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이지요? 어머님, 아버님. ^^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방학도 훌쩍 끝나고, 그러고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아요. 요 녀석들 만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학기를 시작하고 또 한 달이 지나가버렸으니 말예요. ^^ 이젠 아이들도 저도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서 크게 야단치거나 맘 상하거나 하는 일 없이 비교적(?)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우리 반은 아이들 모두 두루두루 둥글둥글 친해서 자습시간이나 청소시간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뛰어노는(정말로 ‘뛰어’논답니다. ^^;) 모습에 입가에 절로 웃음이 돕니다.


담임인 제가 연수받느라고 방학동안 부산에 없어서 보충수업 받는 아이들을 한 번도 챙겨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답니다. 방학 시작 하던 날, 제가 연수받는 공주대학교의 주소를 알려주며 편지를 주면 답장을 하겠다고 약속했더니 두어 명이 편지를 보내왔지 뭡니까. 어찌나 반갑던지 새벽까지 잠을 쫓으며 답장을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방학 전에 아이들과 번개(전날이나 당일 급하게 연락하여 만나는 것)를 하기로 약속했기에 지켜야했답니다. 개학 전 금요일, ‘내일 만나서 샘이랑 놀자~’라고 했더니 부산대 앞으로 윤정, 다정, 민주가 나왔습니다. 대학 도서실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어 그곳에서 두어 시간 책을 읽은 후, 같이 영화를 보고, 수다 떨고, 저희 집 근처에서 저녁으로 낙지복음을 먹었습니다. 국어수행평가를 위한 필요한 책을 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간만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함께 했으면 좋았을텐데요.. 조금 아쉬웠습니다. ^^


개학하자마자 방학숙제 검사를 했습니다. 여름방학 다이어리 쓰기와 아이들 감성을 키울 수 있을만한 37가지 재미난 활동에 관한 숙제였는데요, 실은 그 중 한 가지라도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지요. 그것 모두를 다 하기는 솔직히 무리였거든요. 다이어리쓰기를 제외하고는 사실 해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숙제여서 그랬는지 활동숙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두 가지 정도만 ㅇ표를 해왔고 내어준 다이어리를 다시 걷는 데도 열흘이나 걸렸답니다.


숙제를 열심히 해온 아이들 칭찬을 조금 해볼까요? 다원이가 해온 ‘나의 하루 셀프 카메라’는 거의 예술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쭉 좇아 사진 찍고 그걸 현상해서 내용도 쓰고 예쁘게 꾸민 그 솜씨에 교무실 많은 샘들이 '다원이에게 이런 면이 있었냐'며 감탄에 감탄을 쏟아냈답니다. 교실에 붙여두고 더 오래, 더 많이 자랑하고 싶었는데 글쎄 녀석이 초상권 침해 운운하더라구요. ^^; 섭섭했지만 맞는 말이라 돌려주고 말았습니다. 수지, 다혜, 민정이도 기특한 숙제를 했지요. 독후감 세 편 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네 녀석 모두 예뻐서 약속대로 책을 한 권씩 상으로 주었습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이 책은 친구사이의 우정이 부각되는 표면적 이야기와 함께 콤플렉스를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성장소설이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같은 책으로 나눠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글의 내용과 그림이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스테디셀러랍니다. 반 아이들 두루 돌려보면 좋을 것 같아 똑같은 책을 사주었는데...글쎄 마음에 들었는지, 또 돌려보았는지.. 아직 물어보지를 못했네요.



다혜의 [유언장]써보기 숙제도 정말 좋았습니다. 또래 답지 않게 표현력도 좋고 성숙한 내용의, 아주 멋진 유언장이지요. 언제 시간이 나면 다혜에게 허락을 받고 우리 반 다같이 돌려본 후, 학급시간에 우리 모두 유언장 써보기를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다혜는 유일하게 두 가지 숙제를 했으니 상을 하나 더 주어야하는데..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저랑 같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보여주어야겠지요? 반 아이들 누구든지 함께 보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혜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의 영화비는 각자의 용돈으로. ^^;


달력을 보니 10월에는 학교 행사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선 4일에서 8일까지 추석연휴가 있고 연휴가 끝나면 아이들은 바로 중간고사(10일~13일)를 치러야합니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즐거운 추석에 아이들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요. 정말 불쌍하지요? 시험기간에 대한 아이들 불만과 바꿔달라는 건의가 많았는데 성적처리와 수학여행 등 학교 일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 2학기 내신산출이 이번 시험부터 시작되니 1학기에 다소 부진했던 녀석들이 좀 더 힘을 내서 공부를 해주어야할텐데요. 부모님께서도 살뜰히 살펴봐 주십시오.


시험 한 주 후엔 학년 초부터 아이들이 학수고대 기다리던 수학여행이 있습니다. 담임으로서 수학여행에 대해 걱정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음주에 관한 것입니다. 몇몇 아이들은 수학여행에 빠질 수 없는 추억이 음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그 아이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지만 친구들과 함께 삼일을 자면서 꼭 음주를 해야 추억이 된다면 그건 그다지 바람직한 추억은 아니지 싶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에서는 아주 엄하게 단속을 할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 소지품을 검사해야겠지요. 필요하다면 아이들 숙소도 불시에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교사라도 개인의 물건을 함부로 뒤져보는 것에 반대합니다만 수학여행기간에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행여 주류가 발견될 경우, 학교봉사 등 교칙에 따라 엄중하게 벌을 주고 학교생활기록부에도 기록하기로 담임선생님들과 의논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이들이 혹 딴마음을 품지 않도록 유심히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걱정되는 것은 수학여행을 대비한 아이들의 과도한 소비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새 옷도 사고 그동안 벼뤄왔던 여러 가지 물건도 사고... 하고 싶은 것이 많겠지요. 그러나 부모님, 이번 2학년 아이들 중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50명 가까이 됩니다. 그 중에는 23만원이나 되는 수학여행비가 부담스러워 못 가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고 저희 반에도 힘들게 돈을 마련해 참가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힘겨움, 아픔도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속 깊은 이쁜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정이 허락한다고 그것을 온통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힘들고 아픈 바로 옆 내 친구를 배려해서 나의 넉넉함과 행복을 조금은 감출 줄도 아는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진 품이 넓고 생각 깊은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소년 시기의 과도한 소비는 아이들 자신에게도 바람직한 소비습관은 아니지 싶습니다.


2학기 들어 제가 아이들에게 부쩍 잔소리가 늘었습니다. 이제 몇 개월만 있으면 3학년이 되는지라 주고 공부에 관한 것이지요. 공부나 집중하는 것도 습관이니 지금부터 집중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 자습시간 수업시간에 늦지 말고 조용히 집중해서 샘들 설명을 귀담아 들어라. 떠들면 다른 친구들 공부에 방해된다. 등등입니다. 도움이 될까 싶어 한 주에 한 장씩 국어, 수학,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유인물로 나눠주고 설명도 해주었는데 솔직히 지금 당장은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네요. 그래도 2학기 들어 아이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예뻐진 것은 사실입니다. 1학년 티를 벗지 못했던 표정도 많이 안정되었고, 진로를 잡아가며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도 기특합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벌써 10월이 다 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11월엔 수능, 12월엔 기말고사, 그리고 겨울방학.. 2학기는 아마도 더 빨리 지나갈 것 같습니다. 그럼, 10월에 다시 편지 드리겠습니다.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고, 작은 일에도 큰 행복 느끼시는 환한 가을날 되시길 바랍니다.


2006. 9. 30. 토요일 10반 담임이 드립니다.


덧붙임 하나

지난 20일 치른 모의고사 성적표를 함께 보냅니다. 시험을 치를 때 아이들에게 ‘성적에 안 들어간다고 장난스럽게, 혹은 무성의하게 치지 말고 수능시험 연습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런데 다소 걱정스러운 결과가 나와서 선생님들이 걱정이 많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정기고사가 아이들 내신에 반영되는 중요한 성적이긴 하지만, 성적으로 산출되지 않는 모의고사 점수에 비례해서 수능점수가 나온다는 것이 학교 선생님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실 때, 제가 빨간 동그라미를 쳐둔 부분을 꼭 보아주십시오. 원점수학급등수등급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등급’이며 1등급이 제일 높고 9등급이 제일 낮은 것입니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을 꼼꼼히 챙겨보시고 아이들의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시어 아이들의 진로를 가정에서 의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2학년 마지막 모의고사는 11월 21일 있을 예정입니다.


덧붙임 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보충수업이나 야자를 빠져야할 경우가 있거나 생리공결을 써야하거나 아파서 학교 수업에 지장을 줄 경우가 생긴다면 부모님께서 직접 제게 연락을 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저는 13시에서 13시 40분 사이에는 늘 교무실에 있고 퇴근은 5시 이후에 합니다. 행여 제가 미처 전화를 못 받게 되면 문자를 넣어주시거나 음성메세지를 남겨주시면 적절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10월부터는 야자시간에 너무 심하게 떠드는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중간고사 후에 아이들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고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담임의 의무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혹시 아이가 야간자율학습에서 퇴출당하게 되더라도 이러한 정황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상황이 발생하면 따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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