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끼친다, 뒤틀린 인터넷 번식력
저공비행
한겨레
» 유관순 조각상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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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동상 낙서’ 욕설댓글 도배

얼마 전에 일어난 다소 바보 같은 인터넷 소동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10월3일, 도깨비 뉴스라는 인터넷 매체에서 얼굴에 낙서가 되어 있는 동아일보 앞 유관순 동상을 찍은 독자 제보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들은 순식간에 포털을 타고 인터넷에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분노에 찬 욕설을 달았으며 한동안 포털 인기 검색어 리스트에도 올랐다. 모 포털에서는 ‘댓글 전쟁’이라는 이름을 달고 앞으로 끌어낸 것으로 안다. 전쟁은 무슨. 일방적인 욕설밖에 없던데.

이게 문제가 될까? 물론이다. 문제가 된 동아일보 앞의 유관순 동상은 지난 몇 달 동안 일민미술관에서 한 최정화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의 전시물 중 일부이다. 도깨비 뉴스에 그 사진을 제보한 독자가 조금만 눈을 돌렸다면, 유관순 동상 주변에 그만큼이나 한심한 상태인 조각상들이 널려 있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이것들이 사람들의 키치적 감성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수집품들이라는 것도 알았을 거고. 사실 그게 좀 이상하긴 하다. 몇몇 동상들은 너무 커서 결코 못 볼 수가 없는데. 애국심에 그만큼 눈이 멀었던 걸까? 아니면 의도적인 낚시였던 걸까? 내 게시판의 누군가는 이게 ‘믿거나 말거나’ 막판 흥행을 노린 전시회 담당자들의 서툰 홍보가 아니냐고 한다.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인터넷에서 그처럼 요란한 소동이 일어났는데, 동아일보나 일민미술관에서는 조용하다. 의도적인 장난이나 홍보가 아니라고 해도 너무 잘 어울리는 소동이라고 배를 잡고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모설을 더 부풀리고 싶은 분들은 소동의 중심지인 도깨비 뉴스가 동아일보사의 소유라는 걸 지적할 수도 있다.

실수이건 낚시이건,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진에 댓글을 단 사람들 중 그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믿거나 말거나 유관순 동상’이 서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동아일보 앞을 지나갔고 도깨비 뉴스가 이 사진을 올린 뒤엔 근처에서 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행사까지 했다.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를 수가 없다. 설사 그동안 동아일보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해도 누군가가 ‘동아일보 앞에 언제부터 유관순 동상이 서 있었지?’라고 질문했어야 했다. 하지만 사방을 뒤져봐도 그런 반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지적한 댓글을 딱 하나 찾았는데, 그건 해당이 안 된다. 내 게시판 사용자들 중 한 명이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다소 바보스러운 인터넷 소동에 불과했던 유관순 낙서 파문은 여기서부터 슬슬 소름끼치는 존재로 변신한다. 왜 유관순 소동에서 인터넷은 정보 교정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는가? 댓글 내용들을 보면 알 법도 하다. 유관순 사진 밑에 걸린 낙서들은 ‘동아일보’와 ‘친일파’, ‘매국노’들에 대한 욕설이 전부다. 한마디로 이들은 사실을 검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막역한 그들의 언어폭력 성향에 표적과 방향을 제공한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 중 일부는 낙서한 유관순 동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썼을 것이다.

책임감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인터넷에서 확장되고 증식하는 이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맨 처음 사진을 올린 사용자는 그냥 사진만 찍어 올렸을 뿐이다. 도깨비 뉴스에서는 사용자 제보를 그냥 올렸을 뿐이고, 포털에서는 그쪽에서 올린 정보를 자동적으로 반영했고 게시물이 인기를 끌자 대문으로 옮겼을 뿐이다. 독자들이야 매체에 올랐으니 사실이려니 하고 기계처럼 자동 반응했을 뿐이고. 전기와 정보량을 엄청 잡아먹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몽유병자처럼 의지도, 사고도, 책임도 없이 언저리를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슬슬 영화 〈신체 약탈자의 습격〉의 케빈 매카시처럼 절규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벌써 왔어. 당신이 다음 차례야, 당신이…(They’re here already! You’re next! You’re next, You’re next...)”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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