 제도를 승인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속과 세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지적은 아직 별무소용!) 남자의 세계 속에 여자의 조국이 없다는 말은, 결국 여자의 조국은 사랑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지배한다’는 통속의 격언은, 공적 영역을 빼앗긴 여자의 약소자적 위상에 대한 반어적 지적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여자는 사랑을 매개로 비로소 남자의 세상과 화해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쫓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이 말은 스승이자 동무였고 또한 연인이었던 아벨라르(1079∼1142)에 대한 엘로이즈(1098∼1164)의 사랑을 요약한다. 그것은 남자의 세상(제도)과 남자(사랑)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기초적 동선(動線)이기도 하다.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은 루 살로메나 엠마 골드만처럼 신과 조국과 남자의 제도를 뚫어내고 제 자신만의 현실을 찾아내는 여성적 현실주의와 곧장 이어진다. 물론 엘로이즈는 살로메도 아니며 엠마 골드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엘로이즈의 사랑법은 남자의 세계와 묘하!게 어긋나는 여자의 동선을 증거한다.

아벨라르가 누구던가? 스승 기욤(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과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까지 논파하던 당대 최고의 논객이 아니던가? 사랑이 그의 숙명통(宿命痛)이 되기 전, 그는 당대 정신계의 좌장으로 입신의 탄탄대로를 밟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20살 연하의 제자 엘로이즈의 살을 살살 만지다가 급기야 임신시킨 후, 이를 사련(邪戀)으로 치부한 그의 친지들로부터 궁형의 테러를 당한다. 졸지에 좆을 뽑힌 이 천재적 지식인은 육체의 허약에 따라붙는 만고의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그의 신앙은 더욱 근엄해지며, 그의 학문은 더욱 추상적으로 변한다. 여담이지만, 실연한 지식인은 더욱 추상적인 학문에 몰두하는 법이라던 바르트,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를 숨기기 위해 철학 속으로 도피했다는 누명을 쓴 바 있는 비트겐슈타인 등의 얘기를 참고할 만하지 않은가?

단숨에 좆의 그 초절한 맛을 잃어버린 아벨라르가 신과 예수를 더 가까이 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를 갑자기 ‘예수의 신부’라고 강변하면서 종교적 회오의 마조히즘에 빠진다. 또 여담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종교의 현실적 기능에 대한 좋은 방증이다: 종교는 예방이 아니라 참회의 기능이 보다 현실적인데, 이로써 종교가 왜 늘 모자란 사회철학일 수밖에 없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핵심적 기능은 애도’라는 엘리아스 카네티의 지론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육욕의 쾌락을 잃은 아벨라르가 발밭게 경건해지지만, 여전히 젊고 열정적인 엘로이즈는 현실적이다: “확실한 것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을 쫓아 헤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라든지, “제게는 아내보다는 늘 애인이라는 호칭이 훨씬 달콤했어요”라고 단언하는 엘로이즈에게 유일한 실체는 연인 아벨라르뿐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황후가 되기보다 오히려 당신의 창녀가 되겠어요.” 아니, 수녀인 그녀에게 아벨라르는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나의 주님’이 되는 판국이니 차라리 점입가경.

연인과 동무의 관계를 살피면서 그 현명한 분별과 실천을 꾸려갈 때, ‘조국’의 문제는 그 관계의 판도를 결정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요컨대, 남자들은 조국과 명예(<인형의 집>의 가부장 헬머처럼)를 빌미로 사랑에서 멀어지지만, 여자들은 조국을 통해 사랑으로 나아간다. 여자들에게는, 조국이 확실한 게 아니라 확실한 것이 조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이며, 그리고 여자들은 종교와 신조차도 사랑을 대하듯 접근해가는 것이다.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jaja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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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연인]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김영민
글과 남자 사이에서 ‘동무’ 선택한 보부아르
그들의 사귐은 ‘말’ 서로의 ‘입’을 서로의 ‘귀’를 지적 반려자로 원했다
한겨레

동무와 연인/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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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쟁이 [명사] 짚으로 만든 작은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