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소를 축소해 베이징에 지은 세계공원에서 각국 민속의상 쇼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인물들은 실제와 가상 사이의 혼돈 속에서 힘겹지만 씩씩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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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톈안먼 사태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성과 사랑을 그린 러우예 감독의 ‘여름궁전’. 영화 속 젊은이들은 급변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고단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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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경제대국 중국을 대비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급성장을 두려움과 부러움 섞인 눈으로 쳐다보는 지금, 중국 영화인들은 자국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해외에 소개된 최근 중국영화들 속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급격히 파고드는 자본주의 앞에 황망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을 걱정하는 6세대 감독들의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에둘러 비춰주면서 타산지석을 발견케 한다.
올해
칸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 소개된 러우예 감독의 문제작 ‘여름궁전’(2006)은 중국의 1987년부터 2001년까지를 거치며 젊은이들의 욕망과 방황을 매우 앞서나간 방식으로 담아낸다. 밀려드는 외국 문명과 자유에 대한 갈망 속에서 젊은이들은 억눌려 있다. 미국 팝송과 한국 트로트를 뒤섞어 듣는 젊은이들은 줄곧 어둠 속에서 섹스를 나눈다.
부산영화제를 찾은 러우예 감독이 “실제로 그렇다”고도 말했지만 중국 젊은이들의 성의식은 여느 나라 못지 않게 개방돼 있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제도와 구조는 옛것이다. 중국인들의 해소되지 못한 욕구는 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찬란했던 대학시절을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함께 지나보내는 인물들은 마치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의 ‘몽상가들’의 청춘들처럼 충동적으로 자유를 외치면서 이상과 규범, 혹은 도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답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빛과 어둠은 그대로 중국인들의 현실에 비쳐진다. 자신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데 좀체 변할 줄 모르는 중국 상부구조의 억압이 발랄한 대학생들을 짓누르는 풍경은 한국인들도 어디선가 종종 봐왔던 것들이다.
20일 개봉하는 자장커 감독의 ‘세계’는 한층 직접적으로 현실을 풍자한다. 베이징에 건립된 ‘세계공원’은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피라미드 등 지구 곳곳의 명소와 유명 건축물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은 세계의 축소판. 주인공들은 이곳에 근무하는 무희와 경비원들이다. 가짜 에펠탑 앞에는 넝마주이가 고된 걸음을 옮기고, 피사의 사탑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기우는 탑을 자신이 받치고 있는 것처럼 포즈를 취한 채 가짜 현실을 만든다.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와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사고사를 당하는 친구, 도시 빈민촌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젊은 남녀, 서울에서 직장을 얻은 친구의 경비원 제복마저 부럽기만한 시골친구…. 한국인들이 이같은 중국영화의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의 과거를 보는 동시에 중국의 불안한 미래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정재형 교수는 “밀려오는 물질문명과 권위주의,
중국 공산당의
관료주의가 6세대 감독들의 비판을 이어지게 하고 있다”며 “한 사회가 조화를 잃고 양극단으로 치닫는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했다. 정교수는 “최근 중국의 역사왜곡과 소수민족 탄압 등 중화주의 역시 맥락을 같이하는 문제”라며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이고 인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인간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가에 대해 중국영화 속 고민을 관심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석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부문 프로그래머는 “중국 영화당국이 개방정책을 펴고 6세대 감독 영화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으나 각종 간섭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기 힘들어한다”며 “이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개방정책 이후 지하 영화들이 더 늘어나고, 영화를 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재 중국의 상황에 대해 더 갑갑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중국영화계는 260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종합 흥행수입 48억위안(약 5억9천5백만달러)을 기록해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수치만 보면 영화도 경제만큼 급성장 가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260편 중 극장에 걸린 작품은 전체의 15% 정도. 중국내 블록버스터와 저예산영화의 간극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6세대 감독이란?-
중국 감독의 세대 구분은 ‘베이징전영학원 78학번’으로 일컬어지는 ‘5세대 감독’들로부터 본격적으로 나뉘게 됐다. 1980년대부터
장이머우, 첸카이거 등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중국영화를 부흥시킨 감독들이 5세대라면 50~60년대 활발히 활동하면서 중국 문화혁명기를 거친 5세대의 스승 세대를 3세대로 칭한다. 2세대와 4세대는 세대 구분이 모호하지만 3세대와 5세대 사이인 70년대 전후에 위치한 감독들을 4세대로 구분하며 중국영화가 탄생한 1905년부터 2차대전 전후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감독들을 1, 2세대로 나눈다. 6세대는 90년대 후반부터 5세대 선배 감독들의 현실타협을 비판하며 더욱 강도높은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왕샤오솨이, 러우 예, 자장커 등이 대표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