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3. 서울에서

그날 아침, 마음 먹은 대로 5시에 눈을 떴다. 찜질방.. 여러 모로 편리했지만 결정적으로 잠자리가 불편했다. 요도, 이불도 없었고 들락날락 하는 낯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잠을 청하기는 둔한 나로서도 쉽질 않아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다. 꼬박 밤을 새웠을 여탕의 아주머니께서 새벽잠을 청하고 늘 그렇게 탕을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할 아주머니들이 박박 여탕 바닥에 세제를 문지르는 가운데 대충 씻고 챙겨 나왔다. 8천원의 입장료에 호박죽 3,000원+인터넷사용료 1,000을 더 지불하고. 가방이 좀 무거웠지만 명륜동을 거쳐 성대 쪽으로 걸어올라갔다. 많이 변했다. 금잔디 광장이야 그 맘 때에도 뭔 건물을 짓는다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늘 공부하던 도서관 아래쪽, 허름한 건물이 있던 자리엔 600주년 기념관인가 뭔가가 들어서서 그야말로 삐까뻔쩍했다. 도서관 뒤쪽으로 와룡산이 보이는 전망좋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도 막아버렸고 낡은 책상이랑 의자가 후줄근 쌓여 볼쌍 사나왔다. 새벽 커피를 한 잔 옛 살던 곳을 둘러보며 회상~ 도서관 그 자리에서 뭔가 끄적이고 싶어 들어섰는데... 막막해졌다. 경비아저씨게 쫓겨나왔다. 열람실에 들어가보려고 해도 카드공용 학생증이 있어야하나보다. 모든 것이 야박해졌다. 나를 증명하는 '증'이 나를 대신한다. 그 땐 그렇지 않았는데... 흘러간 것들을 무조건 향수하는 습관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나를 포함한 세상은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공허함을 거의 의미없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그 아침 내가 본 풍경들에서 느낀 것이라면 사람들이 비어있는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다. 기어이 꼭대기까지 끙끙 기어올라가 마을버스를 타고 온 길을 되짚어 대학로로 다시 돌아와 둘러본 광경 역시 이러한 느낌에 방점을 찍게 했다. 전날 밤엔 어두워 미쳐 살피지 못했는데 대학로 도로가운데 세워진 말뚝들은 다 뭐냐. 그리고 이렇게 도로가 좁지도 않았단 말이다. 노천공원도 마찬가지. 뭔 이동 통신사가 다 망쳐놨다. 최손한 내눈엔 그리 보인다. 그 자유롭던 광장은 어디로 갔느냐... 걸어 걸어 삼련서점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유일하게 중국 수입 서적들을 취급했던 그 서점에 걸려있던 액자에 걸려있던 글귀를 참 좋아했는데... 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디로 옮겼나 싶어 주위를 한 바퀴 둘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제자리. 대학로. 서울역에서 8시에 ㅎㅈ이를 만나기로 했다. 수원에서 이까지 오려면 새벽에 출발했겠지? 부산 가는 표를 끊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계획에도 없던 '철도회원'카드를 만들어버렸다. 것도 현금 이만오천원이나 내고. 바로 후회했다. 가끔 이렇게 도발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가운 오양! 시립미술관은 덕수궁 근처에 있다. 덕수궁 옆 '그 집'에서 콩나물국밥을 아침으로 먹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아침이나 점심이나 이집을 빠글빠글하구나. 11시 개관.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몇 년 만이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듯. 일본, 중국, 우리나라 중등학교 한문 교과서를 비교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란다. 이런 연구논문이 상당할텐데.. 그 중엔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쏠쏠할텐데... 늘 일상에 쫓겨다니느라 챙겨보질 못하는구나. 안주한 걸까? 암튼.. ㅎㅈ이의 논문은 꼭 챙겨봐야겠다. 피카소전을 졸면서 봤다. 역시 무리였는지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전날 본 인상파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작품 수! 평생 엄청난 작품을 남긴 피카소이니까. 그의 사람들과 관련된 작품배치. 재미있군. 여성들.. 화가의 여성들.. 아이들... PAPER에서 '그는 행복했을까'하는 질문을 전시회에 대한 소감으로 남긴 글을 보았는데 작품을 졸면서 봐서 그런지 변하는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런 삶을 녹여 작품 활동하면서 '그는 행복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인사동으로 갔다. 그냥 점심먹고, 겨우 농협 찾아 ㅎㅈ이는 등록금 넣고 나는 돈 좀 찾고. 서울역으로 돌아와 차시간까지 팥빙수 먹으면서 수다 떨었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돌아오는 열차... 역시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의 창가자리 '운빨'이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 해가 지는 오른쪽 창가자리를 원했는데 왼쪽에 그것도 칸막이 때문에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열악한 자리다. 내쳐 잠들었다. 8시 반쯤 도착!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고 가족들이랑 휴양림으로 향했다. 이리 저리 흘러다니며 구경하고 쉬고... 간만에 가족들 사이에서 그저 편안했다. 그렇게 24일까지 시간은 잘도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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