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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성역 없는 개혁,” “개혁 없이 성장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집권한 그는 금융, 재정 및 우정부문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였고, 그 와중에 개혁저항세력(특히 지민당 내 하시모토파)을 타격함으로써 높은 인기를 유지해왔다. 그는 작년 총선 압승이후 정부계 금융기관 통폐합, 의료보험개혁, 공무원개혁, 지방자치개혁, 재정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자신의 후임으로 “개혁성”을 중시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사실, 고이즈미는 초창기 외교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과거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야스쿠니 참배를 공약으로 내 걺으로써 아시아외교의 발목을 스스로 잡는 우를 범하였고, 외교에 무지한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를 외상으로 임명해 결국 파탄의 길로 간 적이 있다. 그가 대미외교에서의 빛나는 성공 이외에 여타 외교(다자외교/아시아, 유엔외교)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까닭은 중국, 한국외교의 실패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며 이는 결국 야스쿠니 참배의 강행이란 초창기의 외교적 미숙에서 초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를 주창해왔으며 이는 신보수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그는 경제문제에는 문외한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발언이 제한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고이즈미와는 반대로 신자유부의 보다는 신보수주의의 색채가 강한 인물이다. 그가 드러내 온, 주장해 온 정체성은 일본의 고유한 가치를 복구하려는 시도(아름다운 국가), A급 전범에 대한 인식, 야스쿠니 신사참배, 개헌에 대한 인식 등에서 보듯이 복고적, 우익적 색채를 띠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역사인식에 관한 한 최근 십수년 중 가장 우경화된 수상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정책적 관심은 경제문제 보다는 외교안보와 이념 등에 집중되어 있다. 개헌, 교육기본법 개정, 군사력 강화, 일본의 외교적 위상 제고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베의 마음은 정책으로 표출될 수 있을 것인가? 아베의 리더십은 어느 정도이며 이를 뒷받침할 내외 조건은 어떠한가?
3. 고이즈미 개혁과 포스트-고이즈미 일본
고이즈미 개혁은 크게 보면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첫째는 부실채권의 처리 등 금융개혁, 재정구조개혁, 민영화 등 경제개혁 그 자체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시도는 이러한 개혁을 가능케 하는 정책결정과정의 개혁에 있었다. 고이즈미는 자민당 내 파벌과 족의원에 의한 담합적, 상향식 정책결정구조를 깨는 것이 개혁의 전제조건이라 보았고, 이에 따라 파벌의 영향력 배제, 족의원과 결탁된 이익집단의 영향력 배제, 수상관저의 정책기능 강화, 하향식(top-down) 정책결정구조를 구축하려 하였다. 이는 Westminster형 정당정치체제를 모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영역에 있어서는 다케나카(竹中藏)씨를 중용하고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정책결정의 중심에 놓아 톱다운형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으며, 정치영역에서는 탈파벌적 내각인사를 단행하고 우정민영화를 매개로 파벌정치의 중핵인 하시모토파를 깨는 데 성공하였다.
반면, 외교영역에서는 이중구조(dualism)가 드러난다. 고이즈미가 관심을 경주했던 세 사례 즉,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 지원, 두 차례에 걸친 평양방문, 그리고 국내외압력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강행에서 보면 톱다운형 정책결정이 수행되었으며, 나머지 분야에서는 기왕의 정책결정과정이 지배적이었다.
보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이를 논하자면, 일본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이미지(image)가 존재한다. 하나는 참모본부(headquarter)형 국가로서 컨센서스에 기반한 톱다운형의 “일본주식회사”적 이미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층부의 전략이 부재하며 각 성청, 이익집단, 정치집단 간의 수평적 조정과 통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headless chicken, truncated pyramid적 이미지가 그것이다. 고이즈미 개혁은 후자로서의 일본 --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리더십부재, 조정시스템 부재의 일본 -- 을 전자로 변환시키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고이즈미 개혁은 불가역(irreversible)적인 변화인가? 정책결정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관저주도의 톱다운형 정책결정은 고이즈미의 개인적 인기와 정치적 능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 변화된 시스템은 고이즈미 개인이 깊은 관심을 보인 분야에서만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새 시스템의 안착은 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이즈미 이후’가 ‘포스트-고이즈미’가 될 지 ‘고이즈미 이전’으로 회귀할 지는 새 수상의 의지와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내외 환경에 달려있는 것이다.
4. 아베의 길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베는 경제분야에 있어 관심과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또한 국내정치개혁 즉, 파벌 및 족의원 정치의 개혁을 지속, 감행할 만한 정치적 능력 -- 혹은 톱다운형 정책수행능력) -- 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새 내각의 구성에 대해서는 ‘안전운전 거당내각’이란 평을 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개혁을 넘어 그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은 결국 고이즈미와 차별적인 영역이며 이는 그가 본래 해온 ‘정체성의 정치’의 영역이다.
그가 부각해 온 정체성은 첫째, 국익(national interest)이고 그 핵심은 “국민의 안전, 안심의 확보”이다. 그는 북한의 어설픈 납치대응을 파고들어 일본인의 안전을 걱정하는 납치문제의 해결사로서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이전의 아베는 정치귀족이었을 뿐이었다. 국익을 우선시하여 주장하는 일본외교를 하겠다는 것이 아베정치의 근간이다.
둘째는 일본역사의 복고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야스쿠니에 관한 그의 입장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참배를 정치가 개인의 문제로 규정했던 반면 아베는 참배의 공식적 성격을 강조한 바 있고 공직취임 이후 한번도 참배를 거른 적이 없다.
아베의 딜레마는 정체성의 정치의 국내적 측면에서는 야스쿠니를 가야 하나 이것이 그가 노리는 외교적 성과(고이즈미가 못한 아시아 외교)를 제한하게 되는 데에 있다. 그는 정치적 편의주의(원칙보다는 여론 및 정치적 성과)에 추종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가겠다 안가겠다고 말하지 않겠다”라는 ‘전략적 모호성’을 걸면서 한일, 중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러한 아베의 결정 이면에는 미국의 전략적 딜레마도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한중간의 대립이 심각한 수준으로 격상되었던 작년 가을 국무부차관 졸릭(Zoellick)은 한편으로 중국을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responsible stakeholder)''라 규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 야스쿠니로 인해 아시아에서 고립되는 사태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임을 언급한 바 있다. 지난주 번즈(Burns) 차관보도 야스쿠니 참배로 인한 중일, 한일관계의 악화가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지위에 약점이었으며 북핵문제의 대처에 있어도 약점으로 작용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차원에서도 야스쿠니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 아베는 야스쿠니를 피하되 대신 국내에서 보수적 정체성을 발신하고자 하며, 이는 교육기본법의 개정, 헌법개정 수속을 정하는 국민투표법안 제출, 방위청의 ‘성’ 승격 법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또한 자위대의 해외파견 항구법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사안들이 그의 공약이긴 하지만 경제개혁이나 정치개혁 등 고이즈미의 업적과는 비견할 바가 못 된다. 그의 성과는 국제에서 얻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는 국제에서 점수를 따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정체성에 반하는 행동 즉, 야스쿠니 참배 보류와 외교적 성과 즉, 아시아외교의 재개를 맞바꾸고 있다.
납치문제에서 비롯된 그의 대북강경노선은 미사일과 핵실험을 거치면서 더 큰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 아베는 두 사건을 통해 유엔안보리 의장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일본외교의 적극적, 주장적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고이즈미의 유산으로서 “개혁”이란 힘겨운 과제에 직면한 아베가 여론의 지지를 업게 된 것은 이 때문이며 따라서 김정일위원장이 아베정권의 최대후원자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강경행보가 북핵 및 미사일문제의 본원적 해결을 위한 수순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하는 일본이 장기적 관점에서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정권차원의 국내적 관점에서 움직이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전자는 북핵의 궁극적 해결방안을 갖고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하나의 수순인지 아니면 일본의 특정한 장기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북핵을 활용하는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경우가 각각 상호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현재의 강압외교를 궁극적 문제풀이의 계획된 첫 수순으로 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미일동맹의 확인을 통해 일정하게 안보를 확인하고 미국의 계획에 충실히 따르는 행보로 보여진다. 이는 실제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담당할 여지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는 현실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둘째로 북핵을 일본의 독자적 군사대국화를 실현하는 호기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한계가 있다. 지난 5월 미일안보협의회(2+2)의 “재편실시를 위한 로드맵”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일본은 미일동맹을 21세기의 동맹으로 위치지우고 동맹의 일체화, 세계화를 통해 일본의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표출하고 있다. 이는 통합의 차원에서 일본열도에서의 미군의 재편으로 드러나고 있다. 양국 간에 군사적 링크를 보다 촘촘히 놓아 서로를 엮음으로써 군사네트워크의 고도화를 이룩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군비증강은 이런 군사적 상호의존의 네트워크 속에서 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핵무장과 같은 자주적 옵션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일본의 군비증강은 동북아 질서 속에서 현상유지(status quo)의 시도이지 전전(戰前)의 군사대국화와 같은 현상변경적(revisionist)인 것은 아니다.
대체로 정부차원에서의 발언을 해석해 보면 현재까지의 대응은 국내정치적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서의 활용이란 측면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이즈미였다면 미일협조를 중시한 차원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북핵이란 이슈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외교적 존재감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북 강경대응은 일정하게 한국 및 중국과의 전략적 이해의 차이를 노정하는 것으로써 야스쿠니 참배와 마찬가지로 국내정치적 지지가 아시아외교의 걸림돌로 기능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아베는 야스쿠니와 타협함으로써 애써 그간 막혀있던 아시아외교의 물꼬를 터 국내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대북 강경일변도 노선은 이 물꼬를 다시 막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아베의 딜레마는 국내적 지지와 국제적 지지(특히 한중의 지지)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좁히느냐 하는 데 있다.
아베는 외교에 있어서도 정체성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맹이 그것이다. 미국과 함께 호주, 인도와의 ‘아시아대양주 민주 G3+미국’으로 명명된 이 구상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여타 아시아국가 들에게 전파하자는 것으로서(아시아판 민주평화론), 일차적으로 한국이 빠져 있는 사실이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 포위망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하다(혹은 중국을 다자틀에 넣어 사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는 21세기 들어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 bypassing(혹은 distancing) 그리고 중국견제(balancing)의 분위기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의 소프트파워의 현주소를 놓고 볼 때 희망사항 혹은 fantasy에 불과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을 넘어선 동아시아외교를 해나갈 능력이 아베일본에 과연 있는가. 그렇다면 이는 아시아외교의 회복이란 지상과제에 아베가 적절히 부응하지 못할 때를 대비한 명분쌓기 작업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5. 결론에 대신하여
이상에서 보듯이 아베는 제2의 고이즈미가 아니다. 첫째, 아베는 고이즈미와 같은 정치적 능력과 대중적 인기를 지닌 인물이 아니므로 외적 조건의 변화가 없는 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이념과 구상이 정책으로 표출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베는 신자유주의적인 고이즈미와 달리 신보수주의적이며 본인의 주어진 한계 내에서 외교문제에 집중해 정치적 득점을 노리고 있다. 국내정치 및 경제문제(개혁추진, 양극화문제, 소비세인상문제 등)는 측근에 맡기고 -- 따라서 사실상 과거의 시스템에 맡기고 -- 대신 아베는 수상관저 기능을 강화하고 그 일환으로 일본판 NSC를 설치하여 외교문제만큼은 관저주도로 이끌어 가려하고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이루어 내었던 반면 아베는 본인의 정치적 자산이 부족한 현실에서 보다 현실타협적이고 정치편의주의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체성의 정치, 주장적 외교를 펴고자 하는 본인의 브랜드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서, “애매,” “모호”한 노선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아름다운 국가로”라는 책을 내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과 나”를 연상시키고 있지만 결국은 이를 비판한 오오에 겐자부로의 “애매한 일본과 나”의 일본에 근접해 있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