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연인] 니체는 놀잇감에 불과했다/김영민
“만남을 어느별이 도운걸까요” 루 살로메 앞에 선 니체는 그저 눈시린 통속이었지만
그녀에게 연애란 ‘3’의 놀음 둘만의 밀회를 허하지 않았다
한겨레
» 루 살로메, 파울 레, 니체. 이들 셋의 만남은 루 살로메에게 ‘3’이라는 운명적인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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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연인/⑦ 루 살로메와 니체-3 혹은 살로메의 아이러니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남자들의 세상과 그 논리에 직수굿하게 응종하기 싫은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목에서 늘어진 스카프가 남자들이 만든 자동차의 바퀴축에 말려들어 운명보다 빠르게 죽어버릴까, 아니면, 남자 한 명이라도 품에 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져 스스로의 운명을 완결시킬까? 만일 명민한 약자들이 쉽게 빠지는 시적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슬기를 산문적 근기와 이드거니 섞을 수 있다면, 필시 그 여자는 운명보다 느리게 사는 법을 익힐 것이다.

강자의 취향이 약자의 운명으로 주어질 때, 총명한 약자는 흔히 자신의 삶을 극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그 운명의 차꼬를 떨쳐버리려 한다. 빈대와 더불어 초가삼간을 태우는 짓은 반드시 어리석은 자들의 몫이 아닌 것이다. 히스테리, 그것은 운명 속에 억압된 약자의 재능이 몸을 통해서 말하는 방식이자 그 몸을 태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치 헤겔과 대치하는 니체처럼, 남성지배체계 속의 똑똑한 여자들은 시적 히스테리 속에서 주어진 운명과 절망적으로 대치하다가 부실(不實)의 꽃으로 아름답고 슬프게 미쳐간다.

하지만 그녀는 카미유나 밀레바 마리치와 달리 남자-애인을 위해 무료봉사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명성 속에 자신의 재능을 동화시킬 수 없는 게 그녀의 천품이자 기질이었다. 그렇다고 권력과 자본의 구애를 뿌리치고 진실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꿋꿋이 사는 여자, <성>(카프카)의 아말리아와 같을 수도 없는 여자가 그녀였다. 운명보다 빠른 걸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운명보다 느리게 살 줄 알았던 여자, 바로 그녀가 루 살로메(1861~1937)였던 것이다.

운명보다 빠른 걸음으로 운명보다 느리게 사는 방식은 물론 ‘놀이’이며, 그녀는 놀이의 명수였다. 꼭 그녀만이 아니라,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남자들의 세상과 그 논리에 직수굿하게 응종하기 싫은 여자’는 으레 놀이에 능하게 된다. 그리고 호이징하의 놀이론과 달리 매력적인 약자에게 놀이는 종종 생존의 문제다: 그것은 다만 한가하고 무익한 형식성의 유희가 아닌 것이다.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1958)에는 놀이가 ‘가면을 쓰고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임의의 행위’로 정의되는데, 기이하게도 이것은 루 살로메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이 현기증의 놀이는 3(삼각형)의 구조, 그 긴장의 아이러니 속에서만 생명을 얻는다.

신과 조국과 남자의 그림자 속에 묻히기를 거부한 그녀는 가면을 쓰고 남자들로 하여금 현기증의 쾌락에 도취하게 만든다. 그것이 곧 생존이 된 아이러니인 것이다. 방년 17세였던 그녀는 목사 H. 길로트의 지식을 왕성하게 소화하지만, 이 유부남의 혼인 제의에 실망하고 스위스로 도피한다. 짐멜이 분석한 ‘연애유희’라는 개념처럼, 연애는 유희이니, 이 목사처럼 설맞게 혼인을 바라는 것은 반칙! 마찬가지로, 혼인이라는 상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 연애라는 아이러니.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그녀를 처음 본 니체가 건넸다는 유명한 인삿말이다. 역시 심오하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니체 특유의 화법이다. 호사가들은 니체와 루 살로메를 엮어 공상의 애드벌룬을 띄우기 좋아하지만, 둘 사이의 만남과 사귐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통속, 통속, 그저 보아주기에도 눈이 시린 통속일 뿐이다. 파울 레가 그녀에게 니체를 가지고 놀지 말라고 부탁했을 만큼 그녀 앞의 니체는 조급했고 들떴으며 상상할 수 없이 비철학적이었다. 38세의 니체는 변변한 데이트조차 없이 21살의 그녀에게 청혼함으로써 전래의 남성주의적 반칙을 반복한다. 그러나, 아뿔싸! 21살의 그녀가 실로 사랑한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니체의 손’이었고, 그것이 그녀의 아이러니였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의 섬세하고 하아얀 손을 좋아하고 신뢰했던 하이데거의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흔에 가까운 이 천재 철학자는 혼인이라는 상식으로 얼뜨기처럼 무장한 채 그녀의 아이러니와 불구적으로 대치한다. 물론 통속적으로 상처받은 남자의 반응 역시 통속적이니, 니체는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중상모략에 턱없이 호응하며 루 살로메를 ‘성불능자’로 매도하는 데에 이르고 만다.

그녀는 26세 되던 1887년 안드레아스와 혼인하지만, 얼마 후 둘 사이의 계약을 통해 이혼을 제외한 모든 행동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3(그녀, 남편, 자유)이며, 3이기에 가능해진 아이러니의 삶, 그 긴장이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물론 길로트 목사의 경우에도 그것은 3(그녀, 길로트의 혼인, 공부/유학)이라는 운명적인 놀이였다. 니체가 죽기 몇 달 전인 1900년 4월, 39살이 된 그녀는 남편 안드레아스, 그리고 약관 24살의 연인 릴케와 더불어 고국 러시아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역시 3이며, 그 아이러니의 긴장이 주는 역설적 통기(通氣)다. 니체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내내 3(그녀, 파울 레, 니체)을 유지했고, 단 한 번도 둘만의 밀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루 살로메는 결코 니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는 너무나 서툴고 우정에는 너무나 무거웠던 이 천재의 재능을 담박 알아낸다: “니체에게는 이런 영웅적인 성격이 있다. 우리는 니체가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는 많은 영웅을 제자로 삼는 사람이 될 것이다.”(루 살로메의 일기 중에서)

김영민/전주 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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