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권정안 / 소장ㆍ공주대 한문교육과 교수



단발령의 추억


공주 방면에서 봉현리에 있는 우리 연구소를 가 본 사람들은 그 중간에 있는 저수지와 그 저수지를 앞에 두고 있는 모덕사를 알 것입니다. 처음에야 웬 절[寺]이 있는가 하겠지만, 몇 번 드나들다 보면 이 곳은 절이 아니라 구한말 때 의병활동을 하다가 대마도에 끌려가 단식절사(斷食節死)한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신 사당(祠堂)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인연일까? 처음 제가 선생에 대해서 들은 것은 아마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략은 서세동점의 도도한 흐름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민족과 국가 생존의 위기 앞에서,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개화의 요구에 대해 선생은 수구파의 우두머리로 개화정책을 반대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보다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내용은, 선생이 반대한 가장 중요한 정신이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보다 개화정책의 자잘한(?) 조목 가운데 하나인 단발령을 거부하면서 내세운 주장, 즉 ‘이 목은 벨 수 있어도 이 머리털은 벨 수 없다.(此首可斷 此髮不可斷)’는 말이었습니다. 상투는 당연히 해본 일이 없고 까까머리 학생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가던 나에게, 이 말은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말을 한 선생 자체가 시대착오적 사고와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찌 선생과 선생의 이 말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세기 내내 우리의 조상들과 그들의 문화전통을 모두 시대착오적인 코미디 정도로 생각해왔고, 지금도 많은 부분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 목을 벨지언정 머리칼을 자르지는 못하겠다는 이 말은, 생명이 달린 목과 생명이 없어 잘라도 아프지도 않고 그냥 두어도 수시로 빠지는 머리칼 사이의 가치의 차이를 모르는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그런 정신병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말이겠습니까?

우리는 선생과 달리 개화된 문명한 사회에 산다는 자만감을 만끽하면서, 이 말을 시대착오적인 우스개 소리나 미치광이의 말쯤으로 가볍게 치부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조금 식견이 있는 경우에는 선생의 인격과 행적을 고려하여 그 말이 나름의 상징성을 가진 것임을 인정하지만, 그 상징적 의미의 사상적 기반인 유학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사상이나 가치로 치부해왔기에, 이 말은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적인 유학자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선생과 선생이 살았던 구한말의 우리 민족과 국가는 서세동점의 국제적인 흐름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앞에서 참담한 패배자였습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패배자는 승자에게 경멸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 경멸 이상의 참혹한 대가를 치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패배자에게 남은 길은 대개 저항과 굴종의 선택뿐입니다. 그리고 굴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이런 굴욕을 합리화할 자기변명의 희생양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평범한 개인의 말이라도 그것이 생명을 걸고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진지한 이해의 자세나 적어도 경청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담보한 주장은 이미 단순히 일상적인 주장에 대해서와 같은 평범한 반응을 요구하는 것을 아니라, 그 사람의 전 생명을 건 그래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알아달라는 요구를 담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면암 선생 정도의 인격과 실천을 보여준 선비들의 주장인 경우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시대의 희생양으로 삼아 우리 책임을 전가한 전력 때문에,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진지하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성찰하기를 회피했고, 그런 우리들에게 있어 이 말을 다시 상기하는 것은 역시 괴로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반성이야말로 지성의 첫째 조건이고 반성 없는 삶과 반성 없는 시대는 희망이 없다고 보기에, 늦었지만 더 늦지 않게 이 말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새겨 보고자 합니다.

저는 그 출발에서 우선 이런 의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단발령은 국가가 임금의 명을 빌려서 국민에게 내린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발령을 주장한 개화파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종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런 국가와 임금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현실적인 정치상황에서 그들은 반역자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당시 정치권력에 대해서 충신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소중한 부모가 주신 것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머리칼을 지키는 것이 효도이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이라도 거부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은 그 많은 선비들의 행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이처럼 효도 지상주의자 같은 그들이, 어떻게 망국의 상황에서는 머리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소중한 목숨은 도리어 초개처럼 내던지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까?

 


몸에 상처 한번 나지 않는 삶이 가능한가?


그러면 단발령을 거부한 선비들의 주장은 도대체 어떤 정신에 근거한 것인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 주장의 근거가 된 한문 구절에 매우 익숙할 것입니다. 그것은 효경(孝經)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헐거나 상처내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이 말은 본래 사서의 하나인 대학의 저자이면서 유명한 효자로 알려진 증자(曾子)에게 공자가 한 말입니다. 증자는 그 아버지인 증점(曾點)도 공자의 제자로, 통칭 삼 천 제자라고 하는 많은 제자 가운데 비교적 어린 제자에 속하였을 뿐 아니라, 공자가 ‘노둔하다’고 평가할 만큼 총명하지도 못한 제자였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백 번 해서 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열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천 번 해서 할 수 있더라도, 그 할 수 있게 되면 같은 것이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及其能則一也)’ 할 정도의 노력파였습니다.

재능은 부족하지만 거기에 좌절하지 않는 노력파인 어린 제자에게 가르친 공자의 이 말은 어찌 보면 참으로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말 뒤에 이어지는 구절은 도리어 통속적이기까지 합니다.


입신출세하여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서 부모를 현창함이 효도의 끝이다.

(立身出世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물론 공자가 여기에서 말한 입신양명이 설마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실의 모습과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개인의 영달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적인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노장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삶의 가치를 고상하게 갖는 선비들의 입장에서 조차 이 말은 너무 통속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공자가 증자에게 말한 이 구절 가운데, 앞의 내용은 효도의 시작으로서는 너무나 자잘한 것이고, 뒤의 내용은 효도의 최고 경지를 의미하는 끝으로서는 너무나 통속적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공자의 교육 방식이 이른바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 가르친다(因人施敎)’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 말은 증자를 너무 무시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건 증자는 이 공자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하였습니다. 뒤의 구절이야 적어도 증자의 입장에서는 증자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결과적으로 보면 세속적인 입신양명에서는 아니라 해도, 증자만큼 그 본래적 의미의 측면에서 성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앞의 구절은 그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는 이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물론 글자 그대로라면 첫째 구절의 실천인들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터럭이야 시간이 지나면 빠지기도 하는 것이고, 몸의 상처인들 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불가피하게 상처가 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스스로의 의지로 헐거나 상처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겠지만 증자는 실제로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이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애쓴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그 말 그대로 실천한 것이며, 그것도 평생을 실천한 것입니다. 논어(論語)에 보면 이 증자의 임종 때 일화가 나옵니다. 가족과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은 증자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바로 앞의 공자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증자가 위독하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내 발을 걷어 보고, 내 손을 걷어 보라. 시경에 이르기를, ‘언제나 전전긍긍하여, 마치 깊은 연못가를 지나듯이,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듯이 하라.’ 하였는데, 내가 이제야 더 이상 내 몸을 훼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노라. 얘들아.” 하였다.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저는 아직도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합니다. 마치 지난 호에 고백한 사마광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당혹감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평생 자신의 몸에 단 한번도 상처를 내지 않고 산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한 것인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회의는 이어서 그런 삶에 대한 야릇한 선망과 함께, 20대 초반의 저 자신은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상처를 경험한 상황이라서,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회한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란 그 자신의 삶의 어떤 모습이건 적어도 스스로에게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납득시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또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드높은 자존심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가진 저였기에, 이 증자의 삶에 대한 선망과 이미 불가능이 되어버린 저 자신에 대한 회한을 어떻게든 풀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첫걸음은 증자의 삶에 대한 선망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증자의 이런 삶의 가치를 깎아내리면 되는 것이었고, 그렇게 깎아내릴 빌미를 찾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증자 스스로도 시경의 글을 인용하여 표현하였듯이 그가 전전긍긍하는 조심스러운 삶을 산 사람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바로 그 말은 그가 평생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용기있고 과감하게 행동을 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이며, 결국 그는 한 평생 소심한 겁쟁이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 않는 것이 있는 사람만이 무엇인가를 한다.

그 부럽던 증자에게서 용기 없는 겁쟁이의 모습, 스스로의 신체에 상처를 내지 않기가 마치 가장 소중한 삶의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좀생이의 모습을 찾아낸 나는 적이 안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증자와 같은 삶이 불가능해진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한도 풀어버리고, 내 삶이 그 유명한 증자에 비해 적어도 과감하고 용기있는 삶이라는 자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유를 찾은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그런 삶을 그의 개성적 가치로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개성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그런 시대이고 또 제가 처했던 자리가 그런 자리라서, 이런 저의 과감성과 용기는 여러 번 시험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80년대 초반 대학에 온 뒤에는 이런 시험에 수없이 들게 되었고, 그 대부분의 경우에 저는 두려움에 뒷걸음을 치거나 갖가지 회피의 변명을 찾기에 골몰하는 비겁한 스스로와 부딪쳐야 했고, 그때마다 증자에 대한 저의 변명과 자부심은 형편없이 무너져 갔습니다.

이런 자괴감을 통해서 저는 증자의 소심한 겁쟁이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보았습니다. 저 소심한 겁쟁이인 증자와 그 동안 그런 증자를 조소하면서 과감하고 용기있게 내 몸의 상처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내가, 만약 동시에 부모나 국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아야 할 상황에 함께 부딪쳤다면, 과연 누가 기꺼이 이를 위해서 생명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열 번을 물어도 저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소심한 증자는 기꺼이 생명을 내 놓을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도대체 이 모순의 해답은 무엇일까? 증자는 겨우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몸에 상처내지 않기를 평생을 두고 실천한 것뿐인데, 그는 도리어 정말로 소중한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받는 것이고, 나는 그런 상처내기쯤은 별 볼일이 없는 사소한 것으로 치면서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가진 것 같은데, 진정으로 용기를 낼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자신조차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오랜 자괴의 시간을 거치면서, 저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맹자에게서 찾았습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일이 없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는 일이 없는 것, 단지 이 두 가지 일뿐이다.(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如斯而已矣)


그랬구나, 그랬구나. 나는 그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라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바라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구나.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라는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무엇을 바라고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에 대한 관심으로 나를 이끌어, 나로 하여금 그 조건과 힘을 얻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갖도록 한 것이구나. 내 나름대로는 내 능력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얻으려 하는 것이고, 이는 부끄러울 것 없는 정당한 욕망이고 행동이라고 자만했지만, 그게 아니었구나.

성현들께서 가르치신 정의로운 삶이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可能之中]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行可當之事]’이라고 학생들에게 그럴듯하게 가르쳤지만, 나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떠벌인 것이구나. 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판단과 반드시 함께인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선택은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선택과 반드시 함께라는 이 당연하고 단순한 이치조차 몰랐구나. 아니 모른 것이 아니라 내 무지와 욕심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했구나.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바랄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라고 부르고,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바라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퇴영적인 자세라고 매도하는 선전에 나도 모르게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이구나. 이 단순한 이치를 모르고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회한, 그리고 나를 이런 무지 속에 가두어 내 소중한 삶의 가능성을 망쳐온 그 무엇인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감히 증자를 소심한 겁쟁이라고 치부하다니, 저는 얼마나 파렴치한 자입니까? 저를 이렇게 파렴치하게 만든 저 자신 속의 무지와 탐욕은 또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입니까? 그런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여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더러운 현실의 모습은 또 어떠하며, 그 모습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갖가지로 합리화해 주는 이론들은 또 왜 그리 많은 것입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아직도 저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현실 속에 더러운 모습들이나 저를 합리화주는 갖가지 이론들에서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 것을 단호하게 중지할 만한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한 가지, 저 위대한 증자에 대한 터무니없는 경멸을 중지하고, 진정으로 그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만은 잃어버리지 않기를 다짐해봅니다. 그 바람 속에서 그 동안 증자가 속삭여주신 몇 마디의 말씀들은 이런 것입니다.

 

*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소중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소중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 하지 않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이 성장하는 인간이다.

* 세상에서 별로 문제 삼지 않는 자잘한 행동까지도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차마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 하지 않아야 할 작은 일을 작게 여겨서 함부로 하는 사람은 점점 더 함부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커져서 결국은 못할 짓이 없게 되기 쉽다.   

*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 약속을 쉽게 하는 사람이 지킬 의지가 없는 것과 같아서, 대체로 그 기회가 주는 권력에 집착하여 이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 기회가 주어지기 전에도 그리고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뒤에도 그가 있었던 자리와 그가 있는 자리에서 그 능력을 펴는 사람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사회적 지도자를 선택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인가를 보아야 한다.

  

사족 1 : 위의 *표한 말들은 한번 읽으신 뒤에 모두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의 구절 가운데 하나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죄악에 빠지지 말라’는 것인데, 또 이 교훈을 잊고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제멋대로 내린 것 같습니다. 역시 증자의 속삭이심이 아닌 제 미숙한 인격의 울림이었나 봅니다. 타인을 심판하고자 하는 이 끈질긴 시선을 멈추고, 그 방향을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족 2 : 단발령을 거부한 그 정신을 그 정신을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머리카락을 가볍게 여겨 더 소중한 것들까지 마구 내 던져 온 지난 세기 우리가 어떤 것들을 상실했는가를 생각하면 참혹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사족 3 :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요? 아마 자식을 두어 본 사람, 그 자식의 몸에 난 상처를 바라 본 사람은 모두 알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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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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