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는 2차대전 중 인도네시아에서 만났다. 그는 농림부 관리로 그녀는 타이피스트로.

서구적이고 어여쁜 22살의 처녀에게 유부남인 그는 독설가라는 첫인상을 남기지만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전쟁이 끝난 후 부인과 이혼하겠다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녀 역시 귀국한다. 그러나 그는 폐병에 걸린 부인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유부단함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한 그녀는 미군을 상대하고 이전 자신을 겁탈했던 친척 오빠에게 의지한다. 괴로운 삶의 시간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와 그는 늘 자주 만나고 여행을 가고...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둘이 여행간 온천에서 만난 유부녀와 잠을 자고 가출한 그녀와 살림을 차린다. 그러면서 그녀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임신 중절을 하러 혼자 찾아간 산부인과의 회복실에서 그녀는 그 유부녀가 남편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곧장 그를 찾아간 그녀는 다시 그에게 사랑을 고집하고.

둘은 떠난다. 이름도 생소한 남쪽의 어떤 섬으로 그가 발령을 받은 것이다. 함께 가지 않으려는 그에게 애걸하며 매달려 결국 둘은 떠난다.  신산한 삶 때문이었을까, 전처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그녀 역시 이미 폐병이 깊은 상태로... 그녀는 들것에 실려 섬에 닿는다. 맑은 날이 거의 없는 우울한 그 섬.. 어느날 그녀는 홀연히 떠난다. 깊은 울음을 우는 그를 남긴채.

 

화가 났다. 그녀의 끊임없는 사랑에. 지칠줄 모르는 열정에. 언젠가는 후회하고 결국 지칠 거라고 단정짓고  지켜봤지만 그의 어떠한 '부정'에도 그녀는 줄기차게 그를 사랑했다. 그래도 나는 믿을 수 없다. 아니, 그런 것이  사랑이라면 나에게 '사랑'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무엇이다.

스카프와 코트를 걸친 유키코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동경에서 도미오카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키코와 도미오카는 전쟁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사랑에 빠졌었다. 유키코는 이혼한 도미오카에게 환영받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미오카는 실제로 여전히 그의 아내와 장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도미오카는 집을 나서고 그 옛 연인들은 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도미오카는 아내가 병들어 있어서 도저히 그녀를 떠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사랑에 이끌린 도미오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요키코를 온천이 있는 여관으로 데려간다.

-서울시네마떼끄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에서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에 토대를 둔 <부운>은 나루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루세 영화로도 꼽힌다. 이 처연한 러브스토리는 전쟁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함께 근무했다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종전 뒤 일본에서 재회해 힘들게, 그리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루세의 말대로 정말이지 끝까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쫓아가는 이 영화는 사랑이 절대로 어떤 보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의지의 투쟁’을 벌이듯 사랑을 요구하는 여자주인공 유키코에게 쉬운 공감도 허용치 않는다. 영화는 그러면서도 끝내는 그 사랑에, 그리고 그 당사자인 유키코에 보는 이를 ‘굴복’시키는 기이한 힘을 보여준다. 한편 다양한 전개로를 통해 읽힐 수 있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부운>은 걸작의 또 다른 조건 하나를 갖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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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9-0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셨어요? 여배우 너무 예쁘죠? 연기도 잘하고.
'사랑'운운은 뭐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솔로의 푸념이라고나 할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