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서울.

무늬조차 수업같지 않은 수업 두 시간하고, 한 사람씩 기념사진 찍으며 수료증 받고, 사람들이랑 안녕~ 하고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샘들이랑 먹고, 방 짝지샘이 태워줘서 터미널까지. 22일 1:30 차로 서울 도착하니 거의 4시. 어디로 갈까? 만나기로 한 동생은 저녁 때나 되어야 시간 될 것 같으니... 피카소전 보러왔는데... 예술의 전당이 더 가깝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계획을 수정했다. 생각해보니 국립박물관의 유물은 다음번에 와도 그대로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유물전같은 특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오늘은 인상파 화가전 보고, 내일은 피카소전 보고 혜ㅈ이랑 놀면 되겠다.

지하철 타는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 하긴 8년이나 흐른데다가 새로운 노선도 너무 많이 생겼다. 서울은 점점 팽창하고 있다. 지하철로 2시간 정도 가면 그야말로 경기 일대를 대충 돌아볼 수도 있으니. 그러나 두 시간이면 공주를 세바퀴는 돌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서울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 사람도 빨리 지치고 늙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시내버스 40분 기다려 시내 한바퀴 도는데 30분 걸리는 경험을 이곳 사람들은 상상이나 하겠는가? 기다리는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거다.

암튼 예술의 전당은 강남터미널에서 겨우 두 코스.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 (걸어도 될 거린데 공연히 맘이 급하고 지리를 몰라서리) 예술의 전당. 8년전만 해도 이곳엔 거의 공터가 많았는데 지금은 커다란 건물들이 꽉꽉 들어찾다. 징그럽다. 이젠 잊혀진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도 여기 어디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덥다. 작년 베이징의 날씨처럼.

한가람 미술관 어른 만이천원. 할일혜택 전혀 없이 쌩돈 다 내고 표를 끊었다. 가방은 표 받는 아가씨에게 맡기고 들어선 시간이 4시 반쯤? 혜ㅈ에게 전화하고 들어갔다. 인상파? 사실 잘 모른다. 입구에서 작은 도록을 하나 샀지만 읽을 여유도 없고 그냥 보고싶기도 하고. 그냥 이런 저런 마음욕심 다 내려놓고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 그림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부담없이 뜯어보며 그 시대를 떠올려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어떤 장면에 땡겨서 붓을 들었다.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내가 보고자 하는 것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생각은 당시로선 놀라운 것이었으리라. 모든 대상을 옹기종기 틀 안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신체의 일부도 캠버스 밖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다. 점묘법으로 표현한 '빛의 파편' - 캬~ 이건 르느와르의 표현이다. -  들이 일렁이며 다가온다. 이름이 너무 어렵고 길어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겠는 <흰색 공동주택> 앞에 섰을 때 '몇번의 터치로 이 그림은 완성되었을까? 세어보면 재미있겠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화가의 딸, 카페의 무희, 집시, 걸인, 국회의사당, 외로운 바위, 6월, 이른 봄, 일출, 롤라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빨간 옷을 입은 엄마와 아이, 첫 아이의 죽음, 월출, 고요한 강, ...... 더 생각하면 더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6시 반에 나왔다. 두 시간 정도 돌아본 것이다.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가방을 찾아 의자에 앉으니 똥그란 일몰이 눈에 든다. 멋지군.  혜ㅈ에게 전화를 하고, 빵 하나를 커피와 함께 먹고. 혜ㅈ이는 지금 바로 수원으로 오라지만 나는 시간이 아깝다. 더 놀고 싶다. 그래서 조금 더 놀고 가마하고 대학로를 겨냥해 갔다. 괜히 옥수역에서 내리는 바람에 시간이 좀 지체됐다. 너무 무거운 가방을 락커에 넣고 동숭아트센터로. 마침 나루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방랑기] 보고 싶다. 근데 마치면 11시. 수원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혜ㅈ에게 전화해서 허락 받고 찜질방에서 자기로 했다. 드뎌 찜질방 문화도 체험을 해보나? 

[방랑기] 62년 작품이다. 124분. 우와~ 대단한 역량이다. 60년대 영화는 90분 정도도 긴 축에 속했던 거 아닌가? 암튼 영화는 재미있었다. 실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인데.. 배우들의 적당한 오버연기도 코믹하고 원래 캐리터가 그렇겠지만 예쁜 척 하지 않고 주인공도 맘에 든다.

나오니 11시 얼렁 지하철 4호선 2번출구의 07번 락커에 맡겨두었던 짐을 빼서 가방에 다시 쑤셔넣고 어제 향ㅇ샘이 네이버 '엄마'에서 알아봐준 24시 대학로 불가마 찜질방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혜ㅈ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구나 했다. 환한 것이 이건 뭐 거의 동네 할인마트 수준이다. 대중탕에 찜질방에 수면실에 간식실까지. ㅋㅋ 싸고 안전하다. 대도시에 놀러다닐 때는 자주 이용하면 좋겠다. 호박죽으로 저녁도 건더뛰어 허기진 속을 좀 달래주고 샤워하고 컴앞에 앉았다. 시간당 천원! 이제 남은 시간 2분. 1시간이 정말 후딱 가는구나. 한시 반이다. 이젠 자야 내일 피카소와 그 연인들(여인들?)을 제대로 만나지. 혜ㅈ이도! 5시에 일어나 5시반엔 이곳을 나가 성균관대 주변을 둘러볼 계획. 8년전 추억을 곱씹으며. 풀무질도 한 번 둘러보고. 그리고 서울역에서 8시에 혜ㅈ이를 만나기로 했다.

잠 잘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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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8-2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료하셨군요. 1정이 되기 쉽지 않죠?ㅋㅋ 축하드립니다.
찜질방을 무슨 범죄 소굴처럼 생각하셨나봐요. ㅎㅎㅎ 이제 곧 개학인데, 건강하세요.

해콩 2006-08-2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솔직히 1정 연수, 별 것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연수중에 위로방문하고 그러는 거 그저 재미삼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오랜 시간 동안 붙잡혀 있는 것도 그렇고 간만에 하는 공부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고... 위로방문이 필요하겠던걸요~ 글샘샘은 1정 받으신지 오래 되셨죠? 존경하옵니다.
저 일기를 쓰고 나서 바로 여자용 수면실에 들어섰는데 밤새 잠을 설쳤어요.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요나 이불도 없어서... 어떤 악조건속에서도 숙면할 수 있는 제가 잠을 설치는 일은 여간해선 보기드문 현상인데.. 암튼 씻는 건 몰라도 잠을 제대로 자려면 찜질방은 적합치는 않겠다는 결론. 범죄소굴은 아니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