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그런 일이었어.

아이들은 자라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는다. 가족, 친구, 남친, 학교샘들, 학원샘들... 그렇게 엮인 관계들 속에서.

조례 후 교무실로 ㅎ주가 내려왔다. 어제 보충시간에 많이 아팠다는 이야길 듣고 조례시간에 "괜찮나? 얼굴이 좀 부었네" 했기에 몸이 아프니 보충 빼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가보다 했다. 그런데 시간을 좀 내달란다. 할 이야기가 있단다. 점심시간엔 지난 월요일 교무회의 건으로 샘들과 만나기로 했고.. 5,6교시 모두 수업이고. 하는 수 없이 7교시 보충시간을 한 시간 빼자고 했다. 무슨 일일까?

ㅎ주녀석. 참 기특하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후, 엄마랑 동생이랑 살아간다. 엄마 혼자 벌어서 두 아이와 생활하고 공부도 시켜야하니 형편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기초수급대상자인데 학년 초 학비감면 문제로 상담할 때 모든 아야기를 웃는 얼굴로 자분자분 이야기해 주었다. 평소에도 찡그린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구김없이 밝은 성격이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도 두루 잘 지내는.. 예쁜 녀석이다. 심한 다이어트 때문인지 자습시간이나 수업시간에 곧잘 엎드려 자고 늘 피곤해 보여서 걱정스럽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청소지도를 하는데 ㅎ지가 다가오더니 "샘~ 수학여행 안 가면 안 되요?"한다. "왜?" "집이 좀 많이 안 좋아요. 지난 번 태풍으로 농사가.. 힘들거든요. 방학 때 태풍왔잖아요? 그때 밭에 나가 같이 일했는데 와~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에구.. 그렇제? 그렇지 않아도 우리 반에 안 가겠다고 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어서 샘이 좋기도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ㅎ미는 아파서 못 간다 그래서 샘이 뭐라 말을 못하겠드라. 그네 우짜노, ㅎ지야. 어제 명단 다 올렸다. 최종 결정이 났는데.. 이제는 변경 안 될걸" 억지로 조르면 될 수도 있겠지만 같이 데리고 가고 싶은 담임 마음에 그렇게 얘기했다. 사실 일하는 학년 부장샘께 지금 빼겠다는 말을 하기는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근데 ㅎ지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고 뭐 그렇지만... 사람이란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게 있거든. 샘은 느그 모두랑 가고 싶은데.. 그래 일단 부장샘께 여쭤는 볼게. 근데 아마 안될끼다."

사실 ㅎ지뿐만이 아닐꺼다. 엊그제 ㅎ영이 어머니께 전화도 한 통화 받았다. 이번학기에는 왜 보충수업 감면이 안 되냐고. 수업료도 아직 못 내고 형편이 너무 어려운데 우리 반에 한 명도 안 가는 아이가 없다길래 안 보내줄 수가 없다고. 왜 내륙으로 가지 않냐고. 이런 저런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죄송스럽고 갑갑했다.

교실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온ㅎ주와 교무실로 내려왔다. 교무실에서 이야기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길래 원두커피를 가지고 내자리 근처 쪽문으로 빠져나가 국기게양대가 있는 베란다 한 귀퉁이로 가서 둘이 쪼그려 앉았다. ㅎ주의 고민은 물론 수학여행을 안 가고 싶다는 거였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친했던 녀석들이 어제 절교선언을 해왔다는 거다. 녀석들도 우리 반인데 그동안 서로 간에 쌓인 것을 어제 풀었다고 했다. 다시는 같이 놀지 않기로. 그 무리의 '친구'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ㅎ주 나름대로 분석한 원인은 성격차이였다. 그리고 생활형편이 달라서 그 아이들이 놀자고 할때, 만나자고 할때 몇 차례 거절했다고. 그래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안쓰럽다. 집안이 어렵다고 말을 못한 거다. 어찌 쉽게 그 말을 뱉을 수 있겠나.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클텐데...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 스몄다가 한다. 이렇게 아프면서 크는 거겠지만, 사실 아파본 만큼 깊이 있게 다른 사람 배려할 줄 알겠지만 지금 당장은 안쓰럽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단다. 그동안 서로간에 힘들었던 게지.

역시나 부장샘의 답은 '지금은 너무 늦어서 안 된다'였다. ㅎ주가 빨리 다른 아이들과 친해져서 수학여행 때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2만원이나 되는 수학여행비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이 많을텐데 걱정이다.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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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2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료, 보충수업비, 수학여행비, 급식비... 아이들은 학교에 정말 돈을 많이 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과연 뭘 해주는건지... 응시하지 않는 과목으로 가득한 선택과목 수업과, 마찬가지 맘에 드는 선생님 선택권도 없는 보충 수업에, 복딱거리는 수학여행과,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급식과...
아이에게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할때... 속이 타겠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앓으면서 자라는 것도 좋은 약이 되지 않을까? 제발 약이 되기를... 바랍니다.

해콩 2006-10-0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