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 시장을 걸어내려 오다가 샘들이랑 나눠먹을 흑미식빵을 하나 샀다. 사직동에서 카풀 샘 차에 올라 만덕터널 입구 즈음에 들어서니 월요일도 아닌데 꽉 막힌 차들이 굉장하다. 터널 안에 트럭 한 대가 멈춰섰단다. 덕분에 간만에 산길로! 태풍 '산산'이 올라오는 중이라 날씨도 흐리고 비도 온다는데 세상은 어제 내린 비로 또렷하다. 광안리, 해운대 앞 바다까지 보이고 모퉁이를 돌아 북구로 접어드니 낙동강 너머 김해의 야트막한 산과 누렇게 넘실거리는 나락들까지.. 신선한 아침이다.

교무실. 가방을 내리자 마자 '오늘은 부장샘을 대신해 원두커피도 뽑아놓고 사온 식빵도 구워두어야지' 생각하며 우물가에 서서 물을 받고 있었다. 내 자리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는 저 예쁜이는 누군고? 수정이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제빵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수정이. 대학 다니는 언니 밑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한동안 못다니던 학원을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미안한 얼굴로 야자를 빼달라고 한 것이 9월 초였다. 보충수업을 빼준 것도 아니고 야자만 빼주었는데 무슨 큰 배려라도 받은 양 고마워하며 "샘, 빵 구우면 갖다드릴게요~" 고 예쁜 눈에 웃음 가득 담고, 고 예쁜 말을 수줍어하며 뱉아냈었다. "선생님 이거~" 우물가에 있는 내게 직접 구웠을 빵을 봉지 가득 보여준다. 그렇잖아도 요즘 불타오르는 식욕을 가누지 못하는 내가 환성을 지른 건 당연~ "우와 니가 만든 거가?" 우물가에서 탄성+고함. 살며시 놓고 나가는 녀석에게 "고마워~ 잘 먹을게"를 연발하며 자리로 가보니 수정이 만큼이나 예쁘고 수줍은 팥빵 5개가 비닐 봉지에 예쁘게 들어앉았다. 어라, 그리고 이건? 옆에 살짝 놓여진 우유. 빵도 나를 기쁘게 했지만 우유, 우유를 보는 순간 온 마음이 화사해졌다. '어리버리 즈 담임, 허겁지겁 빵 먹다가 목 메일까봐 우유까지 챙겼구나. 이건 따로 샀거나 지 몫일텐데...'  하던 일을 멈추고 앞자리 샘께 자랑을 거창하게 늘어놓은 후 하나를 건네고 나머지 네 개를 반쪽씩 잘라서 주위 샘들 자리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오면 또 자랑해야지. "나, 오늘 존경 받았잖아~"라며 ㅋㅋ

그렇게 즐거워하다 오늘은 조금 늦게 교실로 올라가니 예상대로 아수라장. 칠판 앞에서 혜명이와 혜영이가 서서 떠들고 있다. "어, 떠든 두 사람 복도로 나와!" 와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앉히고 혜영이를 얼핏 보니 교복치마를 들추고 안에 따로 입은 치마를 매만지고 있다. 사복? 지난 번 일본어 시간에 이나와 은주가 사복 꺼내서 장난 치다가 한 3일 정도 빼앗긴 적이 있다. 형평을 고려해 압수해줘야한다. "뭐야~ 이거. 사복이잖아. 벗어라. 압수다!!"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혜영이 "이거 혜명이가 만들어서 저 선물 준 건데요~" "엉??? 혜명이가 만들어? 벌써 혜명이가 옷을 직접 만든단 말이가???? @@ 우와 진짜 잘 만들었다. 근데 왜 니만 선물주노?" "접때 천 떼러 갈 때 따라가줬거든요 ^^" "글쿠나~ 와~ 진짜 잘 만들었다. (튀어나온 실밥을 가리키며) 근데 이건 뭐꼬? ㅋㅋ" 혜명이 "^^;;" 감탄만 하다가 같이 들어왔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더 떠든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제 민주가 경남정보대학 제과/제빵대회에 나가느라 학교에 못 왔는데 세상에나~ 자격증을 따고 처음 본 시험에 은상을 탔단다. 부상으로 MP3까지!! 우와우와~ 학생부에 등재하기 위해 상장을 챙기며 맘껏 이뻐해줬다. (수정이에게도 살짝 샘들에게 자랑한 이야기와 고맙운 마음 전하고..)

요즘 우리반 녀석들 이렇게 예쁘다. 아침 자습 감독 들어가서 "조용히 해라~  자습 시간에는 집중해서 공부하자~ 떠들면 복도로 쫓아낸다"라고 공갈협박하면 별 대꾸 반항 없이 조용히 하는 척 할 줄도 안다. 또 '성적 내려가면 야자시킨다~'고 했던 내 엄포가 신경쓰여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가 없다고 상담하러온 수진이, 아파서 조퇴한 후 의사소견서 스스로 챙겨올 줄 아는 수다쟁이 은주, 낡은 지갑 하나 선물로 주었다고 밤이 늦도록 기억했다가 감사 문자 날리는 수지... 이렇게 헤벌쭉 좋아하면서 미처 못 챙기고 있는 아이는 없을까?

 

그리고... 수업 시간엔 엄청 떠들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개구진 4반 녀석들. 요즘 내 자리에 책 빌리러 자주 온다. 진우 [십시일반], 휘빈이 [바보 1,2], 바위 [대한민국사 2] . 오늘은 태우까지 내려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다 봤다며 돌려주러 왔다. (사실 지난 주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며 태우 생각을 했었다. 문학, 국어만 편식하는 태우. 정말 글을 잘 쓰는 아이다. 그렇지만 수학도 이렇게 문학적으로 접근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샘이 왜 이 책 니한테 빌려준 줄 알겠나? ^^; " "수학공부도 열심히 하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박사는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꾸며낸 거잖아요." "아니다. 있다. 그 소설만큼 아름다운 학자들도 있는데~. 음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 함 봐봐. 아마 도서실에 있을 거다" 태우가 내게 빌려준 소설책 이름은 잊어버렸다. [엄마와 나] 다 읽고 나면 바로 읽어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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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1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마음에 아이들 이름이 다 실명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추억... 잊고 싶지 않아서. ^^ 내친 김에 하루에 한 명씩 찍어서 '칭찬하는 날'을 실천해야겠다. 한 명씩 불러내서 내 낡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