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가 바꼈다. 점심시간 후 5교시에 교실에 들어섰더니... @@ 우와 이건 정말 장난 아니다. 두 무더기 아이들은 서서 아직도 못 다 먹은 간식 먹고 있고 우우 서서 떠들고.. 종친 지 5분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그러고들 있다. "앉아라~ 앉아라~. 오늘 시험범위 할꺼다. 빨리 자리에 앉아라~" 언제나처럼 이렇게 부드러운 말은 효과없다. "셋까지 센다. 그때까지 안 앉으면...!! 알지?--+ 하나아~~ 두우우울~~" 우루루 우루루

겨우 앉히고 수업하려는데 먼지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샘... 화장실 갔다와도 되요?" (승질 버럭 내며 정색하고) "뭐??  화장실은 언제 가는 거고? 50분이나 되는 점심시간엔 뭐하고.. 지금 수업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느그가 초딩이가? 못 간다. 오늘은 절대로 안 보내줄끼다."  (시무룩한 먼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갖다와. 이번이 마지막이다?" 교탁 밑에 앉은 ㅅ라녀석 (작은 목소리로) "지금 가고 싶을 수도 있지.." 수업하려고 칠판으로 돌아섰다가 녀석의 그 말이 맘에 탁 걸려 다시 교탁 앞에 섰다. 사실 이러저러한 작금의 사태가 생각나기도 하고.

"느그.. 수업시간에 샘이 화장실 보내주는 거, 그래 갑자기 가고 싶을 수도 있지. 그런데 수업 시작하자마자 가겠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노? 느그가 이렇게 행동하면 샘들이 느그 믿고 화장실 쉽게 보내주시겠나? 나라도 당장 다음부터는 수업시간에 화장실 안 보내줄꺼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럼 녀석의 잘못으로 진짜 급한 아이가 화장실 못 가게 되는 거 아니가? 그건 남의 권리를 빼앗는 거다. 수업시간에 느들 몇몇 녀석... 이렇게 떠들고 시작종 쳤는데도 늦게 앉는 거 이것도 다른 친구들 수업권을 침해하는 거다.

생리공결 있제? 그거 조퇴,지각,결과는 3일까지 됐었잖아? 물론 우리반에는 3일까지 쓴 녀석은 없지만 오늘 생리해서 조퇴하고 다음날 여전히 아파서 조금 늦게 올 수 있잖아? 암튼 그거 하루로 줄었거든. 어떤 녀석 하나가 거짓말로 생리조퇴하고 시내 가서 놀다가 학교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로 자랑했는데 그게 친구 부모님께 알려져서 그 부모님이 학교로 전화하셨단다. 학교에서 아이들 거짓말하고 놀러다니는데 관리 안 하고 뭐하냐는 항의 전화! 그게 발단이 되서 이렇게 줄어든 거다. (아이들 " 뭐 그런 일로 전화를 다하노? 웃끼는 엄마다." )아니, 부모님들 그렇게 전화하실 수 있다. 사실 아이가 조퇴하면 샘이 일일이 부모님께 확인 전화하잖아? 근데 가끔은 서로 바빠서 통화가 안 될 수도 있거든. 암튼 문제는 그런 무책임한 행동들이 느그 전체 아이들의 권리를 축소하는데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거다. 화장실 얘기에서 너무 비약하는 것도 같은데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려면 남의 권리가 소중한 줄도 알아야한다는 거다.

그리고 어제 청소시간에 ㄷ원이가 보충수업 자습에 대해 이야기하던데... 정규 수업도 가급적 그래서는 안 되지만 보충수업은 사실 자습 하면 안 되는 거 맞다. 물론 샘들이 사정이 있는 경우는 예외지. 사전에 미리 시간을 바꾸거나 사후에 해명이라도 해야지. 느들이 수업 안 하고 논다고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튼 수업받아야 하는 것, 그건 느그 권리다. 느들이 예민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권리!!

샘이 말하고 싶은 건 두 가지다. 느들의 권리에 민감하자는 것, 그리고 나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 "

별로 떠들지도 않고, 중간에 말도 안 자르고 대부분 듣는다. 기분이 약간 좋아져서 진도를 나가려는 찰나, ㄷ원이가 '이거 한 가지만 하며 질문을 한다.

"수업 중에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선생님껜 어떻게 해야해요?"

흠... 민감한 문제..

"좀 전에 샘이 한 이야기도 느그 중 몇몇은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어쩔 수 없겠지. 교사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느들 자유다."

그게 아니란다. 그 선생님의 개인적 가치관을 더 듣고 싶지 않은데 샘께서는 계속 그 이야기만 하신단다. 대처방법을 알려달란다. 이럴 경우, 정말 난감하다. 뭐라해야하나?

"다른 샘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샘들이 제일 곤란해 하는 부분이거든. 문제제기도 잘 하니까 해결방법도 느들이 의논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느들이 의논해서 행동해라"

더 당황스러운 건, 아이들이 말하는 그 선생님.. 평소에 나와 생각이 잘 맞고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그런 것까지 조언해주는 게 담임교사의 의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느그가 알아서해봐~잘 할 수 있을거야~'하며 문제의 중심에서 살짝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역시 난감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6-09-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 시간에 개인의 가치관도 아니고, 사생활 비슷한 잡담을 마구 늘어놓는 인간들 있지요. 그래서 교사 평가가 지지를 받는 면도 있구요. 학생들 의견이 소통될 공간이 너무 없습니다.

해콩 2006-09-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그 샘께서는 편성은 되어있으나 시험 없이 이수만 하면 되는 과목 수업을 하시거든요. 잘됐다 하시며 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FTA에 관한 것이나, 대추리 또는 환경호르몬의 문제점... 등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부조리들을 짚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매주 한 시간씩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아이들은 그 말들이 다 소화가 되질 않는지 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으면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 반 아이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샘들이랑 잘 안 맞아하거든요. 참... 대략난감이예요. 어쩌죠?

글샘 2006-09-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방학 때 상담 연수를 받는데, 어떤 선생님이 이런 이야길 하더라구요. 전교조 선생님들이 이론적으론 옳으면서 실제 생활까지 올바른 것은 아니라구요. 그걸 일치시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맞지 않다면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토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